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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강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7권
四. 세계성취품
3) 세계의 의주依住
가. 10종 의주依住
이시 보현보살 부고대중언 제불자 일일세계해 유세계
爾時에 普賢菩薩이 復告大衆言하사대 諸佛子야 一一世界海에 有世界
해미진수소의주 소위혹의일체장엄주 혹의허공주 혹의일체보광
海微塵數所依住하니 所謂或依一切莊嚴住며 或依虛空住며 或依一切寶光
명주 혹의일체불광명주 혹의일체보색광명주 혹의일체불음성주
明住며 或依一切佛光明住며 或依一切寶色光明住며 或依一切佛音聲住며
혹의여환업생대력아수라형금강수주 혹의일체세주신주 혹의일체보
或依如幻業生大力阿修羅形金剛手住며 或依一切世主身住며 或依一切菩
살신주 혹의보현보살원소생일체차별장엄해주 제불자 세계해
薩身住며 或依普賢菩薩願所生一切差別莊嚴海住라 諸佛子야 世界海에
유여시등세계해미진수소의주
有如是等世界海微塵數所依住니라
그때에 보현보살이 다시 대중들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여, 낱낱 세계바다에 세계바다 미진수의 의지하여 머무는 것[依住]이 있으니, 이른바 혹은 일체 장엄을 의지하여 머물며, 혹은 허공을 의지하여 머물며, 혹은 일체 보석광명을 의지하여 머물며, 혹은 일체 보석 빛깔 광명을 의지하여 머물며, 혹은 모든 부처님 음성을 의지하여 머물며, 혹은 환술幻術 같은 업으로 생긴 대력大力 아수라의 형상인 금강수金剛手를 의지하여 머물며, 혹은 일체 세간 주인들의 몸을 의지하여 머물며, 혹은 일체 보살의 몸을 의지하여 머물며, 혹은 보현보살의 서원으로 생긴 일체 차별 장엄바다를 의지해서 머무느니라.
모든 불자들이여, 세계바다에 이와 같은 세계바다 미진수에 의지해서 머무는 것이 있느니라.”
의지하여 머무는 것[依住]은 사람이나 다른 중생들이 자신의 취향대로 만들어서 그곳에 머물고 사는 환경이다. 사람들만 보더라도 집집마다 각자의 취향을 따라 집을 꾸미고 산다. 크게 살펴보면 경전에서 말씀하신 내용들이 모두 가능한 경우다. 장식하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중생은 장엄을 의지하여 머문다. 걸림이 없음을 좋아하는 중생은 허공을 의지하여 머문다. 주변 바탕의 광명을 좋아하는 중생은 보석 광명을 의지하여 머문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중생은 부처님의 광명을 의지하여 머문다. 성스러운 가르침을 받드는 이는 부처님의 음성을 의지하여 머문다. 널리 편안한 중생들은 보현보살의 서원으로 생긴 일체 차별 장엄바다를 의지해서 머문다. 이와 같이 각각의 취향에 따라 환경이 다르게 된다.
나. 게송으로 거듭 펴다
이시 보현보살 욕중선기의 승불위력 관찰시방 이설
爾時에 普賢菩薩이 欲重宣其義하사 承佛威力하사 觀察十方하고 而說
송언
頌言하사대
그때에 보현보살이 그 뜻을 거듭 펴려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습니다.
보변시방허공계 소유일체제국토
普徧十方虛空界하야 所有一切諸國土가
여래신력지소가 처처현전개가견
如來神力之所加로 處處現前皆可見이로다
시방 허공계에 두루 한
일체 모든 국토를
여래의 위신력으로 가피하여
곳곳에서 앞에 나타난 듯이 다 보도다.
세계가 의지하여 머무는 것[依住]의 여러 가지 종류를 게송으로 거듭 밝히는 내용인데 이 모두가 한 마음의 작용, 즉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 여래의 마음 위신력이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순간순간 한 생각 한 생각에 시방 일체 국토를 눈앞에서 보듯이 환하게 다 본다. 이것이 부처님의 위신력이며, 보살의 위신력이며, 사람 마음의 위신력이다.
혹유종종제국토 무비이구보소성
或有種種諸國土가 無非離垢寶所成이라
청정마니최수묘 치연보현광명해
淸淨摩尼最殊妙하야 熾然普現光明海로다
혹 어떤 가지가지 여러 국토는
모두 다 깨끗한 보석으로 이루어졌고
청정한 마니보석이 가장 미묘하여
왕성하게 광명바다를 널리 나타내도다.
세계가 의지하여 머무는 것[依住]은 오직 각자의 마음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무한히 많다. 사람의 마음의 종류만큼이나 많다. 마치 집집마다 주거 환경이 각각 다른 것과 같다. 이곳은 깨끗한 보석으로 이뤄졌는데 그중에 마니보석이 가장 미묘하다.
혹유청정광명찰 의지허공계이주
或有淸淨光明刹이 依止虛空界而住하며
혹재마니보해중 부유안주광명장
或在摩尼寶海中하야 復有安住光明藏이로다
혹 어떤 청정한 광명세계는
허공계에 의지하여 머물며
혹은 마니보석바다 가운데서
다시 광명 창고에 안주해 있도다.
허공계에 의지해 머문다는 것은 모든 위성의 존재는 근본이 텅 비어 공하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위시하여 모든 위성들은 일체가 허공에 떠 있다. 허공에 떠서 주기적으로 일정하게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존재한다. 실로 허공을 의지해서 머문다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다.
여래처차중회해 연설법륜개교묘
如來處此衆會海하사 演說法輪皆巧妙하시니
제불경계광무변 중생견자심환희
諸佛境界廣無邊이라 衆生見者心歡喜로다
여래가 이 대중바다에 계시사
법륜을 연설함이 다 절묘하시니
모든 부처님의 경계가 끝없이 넓어
중생들이 보는 이마다 마음에 기뻐하도다.
여래께서 성도하시고 아야교진여, 아설시, 마하남, 바제, 바부 등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법을 연설하신 때부터 마지막으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수많은 법륜을 굴리시었으나 낱낱마다 절묘하고 미묘하고 신묘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두에게 근기와 수준을 맞추고 미혹을 열어 인생의 밝은 눈을 뜨게 하셨다. 그래서 보는 이마다 다 기뻐하였다.
유이마니작엄식 상여화등광분포
有以摩尼作嚴飾하니 狀如華燈廣分布라
향염광운색치연 부이묘보광명망
香焰光雲色熾然이어든 覆以妙寶光明網이로다
어떤 것은 마니보석으로써 장엄하였고
혹은 형상이 꽃등불같이 널리 펴 있고
혹은 향기불꽃광명구름빛이 치연熾然하며
혹은 아름다운 보석광명그물로 덮여 있도다.
세계가 의지하여 머무는 모습을 열거하는 내용이다. 마니보석 장엄과 꽃등불과 향기불꽃광명구름과 또 아름다운 보석광명그물 등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을 열거하고 있다. 화엄경의 안목으로 본 세계의 특징들이다.
혹유찰토무변제 안주연화심대해
或有刹土無邊際하야 安住蓮華深大海라
광박청정여세주 제불묘선장엄고
廣博淸淨與世殊하니 諸佛妙善莊嚴故로다
혹 어떤 세계는 끝이 없으며
연꽃이 만발한 깊고 큰 바다에 안주하였고
혹은 넓고 청정한 것이 아주 뛰어났으니
모든 부처님의 훌륭하신 장엄의 덕일세.
마음 부처님의 훌륭한 장엄의 덕은 세계가 끝이 없으며 연꽃이 만발하고 넓고 청정한 것이 매우 뛰어나다. 의지해서 머무는 세계는 오직 스스로 닦은 마음의 크기를 따르고 아름다움을 따르고 청정함을 따를 뿐이다.
혹유찰해수륜전 이불위신득안주
或有刹海隨輪轉이라가 以佛威神得安住
제보살중변재중 상견무앙광대보
諸普薩衆徧在中하야 常見無央廣大寶로다
혹 어떤 세계바다는 윤전輪轉을 따르다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안주하게 되니
모든 보살 대중이 그 가운데 가득하여
한량없고 광대한 보배를 항상 보도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만 보더라도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 자체가 스스로 자전을 하고 해를 따라 공전도 한다. 끊임없이 그렇게 움직이며 돌고 돌지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항상 편안히 안주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그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또한 위신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심히 살펴보면 모두가 보살들이요, 한량없고 광대한 보배들이다.
혹유주어금강수 혹부유주천주신
或有住於金剛手하며 或復有住天主身하니
비로자나무상존 상어차처전법륜
毘盧遮那無上尊이 常於此處轉法輪이로다
혹 어떤 것은 금강수金剛手에 머물며
혹 또 어떤 것은 천주신天主身에 머무니
비로자나 부처님 무상존無上尊께서
항상 이곳에서 법륜을 굴리시네.
금강수나 천주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며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업력業力을 따라서, 또는 심행心行을 따라서 별의별 모습으로 의지해서 머무는 것이 있으리라. 어떤 곳이든지 비로자나 부처님께서는 항상 법륜을 굴리신다. 존재의 원리는 늘 항상하고 진리는 변함이 없다.
혹의보수평균주 향염운중역부연
或依寶樹平均住하고 香焰雲中亦復然하며
혹유의제대수중 유주견고금강해
或有依諸大水中하고 有住堅固金剛海로다
혹은 보배나무를 의지해서 평탄하게 머물고
혹은 향기불꽃구름 속에서 머물며
혹 어떤 세계는 큰 물을 의지하고
어떤 세계는 견고한 금강바다에 머물도다.
나무를 의지해서 자신이 머무는 세계로 삼고 살아가는 생명들도 무수히 많다. 사람이 보기에는 참으로 위험하게 보이지만 설사 거꾸로 매달렸어도 그는 매우 평탄하고 편안하게 느낀다. 조과도림(鳥窠道林, 741~824)선사와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대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혹은 향기불꽃 속에 머문다는 것은 어떤 생명체는 불꽃 속에도 있고 얼음 속에도 있다고 한다. 하물며 물속에 사는 생명들이야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하겠는가. 또 견고한 다이아몬드를 의지해서 머무는 생명체도 있다고 한다.
혹유의지금강당 혹유주어화해중
或有依止金剛幢하며 或有住於華海中하니
광대신변무부주 비로자나차능현
廣大神變無不周라 毘盧遮那此能現이로다
혹 어떤 것은 금강깃대를 의지하며
혹 어떤 것은 꽃바다 위에 머무니
광대한 신통변화가 다 두루 하여
비로자나 부처님이 이것을 나타내었도다.
온갖 생명이 어떤 환경에 머물더라도 그 머무는 환경을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차별하여 평가할 것은 아니다. 거미는 거미줄에 머무는 것이 마땅하고 개미는 개미집에 머무는 것이 마땅하듯이 각자의 생명마다 알맞은 환경과 조건이 있다. 이 모두가 그 생명들 나름대로 광대한 신통변화가 두루한 진리의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혹수혹단무량종 기상선환역비일
或修或短無量種이요 其相旋環亦非一이라
묘장엄장여세수 청정수치내능견
妙莊嚴藏與世殊하니 淸淨修治乃能見이로다
혹은 길고 혹은 짧고 그 종류 한량없으며
그 형상이 둥글게 돌듯 한 것이 한 가지가 아니라
미묘한 장엄 창고 세간과 다르니
청정하게 닦아야 이에 능히 보도다.
세계가 의지해서 머무는 모습들이 생명들의 행업行業을 다라서 여러 가지다.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고 또 둥글게 빙빙 돌아가면서 생긴 것도 있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또한 뛰어난 청정한 안목을 가져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여시종종각차별 일체개의원해주
如是種種各差別이여 一切皆依願海住라
혹유국토상재공 제불여운실충변
或有國土常在空이어든 諸佛如雲悉充徧이로다
이와 같이 가지가지로 차별함이여
모두가 다 서원바다에 의지해 머무는지라.
혹 어떤 국토는 항상 허공에 있으니
모든 부처님이 구름처럼 다 충만하도다.
온갖 생명이 설사 외형적으로 같은 환경과 같은 장소에 머문다 하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것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가지가지가 차별하다. 그 차별한 이유는 모두가 뜻이 다르고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토가 항상 허공에 있다는 것은 어떤 국토에 있든지 국토 존재의 공성을 깨달은 차원을 뜻한다. 그러므로 공성을 깨달은 생명들, 즉 부처님이 구름처럼 충만하다고 한 것이다.
혹유재공현부주 혹시이유혹무유
或有在空懸覆住하야 或時而有或無有하며
혹유국토극청정 주어보살보관중
或有國土極淸淨하야 住於菩薩寶冠中이로다
혹 어떤 것은 허공에 매달려 덮어서 머물고
혹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으며
혹 어떤 국토는 지극히 청정해서
보살의 보배관冠 속에 머물도다.
중국에는 ‘하늘에 매달린 절’이라는 현공사懸空寺가 있는데 넓은 땅도 많은데 굳이 높디높은 절벽에 매달아서 지은 사찰이다. 아마 화엄경의 이 구절을 생각하여 지은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자연계에서는 벌집과 같이 매달린 집들도 많으며, 인공위성이나 외계에서 온 비행접시와 같은 종류들도 매우 흔하다.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다.”라고 한 것도 외계에서 온 비행접시를 상상하게 한다. ‘하늘에 매달린 절’이라는 현공사懸空寺는 그 뜻으로 보면 일체 존재가 모두 그 근본이 공한 공성에 매달려 있다는 의미를 깨닫게 한다.
시방제불대신통 일체개어차중견
十方諸佛大神通이여 一切皆於此中見이라
제불음성함변만 사유업력지소화
諸佛音聲咸徧滿하시니 斯由業力之所化로다
시방 모든 부처님의 큰 신통이여
일체를 다 이 속에서 봄이라
모든 부처님의 음성 다 두루 가득하니
이는 업력業力으로 인하여 변화한 바로다.
업력業力이라고 하면 흔히 중생들의 악업만을 떠올리는데 불업佛業도 있고 보살업菩薩業도 있다. 선과 악에 관계없이 모든 생명들이 하는 일을 모두 업이라 한다. 부처가 아니면 어찌 부처님의 신통을 알 것이며, 부처님의 음성이 가득함을 알 것인가.
혹유국토주법계 청정이구종심기
或有國土周法界하니淸淨離垢從心起라
여영여환광무변 여인다라각차별
如影如幻廣無邊이며如因陀網各差別이로다
혹 어떤 국토는 법계에 두루 하며
청정해서 때를 여읜 것이 다 마음에서 일어났네.
그림자 같고 환술 같아 끝없이 넓으며
인드라 그물처럼 각각 차별하도다.
국토가 법계에 두루 하다는 것은 온 법계가 그대로 국토라는 뜻이다. 법계에 두루 하며 또한 청정한 것은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 실체가 없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기에 그림자 같고 환술과 같아서 끝이 없다. 실은 우리가 수용하고 알고 느끼고 살아가는 모든 세계가 이와 같다.
혹현종종장엄장 의지허공이건립
或現種種莊嚴藏하야 依止虛空而建立하니
제업경계부사의 불력현시개령견
諸業境界不思議여 佛力顯示皆令見이로다
혹은 갖가지 장엄 창고를 나타내서
허공에 의지하여 건립했으니
모든 업의 경계가 부사의함이여
부처님의 힘으로 나타내어 다 보게 하네.
개인의 집이나 방도 그 사람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가지가지로 꾸미고 장엄한다. 혹은 나무로, 혹은 돌로, 혹은 금이나 은으로, 혹은 그림이나 조각품으로 장엄한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사람의 업이라는 것이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허공에 의지하여 건립된 것이므로 공으로 돌아간다. 그것을 마음 부처의 힘으로 나타내 보여 모두가 본다.
일일국토미진내 염념시현제불찰
一一國土微塵內에 念念示現諸佛刹호대
수개무량등중생 보현소작항여시
數皆無量等衆生하니 普現所作恒如是로다
낱낱 국토의 작은 먼지 속에서
생각 생각에 모든 부처님 세계를 나타내 보이되
그 수가 모두 한량없어 중생과 같으니
보현보살이 짓는 것이 늘 이와 같도다.
보현보살의 행원은 미세하고도 광대하다. 또 시간적으로도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부처님 세계를 나타내 보인다. 가관적假觀的 안목으로 부처님 세계를 나타내 보이든, 공관적空觀的 안목으로 부처님 세계를 나타내 보이든, 중도관적中道觀的 안목으로 부처님 세계를 나타내 보이든, 그 모두는 보현보살의 행원에 의한 것이다. 순간순간 낱낱 국토 작은 먼지 속까지 부처님 세계를 나타내 보인다.
위욕성숙중생고 시중수행경겁해
爲欲成熟衆生故로 是中修行經劫海하니
광대신변미불흥 법계지중실주변
廣大神變靡不興하야法界之中悉周徧이로다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위한 까닭에
이 가운데서 수행하여 겁의 바다를 지나니
광대한 신통변화 모두 다 일으켜서
법계 가운데 다 두루 하였도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든 보현보살의 행원이든 모두가 목적하는 바는 중생성숙衆生成熟에 있다. 중생을 성숙시킨다는 말은 얼마나 따뜻한가. 부처님의 오랜 수행도 그리고 불교도들의 일체 수행도 중생들을 성숙시켜서 모두가 정직하고 선량하고 지혜롭고 자비롭게 살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광대한 신통변화다.
법계국토일일진 제대찰해주기중
法界國土一一塵에 諸大刹海住其中이어든
불운평등실미부 어일체처함충만
佛雲平等悉彌覆하시니 於一切處咸充滿이로다
법계에 있는 국토의 낱낱 먼지에
모든 큰 세계바다가 그 속에 머무는데
부처님의 구름 평등하여 다 덮으시니
모든 곳에 다 충만하였네.
법계에는 국토가 있고 국토마다 낱낱 먼지가 있다. 또 그 먼지마다 큰 세계가 그 속에 있다. 먼지 속에 있는 큰 세계에는 부처님이 구름이 펼쳐지듯 평등하게 다 덮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이 크든 작든 모든 존재가 공존하는 이치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는 화엄의 이치는 오늘날 전자 기술이 발달하면서 매우 명확하게 증명해 보인다. 손톱만한 작은 칩 하나 속에 온 세상이 다 들어있다.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지 않는 곳이 없다. 화엄경에서 펼쳐 보인 이치는 과학 문명이 발달할수록 저절로 수긍이 간다.
여일진중자재용 일체진내역부연
如一塵中自在用하야 一切塵內亦復然하니
제불보살대신통 비로자나실능현
諸佛菩薩大神通을 毘盧遮那悉能現이로다
한 먼지 속의 자재한 작용처럼
일체 먼지 속에도 역시 그러하니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큰 신통을
비로자나 부처님이 다 나타내도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사사무애의 도리는 어느 특정한 한 가지 일에나 한 가지 사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먼지 속에서 자재한 작용처럼 일체 먼지 속에서도 역시 그와 같이 사사가 무애하다. 모든 존재의 사사무애 도리를 부처님과 보살들의 큰 신통이라 하며, 비로자나 부처님이 나타내 보이는 일이라 한다.
일체광대제찰토 여영여환역여염
一切廣大諸刹土가 如影如幻亦如焰하니
시방불견소종생 역부무래무거처
十方不見所從生이며 亦復無來無去處로다
일체 광대한 모든 세계가
그림자 같고 환영 같고 불꽃 같으니
시방에서 찾아도 생긴 곳을 볼 수 없으며
또한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도 없고,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도 없고,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도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있는 것은 무엇인가. 모두가 합성품이다. 그림자다. 환영이다. 분석하고 분석하고 아무리 분석해 보아도 시방세계 그 어디에도 생겨난 곳이 없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그렇고, 남이 그렇고, 산하대지와 삼라만상과 우주만유가 다 그렇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발견이다.
멸괴생성호순복 어허공중무잠이
滅壞生成互循復하야 於虛空中無暫已하나니
막불개유청정원 광대업력지소지
莫不皆由淸淨願과 廣大業力之所持로다
괴멸과 생성이 서로 순환하고 반복하여
허공 가운데서 잠깐도 쉬지 않나니
모두 다 청정한 서원과
광대한 업력으로 유지되도다.
일체 존재는 왕복이 끝이 없다. 계절에는 춘하추동이 끊임없이 순환하며, 생명체에는 생로병사가 무한히 반복하며, 모든 물질에는 생주이멸이 쉬지 않고 돌아가며, 지구와 모든 위성들에는 성주괴공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치는 일체 존재의 타고난 서원이며, 일체 존재가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광대하고 청정한 법력의 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