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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일 ( 2 월 13 일- 수요일 ),- 2 호 영지 "공갈신천 "온천욕 체험. . 처럼 추운 밤을 지낸 경험이 없다. 방안에 히터가 있었는데도 휀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 할 뿐 더운 바람 대신 찬 바람만 나온다. 후런트에 달려가 도움을 요청 해 보았지만 사람이 왔다 가면 또 다시 찬 바람 으로 원상 복귀다. 이불도 얇은 이불이라 대책이 없다. 할 수 없이 두꺼운 겉 옷까지 끼어 입고 새우 잠을 잘 수 밖에 없었다. 추운 잠자리 재난은 우리들 뿐이 아니었다. 다른 방 일행들도 역시 히터의 고장 또는 작동 불능으로,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지역은 전기 절제 지역이어서 격주로 매일 밤 2 ~ 3 시간씩 정전을 한다고 한다. 히타가 구식이고 오래 된 것이어서 정전이 한번 되면 다시 가동 될 때까지 리모콘 작동을 새로 해야하고, 그 사이 오작동도 발생하고 작동 불능으로 이어 지기도하여 밤새도록 고생들을 하였단다. 단 은영이네만은 냉장고 박스에 들어 있는 이불을 용케 또 하나의 작은 사건은 아침에 세수하고 식당으로 가려고 할 때 일어났다. 아무리 찾아도 안경이 없는 것이다. 침대 모서리도 찾아보고, TV 다이 옆 화장대, 침대 밑을 뒤져 봐도 안경이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나의 수상한 거동에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아내와 눈길이 마주치자 멋적은 웃음을 웃는다. 어제 아내가 옷을 잃어 버렸다고 했을 때 아내에게 준 핀잔이 곧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 올 것이 뻔하다. " . . . . ? " 아내의 무언의 시선에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가 없다. " 안경이 안보여. . . . " 힘없이 내 밷는 말에 아내의 핀잔이 시작된다. " 당신도 올 때까지 왔구료, 눈을 빼 놓고 다녀도 모르니?, 어제 목욕탕에서 쓰구 오긴 했어요? " 그렇다. 어제 입욕할 때, 옷장에 옷을 넣으며, 안경은 밑에 신발 넣는 곳 구석에 놓았던 생각이 났다. 옷과 같이 놓았으면 나올 때 빠짐없이 체크하고 나왔을텐데, 신발장에서는 아무 생각없이 신발만 들고 나온 것이다. 한 쪽 모서리 약간 깊게 밀어 놓은 것이 눈에 안 띄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안경을 낀것과 안 낀 것과의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신경이 둔 해 진 것에 대해서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 벌써 치매가 오는 건가? ) 그러나 이 사건은 쉽게 해결 되었다. 가이드가 전화로 확인 한 바. 안경은 정확한 장소에 있었고, 수고비 10,000 원에 즉시 회수 된 것이다. ( 10 시까지 기다려도 하늘은 좀처럼 개일 것 같지 않다. 짙은 구름에 눈보라마저 흩날린다.)
가이드의 얼굴 표정이 밝지 않다. 가는 눈발이 내리는 하늘을 쳐다 보며, 근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 공가산 ( 貢喝神山 ) 쪽에 눈이 많이 와서 차도가 끊겼다고 합니다. 좀 더기다려 보라고 하니까 차 한잔 하시고 기다리시지요." 가이드는 하늘에서 내리는 가는 눈 가루를 손으로 연상 휘저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하늘 색은 뿌연 우유 빛을 띄우고 있다. 금방 개일 것 같지않다. 일정대로라면, 일행은 호텔 앞, 버스 정거장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해발 3,080 m 지점에 이르러 케이불 카를 타고 3,800 m 지점까지 왕복하는 일정이다. 케이불 카의 총 길이는 3,500 m. 2001 년에 개통 되었다고 한다. 케이불 카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해라구 산림공원과 해발 7,556 m 의 촉산황제공가산 ( 貢喝神山 )을 조망하고, 3,500 m 지점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형성 된 " 만년 빙천, 빙천 호수" 를 조망하는 일정이 포함 되어 있다. 특히, 공가산의 위용은 매우 아름다워 태양이 비치면 산 전체가 금빛으로 물 들어 " 금산 " 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오전 10 시가 되어도 공가산으로부터는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아직도 길이뚤리지 않았다는 소식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가이드가 결단을 내린다. "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일단, 2 호 영지 " 공갈신천 " 온천이 있는 곳으로 이동 하다가 근처에 이르러 형편을 보아 운전기사와 재 협상을 해 보겠습니다.어떻게 하든 여러분을 꼭 공가산 절경과 만년 빙천, 빙천 호수를 보여 드리 겠습니다 " ( 2 호 영지로 가려면 셧틀버스로 가야한다. 셔틀버스 터미널.) 셔틀 버스는 우리가 타고 다니던 버스보다 더 적은 버스다. 그런데, 승객은 다른무리와 함께하여 만원이다. 둘러보니 모두가 한국인이다. 버스는 S 자형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따라 간다. 몇일 전에 온 눈 덩이가 길가에아직도 수북이 쌓여있다. 그리고 지금도 가늘긴 하지만 눈발이 계속 내리고 있다.길이 좁고 굴곡이 심하여 차가 속력을 못 낸다. 눈길위를 조심스럽게 따라 갈 뿐이다. 드디어 2 호 영지에 도착하였다. 가이드가 운전기사에게 흥정을 하는 모양이다.중국 말이라 알아 듣지는 못 하지만 운전기사가 손사래 치는 것을 보니 거절 하는모양이다. " 기사양반이 윗쪽으로 갈 수록 위험하다는군요. 윗 쪽에는 눈이 더 많이 왔고, 또이 차는 체인 준비도 하지 않았답니다. 본부에서도 여기 이상은 가지 말라는 명이있었답니다. 300 위안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 가이드가 못내 아쉬운 듯, 말을 잇는다. " 여기서 서너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만년 빙천, 빙천 호수를 볼 수 있는데, 걸어서라도 올라 갔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 일행 중 나이들어 보이는 사람이 좌중의 분위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받았다. " 기사 양반 말 듣는 것이 정답 인 것 같아요, 오면서 보니까 길도 좁고, 눈도 쌓이고올라 갈 수록 더 위험 할 것 같아요. 괞이 무리 할 것 없어요." " 그렇게 합시다. " 좌중은 조용 했지만 몇 사람이 반대 의견에 편승하자 중론은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무척 아쉽기도 하였으나 눈길에 서너 시간 행보에는 아무래도 자신이 서지 않는다. ( 대신 온천욕이나 실컷 즐겨야지! ) 2 호 영지 신천 온천욕은 이랑산 터널 입구에서 절경을 바라보며 느꼈던 " 참!, 잘 왔구나! " 하는 느낌을 한 번 더 느끼게 하였다. 1 호 영지의 온천보다 분위기도 훨씬 좋고 알맞은 크기의 욕탕이 여기저기 가까운 거리에 연결 되어 있어서 서로 다른 물의 온도를 체험 할 수 있었다. 40 도 C 에서 56 도 C 까지. 다끈한 온천수에 언 몸을 녹이며, 사방이 하얀 눈으로 둘러 쌓인 절경을 눈 앞에서 감상 할 수 있으리라고는 여기 오기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 해발 2,580 m 에 위치한 2호 영지 공갈신천온천 입구. 17 개의 노천탕이 있다.)
2 호 영지 공갈신천 온천 (貢喝神湯 )!. 중국 10 대 온천 중 하나, 해라구 풍경구내 해발 2,580 m 의 원시림에 위치하며, 해라구풍경구의 핵심 관광지다. 노천 온천으로 주위 아름다운 풍광을 천연 그대로 감상 할 수있다. 수질은 무색 투명한 천연 수로 온천 발원지의 온도는 섭씨 80 ~ 90 도에 이른다. 각각 다른 스타일의 17 개의 온천탕과 사우나 방을 구비하고 있으며 동시에 800 명의손님을 수용 할 수 있는 규모를 자랑한다. " 세상에 이런 절경이!," 따뜻한 물 위로 머리만 내 놓고 사방을 둘러 본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하얀 눈으로 뒤 덮힌, 하늘 위로 치 솟은 산 봉우리가 주위를 빈틈없이 병풍처럼 둘러 치고 있다. 해발 2,580 m 원시림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실감 할 수 있다. 2 년 전 일본에 있는 작은 아들이 베푼 효도 관광으로 , 아다미 온천에서 이틀을 지낸적이 있었다. 호텔은 묘하게도 해변가 절벽에 턱 걸이를 하고 지어 호텔 로비가 12 층에 있었다. 호텔 24 층 방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호텔 전체가 그대로 바다물 한가운데 떠 있는 형상이다. 새벽에 창문을 열면 바다 한가운데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은 그대로 장관이다. 멋 진일출을 호텔 방 침대에 누워서 감상 하는 것이다. 일출 각도를 백 분 살린 설계자의 치밀함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호텔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바다속에 만들어 놓은 인공 노천 온천이었다. 바다속에 구조물을 만들어 온천 수를 끌어들여 노천 온천을 만들었다. 그 당시, 물 속에 몸을 담근 채, 머리만 내 놓고 사방을 둘러 보며, 바다 위 갈매기들의 유희와 멀리 보이는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절경에 한 동안 넋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래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여기서 보는 절경은 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보다 고차원 적인 절경이다.모두가 즐거운 모양이다. 쉴 새 없이 짓거리며 간간이 탄성도 들린다. 또 다른 무리는 어린 아이들 처럼 수영도하고 이 탕 저 탕 옮겨 다녀도 보고, 물 속에 자막질도 해 본다. 특히 여자들의 수영복 차림은 더욱 싱그러워 보이고 피부는 탄력이 있어 보인다.
( 2 호영지 공갈신천 노천온천. . 주위 경관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줄 몰랐다)
" 산에 안 가길 잘 했어!. 산에 갔으면 산 길에서 고생하며 아까운 시간을 길에서 다 써 버렸을테지?, 이런 좋은 경험을 못 해 보고. " " 저녁을 먹고 또 올 수는 없나? " " 내일 하루도 이 곳에서 보내기로 했으면 좋겠어." 여러 무리의 중국인들이 합세한 후로 온천은 더욱 활기를 띄운다. 여기 저기 각 탕마다 중국인 들로 초 만원이다. 중국인들 특유의 수다가 귀에 따가울 정도다. 아이 어른 할 것없이 우리들이 모여 있는 사이로 거침없이 파고 든다. 물 줄기를 팅겨내도 미안 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그리고 우리를 변두리로 몰아낸다. 우리가 있던 자리는 물 속에 의자가 있어 걸터 앉아 있을 수 있는 편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세상 일이란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예기치 못한 불상사는 그 때 일어났다. 중국인들이 우리 쪽으로 몰려오자 우리 일행은 다른 욕탕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하였다. 그리고 욕탕밖에 놓아 둔 스립퍼와 수건들을 집어 들고 움직이기 시작 하였다. 그런데, " 아뿔싸!," 내가 나의 수건 있는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은영이 아빠가 먼저 도착하여 수건 무더기를 집어 올리다가 내 수건 속에 묻혀 있던 카메라를 물 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카메라를 들어 올렸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물에 젖은 카메라는 그 후 작동을 하지 않았다. 좋은 배경을 두고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니 속이 여간 타는 것이 아니다. 은영이 아빠가 잽싸게 카메라를 들고 사워장으로 달린다. " 사워장에 드라이어가 있던데, 가서 드라이어로말려 볼게요 " " 우선, 밧데리하고 칩을 내 놓고 말리세요 " " 드라이어를 너무 세게하면 칩이 휘어서 손상되는 수가 있으니까, 천천히 말려야 해요 " " 나도 한번 카메라를 물에 빠뜨린 적이 있는데, 칩은 그대로 살아 나더라고요." 경험자들의 충고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충고대로 밧데리와 칩을 따로 말리고, 은영아빠는 카메라의 몸체를 구석구석 말려 나갔다. 30 분 가량 말렸으나 계속 작동이 안된다. " 아무래도 서울가서 A/S를 받아야 할것 같아요 " 둘이는 체념을 하고 다시 욕탕으로 찾아 들었다. 은영 아빠의 미안 해 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함을 느꼈다. ( 카메라를 보이게 밖으로 놓을 걸. . . . ) 대신, 은영 아빠는 본인 카메라를 들고나와 나의 몫까지 열심히 찍어 주었다. 오후 2 시 30 분에 온천욕을 마치고, 구내 식당에 모였다. 11 시 부터 3 시간 30 분을욕탕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긴 셈이다. 구내 식당에서도 창 밖의 눈 덮힌 절경이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음식도 좋았고, 오고 가는 대화도 즐거움을 더 해 준다. 예의광주 모녀도 더 많은 소주와 안주를 내 놨다. 그리고 여기저기 술 잔을 돌린다. ( 온천욕을 즐긴 후의 식사는 꿀 맛이다. 대화도 풍성하여 분위가 한껏 고조 되었다.)
식당의 고조 된 분위는 가이드의 출현으로 가라 앉았다. " 지금 시간이 오후 4 시 입니다. 오전 일정이 취소 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지금부터 호텔로 돌아가면 나머지는 자유 시간이 되겠습니다. 저녁은 7 시에 호텔 식당에서 하도록 하겠 습니다. " 호텔에 돌아오자 나와 은영아빠와는 바둑 판을 벌렸다. 여행 도중 무료한 시간이 있을 것 같아 서울서부터 접개식 바둑 판을 백에 넣어 가지고 온 것이다. 그 동안몇 번 벼르기는 했으나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 중국 사천성 해라구의 두 한국인 정상 수담 기록 보유자들 )
은영이 아빠가 석점을 놓고 네 판을 두었다. 승율은 2 : 2 . 아주 재미 있게어울리는 게임이었다. " 아마, 해발 2,000 m 이상에서 바둑을 둔 기록은 기네스 북에 올릴만한 기록일걸! " 듣고 보니 그럴 듯 한 이야기다. 언젠가 조훈현 국수가 중국 쪽 백두산 정상에서 바둑을 두다가 중국 관헌들의 제지로 무산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그 때 찍은 사진만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백두산 정상이 2,750 m 이니우리가 그 기록을 깨지는 못했으나 기까이 간 셈이다. 충분히 화두가 될 것 같다 " 해발 2,200 m 해라구 明珠호텔에서 바둑을 둔 최초의 한국인 두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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