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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15,8-13
모세의 노래 2
탈출 15,8 직역
당신이 양 콧구멍에 숨으로 물(들)이 쌓였고
물흐름들은 둑처럼 섰다.
(태고의)깊은 물들은 바다의 심장에서 엉겼다.
앞에서 화를 얘기했을 때 히브리 사람들은 누군가의 코가 빨개지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8절에서는 정말 코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쌍수( 신발 한켤레, 양눈등으로 짝을 이루는 수?콧구멍도 2개)로 쓰여서 콧구멍으로 번역하셨습니다.
야훼하느님의 코에서 바람이 나와서 그 바람이 물들을 쌓고 그리고 물의 흐름들이 둑처럼 섰다. 물을 막기위한 것으로 섰다?? 이상한 표현입니다.
물이 물을 막기 위해 서 있는 것과 같이...
'(태고의) 깊은 물들은 바다의 심장에서 엉겼다.'
"엉겼다"
라는 것이 액체 상태에서 젤 상태로 응고 된 상태인데 물의 그렇게 되는 경우는 어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엉겼다'( 주석학자들의 해석)- 주님의 콧바람이 물을 얼리는 것으로 해석 |
미국에 한파가 온 해에 시카고 지역에 바다가 언 사진이 인터텟에 돌아다니는 모습처럼 갈대 바다의 물들이 딱 얼어서 바람 때문에 길이 나고 얼은 길이 벽이 되주는 그와 같은 그림으로 이 대목을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을 둑처럼 세웠다는 표현이 또 등장하는 것은?
시편 78,13
바다를 가르시어 물을 건너가게 하시고 물을 둑처럼 세우셨다.
모세오경이 끝나면은 여호수아기가 있는데 여호수아기 3장에서 보면 요르단강을 건너가면서 거기에서 다시 요르단 강이 갈라지는데 거기서 갈라질 때는 그런 초자연적인 힘이 아니라 그 위에서 둑을 만들어서 둑이 세워지자, 사제들이 계약의 궤를 매고 가는??
물에 발이 닿지 않고 건너갔다..라는 그런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거기에서는 꽤 초자연적인 내용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그것을 설명하고, 거기에서도 역시 둑, 이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상류에서 그들이 막자, 물이 끊어지고 그들이 물에 발을 적시지 않고 요르단 강을 건너갔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둑이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나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과 여호수아기 3장, 이사야서 17장, 시편 33장 이정도에서 발견될 뿐입니다.
거의 잘 등장하지 않는 그와 같은 단어입니다.
심장에서 엉겼다." 라는 말에서 심장이라는 말은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어떤 중심이야? 하고 생각하셔야 하는데 바다의 '심장'의 중심 인가? 아니면 바다를 3D로 놓고 보았을때의 중심인가?
바다의 '심장'
- 바다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평면적, 입체적 중심 모두를 포함.
바다의 중심이라는 것이 넓은 바다가 있는데 그 가운데를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또 바다가 있으면은 높이가 있고 깊이가 있을텐데 그 가운데라고 얘기할 수 있는, 여기서는 두가지 다 깊이에 관점에서도 평면적인 의미에서도 그렇고 종적의미와 횡적의미가 이 안에서는 같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심장에서 엉겼다..
그리고 일관된 표현이 이어지게 되는데 이집트가 물에 가라앉을 때 돌처럼 가라 앉고 그리고 그 물은 야훼에 콧바람으로 인해서 더 얼음처럼 굳고, 반복되어 탈출기 때처럼 보았던 표현대로...파라오의 심장은 완고해지고 완강해진다는...그런것들이 일관성이 있게 무언가 딱딱해 지는 부드럽고 유연하지가 않는 그와 같은 그림을 우리는 여기서 공통적으로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장면의 묘사가 나옵니다.
그러자( ....깊은 물들이 바다에서 엉기자), 원수가 말하는데 원수는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한) 원수가 말했다. 라고 하셨습니다.
탈출 15,9 직역
(한) 원수가 말했다.
나는 쫓아가리라 나는 잡으리라
나는 약탈품을 나누리라
마치 창세기를 시작할 때 '한 처음에' 라고 했듯이 (한) 원수가, 특정 원수가 말했다.
그러면서 세 동사가 연달아 등장합니다. 쫓아가리라. 잡으리라. 나누리라.
는 세 동사가 연속적으로 등장합니다.
'쫓다, 잡다, 나누다' 동사의 연속 등장 :연속적으로 동사가 등장하는 것은
▶ 시간적으롤 급박한 움직임을 묘사
▶ 그것이 얼마나 쉬운가를 묘사 합니다.
율리어스 카이사르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 :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이겼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여기서도
쫓다, 잡다, 나누다 : 아주 쉽게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음을 이야기 합니다.
탈출 15,9 직역
나의 목구멍은 그들로 가득하리라
나는 나의 칼을 뽑으리라
나의 손은 그들을 소유하리라
라는 세 문장이 역시 뒤이어 이어집니다.
앞에서 코랑 콧멍이
'목구멍' : 목, 또는 숨이라고도 해석
한 처음에 아담을 빚어서 만드시고 그에 입에 숨을 불어놓어 주셨다. 라고 할때 네페쉬(נפש) 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같은 단어가 사용이 됩니다. 그 네페쉬라는 뜻은?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인데 그 숨은 목으로 쉬니까 "목숨" 이라고 합니다.
목숨이 달렸다. 목숨이 끊겼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과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유하고 있는 점들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목인데, 목구멍( 네페쉬 נפש)라는 단어입니다.
'나의 네페쉬, 나의 목구멍은 그들로 가득하리라"
그들을 포획한 것입니다.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잡듯 포획한 모습,
그리고 '나는 나의 칼을 뽑으리라'
"무장한다, 죽인다' 는 의미를 포함
'나의 손은 그들을 소유하리라.'
다시 이스라엘 민족의 주인이 되리라는 선언
여기서 갈등이 벌어지는 거고, 야훼도 이집트의 파라오도 이스라엘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야훼와 야훼의 백성이 이스라엘은 계약을 맺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해줘야될 일이 있는 동등한 관계
주님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은 동등한 관계, 파라오는 이스라엘을 주종의 노예관계로 삼고 싶어하는 관계로,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이상합니다. 쫓아가리라, 잡으리라, 나누리라
목구멍은 그들로 가득하리라, 칼을 뽑으리라, 나의 손은 그들을 소유하리라.칼을 뽑는다는 게 더 앞에 위치해야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쫓아가서 그들을 잡고 칼을 뽑아 가지고 그들을 나의 목구멍에 가득 채우고 그리고 나는 또 그들을 약탈하고 그리고 나는 그들을 소유하리라. 이것이 논릭적인 그림으로는 더 맞는 그림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말에서도 그게 드러납니다. 세 동사는 비슷하게 시작합니다. 나는 쫓아가리라, 잡으리라, 나누리라, 그리고 아래 있는 세 동사는 나의 목구멍은 , 칼을 , 손은
나는 쫓아가리라, 잡으리라, 나누리라 ▷ 운율이 맞춰지고 있는 형태 나의 목구멍은, 칼을, 손은 |
따라서 운율이 맞춰 지기위해서는 내적인 논리는 부서지고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도 신부님께서 탈출기 책을 쓰면서 '우리말에 이런말이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하셨는데 정말 있었다고 하시며,
서양 말 문법에서는 운율을 맞출 때, 맨 앞에 음절에 맞는 경우, 중간 음절에 맞는 경우, 맨 마지막 음절에 맞는 경우에 따라서 용어를 다르게 씁니다.
우리말로도,
전체를 운율을 맞춘다는 것이, 압운 이라고 하는데, 압운 중에서 맨 시작하는 압운이 맞았을때는 두운이라고 합니다. 중간 부분에 운율이 맞춰지는 것은 요운 이라고 하고 마지막 부분에 음절이 맞춰졌을 때는 각운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두운, 요운, 각운으로 잠시 후에 쓰이겠습니다.
탈출 15,10 직역
당신은 당신의 숨으로 불었다 / 바다가 그들을 덮었다
그들은 마치 납처럼 가라앉았다 / 거센 물(들) 속에
히브리 말 어순을 따르다 보니 전체적으로 말이 거칩니다.
'당신은 당신의 숨으로 불었다'
숨으로 물을 얼리셨다가,
숨으로 둑처럼 쌓았던 물을 원상태로 복귀시키는 것.
이것은 앞선 이야기 체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앞선 이야기체에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라. 그러니까 물이 다시 원상태로 오면서 이집트 군대가 빠져죽었다. 라는 것이 이야기체인데 여기서는 모세가 등장하지 않고 물이 다시 원상태로 되는 것도 하느님이 숨으로 애를 씁니다.
콧바람으로, 머릿속으로 그림을 상상하면 다소 웃기는 모습일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들은 마치 납처럼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가라앉는 모습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앞선 표현보다 상승하는 표현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모습에서 급격히 쑤욱~ 가라앉는 모습.
그러면서 그 물들이 거센물들이었다. 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실은 돌처럼 이라는 단어보다 '납처럼' 이라는 단어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인데 특별한 단어를 가져다 놓았고,
앞에서 '돌처럼 가라 앉았다' 라고 했을때는 가라앉는다. 는 일반적인 동사를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짤랄'(צלל)이라는 구약성경에서 한번밖에 나오지 않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정말 그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돌처럼 가라앉았다가 아니라 납처럼 침몰했다(쑥~ 가라앉았다)라는 것을 특별한 단어 특별한 동사들을 사용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또 재밌는것은 '납'이라는 단어가 히브리 말로 '오페렡’입니다.
오페렡? 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떠올라야 합니다.
네~ 파라오(פרעה)! 가 비슷하게 들립니다.
히브리 사람 귀에는 오페렡(עפרת)과 파라오(פרעה)가 유사 동음적인 관계가 의도되지 않았을까? 파라오가 오페렛처럼 쑤욱ㅡ 가라앉아 버리는 그림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 7절에서는 불로 하는 심판,
- 검불을 타오르는
▷ 8절과10절은 물로 하는 심판
- 각각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집트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따라와서 불로 심판받는 내용은 없습니다. 따라서 불로 하는 심판은 열가지 재앙과 연관시킬수 있지 않겠는가? 이집트에서 열가지 재앙과 함께 있었던 것을 불로하는 심판으로 그 다음에 갈대 바다에 와서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은 물로하는 심판으로 이해하자. 라는 주석가들도 있습니다.
신부님은 잘 모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탈출 15-11 직역
누가 당신 같겠습니까 / 신들 안에서 / 야훼여
누가 당신 같겠습니까 / 거룩함 안에서 강한
찬미 받을 일들로 경외스러운 / 기적을 행하는
우리말로 의역한다면
야훼여 신들 중 누가 당신 같겠습니다? 와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이 11절은 절로 따지면은 좀 애매한 위치에 있습니다만,
모세의 노래, 시편 15장 1~18절을 절 구분없이 쭈욱 쓴다면은 이 11절이 정 가운데에 있습니다. 절구분은 책을 만드신 분들이 하신거고 본래 히브리말 수사본은 쭈욱 써있는데,
가장 가운데 있는 것이 이 11절, 그런데 11절에는 수사적인 특별한 표현이 등장하게 됩니다.
'누가 당신같겠습니까? 신들중에 야훼여~
야훼는 어떤 신과 비교할 수 없는 강하고 경외로운 존재 그리고 어떤 신도 행할수 없는 기적을 행하는 신으로 찬미됩니다.
누가 당신 같겠습니까? 그다음에 세가지 야훼의 특성이 열거가 됩니다.
거룩함 안에서 강한, 찬미받은 일들로 경외스러운, 기적을 행하는.
따라서 이런 신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 우리가
'이것 유일신관인가?' 라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수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축구가 있은이래 '차범근 같은 축구선수는 없다.' 그럼 다른 축구선수들은 있는데 그 만큼 훌륭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다른 신들도 있는데, 하지만 우리 야훼 같은 신은 없다. 라는 뜻으로 이 구절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 구절은 굉장히 원시적인 신관을 갖고 있다고 볼수 있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하는 주석가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누가 당신같겠습니까? 라는 표현을 가지고 이 표현자체가 그러한 유일 신관을 부정하는 뜻은 아니고 '이방인들을 자신들의 신을 섬기는데, 그것들은 신도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이런식으로 표현한다. 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부님이 보시기에는 이 문장에는 약간의 원시적인 신관이 반영되있지 않는가? 하시는 것이 신부님의 의견입니다.
'누가 당신같겠습니까?' 와 같이
야훼의 우월성을 찬미하는 수사적 의문문은 특히 구약의 시문학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수사적 의문문
º 시편 35,10 : 내 모든 지체는 아뢰리라. "주님, 누가 당신과 같겠습니까? 당신께서는 가련한 이를 그보다 힘센 자에게서, 가련한 이와 불쌍한 이를 약탈자에게서 구해 주십니다."
º 시편 71,19 : 하느님, 당신의 의로움은 하늘까지 닿습니다. 위대한 일들을 하신 당신 하느님, 누가 당신과 같겠습니까?
º 시편 89,8 : 주 만군의 하느님 누가 당신같이 능하겠습니까, 주님! 당신의 성실이 당신 주위에 가득합니다.
자주 쓰이는 수사적인 표현 방법으로 우리가 이 구절, 똑같은 구절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뒤이어서 나오는 세가지 수식들, 이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거룩함 안에서 강한” 이라고 직역될 수 있는데, 여기서 거룩함이라는 것은 지상입니까? 천상입니까? 천상입니다.
띠리서 이 대목을 우리가 의역한다면,
'거룩함 안에서 강한'
천상에 있는 존재들 중에서 가장 강한
이라고 의역할 수 있겠다.라는 주석가들의 의견이 있고,
그리고 '찬미받을 일들로 경외스러운' 에서 '찬미' 라는 뜻은?
찬미하다.라는 동사는 빛나다. 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빛남이 경외스러운, 우리를 경외스럽게 하는 빛남. 이라고 그 부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타볼산에 올라갔을 때 그분의 옷이 밝게 빛나는,
여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고 나서 찾아갔을 때 하얀 빛나는 옷을 입고 있는 하느님의 광채를 얘기하는 그런 빛남으로 두번째 찬미받을 일들로 경외스러운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 다른 신들은 도저히 하지 못하는) '기적을 행하는'
그런 기적을 행하는 또는 그렇게 경이롭게 일하는 그와 같은 야훼의 우월성이 반복적으로 칭송되면서 점진적으로 상승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이와 같은 수사적인 찬미에 이유가 등장합니다.
여기부터 우리들에게 '이게 도대체 뭐지???' 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탈출 12-13 직역
당신은 당신의 오른손을 뻗는다 / 땅이 그들을 삼킨다
당신은 당신의 자애로 인도한다 / 당신이 구원한 민족을
당신은 당신의 힘으로 이끈다 / 당신의 거룩함의 정주지로
이 첫파트는 야훼의 액션입니다.
주님의 액션(행동)
'당신은 당신의 오른손을 뻗는다'
'당신은 당신의 자애로 인도한다'
'당신은 힘으로 이끈다'
두번째 파트는 그것에 대한 결과. 목적. 방향입니다.
주님의 액션의 결과, 대상, 방향
'땅이 그들을 삼킨다'
'당신이 구원한 민족을'
'당신의 거룩함의 정주지로'
액션과 결과 내지는 그 대상, 방향 이런것들이 결정이 되는데..
'뻗는다' '이끈다' 라는 동사를 읽어주시는데
'뻗는다' : 나티타
'인도한다' : 나히타
'이끈다' : 내할타
따라서 시작할 때는 발음이 나, 내,는 이라는 N sound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압운 중에서 두운을 맞추는 겁니다.
끝은 다 '타'로 끝납니다.
이것은 각운을 맞추는 겁니다.
더군다나 '당신은 당신의 오른손을 뻗는다.
나티타 여니너카
'당신은 당신의 자애로 인도한다'
나히타 부아스터카
'당신은 당신의 힘으로 이끈다'
내할타 보어줘카
다시한번 '카'로 각운이 맞취집니다.
'뻗는다': 나티타 | ⇒ 의도적으로 압운의 두운과 각운을 맞춰 | |
'인도한다': 나히타 | ||
'이끈다' : 내할타 |
그러면서 왜 우리가 이렇게 누가 당신같겠습니까?
당신같은 신은 없습니다. 라는 수사적인 찬미를 하는 이유가 등장하는데
첫번째는 땅이 이스라엘 원수들을 삼켰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당신이 당신을 구원할 민족을 구원했기 때문이고, 인도한 그 결과 당신의 거룩함에 정주지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땅이 이집트를 삼킨적이 있습니까?
이야기 안에서 보면 바다에 빠져 죽었지, 그리고 바닷가에 죽어 있는 이스라엘 군대는 있었으나 땅이 삼켰다??
이거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이건 어떻게 된거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구약에서
'땅이 그들을 삼킨다' 는 것을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구약에서는 전쟁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묘사하는 일반적 표현' 으로 받아들이자. 라고 얘기하면서 '모세의 노래'가 갖고 있는 내용안에서의 야훼의 창조적인 권능이
첫째 물을 통해서 이집트을 제압하는
둘째 아까 검불을 태워버리는, 불
그 다음에 물을 세우고 물을 다시 물로 만든 둑이 다시 허물어 지고 할때는 '콧구멍의 숨' 바람을 사용했습니다.(공기로)
물, 불,바람, 흙, 이 모든 요소를 사용해서 야훼(주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것이 <모세의 노래> 의 의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 땅이 그들을 삼킨다. 앞에서 처럼 먹는다.라는 표현은 그림으로 보자면 어떤 괴물이 아니면 어떤 동물이 그들을 집어 삼킨것처럼, 나중에 구약성경 백주간 하시면서 쭈욱 읽게될 내용중에서 요나서가 있는데,
요나서를 보면은 요나가 많은 사람들이 고래라고 생각하는데 고래가 아닙니다. 큰 바닷괴물 뱃속에 들어가는, 니느웨(니네베)로 가라고 하셨는데 반대로 가다가 바다에서 물에 던저져서 큰 바닷괴물 뱃속에 들어가는 이야기.
그런데 그때 요나가 그 안에 들어가서 하는 노래가,
자신이 스올,셔올(שאול)저승의 뱃속에서 울부짖는다고 기도합니다.
따라서 그 바닷괴물이 상징하는 것은,
죽음입니다(셔올, שאול)
물이 상징하는, 큰 물속 심연에 살고 있는 그 바닷괴물의 배속, 죽음의 중심에 요나가 들어가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삼키다' '먹는다'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땅이 그들을 삼킨다' 라고 했을때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그들이' 란 이집트의 군대겠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 앞부분을 보면 11절에서 '누가 당신 같겠습니까? 신들중에서 야훼여..'여기서 말하는 그 신들이 그들이 아니겠느냐? 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땅이 그들을 삼킨다. 에서 땅이 신들을 삼킨다. 라는 내용으로 우리가 이 대목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서 보니까 탈출 12,12에서 야훼가 모세에게
탈출12,12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이 부분에서 주님은 이집트의 모든 신들에게도 나는 심판을 할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신부님께서 열가지 재앙 설명해 주시면서 그런 이집트의 많은 신들이( 농사의 신들, 흙의 신들, 바람의 신들, 태양의 신들이 얼마나 무력화되는가..라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탈출 12,12을 자주 인용을 했는데 여기서 결국 '땅이 그와 같은 신들을 삼키는 대목이 역시 탈출12,12과 연관되지 않느냐?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이렇게 갈대 바다를 건너고 나서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섭니다.
시나이 산에 가기전에 그랬을 때 그 대목에서 보면은 탈출 17에서 아말렉이 전쟁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따라서 여기서 땅이 그들을 삼킨 것은 이 아말렉족과의 전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냐? 또는 민수 16장에서 있었던 어떤 그런 전쟁의 이야기가 이것과 연관되는게 아니냐? 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부님과 성서를 읽으면서 많은 학생분들이
"신부님 강의들 듣고나서 아!....점점 더 모르겠습니다." ..이 학자는 이렇게 저 학자는 저렇게 얘기해서...말씀을 접하면서???
이 부분을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역사와 연관시키려는 주석학자들도 있고 또는 신학적으로 다른 신들을 무력화 시키고 없애버리면서 유일한 하느님으로 야훼가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있다..라고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그. 런. 데...문제는
'당신은 당신의 힘으로 이끈다. 당신의 거룩함의 정주지로.'
지금 모세의 노래라는 것은 갈대 바다를 건너고 나서 모세가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어딘가로 가서 그 정주지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정주지에 도착한 것처럼 이 부분에 이야기가 등장을 합니다. 따라서 혹자들은
'당신의 거룩함의 정주지로'는
▷ 미래에 있어야 할 일이 미리 끼어 들어옴
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 미래에 대해서 확신하는 예언적 미래 형태
(예언적 미래라고 하는 것은? 축구 시합 하기도 전에 연습하는 것 보고서 "졌다" 라고 하는 완료형을 쓴다. 예언자가 미래에 대해서 확신을 할때 미래형을 쓰지 않고 완료형을 쓰게되는 그와 같은 내용이다)
당신은 당신의 정주지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것이 분명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기위해서 마치 과거의 사실처럼 여기에서 묘사했다. 라고 볼 수도 있겠다는 견해
또 한가지 재밌는 표현이 나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애로 인도합니다' 라는 부분인데 여기서 '자애' 라는 말을 히브리말로 '헤섿(חסד)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사랑'이라고 일반적으로 번역을 하는데요, 그런데 히브리적 관점에서 '사랑' 이라는 것은 감상적 의미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히브리 사람들의 사랑은 '윤리적 의무' 입니다.
해야만 하는 '헤섿(חסד)은 상대방에게 갖고 있는 윤리적인 의무입니다.
친척이나 친구사이에서,
예를 들어 내 친척이 잘못되어 재산을 다 잃고 누군가의 종으로 팔려갈 경우 그 사람을 다시 종에서 풀어주기 위해서 삼백만원이 필요한데 내가 어찌하다 로또에 당첨이 돼서 삼백만원이 생겼으면, 나에게는 종으로 팔려갈 친척을 자유인로 되사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나에게든 빵이 두 덩이가 있습니다. 오늘밤을 지내기 위해서 나는 나의 식구들과 함께 한 덩이만 먹으면 됩니다. 내 옆에 있는 친구가 아파서 일을 못나갔습니다. 그랬을때 그 친구에게 남은 빵 한덩이를 가져다 줘야 하는 의무가 바로 헤섿입니다.
또는 주인과 손님,
나에게 손님을 받아들였을 때 나는 그 손님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롯에게 손님이 찾아왔을 때 소돔과 고모라인들이 그 손님을 내놓으라 합니다. 하지만 롯은 내주지 않는 행위 그게 바로 헤섿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주인이 종을 지키는 의무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세계안에서 누군가가 나의 종이라면 나는 주인으로서 그가 굶어죽지 않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춥지 않게 입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곳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주인이 지켜야 할 헤섿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용어로 따지자면,
헤섿, 하느님의 자애라는 것은?
Solidarity(연대), Royalty(충실함) 입니다. 따라서 이 헤섿은 계약관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쌍방관에 지켜야할 윤리적인 의무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자애가 있고(이스라엘과 연대하는 하느님)
반면에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이 지켜야할 경건함이 있습니다.
그런 충실함과 연대의 개념이
헤섿 안에 있고 그것은 바로 윤리적인 의무이다.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충실히 하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부님은 천주교의 사제로서 해야할 바,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할 바,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 내 삶안에서 그것을 행하는 것, 살아가는 것이 바로 헤섿의 개념입니다.
탈출 15,13b
'이끈다' 당신은 당신의 힘으로 이끈다.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위에서 '인도한다' '이끈다' 라는 표현은 목자가 양을 이끄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이끈다, 라는 이 표현은 마실것을 준다는 의미와 서로 연관이 있습니다.(목자가 양들에게 물을 먹이듯...)
실제로 야훼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광야에 나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큰 불평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었습니다.(마싸와 므리바)
그러면서 물을 주는 야훼의 보호를 우리가 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당신에 거룩함에 정주지'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정주지' 란
쉼터, 여정의 종착지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주석가들의 의견이 또 갈립니다. 이 정주지라고 하는 곳이 과연 어디냐? 어떤사람은 거룩함의 정주지가 시나이 산이다. 라고 보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정주지가 민수기20장의 카데쉬라 보는 이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정주지가 민수기25장, 여호수아기 2-3장에서 나오는 시팀이라는 장소다. 라고 보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정주지가 당연히 예루살렘이지! 거룩함의 정주지라고 했으니까,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맨 마지막 예루살렘이지! 라고 보는 이들의 목소리가 한동안 크다가 다음과 같은 논거 때문에 작아졌습니다.
첫째,
모세의 노래, 내에서 성조들에게 준 땅! 이라는 개념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둘째,
모세의 노래뿐만 아니라 오경 전체를 통해서 예루살렘에 대한 모세의 진술은 발견되지 않습니다.(도성이나 성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요즘의 주석가들의 경향은 '잘 모르겠습니다.'이고
하느님의 경건함이 드러나는 정주지인데, 그 정주지 로서 드러나는 가장 원초적인 장소는 당연히 시나이 산이고 최종적인 장소는 예루살렘이다.라는 그 개연성 안에서 이 시문학의 작품을 읽어야 겠다라는 것이 이 부분을 연구하는 연구가들의 폭넓은 해석의 결과로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멘~!! 고맙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