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잔디심기 2 (잔디심는 방법)

*잔디심는 방법
잔디심기 2일차. 먼저 잔디 땟장 2000장을 작두로 잘랐다. 땟장 5장씩 묶은 꾸러미를 작두에 올려놓고 이등분하는 것이다. 잔디는 이제 4000조각이 되었다. 20평 어치 잔디로 80평 마당 메우기. 이제 일은 오직 4000번의 단순반복만 남은 것일까?
하지만 잔디심기가 엄밀하게 말해서 단순반복이라고 할 수 없다. 일단, 잔디심기가 해본 적 없는 생경한 작업이라 처음에는 서툰 게 정상이다. 적당히 팠다 싶은데 잔디를 넣고 흙을 덮어보면 불룩해서 다시 들어내고 좀 더 파야 하고, 좀 더 팠다 싶으면 잔디를 들어내고 흙을 조금 되채워야 한다. 또한, 잔디 땟장의 두께가 일정하지 않아 흙파는 깊이가 달라야 하고, 부서진 땟장은 흙이 붙어있지 않아 다른 방법으로 흙채우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마당 가운데 트럭으로 부은 마사토 흙이야 살살 긁어도 쉽게 파지지만, 가장자리 원래 마당흙은 딱딱해서 잘 파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호미의 뾰족한 부위로 파야 하는데 호미의 넓데대한 면으로 박박 긁어대느라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기도 한다. 의외로 작업요령을 생각해야 할 순간이 많다.
일요일 오후 5시가 넘어가니 잔디심기 진척율도 70%를 넘어간다. 노동에 단련되지 않은 몸이라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허벅지는 옛날 오리걸음으로 학교운동장을 서너 바퀴는 돌았을 때의 감각이지 싶다. 잔디를 처음 심을 때는 잘 심으면 느리고, 어설프게 심으면 상대적으로 빨리 심을 수 있었다. 몇 번 마당의 상태, 땟장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심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른바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보수교육(補修敎育)!
*반복과 차이, 들뢰즈가 생각나는 잔디심기
단순반복은 미세한 적응과정을 거쳐 미세한 차이를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한다. (어려워서 잘 모르지만)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의 핵심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적절하게 심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손이 점점 빨라져야 한다. 그때의 일정 수준에 오른 유연한 손놀림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내 손은 어제보다 두 배는 빨라져있다. 그렇다고 심은 상태가 부실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작업 이틀째가 끝나감에도 빨라지지 않는 손도 있다. 심는 상태가 더 양호해진 것도 아니다. 단순반복 작업이니 '이렇게 하면 되겠지'라고 처음 몇 번 주의해서 심어보고는 이내 관성에 맡겨버리는, 그리하여 미세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가 끝까지 이어지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현생에서 업장을 녹여내야지 억겁을 이런 상태로 윤회할 것이냐며 마음 다잡던 어떤 할머니 얼굴이 뜬금없이 떠오른다.
다음달 아이들이 만드는 일요일 메뉴를 김밥으로 정하고 김밥속용 당근을 예쁘고 길게 썰어보게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김밥속용 당근 썰기. 당근이 딱딱해서 칼로 길게 썰기가 참 어려웠다고 기억한다. 미세한 차이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안성맞춤형 단순반복일까, 손가락 안전에 문제가 생길까? 그것도 선택이 어렵다.

*홍천읍내 대우닭갈비, 이럴수가
힘든 노동 뒤에 맛있는 식사는 큰 위안이다. 홍천읍내로 나가서 대우닭갈비집에서 닭갈비로 저녁식사를 했다. 이건 본론과 상관없는 여담인데 안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옛날에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읽었다. 그 만화 시식 장면에서 미감을 표현하는데 과장도 그런 과장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갑자기 울지를 않나....
그런데 그게 근거없는 과장은 아니구나 하고 이날 느꼈다. 내가 원래 성정도 무딘데다가 입맛은 더더욱 무뎌 "맛있는 편이네", "별론데 그래도 먹을만은 하네" 정도가 나의 최상 최하의 미감 표현이었는데 말이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오래 살고 볼 일임은 틀림없다.

*마당 수평잡으며 잔디심기
잔디심기 3일차. 점심 먹고 오후에 이어서 시작했다. 넓은 마당 말고 인접해 있는 구석 마당 두군데가 남았다. 마당 물매가 적절치 않아 마당 가운데 웅덩이가 생길 형태다. 보다 높은 마당끝 흙을 얇게 저며(!) 깊은 곳을 메워가며 잔디를 심어야 했다. 물매 확인을 위해 긴 직선 도구 위에 수평기를 올려놓고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잔디를 모아둔 자리에서 잔디를 외발수레에 담아 심어야 할 자리에 배치하기 위해서는 잔디를 두 번 들었다 놨다를 해야한다. 처음에는 알려준대로 잔디흙이 부서져 떨어지지 않게 살살 다루더니만 뒤로 갈수록 끊임없는 툭툭 소리가 내 가슴을 후빈다. 내려놓기 위해 허리를 더 숙여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해는 한다만 내게는 계란을 방바닥에 놓인 계란통에 던져넣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 때 화를 냈어야 했는데 화를 내지 못했다. 연민과 동정 때문이다. 죽어 저승에 가서 프리드리히 니체한테 귀싸대기 맞을 짓을 한 셈이다! 니체에게 연민과 동정은 스스로 일어서려는 자의 의지를 무참히 꺽는 짓과 같기 때문이다. 이래서 교육은 안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다.

*사점(dead point)을 넘은 잔디심기: 신체단련 기회를 허하라!
잔디심기가 드디어 끝났다. 아이들 표정이 흔히 겪어보지 않은 사점(dead point) 하나를 넘은 듯한 표정이다. 보람은 자기가 일궈놓은 결과의 확인이다. 사점을 넘어가면서 일궈놓은 결과에 대한 보람은 한층 더 크다.
정신은 신체의 종속변수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옛날 얘기다. 지금은 택도 없다! 차도 없고, 집안에 수도도 없고, 화장실도 마당끝에 있고, 식재료는 전부 헛간이나 밭에 심어진 상태로 있고, 빨래터는 동네 어귀에 있어 아침에 눈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쉴 새 없이 신체를 써야했던 시대에나 통용되는 말이다. 뇌과학에 따르면 신체가 힘들면 정신은 이를 핑계로 신체가 쉬어야 하는 이유를 만든다고 한다. 신체가 단련되면 정신력도 강해진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정체성을 자신이 한 일에서 사후에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없는 신체를 통해 정체성을 발견할 길은 없다. 배움은 한 주체가 세상, 사물,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것인데 세상과 단절되어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지식의 매스(mass)를 강제주입하니 주체의 발견이 가능한 일인가? 주체적이지 않은 공부는 썰물 때 찰싹이는 파도 앞에서 모래성 쌓기다. 아이들에게 신체단련 기회를 허하라!
스프링쿨러를 설치하고 물을 주기 시작했다. 내 눈에 마당은 이미 싱싱한 초원이다.

반대편에서도 찍어봤다. 요리 보아도 초원이요, 조리 보아도 초원이다^^

마무리 새참. 아이들은 건빵, 딸기에 우유 한 팩. 어른은 막걸리 두 컵씩^^ 아이들의 기운이 한층 밝아졌다.

자원봉사로 우리집 잔디공사 감독을 하신 이웃이 챙겨다주신 작두. 전에는 삽날을 세워 찍어대야 했다. 작두로 하니 땟장 흙도 안떨어지고 힘도 덜 들다. 알맞은 도구가 효율을 결정한다. 그래서 인간은 호모 파베르다(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다니는 길에 보도블록 사다 깔아야 하는데... ㅠㅠ!
첫댓글 호모 쿵푸스가 된 것 같기도 했어요 ㅋㅋ /
동정... 저도 훗날 아이들을 보고 가르치는데 유의하겠습니다.
잔디를 심을 때 상황이 달라지면 그때에 따라서 바로 달라져야하는데 바로 달라지지 않으니 저에게는 변화가 참느린 것 같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