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라와 바락 3 (삿 4:6-10)
6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9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지금 우리는 드보라와 바락을 통해서 성경이 가르쳐 주는 자아처리의 비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지신 대속의 십자가요, 다른 하나는 우리들이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할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에는 사명의 십자가도 있고 자기 십자가도 있습니다.
눅9:23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잘 죽는 것이고 그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자아는 말씀과 징계로서 처리되는데 드보라가 말씀의 상징이라면 바락은 징계의 상징입니다.
징계란 무엇일까요?
1. 징계는 행동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 바락이 누굽니까? 드보라도 신기하지만 바락도 신기한 사람입니다. 바락은 '천둥 번개' 라는 뜻입니다. 번개만 쳐도 두려운데 천둥까지 치니 얼마나 두렵습니까? 이 바락은 하나님의 징계를 뜻합니다. 징계란 하나님의 행동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영어로 워드(word)와 액트(act)입니다. 워드는 기록된 말씀을, 액트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그러니까 바락이 곧 벼락입니다. 자아가 강해 말씀으로도 통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벼락같이 두려운 징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8:5-6에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했습니다. 회개하고 순종하고 하나님 잘 섬기시면 됩니다.
히12:8-9에도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했습니다. 여기 아버지께 복종하며 사는 것이 바로 자아처리입니다. 그러므로 늘 순종하세요. 그것이 평탄과 행복의 길입니다.
2. 징계는 거룩에 동참시키시려는 은혜입니다.
8절에 바락이 사는 곳이 나타납니다. 바락이 사는 곳은 납달리의 게데스입니다. 게데스란 '거룩한 곳'이라는 뜻이 있고 레위지파의 도피성이기도 합니다. 이 거룩한 곳에 사는 바락은 하나님의 공의의 상징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곳에 살기에 그는 불의를 용납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의로우시면 인간의 죄를 처리하시기 위해 자기의 독생자를 대신 주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징계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곁길로 가도 가만 두시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어느 날 어떤 여교인이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아무리 범죄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분이신 것이 분명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부인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인은 지금 부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진정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택한 자녀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믿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보다 더 어려우면 나를 더 귀히 쓰시려고 그러신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벼락과 같습니다. 벼락은 높은 곳만 골라서 때립니다. 교만해 봐요. 하나님께서 여지없이 때리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자아의 특성은 자행자지와 아울러 높아지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입니다. 사울은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고 무시하고 무엇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묻지 않고 하나님 두려운 줄도 모릅니다. 세상에 자기를 기념하는 기념물 세우고 동상 세우기 좋아하는 자는 대부분 독재자들입니다. 착한 사람은 자기를 기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을 하려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순종하고 묻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벼락은 금은동철 순서로 때립니다. 금은동철은 하나님의 곳간에 들일 품목으로 사람이 취해서는 안 될 신성의 상징입니다. 아간이 이것을 손대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권위, 혹은 하나님이 세운 권위에 도전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천둥 번개 치면 끼고 있던 가락지도 빼놓고 쓰고 있던 우산도 팽개치고 높은 나무 아래도 가지 않습니다. 높은 나무 아래도 가지 마세요. 나쁜 일하는 사람 밑에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을 도모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를 해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에게 대적하다 얼마나 큰 벌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8:12-13에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하셨습니다.
눅12:4-5에도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하셨습니다.
3. 징계가 있을 때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바락을 보세요. 신기하게도 바락은 혼자서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8절에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혼자 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드보라를 대동합니다.
그런데 삿5:15을 개역성경으로 보면 잇사갈도 바락의 심사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잇사갈도 그 심사를 가져서 혼자는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군대장관 바락이 뭐가 무서워서 혼자 못가고, 벼락같은 대장을 모신 잇사갈의 군대가 뭐가 두려워서 여자인 드보라만 데리고 가려는 것입니까?
무언가 귀한 진리를 가르쳐 주려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래야 됩니다. 말씀의 상징 드보라가 없이는 징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말씀이 없으면 징계를 받아도 깨닫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자연현상으로 돌리고 우연으로 돌리면서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꾸중할 때는 그 이유를 충분히 인식시켜야 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징계가 있을 때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빨리 깨달을수록 좋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고도 10년 20년 노예로 살아가며 고통을 당했는데 그렇게 오래 고난당한 것은 그들이 미련하여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1:2-5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고 탄식하셨습니다.
속히 말씀 안에서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여기 목숨은 육신의 목숨과 아울러 자아적인 생명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어떤 시험 가운데서도 내가 살아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계12:11에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하였습니다. 약속의 땅에 겁도 없이 나라를 세운 야빈과, 철병거를 타고 종횡무진 갈고 다니는 방자한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모습은 완고한 자아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빈과 시스라는 바로 우리들의 완악한 마음입니다. 이 완악한 마음은 속히 버릴수록 좋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복하는 하나님의 기쁘심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