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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순 목사
본문은 진리의 빛을 전하는 나라를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다른 설교는 반복하지 않지만 이 설교는 약 5년에 한 번씩 반복합니다. 제가 왜 이 문제에 집착하는지 아십니까? 우리교회가 왜 선교에 주력해 왔고, 해마다 이 12월 첫째 주일이 되면 선교헌금을 작정하면서 새해에도 선교에 충성하자고 다짐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교회가 선교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여기 살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공로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았으며, 지금이라도 천국에 갈 자격을 얻은 우리가 이 땅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이웃들을 구원하고 만민에게 복음 전하여 그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데리고 가려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이유를 다시 말씀드리렵니다.
첫째, 선교는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마21:4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실 때, “네게 복을 주리라, 네 씨로 큰 민족을 이루어 주마, 너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로 한 민족을 만드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이방인들 모두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구약시대 내내 하나님을 이방나라에 증거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도구로 선택되었을 뿐인데, 하나님은 자기들만을 사랑하신다고 착각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그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얻으리라.” 마21:43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에서 폐기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이루어진 열두 지파의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열두 지파를 폐기하시는 대신에 열두 사람을 불러서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열두 사도로 시작한 교회에게, 옛 이스라엘이 포기한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이끌고 독려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열두 명을 데리고 이방 땅을 넘나들면서 전도 훈련을 하셨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증인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일관된 목표는 사도행전 1:8에서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명령문으로 이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명백한 예고문입니다. 너희들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을 이끌어 땅 끝까지 다니며 내 증인이 되게 하리라는 약속이요 예고입니다. 이 예고문에는 구약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실망이 들어있습니다. 너희들에게 내가 이방전도를 명령했지만 한 번도 실천하지 않더구나, 이제는 내가 직접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내가 너희에게 성령을 주어 권능을 받게 한 다음에 성령으로 너희들을 이끌어 예루살렘과 유다, 그 다음엔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게 하리라.”당신의 결의에 찬 약속이고 예고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전체의 내용은 1장 8절의 예고대로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사도들을 이끌어 사용하신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2장에서 성령이 강림했을 때 주어진 방언은, 히브리말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즉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전하려는 긴급성에서 나온 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방언으로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그들을 사용하여 전도하고 계신다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선교입니다. 잘 부흥하기만 하던 예루살렘교회에 쏟아진 대 박해사건은 그들을 이방인에게로 쫓아 보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고, 10장에서 베드로를 불러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으로 보내어 그들을 믿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직분자를 세우신 목적이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9장에서 제자들을 박해하는 사울이라는 사람을 거꾸러뜨려 준비시키신 일은,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하여 당신이 사람을 일으키고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13장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세우고 양육한 안디옥교회가 드디어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그리고 13장 이하의 말씀들은, 그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교회를 세우고 돌보는 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어느것 하나, 교회가 자발적으로 깨닫고 한 것이 없었고 성령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몰아가신 흔적들로 가득합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세우신 우리 주님의 몸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교회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선교에 힘쓰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주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와 성도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단지 가만히 앉아서 평안을 누리다가 천국에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을 흘리며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가 되라는 것이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힘을 다해서 선교에 전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교회가 선교에 전념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2. 교회가 선교해야 하는 둘째 이유는, 복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네게는 참 빛이 이미 임하였으니, 네가 일어서기만 하면 빛은 온 누리에 비치게 되어 있고, 네가 그 일을 잘 감당한다면 열방의 재물과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고, 끌려갔던 너의 동족들은 금의환향하게 될 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아주 구미가 당기는 말씀이며, 우리 민족은 이 말씀을 주목하고 이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예전에 우리 선진들은 일본군에게 징용으로, 정신대로 끌려가 치욕스럽게 살아야 했고, 지금 사할린과 중국 동북삼성과 일본과 미국에서 온갖 천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우리를 증오하면서 미사일과 핵 카드를 쥐고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오늘의 짓눌림을 벗어나서 누구도 함부로 할 수없는 강대국이 되는 길이 있을까요? 반도체나 휴대전화로 입니까? 우리의 반도체는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지만, 그것 하나를 만들려면 일본에서 장비와 재료를 들여와야 하고 미국에 로열티를 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열심히 일해 수출하면 할수록, 일본과 미국을 돈 벌어 주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가 전자기술로 세계의 벽을 넘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한국의 외교력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올려놓아 줄 수 있을까요? 바라지도 마십시오. 한국의 외교는 세계의 웃음거리입니다. 지하자원이나 관광자원입니까? 한사람의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면 자동차 네 대 만들어 수출하는 것 보다 수익이 낫다지만, 한국은 오히려 여행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바이오 기술이 세계 최강국의 꿈을 실현시켜 줄까요?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복제를 해서 난치병 환자를 고쳐줄 거라고 기대했고 세계도 함께 기대했는데, 거기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었고 그것을 내나라 방송이 무슨 치명적인 죄나 지은 것처럼 까발려서 온 세계에 창피를 주고 의욕을 상실케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손재주는 좀 있지만 원천적인 기술은 어림없습니다. BT 기술은 스웨덴 같은 나라에 30년 뒤져있다고 합니다. 삼성이나 현대가 그나마 세계에 나가서 경쟁력을 갖추어가고 있는데, 정부는 그들 목줄을 죄는 데만 힘쓰고 있습니다. 한국이 세계의 초일류국가가 되기에는 아무래도 힘겨워 보이지 않습니까?
사회는 변화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만, 그 시대의 최강국이 될 수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요즘 삼성의 핸드폰이나 반도체 메모리로 돈을 벌고 있는데 그것은 이 시대가 전자통신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DMB 기술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하고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결국 무엇을 가장 얻고 싶어 할까요? 사람의 궁극적인 요구가 무엇일까요? 결국 그것은 복음이요 구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 농경사회에는 농사를 많이 지어서 식량을 많이 가진 민족이 강자였고, 배부르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착각이었습니다. 배부르면 불어 오르는 살 때문에 더욱 고민이 많아지고 병이 많아지기 때문에 배부름은 결국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공업화시대엔 첨단기술을 가진 국가가 강했고, 최신 가전제품을 구입해서 손이편하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착각이었습니다. 손이 편하니 다른 일이 생겼고, 여가가 많아진 사람은 다른 고민을 더하기 때문에, 기계로는 불행이 감소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 정보화 시대에는 남들이 모르는 지식을 축적하고 새로운 정보를 가지면 그게 힘이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워도 번뇌가 많아질 뿐이고, 그것이 행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 문화의 시대에는 멋진 옷, 가슴 찡한 문화체험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상품이 가장 고가이고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가 인기와 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컴퓨터는 날이 갈수록 성능은 좋아지고 가격은 내려가지만, 유명 디자이너의 옷은 천정부지로 올라갑니다. 유명한 디자이너들은 공장하나 갖지 않고도 상표만 팔아서 억만장자가 됩니다. 노래 한곡을 잘 부르거나, 춤을 잘 추거나, 운동 한 가지만 잘하면 하루아침에 스타라는 이름과 함께 엄청난 재벌이 됩니다. 이 시대가 문화의 시대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가슴 찡한 것이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입어도 마셔도 구경해도 그때뿐이지 허전한 가슴은 그것들로는 메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는 시대는 어떤 시대가 될까요?
그때는 육신을 지배하는 음식이나 가전제품이나 자동차가 아닙니다. 머리와 가슴을 지배하는 영화나 음악이나 의상 등의 문화상품도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을 지배하는 것, 정신적인 것,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참 신앙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은 모두가 먹고 입고 사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는 시대입니다.
온갖 종류의 음악을 다 즐겨보았고, 입는 것도 좋은 옷 입다 입다 지쳐서 속옷 같은 것이나, 남의 옷 같이 헐렁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고, 바다에 그냥 신고 들어가도 될 것 같은 배만한 신발을 신고 다니기도 해봤습니다. 에어로빅도 하고, 사우나와 찜찔방과 불가마에도 들어가 땀도 흘려보았지만, 몸은 여전히 찌뿌둥하고 마음도 개운치가 않습니다. 사람은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의 욕구를 아무리 채워도 사람은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마음 한가운데에 빈방이 하나 있는데 그 방은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나 건강이나,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이제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문화의 욕구 다음에는 영적인 욕구, 초월자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시시대부터 계속되어진 인류 공통의 갈증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질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물질을 얻으면 행복할거라는 착각 때문에 영적 욕구를 외면했었고, 문화적으로 갈망하는 사람은, 멋진 것을 가지면 행복을 얻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 안에 잠재해 있는 영적 욕구를 외면했던 것뿐입니다. 그러나 갖고 싶은 것들을 다 가져보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니, 그런 것들로는 결코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고, 전보다 훨씬 더 비어있는 가슴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결국 초월자 하나님에게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구, 문화에 대한 욕구를 거친 다음에는, 사람들의 마음속엔 영적인 욕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 절대자의 품에 안기고 싶은 갈망입니다. 자기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를 만나서, 그 품에서 평안을 누리고 싶다는 소망이 비로소 고개를 드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을 얻은 뒤에야 사람은 마음속의 갈증이 그치는 것입니다. 사람의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시대가 온다고 분명히 예고해 주셨습니다. 슥8:21-23에 보면, 마지막 시대에는 영적 욕구가 폭발하는 시대가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먹다 지친 사람들이, 입다 지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기에 경쟁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며, 그때에는 안 믿는 사람 열 명이 잘 믿는 사람 한 명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나도 너희가 믿는 그 하나님께로 가게 해달라고 애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누가 쌀 한가마니 갖다 주면, 그 사람이 생명의 은인이요 그처럼 고마울 데가 없었습니다. 북한은 지금도 신년사마다 새해에는 이밥에 고깃국을 주겠다고 하더니 그것도 못 주어서 3백 만 명이나 굶어죽었습니다. 지금은 북한을 제외하고는 식량을 주는 사람을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는 도리어 멋진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 존경스럽고, 축구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멋져 보이고, 인기 소설을 쓴 작가가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화의 상품으로는 만족과 위안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그때는 누구를 존경할 것 같습니까? 그 때는 자신의 신앙을 키워주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가장 존경스럽고 고마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때가 영적인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이 세계에서 강대국이 되고 최 첨단국가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요? 답이 나왔습니다. 독일 자동차, 이태리패션, 일본 가전제품 하는 것처럼, "한국의 신앙" 을 신령한 상품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장래 대책은 복음 수출국을 만드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21세기는 영적인 시대, 신앙의 시대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예수를 잘 믿으면서 이일을 해야 하고, 우리 교회가 이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살게 되고, 세계가 함께 삽니다. 그렇게 하면 이사야 60장에 예언해주신 환상이 우리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절개, 한국교회의 새벽기도운동, 한국교회의 성령체험, 한국 성도들의 신앙 간증, 한국교회의 선교정신, 한국교회의 성장 경험, 이런 것들은 구원과 참 만족에 목말라하는 세계인들의 가슴을 채워줄 수 있는 신상품이며, 우리가 수출할 영적인 수출 품목입니다.
이 분야라면 한국이 아주 유리한 고지에 있습니다. 우리는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닌 황인종이어서 인종간의 장벽을 넘을 수 있고, 우리민족이 남을 침략한 일이 없기 때문에 한국선교사를 거부하는 나라가 없으며,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고 어디서든지 잠 잘 수 있는 적응 잘하는 민족입니다.
더구나 우리 한국교회는 아직도 가장 순수한 복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근년에 이르러 독일에선 여름마다 수만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인생의 허무를 절규하는 굉음과 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는 여름마다 대학생들 수 만 명씩 모여 “선교한국” 이라는 기치아래 세계선교를 우리가 책임지겠다며 사명감을 불태우고 있고, 미국에 유학 간 석학들이 여름마다 수련회에 수백 명씩 모여서 우리가 받은 달란트를 주님을 위해, 선교를 위해 사용하자며 헌신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가 세계 복음화를 책임 맡은 민족으로 선택을 받은 증거가 아닐까요? 이 방면에서는 한국을 당할 나라가 세계에 없다고 자신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선교를 하여 온 세계가 복음화 된다면 이런 결과가 올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하며 생명을 말씀을 전해주는 자기 교회 목사님을 존경하듯이 온 세계가 우리민족을 존경하며 소중하게 아낄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목사님께 드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들이 자기가 가진 귀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할 것입니다. 어떤 나라는 그들이 가진 풍부한 자원을 나누어 쓰자고 할 것이며, 어떤 나라는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기술을 가장 먼저 한국에 대가 없이 제공하면서 함께 사용하자고 할 것입니다. 혹시 어떤 나라가 우리를 침략하려는 기미가 보인다면, 그들은 자기의 목자나라인 한국을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면서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서 군대를 파견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이 곳곳에서 환대를 받을 것입니다. 88올림픽 직후에 세계 도처에서 우리 교포들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쳐들어 보이면서 너희가 최고라고 했던 것처럼, 세계 곳곳에서 한국교포를 보면 존경심을 표시할 것이고, 그들이 한국에 와서 무엇을 배워가기 위해서 한국 교포들을 사귀려고 야단일 것입니다.
이것은 꿈만 같지만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그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다시스의 배들이 원방으로부터 네 자손과 은금을 싣고 마치 비둘기가 보금자리로 날아옴같이 네게로 모여올 것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일어나서 선교만 잘 하면, 너희도 깜짝 놀랄 일들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믿는다면 선교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일어서야 합니다. 해야지, 해야지 하는 말만하지 말고, 앞서가는 사람을 질투하지 말고,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바쳐서, 생명까지라도 투자해서, 이 일을 꼭 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자기사랑이고, 이웃 사랑이며, 나라 사랑이고, 하나님 사랑의 방법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정신 차리고 선교를 교회의 존재이유로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더 많이 저축하고, 최고로 집 단장 몸단장하고, 폼 나게 사는 것이 가치 있어 보이지만, 그렇게 살려면 엄청난 돈을 써야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못들은 체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결론은 여전한 불만족과 더 큰 실망과 하나님의 진노가 남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외모를 단장하는 삶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선교하는 일은 내게 소중한 것을 남에게 그냥 주는 일이기에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야 말로 자신에게 충실한 삶이요, 우리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해야만 합니다. 가족의 평안과 안일만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참된 일꾼으로 한번 살아보기 위해서 간구하고 강청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뜻만 있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선교를 위하여 드릴 수 있는 헌금과 기도가 지금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순종하려고 결심하시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다음 걸음은 주님의 영 성령께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선교를 위해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결단을 촉구합니다. 한 가정 한 선교사의 꿈을 계속 키워 가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합시다. 다음 주일에 그 헌신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