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중국인문기행기 -이태백을 찾아서

[박희용]

                                     중국인문기행기 -이태백을 찾아서

                                                                                                                                           무학산인 박희용

  唐名賢李太白之墓

  얕은 곡선을 한 앞면에 타원형인 옆면과 뒷면을 두른 5단 석축 위 봉분은 부스스 봉두난발이었다. 키 작고 아담한 우리나라의 잔디와는 달리 길고 억센 중국 잔디는 평생 동안 야인으로 떠돌던 이태백이 머리털이었다.

  그가 여기에 누워있다. 고등학교 때 고문시간에 시 몇 편을 배우며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아주 까마득한 시인으로 여기던 그, 교육대학 시절에 문우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마다 항상 읊어지던 “양인대작산화개 일배일배부일배 아취욕면군차거 명조유의포금래”를 쓴 그, 불혹 이후 한시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수록 묘미를 맛보게 하는 시를 줄줄이 쓴 이태백이가 1300년 동안 나를 기다리며 안휘성 마안산시 당도현 동남쪽에 있는 청산에 누워 있었다.

  비문에 쓰인 ‘名賢’이란 말이 낯설었다. 인터넷에서 보니 이 비문을 두보가 썼다고 하는데, 두보 그가 썼다면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세에 누군가가 썼다면 마땅히 ‘詩仙’이라 하였을 것이다. 여기 이태백묘 입구에 현대 중국의 유명한 서예인이 쓴 ‘詩仙聖境’ 패방이 서 있으니 말이다. 서기 762년 이테백이 죽을 그 당시엔 아마 시인이란 말이 정착되지 않고 시문에 능하여 이름을 드날린 고인을 명현으로 추존하였던 것 같다. 이태백이 높은 관직에 올랐었다면 그 관직명을 비문에 썼을 것이지만 한 평생 불우하게 방랑한 그에게 어울리는 호칭이 따로 없었을 터, 두보가 생각건대 명현이란 말이 적당했을 것이다.

  詩仙聖境 패방의 웅장함 그대로 이태백묘는 이 시대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2006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잘 정돈된 넓은 경내에 큰 부조와 조각상이 유월 중순의 보슬비를 낮게 맞으며 시적 운치를 뿜고 있었지만, 근현대 중국의 유명 인사들이 이태백을 찾아와 그의 시를 한 수씩 써 놓은 방명록을 음각하여 죽 전시해 놓은 太白碑林은 이태백의 이름값이 얼마나 높은 지, 이태백의 시 한 수 한 수가 고금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지를 대표하고 있었다. 특히 모택동이는 중국혁명기 내내 당시 한 권을 옆에 두고 이태백의 시를 애호했다고 한다. 그의 글씨 역시 한 시대를 종횡한 인물다웠다.

  내가 지금까지 반공교육을 통해 받은 혁명과 투쟁, 숙청과 탄압으로 점철된 인물이라는 느낌과는 달리 시를 좋아하고 이태백의 무덤까지 찾아와 회포를 풀 정도로 시를 아는 인물이었다니, 새삼 나의 견문이 편협함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태백은 관직 생활을 몇 년 동안만 하고 일생을 불우하게 떠돌아 다녔다. 다행히 시 재주가 뛰어나다 보니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덕분에 발길 닿는 곳마다 시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다. 시 재주가 없었다면 빌어먹는 거렁뱅이로 극도의 궁핍 속에서 훨씬 단명했을 것이다. 이태백은 701년에 태어나 762년에 죽었으니 세상에 61년 동안 살았다. 우리 나이로 치면 62세에 죽었다. 이백의 무덤 앞에 한 잔 술 올리는 내 나이가 62세, 이태백이가 이룬 시에 1할도 못 찬 시를 붙들고 여태 끙끙대고 있다.

  이태백의 무덤 앞 상석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술병이 놓여 있었다. 酒仙이라 불리기도 하는 그이니 이곳을 찾는 나그네라면 누군들 술 한 잔 올리고 싶지 않으랴. 우리 일행도 여러 명이 차례로 한 잔씩 올렸다. 그런데 이 술병은 내가 말해서 가져온 거다. 패방 앞에 섰을 때, 아무리 봐도 술이 안 보였다. 그래서 여름특강 지도교수인 송 교수에게 “교수님 이태백이 묘에 가는데 술 한 잔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했더니, 주관한 다산연구소 직원에게 술 한 병을 차에서 가져오게 했다. 여러 사람이 차례로 한 잔씩 올렸다.

  나도 한 잔 술을 올리며 문청 시절에 읊던 양인대작산화개를 읊었다. 이태백이가 한 잔 받더니 “어이구 멀리 조선땅에서 오셨네 양백이”하며 싱긋 웃었다. 그래 이태백이의 호가 太白이고 내 호가 兩白이니 白 자로 상통한다. 우리가 살아생전에 만났다면 멋진 벗이 되었을 거다. 어디 나 뿐이랴 당대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그대를 좋아했고 후세에도 그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대마다 줄을 잇는 것을.

  내 언제 다시 그대 무덤을 찾으랴. 이제 헤어지면 그만인 것을, 내 후일에 저승가면 재회하리라 생각하며 떠나는 버스에 올라앉으니 뭉클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급히 수첩을 꺼내 메모를 했다. 눈을 감았다가 수첩을 꺼내 쓰다가 눈을 감았다가 쓰다가, 평측은 귀국하여 나중에 맞추더라도 우선 운자라도 맞추자, 그러다보니 슬며시 7언 절구 한 편이 대강 모습을 드러냈다. 썼으면 그냥 수첩을 호주머니에 넣으면 될 것을, 그놈의 과시욕 때문에, 아니 명색이 중국인문기행이고 그 유명한 이태백이 흔적을 찾는 여행길 아닌가, 그렇다면 너도나도 나서서 이태백이 시를 읊고 초고나마 자작시 한 수씩 읊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마이크를 잡고 말았다. 시의 씨앗은 흥이었다. 즉 시흥.

李太白墓

啼鳥碑林環視中   無肴勸酒客微忄充

魂魄兩詩時空別   一枝桃艶每春同

이태백묘

체조비림환시중    무효권주객미충   혼백양시시공별    일지도염매춘동

새 울고 비석들이 둘러서서 보는 중에

안주 없이 한 잔 술 권하는 나그네 마음이 두근대네

그대와 나 두 시인의 혼백은 시공을 달리하나

해마다 같아라 한 가지에 피는 도화 꽃 고운 모습

 다산연구소에서 이메일로 보내오는 다산칼럼을 즐겨 읽는데, 4월 초 어느 날 메일을 열어보니 중국인문기행 안내 메일이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초기 일정으로 황산이 들어있고 중간에 이태백이의 흔적을 답사하는 일정이 들어있었다. 황산과 이태백이라니! 눈이 번쩍 떠졌다. 황산-흡현-저주-마안산-남경 등 5박 6일에 250만원. 작년 봄에 장가계 탐방 4박 5일 갔다 왔는데 150만원 들었으니 그에 비해 비쌌다. 주최가 다산연구소이고 교수님의 안내와 지도를 받는 인문기행이라지만 비싸다는 생각에 망설여졌다. 그러나 황산과 이태백이란 말이 망설이는 마음을 꽉 붙들었다. 내가 명색이 시를 쓰는 사람인데, 현대시도 쓰지만 10여 년 전부터 한시에 빠져서 한시 책 읽고 한시 쓰기를 즐기는 사람인데 이태백이를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만나보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더 늙기 전에 꼭 보리라 계획하던 천하의 명산이라는 황산이 들어있으니 어찌 가지 않으랴! 황산에 이태백이 흔적이 분명히 남아있으려니. 아내도 비싸지만 좋은 여행 같은데 다녀오라고 허락했다.

  백두산과 장가계에 이은 세 번째 중국 여행길, 이번에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함을 가득 담은 마음으로2015년 6월 15일 12시 40분에 마스크를 끼고 38명 일행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다. 한 달 여 전부터 그놈의 메르스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인 땅을 떠나 1시간 반 남짓 황해에 뜬 고기 배들을 보며 날다니 도착한 항주국제공항은 전번 여행 때 장가계 쪽 공항보다 훨씬 세련되어 보였다. 중국에서도 입국자 관리에 노심초사였다. 검색대 체온감지기를 관찰하는 관리들의 눈이 예리했다. 하지만 여행객들과 중국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아서 나도 마스크를 가방에 넣었다. 첫날은 도착 후 4시간 동안 이동하여 황산시 청대옛거리 크라운플라자 호텔에 여장을 푸느라 다 보냈다.

  호텔 시설과 음식은 좋았고, 룸메이트는 경주에서 온 70여 세의 어른이었다. 나보다 13세나 연장이고 인상이 근엄한 분이라서 지내기에 어려운 상대라는 느낌이 팍 들었다. 9급에서 시작하여 1급 차관보까지 이른 전형적인 관료 출신이었다. 고건 국무총리의 경제담당차관보를 했고 경제정책에 관한 책도 썼다고 한다. 옛날로 치면 정3품 벼슬까지 했으니 대단한 분이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정의롭게 사는 게 중요하냐 덕성스럽게 사는 게 중요하냐 물어서 글쎄요 했더니 자기는 정의롭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 걸 보니 관료시절에 자기 업무에 철두철미했고 부하 직원들을 엄격하게 다룬 것 같았다.

  국회의원은 국민과 함께지만 고급관료는 국민을 한 발 앞서 이끌어야 한다는 말씀과 퇴직 후에 산하 기관에 이사장으로 갈 수 있었지만, 공무원으로서 최고 직급까지 올랐으면 됐지 더 무슨 욕심을 내겠는가 하면서 안 갔다는 말을 들으니 이런 분이 고급관료로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며 이후부턴 선생님이란 존칭을 썼다. 요즘에도 후배 관료들과의 모임을 갖는다는 걸 보니 칭찬과 꾸중이 분명한 지도력을 발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매우 즐기셨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하기에 피우세요 했더니 저녁에 두 세대씩 꼭 피웠다.

 둘째 날 일정으로 황산시 주위의 당월패방군 휘주흡현고성 허국석방 정감촌 서체촌 등을 기행하였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열녀비와 충효비, 하회마을이나 군자리 같은 양반촌이나 민속촌, 성읍과 비슷한 성격과 모습의 민속문화 유적지였다.

  아침 식사는 양식이었다. 비싼 여행비 탓이지 식사와 숙박 등이 고급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고 편안하며 풍부하였다. 일행 38 명 중에 스텝 4명을 제외한 34 명 대부분이 비싼 여행비를 선뜻 내고 주중에 여행 다닐 수 있을 만큼 시간과 금전 적 여유가 있는 중, 상류층으로 은퇴한 대학교수와 교사, 고급관료, 현직 고등학교 사무관, 한의원 원장, 중소기업 대표 등이었다. 50세 이하는 몇 안 되고 대부분이 5,60대였고 70대가 다섯 명 이나 되었다. 첫날 차중에서와 둘째 날 저녁 식사 후에 가진 자기소개 시간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문적 소양이 너무 부족해서 참가했다고 대부분이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교수들도 모두 이공학계이고 한의사와 기업인, 관료 등은 인문적 교양과는 담을 쌓았던 사람들이다. 사실 이공학이나 인문학이나 한 줄기에서 갈라진 가지와 같다. 그런데 살아가다보면 자꾸 현실적인 면에 치중하게 되어 자기도 모르게 인문학과 소원해진다. 몸은 이공학, 마음은 인문학이라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야 한 인간이 건실하듯 이공학과 인문학을 함께 발전해야 한다. 학교교육에서도 이 둘을 조화시켜야 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몸은 이공이나 경제에 충실하면서 마음은 인문학적 교양을 꾸준히 흡수해야 한다.

  첫 일정으로 흡현 당월패방군을 보았다. 높이가 10미터가 훨씬 넘는 웅장한 패방 7개가 한 줄로 죽 늘어서 있었는데 명대의 것이 3개, 청대의 것이 4개였다. 패방 옆에는 鮑氏 남자와 여자 사당 2채가 있었다. 패방은 문짝이 없는 대문 모양을 가진 중국 특유의 석조 건축물로서 충효 정절로 모범이 될 만한 사람에게 황제의 명으로 세워진다.

  포씨는 소금장수를 하면서 부를 이루었다고 한다. 패방도 부자만 받을 수 있는 것, 남자 사당은 주희의 廉과 節 글씨와 강희제로부터 상찬을 받은 훌륭한 조상들의 초상이 걸려있는 거대한 포씨 자손 충효훈육장이었다. 또한 여자 사당에는 이 집안으로 시집와서 정절을 지키며 가업을 일군 공을 세운 7명의 여자 위패가 있었다. 안내문을 보니 모두가 오래는 못 살고 20대와 30대 초에 죽었다고 한다. 가이드 말을 들으니 고금을 막론하고 휘주 지역 여자는 전형적인 현모양처형으로 억척같은 살림꾼이라고 한다.

  비가 올듯말듯 우중충한 하늘, 소금이 이룬 부의 흔적이 패방과 사당으로 남아 있는 조그마한 당월촌을 촌규민약 10 항목이 적힌 간판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달려 흡현 휘주고성에 도착했다. 황산시에서 동북방으로 약 30킬로미터 거리인 휘주고성은 동한 건안 13년인 서기 208년에 축성되어 수, 당나라 때 확장 보수되었는데 유사 이래 휘주부의 중심지로서 1300여 년이 지난 현재도 견고하면서도 고색창연했다. 푸른 이끼가 켜켜이 낀 높은 바깥 성벽과 좁은 문은 견고한 요새였음을 나타내고, 잘 정돈된 경내와 휘주부 금자 현판이 걸린 내성은 유구한 휘주 역사를 내뿜고 있었다. 휘주고성 안이 하나의 작은 도시였다. 내성을 지나 허국석방이 서 있는 광장을 중심으로 바둑판 모양으로 나있는 여러 갈래의 넓고 좁은 골목으로 집들이 빽빽하게 이어져 있었다. 인다물다의 중국이라더니, 휘주성 자체가 사각형 모양의 성벽으로 빙 둘러져 있는 작은 성읍이다 보니 그런지 길과 골목에 나다니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꼭 우리나라 읍 소재지 장날 같았다. 사람 살아가는 모양은 동서고금 어디나 똑같은 법, 오가며 스치는 중국인들이 낯설지 않았다.

  許國石坊은 중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높이 11.5미터의 8각 패방으로 흡현 출신의 학자로 대학사로까지 출세한 허국(1527~1596)이 1584년에 원난에서 오랑캐를 평정한 공을 기리기 위해 만력제의 명으로 세워졌다.

중국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려고 이리저리 좁은 골목을 쏘다녔다. 성곽도시라서 그런지 좁은 골목 양편으로 죽 이어진 집집마다 꼭꼭 잠겨 있었는데 대문 양쪽 기둥에는 붉은 대지에 활달한 필체의 7언 대련이 붙어있었다. 우리나라는 절이나 양반 댁 기둥에 문구를 적어 붙이는데, 대문에 붙이는 이러한 대련은 중국 특유의 문화였다.

 버스 타러 모이는 시간이 10분 남짓 남아 바삐 골목을 걷다니 저 앞에서 피리 소리가 들렸다. 저기 골목에 한 여인이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피리를 불고 있었다. 화사한 짧은 원피스에 싸인 몸이 통통했다. 가는 길은 바쁘지만 신기해서 한참 동안 구경하다니 여인은 경청하는 나그네를 위해 한 곡 더 불어 주었다. 옷가게 주인인데 한가한 시간에 골목에 나와서 피리를 부는 듯 했다. 피리를 다 분 여인이 일어서더니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하고 종이와 볼펜을 꺼내 한국 안동이라 써서 보여주었더니 환하게 웃었다. 연주는 들었고 무언가 보답은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손짓으로 옷가게를 가리키니 일어나 들어가면서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가게 문 위에 걸려있는 사진 속에 휘주여인을 가리켰더니 웃으며 손으로 자기라고 했다. 말은 안 통하지만 표정과 눈짓 손짓의 몸 언어로도 의사소통이 충분했다. 여인은 피리를 놓더니 다른 악기를 꺼냈다. 그러더니 지긋이 앉아 해금 한 곡을 연주해 주었다. 한 곡 더 연주하려고 하는 걸 말렸다. 듣고야 싶지만 모일 시간이 2분 남았다. 보답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손자에게 선물하기 위해 걸려있는 아이 옷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물었더니 계산기로 50을 두드려 보였다. 내가 우 씨? 라고 했더니 환하게 웃었다. 고개를 숙이고 차곡차곡 포장하는 여인의 손길이 매우 느렸다. 시간은 다 되었고 마음이 바빴다. 그렇다고 빨리 싸 주세요 라는 중국말도 못하고. 여인은 무언가 감정을 정리한 듯 일어서더니 싱긋 웃으며 물건을 건네주었다.  

  피리 소리가 이어준 작은 인연이라 할까. 버스에 올라 옆 자리 오 가이드에게 악기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우르 쓰, 우리 말로 호로박 피리라고 한다. 지나치면서 힐끗 힐끗 들여다 본 가게마다 악기가 가끔 보였다. 이곳 상인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악기 하나씩은 연주하는가 보다. 그것이 비록 호객의 소리라고 하더라도 일상의 피곤함과 답답함을 해소하는 데 얼마나 좋은 취미 생활인가.

  나그네의 여정을 일으켜 세운 호로박 피리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불끈 시상 하나가 엉켰다.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어제 항주공항에서 버스에 오르자마자 냉큼 앉은 오른편 제일 앞자리, 그래야 오가며 중국 풍경을 큰 화면 가득 볼 수 있지 않는가! 나중에 올라온 스텦들이 좀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구기고 그냥 앉아버렸다. 가이드 역시 좀 난처해하더니 옆에 앉았다. 바로 건너 편 의자에는 송 교수와 김 대표가 앉았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송 교수를 옆 옆에 두고 수첩을 꺼내 쓸려고 하니 좀 계면쩍었지만, 떠오르는 시상을 즉각 메모하지 않으면 금방 잃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자 곧 수첩을 꺼내 적었다. 하기야 어제 항주공항을 출발하자말자 수첩을 꺼내 뭔가 적어대는 것을 송 교수가 보았기 때문에 무어 그렇게 크게 부담가질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한시를 한 수 쓴다는 생각을 하니 대가가 보는 지라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 떴다 되풀이하며 시상을 가다듬어 초고 하나 완성하였다. 이걸 어떻게 한다? 수첩을 그냥 주머니에 넣었으면 좋았을 것을, 마이크를 잡고, “이번 여행이 명색이 인문기행인데 한시 한 수 썼으니 읊어보겠습니다”하곤 크게 읊고 말았다 이런! 짧은 박수 소리는 들었지만 동행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특히나 송 교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부끄럽다는 생각과 통쾌하단 생각이 함께 들었다.

  시가 생물임을 비로소 느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상상하면서 쓴 시는 시가 아니라 지식과 생각의 파편일 뿐이다. 현장에서 비로소 엉켜드는 시가 참시이다. 시는 바로 생활의 결정이다. 고승이 오랜 명상을 통해 사리를 얻듯 시인은 생활 현장에서 저절로 엉키는 영감을 얻는다. 이백과 두보가 고금을 통해 시선과 시성으로 칭송받는 까닭이 바로 그들의 시가 절실한 현장 체험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徽 洲 城

古 城 陋 巷 葫 蘆 聲    半 白 東 羇 使 跫 停

一 曲 情 徽 洲 女 人    便 乘 夏 雨 長 長 零

고성누항호로성    반백동기사강정    일곡정휘주여인    편승하우장장령

묵은 성 좁은 골목 호리박 피리 소리

동쪽 나라 반백의 나그네 발걸음 멈추다니

휘주여인 부는 한 곡조에 담긴 정

여름 비 타고 와서 뚝 뚝 떨어지네

 고급 음식점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고 다음 여정으로 정감촌을 찾았다. 정감촌은 황산시 휘주구 정감향에 있는 오래된 마을로 명나라 때 건축물이 완전하게 남아있는 곳이었다. 여름비가 구구죽죽 내려서인지 오행 풍수지리설에 맞게 설계되었다는 마을 전체가 우중충해 보였다. 높은 담으로 이어진 골목은 매우 좁아 한 사람이 편히 걸어갈 정도였다. 몇 군데 들어가 본 건물도 오래되고 관리가 허술해서인지 그냥 한 번 들러보고 나올 정도이지 무슨 기념 될 만한 것이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았다.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급하게 흘러가는 냇물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낡은 회색빛 건물들이 이곳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이국임을 낯설게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한참을 달려 황산시 이현의 서체촌에 도착하였다. 서체촌은 송나라 때 처음 건설된 마을인데 명나라 때 胡씨 일가의 상업이 번창하면서 훌륭한 공공시설과 주택들이 건설되었다. 현재 명청 시대에 만들어진 전통주택 200여 채가 남아있으며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이곳 역시 정감촌가 같이 높은 담이 이어진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나 있었다. 이걸 보면 중국 사람들은 도둑이나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마을 공동으로 견고하고 밀집된 집을 짓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보니 굳게 잠긴 대문 위에 빨간 명찰이 붙어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공산당원호’였다. 그 아래에 ‘십성급문명호’라는 제목으로 도덕성, 수법성, 치부성, 과기성 등 열 개 항목의 별 표시가 있었다. 중국은 공산당원 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데, 이 집 주인은 열 개 모든 항목에 걸쳐서 별을 받았으니 참 대단한 공산당원인 모양이다. 이런 사람이 마을에서 공산당원으로서의 임무를 다했기 때문에 중국이 오늘날 대륙굴기를 이룰 수 있었는 게 아닌가.

  황산시에 돌아와 헌원국제대주점에 이틀 째의 여장을 풀었다. 어느 여행이나 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매우 피곤했다.

 사흘 째 여정으로 조식 후 비 속을 두 시간 정도 달려 황산 경현의 도화담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 걸어가는 도중에 ‘中華第一祠’와 ‘江南名族’이란 현판이 붙은 제사를 구경했다. 말 그대로 이 지역의 명족답게 ‘尊崇敬祖’란 현판 아래 누대에 걸친 조상들의 위패가 상하로 차례대로 놓여 있었다. 큰 방 좌우 벽엔 훌륭한 조상들의 초상화와 공적을 적은 판들이 줄 지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초상화의 모습은 변발과 호복이고 그 아래에 강희제와 숭정제 등 청나라 황제로부터 벼슬을 받았다고 적혀있었다. 이곳은 양자강 남쪽, 즉 강남으로 순수 한족들이 사는 곳이다. 아마 명나라 때 득세한 가문이련만 만주족이 침략해 들어오자 귀순한 것 같다. 만약에 저항했다면 일족이 몰살당했을 것 아니랴. 나라 이름과 황실이 바뀐 것은 이러한 지방 명족에겐 고공에 부는 바람일 뿐이다. 괜히 망해가는 황실을 위해 우뚝 섰다가는 뚝 부러지는 것보다 귀순하여 지방 권력을 보장받는 쪽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만주족 역시 지방 권력의 협조를 받는 것이 전국적 통제에 유리했을 것이다.

  대륙은 워낙 넓다보니 곳곳에 왕조가 섰다가 엎어졌다가를 되풀이 했다. 그러니 어느 한 왕실이나 황실에 대한 충성이란 덕목은 별 의미를 가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항복한 이민족에 대해 배척이나 탄압보단 계속해서 그곳에서 그대로 살게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좁은 땅에선 경쟁이 치열하지만 대륙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땅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에도 56개의 소수 민족이 한족과 더불어 별 충돌 없이 살아가고 있다.

  도화담 가는 길가 집들은 중국 농촌의 간고한 생활 모습을 보였다. 높은 벽 좁은 대문은 어디가나 같았고 집집이 붉은 바탕에 화려하게 채색한 그림이 걸려있는 작은 제당이 바로 보였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아이들과 아낙네들, 대나무 공예품을 만드는 남자,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농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똑같았다.

  어제 오늘 계속해서 내린 비 때문에 도화담이 선착장이 잠길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비안개로 살포시 덮인 도화담, 우리나라 충북 단양에 도담삼봉과 전체적 모양과 분위기가 비슷하나 규모가 훨씬 더 컸다. 여기가 바로 이태백이가 며칠 유쾌하게 놀다가 배를 타고 하류로 떠난 곳이란다. 그 날의 분위기를 추억하는 기념물 몇 개, 서서 팔을 뻗쳐 잔을 높이 든 이태백이와 앉아서 잔을 들고 웃는 왕륜이의 석상이 일행을 맞이했다.

  桃花潭이 왜 유명한가, 이태백이 때문이다. 이태백이가 이곳을 거치지 않았다면 중국 땅 수많은 潭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태백이가 놀다 간 곳이기 때문에, 놀아도 그냥 논 곳이 아니라 시를 12편이나 썼기 때문에 유명해진 거다. 왕륜이 역시 하고많은 한 고을의 수령 중에 하나로 흔적이 없을 것을 이태백이와 함께 역사에 이름이 남고 이렇게 석상이 앉아있는 까닭은 이태백이를 초청해서 잘 대접했기 때문이다.

  이태백은 평생을 주유천하하면서 술과 시로 살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태백이를 초청하여 놀도록 하고 떠날 때는 후한 노자를 보태 주었다. 도화담 이곳의 태수였던 왕륜이 “桃花十里에 萬家酒店이 있으니 한 번 놀러 오시지요”라는 편지를 태백이에게 보냈다. 도화꽃이 십리에 걸쳐 좌악 피어있는 경치, 술집이 만개나 된다니 얼마나 흥청망청 즐거우랴! 술과 도화, 즉 여자를 좋아하는 55세의 태백이가 얼씨구나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막상 가보니 도화는커녕 만가주점이 없었다. ‘속았구나 괜히 왔어, 여기저기 초청하는 곳이 많아 바쁜 몸인데 말이야’하며 시큰둥해 하는 태백이에게, 왕륜이 이렇게 말했다.

  “십리도화는 여기에서 십리 되는 곳에 도화담이 있다는 말이고, 만가주점은 맛있는 술을 만드는 술집 주인이 萬씨라는 뜻이지요”

이 말을 들은 태백이는 호탕하게 웃고 몇 날 며칠 동안 잘 놀면서 시 11수를 지었다.

  실컷 놀았으니 이젠 떠나가야지. 왕륜이 선사한 여덟 필의 말과 비단을 실은 배에 올라 떠나가는 순간, 갑자기 나루터 언덕 너머에서 수십 명이 발을 구르며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아침부터 마신 전별주에 취한 태백이 가슴에서 울컥 한 줄기 시정이 토해졌다. 이 한 수가 놀면서 지은 11 수보다 인구에 더 회자되나니, 그래서 시는 감동인가.

贈汪倫

李白乘舟將欲行   忽聞岸上踏歌聲    이백승주장욕행 홀문안상답가성

桃花潭水深千尺   不及汪倫送我情    도화담수심천척 불급왕륜송아정

이백이 배를 타고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네 강 언덕 위 답가성

도화담 깊은 물이 천척이라지만    왕륜이가 날 보내는 정에는 미치지 못하네

 버스를 타고 다리를 지나 건너편 강가 작은 산 위 정자에 오르니 도화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비 내리는 도화담, 이런 날은 앞으로의 여정을 접고서 여기서 한 잔 술 마시며 시 한 수, 아니 창가라도 한 곡조 노래해야지 않겠는가. 그냥 유적지라고 찾아와 한 바퀴 빙 돌고 떠나서는 도무지 흥이 없다. 더구나 여긴 이태백이가 주야장창 놀던 곳이 아닌가. 사람이 평생 일만 하고 살 수 있는가. 가끔은 이런 곳을 찾아 시흥에다 주흥에다 도도하게 취한 날이 하루 이틀 쯤은 있어야 할 것 아니라. 그래서 비싼 여행비 내고 인문기행 왔지 아니한가. 하지만 일행들은 모두다 중상류층답게 자기감정을 잘 절제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중상류층이 아니라서 그런지 버스에 타자말자 한 줄기 시정이 뭉클 끓어올랐다. 어제 휘주고성에서 한 감정 일어나 한 수 썼는데 오늘이라고 감출 일은 아니었다. 다시 수첩을 꺼내 긁적긁적 거려 초고 한수 지었다, 그리고 또 마이크를 잡았다.

桃花潭

微醉桃花墜墜多   兩人胡蝶覺踏歌

餞別詩仙下霧塵   深潭不忘重重波

미취도화추추다   양인호접각답가    전별시선하무진    심담불망중중파

가볍게 취한 도화 어지러이 떨어지고

두 사람 호접몽이 답가성에 깨어나네

시선을 전별하여 아득히 먼지 안개 속으로 보내고

못 잊어 도화담 깊은 물이 겹겹이 출렁이네

 이 시는 정지상의「送人」의 운자인 多 歌 波를 차운하였는데, 후일 내가 시인으로 기억된다면 아마 이 시 때문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정든 도화담을 이별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에 경정산에 도착하였다. 비가 계속 내리는 바람에 정상은 산사태 위험 때문에 출입금지라서 중턱쯤에서 돌아 나오며 이태백이의 흔적을 둘러보았다. 이 경정산은 안휘성 남동부 선성시 북쪽에 있는데 그리 높지도 않고 경치도 수려하지 않은 평범한 야산인데 이태백의 시로 인해 유명한 ‘강남시산’이 되었다. 이걸 보면 사람이나 담이나 산이나 시인 하나 잘 만나면 곧 유명해질 수 있으니, 시인이야말로 어찌 신의 소리를 옮겨 적은 자가 아니랴!

  이백은 24세에 고향인 촉을 떠나 천하를 만유하다가 42세에 어렵사리 벼슬을 얻어 장안에 머물렀으나 44세에 주위의 모함을 견디지 못하여 벼슬을 버리고 다시 방랑의 길에 올랐다. 이로부터 10년 뒤 어느 날 53세의 이태백은 경정산에 홀로 올라 다음과 같이 읊었다.

 獨坐敬亭山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閒    중조고비진  고운독거한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상간양불염  지유경정산

뭇 새들 높이 날아 다 사라지고     외로운 구름 홀로 한가로이 가버렸네

서로 마주 봐도 싫지 않은 것은     오직 저 경정산이 있을 뿐

 이 시로 인해 자그마한 경정산은 천하의 명산이 되었고, 후세에 이산을 찾은 시인묵객들이 읊은 시가 천여 편에 달한다고 한다. 산 계곡엔 당 현종의 누이동생인 옥진공주와의 로맨스를 흉내 낸 조각상들이 여럿 있었으나, 그것들은 허상일 뿐, 이태백의 가슴엔 늘 헛헛한 바람이 불었다. 53세의 고적한 이태백을 품어 준 경정산은 그 보답으로 ‘강남시산’이 되었고 55세의 방랑객 이태백을 융숭하게 대접한 왕륜과 도화담은 시에 남았다.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은 누구나 시의 씨앗을 품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씨앗을 틔우지 못하고 평생 동안 품고만 있으나 지식인은 그 씨앗을 틔운다. 하지만 지식인은 틔우기는 틔웠으나 키우질 못한다. 반면에 그 씨앗을 잘 틔워 키운 사람은 일단은 시인의 이름을 얻는다. 하지만 많은 시인 중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실한 열매를 맺은 자만이 유명시인이 된다. 고금을 통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일으키게 하는 멋진 시를 지어낸 이태백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은 시인이다.

마안산 해외해 황관 홀리데이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 후에 비로소 술을 나누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몇 사람과 거리에 나가 일반 음식점에서 맥주를 마셨다. 말이 안 통할 뿐이지 모든 것이 우리나라 사람과 같았다. 여기서 한 일주일이라도 살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행 나흘 째, 아침 식사는 깔끔하게 맛있는 고급 양식으로 하고 호텔을 나서니 하늘이 환했다. 어제까지 내리 사흘 동안 비를 만났으니 그러잖아도 습기가 많다는 강남이 더욱 우중충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햇볕이 나니 풍경과 더불어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첫 답사지인 청산 이태백묘를 찾아 술 한 잔 권하고, 采石磯로 이동하였다. 채석기는 마안산시에서 남쪽으로 6킬로미터 떨어진 취라산 기슭에 있으며 삼면이 우저하에 에워싸여 있고 서북쪽으로 호호탕탕하게 흘러오는 만리 장강에 임해 우뚝 솟아있는 가파른 절벽이다. 고금을 통해 이태백, 백거이, 왕안석, 소동파, 육우, 문천상 등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아와 대량의 시구를 남겼다. 태백루, 상영정, 착월정, 관란정, 삼원동 등의 명승고적이 있다. 특히 이태백이가 달을 건지려다가 물에 들어간 후에 나오지 않았다는 곳에 만든 이백의관총과 이백기념관이 있다.

  태백루가 곧 이백기념관인데, 만년에 당투에 임시로 거처했던 이백이 이곳에 찾아와 시를 읊었다고 하며, 진귀한 이백 친필서한과 각종 판본의 시집, 명사 문인의 시, 영련, 액자, 회화, 편액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태백이가 두 팔을 벌리고 새처럼 훨훨 날아가는 큰 석상 앞에 ‘이백이가 달을 건지려고 물에 들어간 곳’이란 안내판이 있는 넓직한 돌이 있었다. 아래로는 까마득한 절벽, 아마 명정에 든 이태백이가 여기 앉거나 누웠다가 잠결에 굴러 떨어진 게 아닐까?

  조금 위에 태백이가 죽고 난 다음에 친지들이 의관을 수습하여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백의관총’이 있었다. 인터넷 정보에 보면 이태백의 무덤이 여러 군데라고 한다. 워낙 유명한 시인이다 보니 흠모하는 후인들이 많았을 터, 이태백의 유품이나 연고를 가져와 여기저기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볼수 있다. 어제 찾은 청산에 ‘당명현이태백지묘’도 이태백의 시신이 묻힌 무덤이 닐 수도 있다. 비문을 두보가 썼다고 혹자는 말하지만, 상거 수천 리인 두보가 어떻게 알고 비문을 썼겠는가.

  그에 비해 이곳 ‘이백의관총’은 사실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백이가 이곳에서 추락하여 익사한 게 사실이라면 시신은 건지지 못하였을 터, 남아있는 옷과 관으로 장사 지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도 누런 황토물이 깊고 넓게 흘러가는데 천여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니 어찌 잠수하여 시신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뱃놀이하다가 달을 건지려고 하다 물에 빠진 게 아니고 이 채석기에서 추락사한 게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우저하든 장강이든 보니 한가하게 뱃놀이 할 강이 아니다. 뱃놀이는 수심도 알맞고 조용한 가에서 하는 거지 이런 큰 강에서는 할 수 없다.

  취라산 아래엔 여러 가지 문화 시설들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곳을 모택동 주석이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 장진주사를 쓴 그의 친필이 새겨진 큰 비가 있어 보니 매우 달필이었다.

  역사상에 공과가 있는 인물이지만, 신언서판 모든 면에서 탁월했기 때문에 현대 중국의 기초를 닦아 세울 수 있었지 않겠는가. 淸風亭 영련 중에 ‘自公一去無狂客, 이백 공이 한 번 간 이후로 광객이 없도다’가 있었다. 그렇다 이태백은 광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가 워낙 뛰어나서 허물과 실수가 덮여서 그렇지, 생시엔 얼마나 광란이 많았겠는가. 술 앞에 도덕군자가 없는 법, 주태백이란 별명을 아직까지 들을 정도면 그의 술, 아니 주사가 얼마나 심했겠는가. 그는 술 없이 맹숭맹숭한 정신으로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못했을 것이다. 그의 시는 술이 들어가야 자동으로 나왔다. 그는 인생은 술과 시, 그리고 달, 세 가지였다. 벼슬을 얻고자 했으나 늦게야 겨우 낮은 벼슬이나마 얻고, 그것도 몇 해 누리지도 못하고 쫓겨났으니, 그의 심사 얼마나 통분했을까. 깔깔한 성격에 엽관질도 어려웠을 터지만 현종과 양귀비를 위해 바친 시도 큰 효과를 가져 오지 못했으니 벼슬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20여년의 방랑 생활에 지치고 지친 그에게 술은 유일한 위로였다. 그러니 광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다행히 들어간 술이 가끔 주옥같은 시로 배설되었으니, 그러므로 ‘無狂客’이란 말은 곧 이후 이백에 견줄만한 시인이 없었다는 말.

  채석기를 떠나 남경을 통과하여 저주로 가는 길에 문득 또 시 하나 엉켰다.

采石磯衣冠塚

竹杖芒鞋拾旵濛    醉中苦吟登天蝀

故友收痕衣冠塚    後情來往采江充

채석기의관총

죽장망혜겁참몽   취중고음등천동   고우수흔의관총   후정래왕채강충

죽장망혜 가는 길에 해와 비 갈마들고

취중 읊는 소리 하늘에 올라 무지개 되었네

옛 벗들이 그대 흔적 거두어 의관총을 만드니

오고가는 후인들 깊은 정이 채석강을 채우네

 채석기를 떠나 점심을 먹고 2시간 동안 저주를 향해 달렸다. 차창으로 보는 중국 작은 도시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그윽이 감상하다니 큰 도시에 이르고, 오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통과한 큰 도시가 바로 남경이란다, 몇 층 고가도로를 요리조리 구비 돌던 버스가 갑자기 지하도로 들어갔다. 밝은 하늘 아래로 나온 차창 가득히 갑자기 넓디넓은 강이 펼쳐졌다. 양자강, 드디어 양자강을 통과하고 있다! 어릴 때 ‘양자강의 여자 뱃사공’이란 만화책을 본 이후 막연하게 그리워하던 양자강, 그 녀가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배들이 군데군데 떠 있는 누우런 망망대해, 유월의 나무들이 푸르게 흔들리는 넓디넓은 섬. 얼마나 광활한지 ‘유유히 흐른다’라는 말의 실체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한강이나 낙동강과는 이미지가 확 달랐다.

  대륙의 강은 의연하다. 장강과 대륙이 만들어내는 인물들과 사건들, 이 모든 것을 보며 양자강은

 유유히 흐른다. 양자강이 범람하면 대륙이 범람하고 양자강이 마르면 중국이 마른다. 대륙의 전부가 녹아 흐르는 양자강! 대륙을 적시며 유유히 흐르는 양자강을 보니 문득 휘주여인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동국의 이 초로를 찰나라도 생각하고 있을까, 그건 아니겠지 하며 생각을 털어냈다. 풍류는 가도 양자강은 흐른다. 또 울컥 치받치는 시정 한 곡 급히 적었다.

揚 子 江

長江橫大陸    韓客縱南京

已牝坪坪情    何由黙黙行

양자강

장강횡대륙    한객종남경    이빈평평정    하유묵묵행

장강은 대륙을 가로지르고

한국 나그네는 남경으로 치오르네

이미 질펀하게 정 풀어놓고

무슨 까닭으로 묵묵히 가느뇨

 장강을 넘어 오후에 유우석 기념관이 있는 누실공원을 찾았다. 유우석은 송대 고위관료로 비교적 청렴결백 했다고 한다. 유우석의 당호인 陋室이라 말은 누추한 집이란 뜻인데, 세상에다가 자기의 청렴결백한 생활모습을 표현할 적에 쓰는 말이다. 이 말은 어느 시대에나 고관대작 출신부터 주경야독 하는 시골 선비에 이르기까지 쓴 사람이 많다. 그런데, 누실이든 화실이든 어디에서나 마음가짐과 생활 태도가 변함이 없어야 올바른 선비라 할 수 있다. ‘내 당호가 누실이요, 나 이처럼 청렴결백하다오’라고 꼭이 현판을 내걸어야 할까?

  누실공원 중앙에 있는 조그마한 정자는 동네 청소년들의 밤 놀이터인지 담배꽁초, 소변 등으로 어지러웠으나 유명한 한시들이 새겨진 시비들은 시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문화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공원이라서 그런지 국민 계도용 벽화가 길게 그려져 있었다. 오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몇 년 전에 홍콩독감이 발생했을 땐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가는 여행객들은 반드시 모두 검역을 받아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메르스에도 중국 사회는 일체 동요 없이 당국의 지시에 따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번 메르스 사태 때 보균자로 확정되어 자가 격리 조치된 환자가 며 칠 후에 수 백리 떨어진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수십 명이 죽었지만 중국엔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 보균자 한 명이 홍콩에서 발견되자, 수십 명의 의료와 보안 요원들이 달려들어 철저히 차단했다고 한다. 치료비가 몇 억 들었는데, 그것을 한국인 환자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중국에서 부담했다고 한다. 역시 대국답다고 경하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이렇게 사회적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70년 가까운 기간 동안에 걸쳐 사회주의 규칙과 덕목 준수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중국은 얼마나 분잡스러웠는가. 지대인다물다 하기 때문에 온갖 욕망이 펄펄 끓는 현장이지 아니한가. 두 번의 중국 여행 때도 중국인들에 대한 느낌이 ‘참 순박하구나’였는데, 이번 기행에서 며칠 동안 본 중국인들 역시 순박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인들과 대면할 때보다 중국에서 중국인들을 대할 때가 훨씬 편했다. 중국인들의 본성 자체가 그러하겠지만 오랜 사회주의 교육과 생활을 통해 심성이 순치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회나 문화, 경제적인 면에서는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벼리를 잘 이루고 있는데, 문제는 정치적인 면이 아닐까 한다.

  현재는 중국공산당이 전권을 틀어쥐고 국가를 통제하고 있지만, 경제 발전이 가속화하면서 경제적 자유에 걸맞는 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으니, 미래에는 다당제와 직접투표제 같은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 분출이 거세지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중국의 지도자들과 인텔리들 역시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것이니, 중지를 모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기존의 사회주의적 토대를 굳건히 하면서 서구식 민주주의의 장단점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좋은 정치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구양수를 만나로 가는 길에 주유를 위해 잠시 내린 지방도로 길 가, 유월 대륙은 한없이 넓고 평평했고 따가운 햇살 아래 초목들이 무성했다. 저 풍경 속에 걸어 들어서면 나도 중국 사람이 되겠지.

  안휘성 성도인 합비시에서 서쪽으로 118킬로미터, 남경에서 서북쪽으로 48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추저우시 중심부에 있는 랑야산에는 송대 문장가인 구양수가 머물렀던 취옹정이 있다. 나지막한 산인 랑야산 계곡수 바로 옆에 있는 취옹정은 북송 인종 때인 서기 1046년에 랑아사 화상인 지선이 건축하였고 당시 추저우 태수였던 40세의 구양수가 자신의 호인 醉翁을 따서 이름을 지었으며 정자 준공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취옹정기>를 지었다. 전면에 한 세대 후배인 소동파가 쓴 ‘醉翁亭’ 현판이 걸려있는 취옹정은 베이징의 도연정, 장사의 애만정, 항저우 서호의 호심정과 더불어 중국 4대 명정의 하나이며 “천하제1정‘으로 손꼽는다. 취옹정이 웅장하거나 화려하진 않으면서도 그러한 명성을 얻게 된 까닭은, 醉가 시끄러운 음주가무의 풍류가 아니라 낭야산의 수려한 경치와 맑은 계곡수에 도취하여 그 이치를 즐기며 살아가는 구양수의 인생철학이 담긴 명성 때문일 것이다.

  다시 남하하여 양자강을 건너 남경에 들어와 은하소피텔에 여장을 풀었다. 여럿이 둘러앉아 식판을 빙 빙 돌리며 먹는 저녁 식사, 음식과 술을 마시며 여러 사람이 취옹정에 갔던 여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현대건축사무소를 한다는 어느 사람이 “지금까지 내가 본 고 건축물 중에 취옹정이 가장 우수했다. 우리나라 고 건축물은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아니 무슨 말씀을 저렇게 하시나 내가 보기엔 그렇고 그런 정자일 뿐인데. 그래서 대뜸 “내가 볼 땐 평범하던데요. 소장님, 우리나라 정자나 서원 같은데 가보셨나요?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 건축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한 마디 해버렸다. 그랬더니 불쾌한 표정으로 나를 거만스레 쏘아보더니 “안 가봤는데”라고 반말을 했다. 내가 다시 쏘아보면서, “올해 연세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왜 반말 합니까?”. “미안합니다” 사과가 곧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여자 한 사람이 “잘 했어요” 살짝 한 마디 해주었다.

 중국인문기행 5일 째인 2015년 6월 19일 8시부터 남경 구경을 시작했다. 남경은 강소성의 성도로 인구는 약 235만 명인데, 서쪽과 북쪽이 장강에 면해 있고 사위에 무푸산, 우룽산, 자금산, 우화대, 청량산, 사자산 등이 솟아있으며 호성강, 진회강 등 하천과 현무호, 무추호 등 호수가 있어 지형의 변화가 다양하다.

  남경은 오나라부터 시작하여 송, 양, 초. 동진, 송, 제, 양, 진, 당, 명, 청, 태평천국, 중화민국 임시정부 수립까지 수많은 왕조와 역사가 거쳐 간 고도로 높이 13~25미터에 총길이 34킬로미터에 달하는 남경성벽, 중화문, 명태조의 무덤인 명효릉, 손문의 묘소인 중산릉, 석두성, 연자기, 문묘, 미향루, 진화하, 오의향, 봉항각 등의 명승고적이 풍부하다. 또한 일제의 침략을 받아 30만 시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견직물공업 외에 화학, 기계, 철강, 식품 등이 발달하여 강소성 최대의 공업도시로 성장해 가고 있으며 남경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이 있어 화중 지방의 학술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자금산은 등성이를 달리하여 왼쪽에 명 태조, 오른 쪽에 중화민국의 건국자 손문을 품고 있었다. 명효릉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죽기 15년 전에 명하여 만든 릉이다. 살아생전에 지었으니 그 규모와 시설이야 웅장하고 화려하기가 그지없었다. 다만 저 릉 앞에 주원장이 죽은 이후 수백 년 동안 해마다 제사 지내러 먼 조선 땅에서 온 사신들이 꿇어 엎드렸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찝찝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엔, 재조지은을 갚고 소중화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청나라 눈을 피해 얼마나 많은 조선 선비들의 정성이 이 릉 앞에 닿았을까. 사대주의? 모화사상? 지금이야 그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당시로는 그 외교책이 유일한 생존의 방법이었으니, 후손 된 자로서 고개 끄덕이며 수긍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저 웅장한 명효릉, 주인 주원장이는 현대에 들어 제사 밥 얻어 자시고 있을까 없을까 궁금했다. 항복해라, 안 해? 그렇다면 성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은 다 죽여라고 할 정도로 포악한 만주족이라지만, 그래도 건국에 성공한 청조가 설마 명조 황제들 제사를 지낼 자손까지 멸종시키진 않았겠지.

  손문은 중화민국을 건국하고 임시대총통에 추대되어 1912년 1월 1일 중화민국을 발족시켰으나, 얼마 후 군벌들과 타협하였다. 그래도 오늘날에는 ‘중산릉’이란 이름을 가진 무덤의 주인이 되었다. 즉 현대 중국에서 ‘릉’이란 명칭을 붙일 정도의 큰 명예를 가졌기 때문이다. 1925년 3월에 손문이 죽고 난 후에도 국민당과 공산당 양쪽에서 모두 손문의 삼민주의를 권력의 목표로 정할 정도로 그 당시나 지금이나 모든 중국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릉 자체도 매우 웅장하고 기품이 있었으며 평일인데도 정말 인파가 마치 바닷물처럼 출렁였다.

 중산릉은 사람들이 쉽게 다닐 수 있는 평지가 아니라 수백 계단을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며 손문선생과 나라를 생각하란 뜻으로 높은 곳에 있었다. 계단 입구 관문엔 ‘博愛’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널리 사랑하라’ 참 좋은 말이다. 이 박애가 중국 땅에만 머물지 말고 동북아를 지나 아시아 전체를 지나 둥근 지구를 한 바퀴 빙 돌아야 한다. 계단 중간 문엔 ‘天下爲公’이 크게 새겨져 있었다. 私, 나 혼자만을 위하지 말고 公, 천하 모든 이들을 위하라.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운전을 할 때도 내가 먼저 가려고 다투기 보단 주위의 흐름을 살피며 양보 운전을 하면 전혀 사고가 나지 않는다. 공의 정신은 개인과 사회, 국가를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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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다 오르니 웅장한 성문 세 개의 큰 문 위에 가로로 크게 ‘민족’, ‘민생’, ‘민권’이 새겨져 있었다. 성문 위 이층 누각의 처마 중앙 아래에 ‘天地正氣’ 가 세로로 새겨진 현판이 달려 있었다. 숨을 고르고 뒤로 돌아보니 유월의 숲으로 무성한 드넓은 남경 평원이 좌악 펼쳐졌다. 아, 저것이 대륙의 진정한 모습이로구나 하는 감흥이 뭉클 일었다. 손중산 선생을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이 까마득한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었다. 저 인파는 수십 수백 년이 가도 끊어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서부터 여기까지, 또 중산선생을 참배하면서 중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손중산 선생은 죽어서도 중국인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그렇다면 현대사에서 우리나라에 그런 분이 있는가? 중세사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퇴계와 율곡, 다산 같은 분이 있지만 현대사엔 아니다 전혀 아니다.

  손문 선생 같은 분이 있음으로 해서 대륙의 중국인들과 대만의 중국인들은 끈끈한 동류의식을 갖는다. 손문 정신이 현대 두 중국의 유혈 충돌을 방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도토리 키재기 하는 인믈들만 너도나도 나서서 설치기만 했지 정작 민족이 의지할만한 큰 인물이 없다. 남북 분단을 지척에 앞두고 김구 선생 같은 분이 노력 했지만 친미파들의 사주를 받은 흉한의 총질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큰 인물 하나 보존하지 못했으니 동족상잔은 어찌 업보이지 않겠는가.

  중산릉은 거대한 기획 의도 하에 치밀하게 준비되었다고 보여졌다. 민족 민생 민권의 삼민주의가 인간 중심이요 국민 중심이라면 손문 그의 묘는 릉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묘라는 이름으로 가장 가깝고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높은 곳에 수백계단을 걸어 올라와서 웅장한 릉을 참배하도록 만든 1927년 장개석의 의도는 무엇일까. 후계자들은 죽은 지도자를 추숭함으로써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는다. 즉 손문이 권력 승계와 확장에 이용된 거다. 장개석은 손문을 중화민국의 주춧돌과 자기 총통 직의 정통성으로 이용하였고, 곽말약 등 지식인들은 삼민주의를 수입한 공산주의를 재배하는 토양으로 이용하였다. 누구가 이용하든 안 하든 이후에도 좌우익 모두로부터 존경 받는 손문, 이러한 지도자를 가진 중국인들은 행복하다. 중산 손문 선생은 중국 역사가 기록되는 한에는 높은 존경을 받는다. 이러한 지도자를 갖지 못한 한국인들은 불행하다.

  나는 이미 틀렸고, 환갑을 지나니 이젠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엔 시효가 지났고, 제발 내 자손 중에 손문 선생의 반에 반만이라도 닮은 자손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둘레를 한 바퀴 빙 돌아 나가는 수많은 동포들을 지긋이 바라보는 중산 손문 선생의 표정은 온화했다. 나도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니, “어이구 멀리서 오셨네요. 조선 사람들 요즘 모두 잘 있습니까? 조선반도가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할 텐데요. 그래야 우리 중국도 마음 편히 살지요. 서로 이웃인데요”하며 반갑게 웃었다.

  다른 한시들은 현장에서 초고를 했지만 이곳에서 느낀 소회는 초고를 하지 못하고 7언 율시로 쓸 ‘중산손문선생’이란 제목만 수첩에 적었다. 귀국하여 다른 시들을 퇴고 할 때 비로소 완성하였다.

孫文先生中山陵

南向高臺一蝶夢    紫金階踏客心紅

爲公運動如長江    近代百年艱苦終

體用均平解宿題    中華屈起文明隆

三民主義和東亞    槿域詩人謹揖中

손문선생중산릉

남향고대일접몽    자금계답객심홍    위공운동여장강   근대백년간고종

체용균평해숙제    중화굴기문명륭    삼민주의화동아   근역시인근업중

남향 높은 대에 한 마리 나비의 꿈

자금산 게단 밟아 오르는 나그네 마음 붉어지네

선생의 위공운동이 장강처럼 유유히 흘러

근대백년 간난신고를 그치게 하였고

체와 용이 고루 균평하여 비로소 역사의 숙제를 해결하니

중화가 드디어 몸을 일으켜 문명이 융성하네

민족 민생 민권 삼민주의로 동아가 평화롭길

무궁화 땅 시인이 삼가 읍하는 중일세

 점심 식사는 각종 옥공예 작품이 길게 전시된 1층과 2층을 지나 넓은 홀에서 전통 중국식 음식을 먹었다. 고국을 떠난 지 닷새째라서 그런지 김치와 된장찌개가 생각났다. 그동안 한국식 음식은 사흘째 저녁에 교포가 하는 음식점에서 소불고기와 소주를 마셨을 뿐이다. 잠심 식사 후에 취옥 팔찌를 정가표 480원에서 흥정하여 380원에 샀다.

오후 첫 일정으로 봉황각을 찾았다. 4층 높이의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하는 봉황각과 저 앞 평지에 만들어 놓은 봉과 황 두 마리 상상의 새 조각상이 선 봉황대는 관광객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이태백이 전국을 유람하던 중 남경에 머물던 747년 47세 때 봉황대에 올라 지금은 폐허가 된 옛 오나라 진나라의 자취를 회고하며 <등금릉봉황대>를 지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에는 평평한 지형에 우뚝 솟은 이 봉황대가 주위의 숲과 어울려 운치어린 한 경치 했겠지만, 지금은 동서남북 사위가 모두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숲이니 무슨 수로 이태백의 시흥을 되새겨 본단 말인가. 이태백의 시를 차운해서 7언율시 한 수 써 볼까 해서 <차운등금릉봉황대>란 제목을 수첩에 썼으나 차중에서도, 귀국해서도 결국 쓰지 못했다.

 시인은 좋은 경치를 만나야 가슴에서 시흥이 끓어오르는데, 시대가 갈수록 좋은 경치가 사라지고 있으니 시흥이 어찌 생긴단 말인가. 그리하여 시흥이 고갈되면 시인이 마르고, 시인이 마르면 시대가 마를 수밖에 없다. 시는 인간의 근원인데 시가 마른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에 사는 생물이 어찌 인간일 수 있을까. 골육으로 만든 작동 중인 기계일 따름이다.

모든 인간은 시인이라 했다. 왜냐면 생각과 감정의 언어적 표현이 시라면 인간에겐 생각과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즐겨 부르는 가요나 가곡은 노래이지만 가사는 시다. 고전으로 받드는 시경, 그 것은 그 당시의 노래 가사를 채록한 거다. 그 당시의 노래가 바로 유행하던 민요 아닌가. 그러므로 오늘날에 유행가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은 시인이다, 물론 초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지만 노래방에 가서 유행가를 부른다, 말라가는 시정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

登金陵鳳凰臺

李白

鳳凰臺上鳳凰游    鳳去臺空江自流

吳宮花草埋幽徑    晉代衣冠成古丘

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

總爲浮雲能蔽日    長安不見使人愁

등금릉봉황대

봉황대상봉황유    봉거대공강자류

오궁화초매유경    진대의관성고구

삼산반락청천외    이수중분백로주

총위부운능폐일    장안불견사인수

봉황이 놀았다는 봉황대에 오르니 봉황 떠난 대는 비었고 강만 절로 흐르는데

오나라 궁궐의 화초는 묻혀 흔적이 없고 진나라 고관들은 옛 무덤을 이루었네

세 산은 푸른 하늘 아래 아른하고 장강은 백로주에서 두 줄기로 갈라지네

뜬 구름이 해를 가리었기에 장안이 보이지 않아 홀로 시름하노라

 이어서 석두성, 부자묘, 왕사고거, 미향루를 둘러보고 오의항 진회하선유를 하였다.

 석두성은 남북 길이 3킬로미터에 제일 높은 곳이 17미터에 달하는 자연암석을 이용한 성으로 남경시내에서 30분 거리인 청량산 뒤켠에 있는데 공원전, 즉 기원전 333년에 쌓기 시작하여 서기 211년 오나라 손권이 남경에 천도한 이후 누대에 걸쳐 장강을 지키는 요새로 증축되었다고 한다.

  부자묘로 가는 길에 서양인 학생들과 중국인 학생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현재 G2라 하여 중국과 미국이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지만 미래의 지구는 이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하여 훨씬 더 살기 좋은 별이 될 것이라고 본다. 또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선의의 경쟁이 좋지, 한 쪽이 다른 쪽을 괴롭힌다거나 서로 전쟁을 해서는 득될 게 하나도 없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양쪽 지도자들 모두가 훌륭한 인텔리들이니 현명한 길을 찾아 걸어갈 것이다.

  부자묘는 우리나라의 성균관이나 국학진흥원과 같은 곳으로 공자와 그 제자들의 모습과 가르침을 석상과 여러 가지 유교 문화 유물로 전시하고 있었다. 바로 앞에 진회하뱃놀이와 오의향 등 명소가 있어서인지 안과 밖에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비록 안휘성 남동부 일부 지역이지만 그동안 다니면서 보니 중국은 대부분이 산이 없는 평지로서 강이나 호수, 늪지가 많았다. 즉 경작지 등을 빼고 나면 많고 많은 인구가 찾아갈 유원지나 명승고적이 매우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어느 관광지에 가나 사람 물결이 출렁댔다.

  부자묘는 현대에 건축 되었는데, 큰 공자상과 제자들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방마다 유학의 개요와 덕목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해 놓았다. 그 구성과 내용이 안동의 국학진흥원과 비슷한 걸 보니 기획자들이 한국에 와서 많은 것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상 난리를 자주 겪는 바람에 유교 문화가 많이 소멸 되었는데, 특히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엔 공산주의에 반한다면 유교 문화가 거의 소멸되고 유교 문화재가 대부분 파괴되었다고 한다.

  흑묘백묘론 이후 중국이 발전하면서 잃어버린 전통문화를 복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학적 정신과 덕목은 국가 차원의 지표뿐만 아니라 국민 의식 교육용으로 유효하게 쓰인다고 한다. 정치나 사회 분야에서도 유교주의를 고양하고 있지만 경제 분야에서도 유교적 경영을 강조한다니 앞으로 그 결과가 어떠할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어차피 중국문화권 안이니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중국의 지도자들과 인텔리들이 공식 석상에서 “중국이 초강대국이 되면 과거 시대의 서구제국주의와 같은 행태를 보이지 않고 유교적 이념에 따라 세계 평화를 추구해 대동세상을 이루겠다”라는 말을 자주 하니 그것이 꼭 실천되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유학과 유교를 중흥하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강조해선 오히려 사회 발전을 위축 시킬 수 있다. 고전 유학을 바탕으로 신학문을 계속 발전시켜야만 생각의 진화가 유연해진다. 생각의 진화를 중요시 해야지 자꾸 고전만 반복해선 안 된다. 온고이지신이다.

  육조 명문귀족 왕씨와 사씨 세족들이 살던 옛집인 왕사고거와 기예에 뛰어나 ANT 유생들을 홀렸다는 미향이라는 기녀가 살던 미향루를 둘러보고 진회하 오의항에서 배를 타고 선유를 하였다. 밤이 되면 기기묘묘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선유와 음주를 하며 노는 모습이 그지없는 낙원이라는데 오후 늦게라서 그런지 비교적 한적한 수로를 따라 천천히 배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말이 진화하지 수로 양쪽 집 뒷 베란다에 빨래와 청소 밀대 등이 널려있고 물는 구정물이었다. 유원지로 개발된 곳만 다니면 될 텐데 선유 코스를 길게 하다 보니 일상의 뒷모습도 보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이동하는 길에 오 가이드에게 시 한 수를 보여 주었다.

南京美女

君言前南京 此地多美女

刮目不知處 凡花滿發街

남경미녀

군언전남경 차지다미녀 괄목부지처 범화만발가

남경을 앞두고 그대 말하기를 이 곳엔 미녀가 많다고 하였지

내 눈 부릅떠도 찾지 못하였네 그냥 꽃만 거리에 가득 피고

 그러면서 한 마디 보탰다 “딱 하나, 아까 선유 마치고 부자묘 앞 광장에서 버스 기다릴 때 미녀 한 사람 걸어가는 걸 봤지, 검은 머리 치렁치렁 한 게 정말 미녀데, 옛날 같으면 분명 궁궐에 들어갔을 거야”.

  시를 읽고 씩 웃으며, “ 아니요 미녀 많아요. 못 봐서 그렇지”했다.

  며칠을 돌아다녔지만 안휘성은 남자나 여자나 잘 생겼다라고 느낄만한 사람을 보질 못했다, 물론 내 눈이 기준이지만. 둘째 날에 당월패방군 답사 때 가이드로부터 듣고 실제 눈으로 본대로 안휘성 여자들은 대부분이 키가 작고 단단하게 생긴 현모양처 형은 많지만 우리나라처럼 늘씬하게 빠진 미녀가 없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큰 키에 시원하게 생긴 사람이 없었다. 마안산시 일대 기행을 마치고 남경을 향해 올 때 이 얘기를 했더니, “남쪽 사람들은 대체로 그래요. 북쪽으로 갈수록 남자나 여자나 키가 커요. 북경에 가면 2미터 되는 남자들 많아요. 남경 가면 미녀들 참 많아요. 옛날에 궁녀들 많았잖아요”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강남보다 위도가 높고 씨가 북쪽 기마민족이기 때문인지 대체로 인물이 더 나은 편이다. 한류 바람만 해도 우선 겉모습이 잘 생겼기 때문 아니겠는가. 속이야 어떻든 말이다. 한류 바람은 둘째 날 서체촌에 갔을 때 느낄 수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주차장에 왔더니 중국 여자대학생 몇과 일행 아저씨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중국 여대생이 “우리 한류 좋아해요. 한국 좋아해요. 누구 누구 좋아해요”라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 가이드는 항주공항에서 버스에 타자말자 내가 제일 앞자리에 앉는 바람에 구체 없이 동석하게 되었다. 원래는 우리 쪽 관광사 직원하고 같이 앉아서 여러 가지 일정 의논을 해야 되는데 말이다. 5박 6일을 함께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가끔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37 세로 집은 상해시였고 연길에서 대학을 나온 조선족이었다. “요즘 한국에 대해 불만이 많지요?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푸대접 받잖아요” 했더니, “아니요, 고맙게 생각해요. 어머니가 조선족 초기인 10여 년 전에 한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 돈으로 내가 학교도 다니고 부모님이 연길에서 노후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고맙게 생각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또 “현재 조선족들요, 욕 들어도 싸요. 어휴 대림동인가 많이 모여 사는 데 가보세요, 형편 없잖아요, 술 먹고는 아무데나 오줌 누고 지저분하고”라고 보탰다.

덕분에 북한 근황도 조금 들을 수 있었다.

  “북한요, 예전 같잖아요. 잘 사는 사람은 잘 살아요. 국경 가까이로 소파나 가구 등 고급품이 많이 들어가요. 그게 당간부들이라서 그렇지”. “이모가 평양 근처에 살아서 가끔 북한에 들어가 놀다 와요. 전화 통화도 자주 해요”

  “그래요? 북한에 가서 여기저기 구경 많이 다녔나요?”했더니, “아니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려면 허가증을 받아야 해요”라는 답이 돌아와서 역시 그렇고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만주의 조선족들이 북한을 비교적 자주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민족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서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북한도 나라니깐 그런대로 노력하겠지요. 이젠 남북이 전쟁을 해선 안 되요. 김일성이가 항일투쟁을 한 건 맞지만 육이오 전쟁을 먼저 일으킨 것은 큰 잘못이지요. 우리 남한도 북침할 생각은 안 해요. 앞으로는 남북 관계가 좋아져야만 해요”라고 나도 말을 보탰다.

 중국인문기행 마지막 밤은 어제처럼 은하하소피텔이었다.

  고층호텔 아침 창으로 보는 남경은 수십 층 빌딩도 많지만 곳곳에 신축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 부산한 모습이었다. 한국의 어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의 일상을 시작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도보로 자동차로 오토바이로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은 팔자 좋은 유람객이지만 오늘 오후에 귀국하면 곧 일상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호텔식 양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곧 가방을 밀어 프런트로 나와 출발 준비를 했다. 그동안의 여행 피로를 귀국의 설렘으로 풀어서 일까 일행의 표정과 옷들이 한층 밝았다. 오늘 일정은 남경대학살기념관을 보고 연자기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곧바로 남경공항으로 간다고 한다. 인청국제공항 도착은 7시 경, 청량리역에서 밤 9시 남행열차를 탈 수 있을까 없을까 슬며시 걱정되었다.

  남경 시내를 한참 달려 남경대학살기념관에 도착하였다.

  남경대학살기념관은 남경시의 강동문 근처에 있으며 1985년에 개관되어 1995년에 규모를 확대하였는데 부지 면적은 28,000제곱미터이고 건축 면적은 3,000제곱미터이다. 중일전쟁 때 중화민국의 수도인 남경을 점령한 일본군이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약 30만 명의 중국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서구권에서는 아시아 홀로코스트라고 부른다. 이 대학살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하여 역사적 자료, 발굴된 유골, 학살의 사진과 영상 등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잔인함을 몸소 느낄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런데 남경 폭격을 하다 격추된 일본군 조종사들의 사진 아래 이름에 조선식 성이 몇 있었다. 조종사가 몇 있을 정도이니 육군 병사는 얼마나 많았겠는가. 조선의 수십만 명 청년들이 일본군이 되어 대륙과 태평양으로 갔다. 강제 징병이든 강제 지원병이든, 출세를 위해 자기 스스로 하사관학교나 사관학교에 입학하였든 간에 조선의 청년들이 일본군이 되어 침략전쟁에 동원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분명 이곳 남경대학살에 가담한 조선인들이 다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남경대학살기념관을 찾는 한국인들은 일본인들과 함께 중국인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조상들이 저지른 학살을 참괴해야 한다.

  일본이 민주를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힘의 최소한 1/5정도는 식민지조선이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닥까지 훑어 전쟁에 동원하였기 때문에. 조선에서 빼앗은 무쇠 솥과 놋그릇을 녹여 만든 대포가 태평양 해저 곳곳에 수장되어 있을 것이다. 앞선 세대들이 살았던 식민지조선은 침략의 한 축이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들의 후손인 우리들은 이 대학살기념관을 한갓 관광객으로 보고 지날 일이 아니라, 피해를 당한 중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다시는 식민지노예로 다른 나라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결심하는 산 역사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일본 관광객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지만, 일본 정부와 다수 일본인들은 남경대학살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일본열도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형세가 군국주의에 대한 복고 바람이 불고 있어서 동북아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이다. 일본이 야스꾸니 신사 참배를 통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몰자들을 추모하는 한에는 전쟁의 광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남경대학살을 부정하고 침략전쟁을 국가적 사업이라고 변명하는 한에는 복고벽적 침략주의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중일 관계는 긴장과 대결 국면이 계속될 것이고 동북아는 계속 불안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일본이 과거처럼 중일전쟁을 다시 개시할 수 없는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식민지조선의 힘을 다시는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비록 분단되어 있지만 남과 북이든 다시는 외세에 침략당하여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매서운 결심이 한반도 전체에 팽배해야만 하고, 또한 그것이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는 유일한 안전판이 될 것이다. 대륙과 섬 사이에서 늘 좌불안석이었던 한반도. 그러나 이제부터는 지정학적 위치의 장점을 활용해야 한다. 문물의 교차로가 되어야 한다.

  남경대학살과 같은 참극을 당하고도, 대륙 방어와 인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본침략군과 맞서 굳건하게 싸운 중국의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기념관 가득 전시된 중국의 중년 장군들 그리고 청년 장교들과 병사들, 그들이 국민당군이든 공산당군이든 간에, 침략군에 당당히 맞서 싸워 이겼다.

  또한 역지사지 가만히 생각하면, 학살당한 중국인들이 불쌍하고도 불쌍하지만 군국일본정부의 명령으로 전선에 동원된 일본군인들도 불쌍하다.

  침통한 마음으로 기념관을 나오니 해는 벌써 중하천, 버스는 연자기를 향해 달렸다.

  연자기는 남경시 바로 북쪽에 있는 절벽으로 서쪽에서 흘러와 동쪽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양자장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산석이 강 위에 우뚝 솟아있고, 그 형태가 마치 제비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燕子磯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위 위쪽 정자에는 연자기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으며 하단에는 건륭제가 쓴 시가 새겨져 있었다.

  연자기에 서서 비로소 장강을 몸으로 만났다. 거대한 황룡의 꿈틀거림을 보았다. 長江無曲如地球란 문구가 저절로 떠올랐다. 역시 장강은 길고도 유장하다. 대륙의 모든 것을 품고 담아 흐른다. 한참 장강을 감상하는데 어느 중국 아주머니가 아주 고성으로 통화하는 바람에 짜증이 났다.

  오래도록 장강을 보고 싶지만 갈 길이 바빠 내려와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려가고 혼자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내 뒤를 따라오면서 계속해서 고성으로 통화를 해대는 게 아닌가. 다 내려와서야 저쪽 길로 갔다. 그 참 그 중국 아줌마 목소리 대단하더군 하는 생각을 하며 일행들이 모여 있는 대문 쪽으로 가까이 가다니 웬걸 크게 다투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가까이 가보니 다투는 게 아니라 룸메이트가 큰 목소리로 오 가이드를 일방적으로 꾸짖는 판국이었다. 룸메이트는 선생이고 오 가이드는 학생이 되어 고스란히 꾸중을 듣고 있었다. 연세가 두 번째로 많은 분이 꾸중을 하니 오 가이드도 그렇지만 일행들은 모두 둘러서서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가이드가 나를 무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꾸짖어도 알아듣기 쉽게 조용히 꾸짖는 게 아니라 꼭 상전이 종 꾸짖듯이 고성으로 꾸짖으니 시시비비 간에 보기에 썩 안 좋았다. “이름이 뭐야, 이름 대, 이런 사람은 연락해서 잘라야 해”하며 꾸중을 계속하니 나이가 많은 한 사람이 다가가서 말렸다. 그러나 룸메이트가 “삿대질 하지 마라”면서 더욱 노기를 냈다. 말리던 사람이 그만 쑥 들어갔다. 계속해서 꾸중이 계속되는 걸 보고, 그래도 내가 룸메이트인데 말려야지 하는 생각에 나서서 “이제 그만 하시지요, 알아들었을 거예요”하고 말렸다. 그런데 웬걸, “삿대질하지 마세요”하며 내게 화를 벌컥 내는 게 아닌가. 삿대질은 안 하고 그냥 팔을 잡기만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만 멀쑥해져 물러섰다.

  “이름이 뭐야, 이름 대, 가이드 자격이 없어, 이런 자는 여행사에 연락해서 대번 잘라야 해!”하며 더욱 목소리로 화를 내며 가이드를 몰아댔다.

  “제가 뭐 잘못 했어요, 질릴 땐 잘리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어요, 제가 뭐 잘못 했어요”

쩔쩔매며 수세로만 몰리던 오 가이드가 비로소 큰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

  오 가이드의 눈에 눈물이 반짝하는 순간,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내 한 성질.

  “대체 이게 무슨 꼴입니까. 여행 잘 하고 다 마친 순간에, 내 보기엔 가이드가 하는데 까지 열심히 했는데, 왜 죄 없는 사람 꾸중 합니까.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내 고함 소리가 자기보다 더 컸는지 룸이 쑥 들어갔다. 나도 선생 할 때 아이들에게 꼭 꾸중을 해야만 할 땐 한 꾸중한 사람이다.

  “자 갑시다”, 질질 우는 오 가이드의 손목을 잡고 일행을 떠나 저만치 가서 울음을 달랬다.

곧 버스가 와서 먼저 창에 올라 앉아 있으니, 승차하는 사람들마다 나를 보며 의미 있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노교수는 “잘 했어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칭찬 학점을 주었다.

  마지막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며 연자기에서 본 장강의 감동을 소재로 해서 <연자장강> 시를 구상하다니, 정 룸이 불쑥 나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아까 소란을 피워 미안합니다. 내가 왜 그랬나 하면, 내가 담배를 즐깁니다, 그래서 담배 피우느라 늦어요, 명승지에 가면 담배를 안 피우는 게 맞지만 아까 간 연자기에서 보니 재떨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담배를 꺼내 조금 피우다니 저 가이드가 와서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개별 행동 하지 마세요 하면서 꾸중하듯이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어요,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 데도 말입니다.”

  이쯤에서 마쳤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박 선생도 그러면 안되요”라는 말을 붙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울컥 화가 치민 내가 몇 마디 대꾸를 한 다음에 마이크를 잡으려고 하니 김 대표가 “다 보았으니 알고 있어요”하며 말렸다.

그런데 오 가이드가 “이 가이드 앞으로 못해 먹어도 할 말은 하겠다”면서 욱 하니 나섰다. 역시 김 대표가 말려서 주저 앉혔다. 그 어른이 담배는 자주 피웠다. 가는 곳마다 혼자 뒤쳐져서 담배를 피웠다. 그러니 전체를 이끄는 가이드가 뒤처지지 말라고 자주 주의를 준 모양이다. 그 게 쌓이고 쌓였었나? 안타깝게도 닷새 밤을 함께 하며 쌓인 그분에 대한 친밀감과 존경심이 스러지고 말았다.

소란 속에서도 마음속엔 시정이 들끓었다. 십여 분 만에 <연자장강> 초고를 완성하였다. 소란은 소란이고 시는 시, 내 언제 다시 이런 인문기행에서 일행들 앞에서 시를 읊으랴! 용기를 내어 또 마이크를 잡고 마지막 낭송을 하였다.

燕子長江

大陸無曲萬物通    暴風雷雨暫時恫

夏日紀行踏處處    兩生四七䕺䕺同

연자장강

대륙무곡만물통    폭풍뢰우잠시통    하일기행답처처    양생사칠총총동

대륙은 구비 없이 만물이 통하고

폭풍과 뢰우는 잠시의 아픔이었어라

긴 긴 여름 날 인문기행 곳곳을 밟아보니

두 나라 사람들 소복하게 살아가는 모습 같아라

 점심을 먹으로 들어간 식당에서 큰 원형식탁에 내가 먼저 앉았다.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고 김 대표가 오더니 씩 웃으며 “혼자 앉아 계시네요”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하고 공항으로 오는 도중에 오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무당 잎에 요령 흔드는 격으로 한시에 조예가 깊으신 송 교수님 앞에서 무례하게 한시를 읊었습니다. 이태백이의 흔적을 찾는 인문기행이다 보니 시흥이 절로 나서 졸시를 읊었습니다. 그리고 연세가 많으신 정 선생님께 제가 큰 소리를 질러서 죄송합니다”라고 송별사를 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여권을 받고 가방을 붙이고,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오 가이드에게 가서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일행을 대신해서 사과합니다. 저 어른 한 사람만의 일이니 잊어버리시고, 앞으로도 한국 사람에 대한 호감을 계속 가져주십시오”

또, 룸메이트 어른께 마지막 인사는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헤어지면 영영 만나지 못할 것, 일흔 넘는 연세이시니 얼마나 더 사실까. 내가 가서 마음을 풀어드려야지.

  “선생님 제가 울컥한 성질이 있어 그만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이만하면 흔쾌히 사과를 받고 웃으며 헤어져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 게 아니었다.

  “며칠 지내면서 내가 보니 박 선생 기질에 좀 그런 게 있어, 왜 룸메이트 편을 안 들어 줘, 그러면 되나”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얼굴을 한번 쳐다보곤 그냥 돌아섰다.

  룸메이트 맞다. 그런데 오 가이드는 세트 메이트 아닌가. 문득 어제 밤에 “가이드 이 사람이 건방져, 내일 혼을 한 번 내야겠어”라고 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룸메이트 편을 들어주지 않고 조선족 가이드 편을 들다니, 노인 마음에 얼마나 섭섭했을까. 룸메이트와 세트메이트 사이에서 그만 편파적이 되고 말았다. 닷새 동안 밤 시간을 함께 하면서 나눈 대화를 통해 청렴한 고급관료 출신이라고 내심 존경했는데, 여행 다 마치고 떠나는 날에 그만 허무해지고 말았다.

  구름이 발아래다. 비행기는 고도를 높이고 구름은 자꾸 시야에서 멀어진다. 더 높은 구름이 있다 고층운. 땅보다 하늘이 넓고 크다. 서울에 흐리고 약하게 비가 온단다. 보고픈 우리 태주.

  2015년 6월 20일 18시 20분. 황해 상공에서 운해를 내려다보며. 내 고등학생 자취 시절, 일요일 오후에 뒷산에 올라 누워 흰 구름을 보며 온갖 형상을 지었거니, 내 오늘 비행기를 타고 저 멀리 아득한 흰 구름 떼를 내려다 보다!

  보니, 대지를 떠난 귀신들이 모두 여기서 사는구나! 귀신은 먹지 않기 때문에 소화와 배설이 없다. 단지 구름이 입으로 들어와서 온몸을 돌아다니다가 항문으로 나갈 뿐이다. 귀신이여 비행기를 흔들지 마라. 안동선비와 그의 일행들이 탔다.

  우리나라에 비가 내리는구나.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검은 구름 속에 들어섰다.

  남행야간열차 속에서 8편의 한시를 정서하였다.

                          2015년 12월 16일  영주  도화동 무학려에서 쓰다

[박희용]

김종성/긴글 처음엔 정독을 하다가 이후 쭉 훑어 보았습니다. 맥락과 여정에 대한 그림을 자세히는
그려 볼수없지만 대단하시구나 하는 느낌은 강하게 받았습니다. 중간정도에서 룸메이트라는 분의
실내 흡연을 보고 이래서 대한민국 공무원조직은 혁신도 없는 끝발 내세우는 고리타분한 이들로
치부 될수 밖에 없구나 하고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결국 한바탕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배려없는 조직의 구성원은 허울일것입니다. 좋은 시문속에 느낌과 허술한 행동의 일면을 함께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 봅니다. 선배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다시 시간을 내어 정독을 하겠습니다.
감사함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향우

[박희용]

고맙네 김종성 님, 우리 향우회원들께 읽을거리 하나 드려 일상 속에서 잠깐 즐거움 느끼시도록 하는 것이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애향 아니겠는가. 이렇게 관심하여 주시니 더욱 고맙고, 자네와 함께 모든 소천 출신 회원님들께서 이레 남은 2015년 마무리 잘하시고, 동지 지나 움트는 양기 받아 2016년 새해 찬란한 희망으로 맞이하시길 기원드리네.

[박희용]

김종성/회 카페의 보물이 있는 곳간이 이곳입니다. 자랑스럽네요. 많은 이들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시문을 들으면서
저양반 보통은 아니구나 일당백이상일것이야 하는 양백이라는 의미를 나름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