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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눈물강 위에 세우는 다리
김준한 감성시집
여는 글 김준한 / 4
서 문 강소이 / 6
추천사 방효필 / 16
조진현 / 17
김상언 / 19
제1부 : 눈물강 위에 세우는 다리
눈물강 위에 세우는 다리 / 26
굽은 못 / 27
사람의 깊이 / 28
사람이 산이다 / 29
셔터 / 30
발정의 계절 / 31
빨랫줄 / 32
펄 / 33
거미줄 / 34
우주를 건너는 일 / 35
불의 책 / 36
냉장고 울다 / 37
볼펜 / 38
허공 위에 만드는 길 / 40
부화를 꿈꾸는 달걀 / 41
매운탕을 끓이다 / 42
순서 / 44
제2부 : 동그라미의 슬픔
생을 연주하다 / 46
한상차림 / 48
자전거 / 49
연탄 / 50
골판지 / 51
구멍 / 52
침 / 53
그림 액자 / 54
목욕탕 사람들처럼 / 56
동그라미의 슬픔 / 57
달고나를 아시나요? / 58
돋보기가 필요해요 / 60
그물이 던져지면 / 62
마천루 / 63
허虛 / 64
한파 / 65
일기장 / 66
고사리 / 68
막조개 / 70
제3부 : 항해일지
모서리 / 72
은행에서 / 73
옹이 / 74
톱니바퀴 / 75
수족관 속의 새우들 / 76
스트라이크를 위하여 / 78
주낙의 숙명 / 80
장마 / 81
폭설 / 82
종이접기 / 83
항해일지 / 84
밤사락 / 86
프로 미장 / 88
주름진 옷 / 90
못의 노래 / 91
종이에 베이다 / 92
송전선 / 94
전기밥솥 / 95
종기 / 96
세월 / 97
이불을 개며 / 98
제4부 : 서정시처럼
서정시처럼 / 100
자의 반 타의 반 / 101
모기는 황홀한 순간에 / 102
우물 / 104
장작을 패며 / 106
고슴도치 사랑 / 108
대나무 / 109
동전 / 110
홈런 / 111
마찰 / 112
물길 / 113
노래방에서 / 114
시인의 밥상 / 115
봄날의 회상 / 116
철근공 / 118
화상 / 120
펄 / 121
동냥 / 122
탄 냄비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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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개>
프로필
김준한 감성시집
김준한
경기도 평택시 거주
청암문학작가협회 회원
사람의깊이 회원
청류문학인협회 정회원
문학의 숲 정회원
시학과 시 정회원
(사)문학그룹샘문 운영위원
(사)샘문학(구,샘터문학) 운영위원
(사)한용운문학 편집위원(샘문)
(주)한국문학 편집위원(샘문)
샘문시선 회원
이정록 문학관 회원
<수상>
2024 청암문학 신인상(시 등단)
2024 청류문학상 최우수상
2024 한국문학상 본상 대상(샘문)
2024 한용운문학상 최우수상(샘문)
<공저>
호모 노마드투스
불의 詩 님의 침묵
<한국문학시선집/샘문>
(한용운문학공동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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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너무 늦은 감도 있지만 감사한다. 그래도 덜 부끄러운 시집을 내지 않았는가. 20살 첫 시집을 냈다면 지금 그 시집을 보고 얼마나 부끄러워했을까. 그러니 불혹이 넘어 첫 시집을 냈다는 것에 감사할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낮잠에서 일어나 형언할 수 없는 고독을 맛보았다. 캄캄한 방 안에 혼자 던져진 기분은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아마도 그때 처음 나란 존재에 대해 눈뜬 것이 아닌가 한다.
살면서 한순간도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고독감을 잊어 본 적이 없다. 광활한 우주에 혼자 던져진 기분, 그래 나는 그 절대고독과 싸우며 여기까지 왔다. 사람들은 나와 비슷했지만,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존재에 눈뜨고 나서 신을 의지했지만 신은 나에게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으리라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숨 쉬듯이 쓰고 생각했다. 왜 하필 나는 그 많은 것 중, 시를 좋아할까? 왜 나는 써야만 할까?
그런 생각 끝에는 웃음이 났다. 왜냐면 의사들에게 너는 왜 의사냐? 가수에게 넌 왜 가수냐? 묻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태어나보니 시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 정체성을 확인했다. 세상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생각하면 나는 복 받은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 고독한 삶을 위로했다. 문학을 논하지 않더라도 시를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세 물음을 한 번도 자신에게 물어본 적 없는 사람을 만난다면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게 왜 시를 기피 하냐고 원망도 했었다. 하나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세상을 방관하자는 게 아니고 세상을 용서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25년 동안 내가 아끼고 퇴고하며 내 한평생 함께해준 시들을 시집보내듯 시집에 엮습니다.
많은 이들이 축하해 주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실린 시들은 내가 목숨 걸고 키워낸 내 아들과 딸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과업을 완수해 자식을 세상에 낳고 떠나고 나는 내 시들을 낳고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 시집을 출간하기까지 고생하신 분들에게 감사하다 말씀 전합니다. 내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 문인 여러분, 특히 샘문그룹(샘문시선)에 이정록 회장님(교수님) 그리고 편집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더욱더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 02. 12.
시인 김준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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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일상에서 사유와 의미를 뽑아내는 독창적인 시詩 세계
- 강소이(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말
김준한 시인의 시집 「눈물강 위에 세우는 다리」의 시 76편을 읽고 나서, 김 시인은 시에 대한 열정과 내공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프로필 어디에도 문학을 전공한 이력은 없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시와 더불어 살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시에는 시대를 아파하는 앙자즈망적인 현실 참여 내지는 역사 비평의 면모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했던 사물을 관찰하여, 거기서 인생 삶에 대한 통찰과 사유를 도출해 내는 독창적인 시 창작의 기법을 발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2. 시편 들여다보기
김 시인의 시집 「눈물강 위에 세우는 다리」의 시 76편에 나타난 시를 특성상 5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각, 파트별로 그의 시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일상에서 사유를 뽑아낸 시편들
<탄 냄비>, <빨랫줄>, <거미줄>, <냉장고 울다>, <볼펜>, <그림 액자>, <은행에서>, <전기밥솥>, <이불을 개며>, <모기는 황홀한 순간에> 등이 우수하다.
위의 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김 시인은 치열하게 시를 써온 흔적이 역력하다. 시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시를 멀리하는 게 요즘 현실 세상의 세태라고 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쁜 일상속에서 제각기 자신의 관심거리를 쫓아간다. 새벽부터 치열하게 그 일을 위해 달려간다. 시는 생의 필수품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쌀이 되지 않고 밥이 되지 않는 게 시의 현실이다. 그러나 시를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를 읽고 사유하고 향유하는 데서 지극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몇 되지 않는 특별한 별종(別種)들이다. 윤동주 시인이 그러했고 박목월이나 이육사, 이상화 시인 등이 그러했다. 문단에서 이름을 얻은 시인들은 대부분 시가 주는 위안과 위무를 누리는 정신적 경지의 고원(高原)에서 사는 이들이다.
김준한 시인과 단 1분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지만, 그의 시에서 읽혀지는 그의 시다움은 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시인이라는 결론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생활용품이나 사소한 일화에 대해서도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시를 끄집어낸다.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독특한 발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이불을 개며>라는 시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누구나 날마다 덮고 자는 “이불”이라는 사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이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새벽, 허한 가슴으로 스민 서늘함이 길어질수록// 괜실히 꽉 끌어안게 되는, 이 낡은 생 한 벌”이라는 표현을 보자. 이불은 따뜻함과 포근함을 주므로, 이불은 위안과 평안이다. 별 활동없이 밤새 누워 잠을 자는 동안 체온 유지를 위해서 누구나 이불을 덮는다. 하루의 고단함을 쉬는 수면 시간은 이불 속에서의 편안한 휴식 시간이다. 그러나 이 시 4연에서 표현한 대로 “갑갑한 어둠을 유랑하던 불면의 순간들, 미처 개어/ 놓지 못하고 온 그 순간들이 내 의식을 감싸고... 까닭 없이 쓸쓸해진다”라고 했다. 그런 허한 가슴 –쓸쓸함, 외로움 더 나아가 불안과 염려로 인한 불면의 시간 등의 “서늘함이 짙어질수록” 괜실히 이불을 꽉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따뜻하고 포근한 위로와 평안을 갈망하는 화자(話者)의 무의식의 발로라고 하겠다. 그런데 시인은 이불을 “이 낡은 생 한 벌”이라고 했다. “이불 = 낡은 생 한 벌”인 것이다. 훌륭한 은유(隱喩 - metaphor)적 표현이다. 화자(話者)의 이불은 낡아 있다. 낡은 이불과 지치고 허한 가슴의 쓸쓸한 화자의 생(生)도 낡았다고 표현하고 있는 사유의 표현력이 우수한 시라고 하겠다. 이 시 한 편만으로도 김 시인은 오랫동안 시를 읽어왔고 시를 짓고 시 공부를 해온 내공 있는 시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시다.
<모기는 황홀한 순간에>라는 시에서 “세월의 변두리를 두리번거리던 내 시간들 또한/ 그만큼이나 깊고 가파른 단층을 만들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허기를 부여잡고... // 누군가의 피부 주위를 배회하였는지도 모르는 “모기”를 보면서, “살아야 할 이유란 결국// 갈증을 키우는 일이어야 했을까”를 사유해 낸다. 갈증과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날갯짓에 파인 허공이 깊음을 인식해 낸다. 생물은 모두 욕망을 갖고 있다.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모기가 날갯짓하는 것이나, 인간이 욕망의 충족을 위해 날갯짓을 하는 모든 행위는 “파인 허공이 깊다”라는 사유를 얻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파인 허공의 깊이가 깊어진 것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숱한 시행착오와 고단한 노고(勞苦)가 헛된 탑이 되기도 했을 수 있고, 부질없는 헛발질이 될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모기가 웽웽거리며 허공에서 날갯짓하는 것을 보며 사유를 끌어낸 깊이 있는 시라고 하겠다.
<탄 냄비>, <빨랫줄>, <냉장고 울다>, <볼펜>, <그림 액자>, <전기밥솥>도 시상이 뛰어난 작품이지만, 지면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2) 철학적 사유가 깊은 시편들
<우주를 건너는 일>, <폭설>, <톱니바퀴> 등의 시는 철학적인 사유가 깊은 시들이다. 이 중에서 특히 <우주를 건너는 일> 시는 첫 문장부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김 시인의 시에는 운율을 살려 음악성을 고려하거나, 회화적 심상을 살려 이미지를 강하게 그려내는 “보여주기” 식의 시법을 채택한 시는 흔하지 않다. 주로 말하기 기법으로 일상 속에서 독특한 발상을 통해 시를 창작 해내고 있다. 하나 같이 독특한 발상으로 깊은 사유를 해내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 <우주를 건너는 일>은 액자에 걸어 두고 음미하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 시다.
“별을 가진 사람들은 중력에 수긍하며 산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닿으려면// 별과 별 사이에 드리운 허방을 건너야 하는데// 어디, 흔적 보일 수 없는 그 길을 건너기 쉬운가// ... 네게도 가는 길은 언제나// ... 바닥없는 어둠 위를 항해하는 일이다// ...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이르는 길은// 망망한 우주, 그 중심으로의 던져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허방이 있다고 했다. 바닥이 없는 어둠을 항해하는 일이며, 망망한 우주의 중심에 던져지는 일이라고 했다. 관계의 어려움과 조심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음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별과 별 사이로 보고, 망망한 우주의 중심에 던져짐이 관계 맺기의 섭리임을 보이고 있다. 이 시는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될 것이며 깊이 생각하게 하는 시가 될 것이고 널리 사랑받게 될 시라고 생각된다. 관계 맺는 일의 어려움을 시로 형상화 해낸 놀라운 표현력에 박수를 보낸다. <폭설>, <톱니바퀴>도 사유가 깊은 시이지만,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3) 노동, 건설 현장에서 느낀 삶의 통찰력을 다룬 시편들과 서민들의 애환을 다룬 시편들
<철근공>, <허공에 만드는 길>, <못의 노래>, <굽은 못>, <부화를 꿈꾸는 달걀> 등은 노동, 건설 현장에서 느낀 삶의 통찰력을 형상화한 시들이다. 이 시들은 건설 현장에서 관찰자 입장에서 남의 이야기를 시로 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 속 화자는 “나”로 보인다.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로 보이는 자기 고백적인 시라고 하겠다. 건설 현장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산업역군으로서, 손에 망치를 들고 철근을 다루면서도 그의 가슴 속에서는 시를 생각하며 시를 써 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욱 치열한 삶의 질곡과 고통을 안고 갈 수 있는 생에 대한 통섭 –통찰력 –사유의 깊이가 깊어 갔는지도 모른다.
우리 국문학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임진왜란 이후 사설시조가 지어지기 전까지는 시는 귀족층의 전유물이었다. 해서 음풍농월에 그치기 일쑤였고 관습 시론에 빠져 자연 예찬이나 충, 효, 열, 신의 등의 유교적 사상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었다. 고려 때, 서민들의 정서를 담은 고려속요(長歌)가 있긴 했으나, 청구영언이나 교언영색 등에 기록되지 않은 진솔한 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김준한 시인의 시는 진솔하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김 시인은 생활 속에 일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세심한 관찰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생활에서 시를 도출해 낸다. 시인의 기질을 갖고 태어난 천성적인 시인으로 보인다.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들보다도 더 무서운 시에 대한 경쟁력을 가진 이들이 바로 이런 시인들이다. 천성적인 시인의 기질, 그리고 시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아무도 따라잡지 못한다. 그들은 문학사(文學史)나 문예사조, 문학 이론에 대해 이해가 깊은 전공자들과 변별되는 시에 대한 천성적인 영역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생에 대한 처절한 체험과 여러 종류의 다양한 경험치가 그들의 시에 깊이를 더하고 향기를 더하기 때문이다. 시는 책상 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못의 노래>에서는 녹슬고 휘어진 못을 소재로 하고 있다. 녹슬고 휘어진 못은 못의 쓰임이 다하고 나면, 용광로 속에 던져진다. 녹슬었어도 박힐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어느덧 귀퉁이에 내몰린 생/ 녹슬었어도 박힐 수 있어 다행이다/ 오랜 여정 해치고 실밥 닳은 사연 한 벌 걸어 둘 수 있으니// 나는 아직 쓸모 있는 몸”이라고 했다. 실밥 닳은 사연을 걸어 둘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못과 “나”(자기 자신)를 동일시하여 표현했다. 몸으로 일하는 육체 노동자의 “몸 = 쓸모 있는 못”이라고 했다. 어느덧 귀퉁이에 내몰린 생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20~30대만큼 팔팔하지 않은 몸이지만, 건강한 몸이기에 쓸모 있다고 어필하고 있다. 낡은 사연을 걸어 두더라도 말이다.
“둔탁한 망치의 질량을 받아 낼 때면 멍든 시간/ 네 심장 깊이 박히는 칼이 되어도 좋았다”라고 했다. 망치의 고통을 받아 내는 멍든 시간이 있었어도, 아직 쓸모 있는 몸인 것에 다행감을 읊은 시다. 시어를 다룰 줄 아는 탁월한 솜씨를 보인 시라고 하겠다.
못에 대해 사유한 시 <굽은 못>을 한 편 더 살펴보자. 못을 벽에 박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엇나가서 비켜 맞고 튕겨 나가는 일이 허다하다. 못이 박힌 자리가 헐거워질 때도 있다. 벽에 깊이 박혀야 안전하게 못에 물건을 걸수 있다. 이 시는 벽에 못 박는 일을 하다가 삶의 상황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통찰하고 있는 시다.
실천 없이 엇나간 하루 –시절 밖으로 튕겨나감 –불혹이 다 되도록 안전한 자리에 깊이 박히지 못함 –구부러진 과오 –헐거워진 하루 –쓰러진 꿈 –언제 뽑혀 나갈지 모를 불안 등을 사유하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지 못하는 일용직이나 임시직 노동자들의 애환을 보인 시다. 벽에 못을 박는 일상적인 일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도출해 낸 시다. 이 시의 화자의 “옆구리가 늘 아팠다”라고 했다. 못을 박으려고 못의 머리에 망치질을 해서 아팠을 못 - 옆구리가 늘 아픈 화자와 동일시되고 있다.
<철근공>은 건설 현장에서 철근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는 노동자다. “3층 소박한 높이가 그토록 오르기 힘든 꿈이었고“, “계단 위에 뿌린 가쁜 호흡이 뿌연 서리꽃 피웠다”로 시작하여 “지난밤 동파된 사건의 유서”, “티이비 속 앵커”, “주검을 들 것에 얹어 방을 나오자”라는 표현으로 보아, 철근공이 현장에서 사망한 사건과 티이비 뉴스에 보도된 일 등. 어느 철근공의 주검(시신)을 목격하고 가슴 아팠던 일을 시로 빚어낸 작품이다.
철근공의 비애를 담은 시로써, 이 시는 한국문학상 대상을 받은 수작(秀作)이다. “주검을 들것에 얹어 방을 나오자// 수도꼭지 홀로 남아 흐느꼈다”라고 했다. 철근공의 죽음을 슬퍼해 주는 이는 수도꼭지가 유일하다. 철근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비통함으로 흐느꼈을 동료들의 아픔을 “수도꼭지가 혼자 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수도꼭지는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다. 철근공의 죽음을 슬퍼할 리 없는 수도꼭지는 동파되지 않았는지 수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수도꼭지에서 혼자 물이 뚝뚝 떨어지는 현상에, 동료들의 비통한 슬픈 감정을 이입한 매우 고도의 표현 기법을 보이고 있다.
<부화를 꿈꾸는 달걀>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애환, <허공에 만드는 길>에서도 목수, 철근공의 노동 이야기가 나온다. <골판지>는 고물상을 소재로 한 시다. 서민들의 애
환을 다루고 있다.
4) 시와 책에 대한 열정이 뛰어난 시편들
<불의 책>, <서정시처럼>, <시인의 밥상>, <매운탕 끓이기>는 시 쓰기에 대한 열정과 책에 대한 사유가 깊고, 형상화가 뛰어난 서정시들이다. 이 중에 <불의 책>은 한용운문학상 중견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한 뛰어난 작품이다. 이미 심사평에서 다루어졌을 터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 중에 <매운탕 끓이기>는 매운탕 끓이는 과정을 시 쓰는 과정에 빗대어 표현한 재미있는 발상의 시다. 김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일상이다. 매운탕을 끓이면서도 시 쓰는 과정과 연관짓고 있으니, 그의 일상 순간순간이 시(詩)인 듯하다. 그러하니 <불의 책>, <서정시처럼>, <시인의 밥상>과 같은 좋은 시를 빚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앞장과 뒷장을 오가는 손바닥들/ 두꺼워진 열기를 온종일 읽어 나간다”라는 표현대로 온종일 시를 부여잡고, 시와 호흡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생의 호흡이고 산소로 보인다.
5) 서정성이 뛰어난 시편들
<눈물강 위에 세우는 다리>, <펄>, <종기>, <주름진 옷> 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눈물강 위에 세우는 다리>는 사랑에 대한 연시로써 이미 노래로 작곡되어 널리 불리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작품이다.
<종기>에서 김 시인은 어깨에 난 종기를 짜내면서도 그 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종기는 오래 묵은 꿈이다. 둔중해진 세월의 몸에 도드라진 시간의 집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곪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의 오래 묵은 꿈, 내일을 기약한 꿈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일면식도 없으니 물어본 적이 없지만, 그 꿈들이 종기가 되어 모반의 날을 키우지 않길 바란다. 꿈들이 햇살(양기)을 받아 무럭무럭 소생하여 전진하기만을 바란다. 이 시도 뛰어난 발상력을 보이는 좋은 시다.
<펄>과 <주름진 옷>은 <종기>와도 맥을 같이 하는 시로 볼 수 있다. <주름진 옷>에서는 다리미를 예열했다가 옷을 다리면서 김 시인은 자신의 삶을 투영해 본다. “변두리 홀로 기웃거리던 나날/ 바람처럼 손에 꽉 쥘 수 없는 꿈이”... “방향 정하지 못한 갈림길에서”, “실밥처럼 닳고 터진 어제(과거) 덥수룩하다”라고 했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은 그에게 구름이었으나, 구름이 걷히고 햇살 따뜻한 하루 –네 가슴을 빌려 말끔히 다리고 싶은 것이다. 다리미에 옷이 펴지는 것처럼, 자신의 구름들이 모두 걷혀서 반듯한 옷이 되듯이 “꿈을 이루고 싶은 갈망”은 위의 시 <종기>에서 “내일을 기약한 꿈”이 모반하지 않도록 말끔히 다리고 싶은 열망과 연결된다. 그는 꿈을 가진 시인이다.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도 꿈을 투영하여 시를 창출해 내며 자신의 꿈을 다지는 창의적인 발상이 독특하다. 이런 갈망은 <펄>에서 “만조의 시간이 올까?/ 그대 사랑 가득 들어차 내 메마른 그리움에서/ 해방 시켜줄까”라고 했다. 이 시는 언뜻 보면 이별과 그리움을 읊은 연시로 볼 수도 있겠으나, 시는 중의적이고 다의적이므로 필자(筆者)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갈망의 시라는 관점으로도 해석하고 싶다. <주름진 옷>에서 “구름 걷히고 햇살 따뜻한 하루”, “구겨진 나를 말끔히 다려야겠다”와 <펄>에서 “초라한 청춘을 덮어 저 뜨거운 그리움에서 해방 시켜 줄” 것을 갈망하는 시인의 열망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이성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겠으나, 꿈을 이루지 못한 “내 초라한 청춘을 덮어 줄” 꿈의 언덕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다. 쟈크 라캉(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은 인간은 결핍과 욕망에 의해서 행동한다고 했다. 김 시인의 욕망, 꿈, 그리움에서 해방 시켜줄 만조의 시간이 오길 함께 기원해 본다.
3. 맺음말
이상에서 김준한 시인의 첫 시집 「눈물강 위에 세우는 다리」에 나타난 다섯 가지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1) 일상에서 사유를 뽑아낸 시편들, 2) 철학적 사유가 깊은 시편들, 3) 노동, 건설 현장에서 느낀 삶의 통찰력을 다룬 시편들과 서민들의 애환을 다룬 시편들, 4) 시와 책에 대한 열정이 뛰어난 시편들, 5) 서정성이 뛰어난 시편들의 특징이 그것이다.
지면이 허락한다면 더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만, 간단히 언급한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다. 김 시인은 삶의 한 순간순간,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놓치지 않고 시로 빚어낸 것을 볼 수 있었다. 예민한 감수성과 시에 대한 깊은 사유로 독창적인 기법으로 시를 창작해 낸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호흡이고 생활이고 공기다. 문학상 수상과 첫 시집의 출간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더욱 좋은 시를 빚어서, 많은 이들의 삶의 햇살을 비춰주는 서정시로 빛나길 기원하며 글을 맺는다.
시 쓰는 일은 외로운 일이지만, “망망한 우주, 그 중심”에 던지는 빛의 화살이기에 가치 있는 일이다. 지치지 않고 정진하다 보면, 빛의 고원(高原)에서 시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기에 더욱 가치 있는 일이다. 김준한 시인의 첫 시집 출간을 감축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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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수평선 너머를 우직하게 항해하며
월척의 시들을 낚아 올린 시인
- 방효필(시인, 평론가, 청암문학 이사장)
그는 20살 때 시를 배우기 위해 흑산도 홍어배를 탔단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편은 삶의 구체적 언어, 객관적 상관물로 관념을 희석시킨다.
미끼 없는 맨몸, 망망한 뻘 속에 진을 쳤다/또 한차례 시련 후 냉혹한 해류에 닳고 닳아/뭉툭해진 몸/먹빛 젖은 기억 거칠거칠한 줄로 갈아냈다/갑판 위 햇살을 부수며 올라오는 홍어/분주해진 등처럼 가닿지 못한 시절은/언제나 그을려있었다/(주낙의 숙명) 일부
그의 연시는 분위기 가득 잡는 진부한 것과도 결이 다르다. 그에게 연정은 가진 것 하나 없이 망망한 시간 속에 던져지는 그리움이고, 열정은 먹고살아야 하는 노동 속에도 등을 벌겋게 태우는 시 작업이다.
또한 이별은 바늘 끝 휘어진 아픔을 바로 펴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랑인 것이다. 이처럼 그의 시는 구체적이다.
주낙을 던져 걷어 올린 시의 언어들, 그는 끝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를 우직하게 항해하며 월척의 시들을 낚아 올린 시인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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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삶의 본질을 가까이 바라보는 시안을 가진 시인
- 조진현(시인, 청류문학인협회 회장)
김준한 시인은 깊은 감성과 날카로운 통찰로 빚어낸 시 세계를 그린다. 그의 사랑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다. 그는 세상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사랑임을 실천한다. 그의 시는 삶의 복잡한 결을 모호한 관념이 아닌 구체적으로 형상화 해낸 수작들이다. 그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진부한 삶의 차원을 끌어 올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본다.
그는 차가운 겨울에 물을 만지는 몰탈일을 한다. 세상은 추워서가 아니라/ 울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얼어붙었다/ 마음의 문 잠갔기에 흐를 수 없는 슬픔/ 얼음 되어 통로가 꽉 막혔다.(한파)
세상이 얼어붙는 이유는 단지 겨울의 추위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울지 않는 사람들, 닫힌 마음 때문이다. 흐르지 못한 슬픔은 얼음처럼 굳어 소통의 통로를 막아버린다. 결국, 세상을 차갑게 만드는 것은 단절된 마음이다.
삶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해 날실과 씨실처럼 촘촘히 엮은 그의 언어는 질기고 단단한 생명을 닮았다. 그의 시는 삶의 가장 깊은 곳을 어루만지며, 사소한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이를 통해 인간 내면을 탐구한다. 그는 삶의 본질을 가까이 바라보는 시안을 가진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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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시를 쓰기 위해 사는 시인
- 김상언(아동 문학 이사, 시인)
45세 등단한 그는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에는 세월 속 치열한 시 쓰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는 마치 시를 쓰기 위해 사는 사람 같다.
끝내 다하지 못하고/시절 밖으로 튕겨 나갔다/ 불혹이다 되도록 어디 한 곳 깊이 박히지 못했다/(굽은 못)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시의 꿈만은 놓지 않았다.
/쇠보다 단단한 결심으로/
수많은 계획을 때려 박았지만/
수습해야 했던 건 구부러진 과오뿐/ (굽은 못)
시련의 연속뿐이었던 삶. 매년 겨울, 처참히 구부러진 자신을 다시 두들겨 펴며 고독한 고배를 마셨을 것이다.
/언제 뽑혀 나갈지 모를 불안이/
벌건 녹처럼 온몸을 얽어맸다/
깊숙이 박힐 수 있을까
옆구리가 늘 아팠다/ (굽은 못)
그러나 등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단의 내로라하는 상들을 수상하며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망치질 초라했던 생을 다시 펴서 이번에는 제대로 때려 박았다. 그의 날카로운 시어들은 가슴 깊숙이 박혀서 아리게 한다. 하지만 그 아림은 고통이 아니다. 그의 아픔이 위로가 될 뿐, 젖었던 눈시울이 달아오르고 금방 환한 미소를 띤다.
김준한 시인 그의 이름은 세상에 영원히 빛나는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감수 – 시인 이정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