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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답답하다.
임신년壬申年 새해가 되었다고들 모두가 들떠서 야단인데 나는 도시 답답할 뿐이다. 새해가 되어 나이가 한 살 더 늘어났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세상이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모두들 조금씩 잘 살게 되었다고들 하는데 무엇이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신매매단은 더욱 날뛰고, 교통사고는 더욱 늘어나고, 정치 혐오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웃과의 사이는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들여다 보아야 하고, 집안의 아이들에게는 머리가 커갈수록 눈치를 봐야한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소외와 경계 뿐이다.
어느 곳에서 편안하게 내 육신과 영혼을 휴식시킬 수 있는 곳이 있겠는가. 나는 뒤척이다가 벌떡 일어났다. 벽장에 있는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밖을 나섰다. 눈인지 비인지 쏟아지고 있었다. 늑대와 여우들만 우글거리는 이 도시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자정이 넘어서인지 택시는 쉽게 잡혔다.
“어디로 모실까요?”
“아무데로나 갑시다.”
뒷거울로 잠깐 훑어 본 택시기사는 싱긋 웃으며 가속기를 강하게 밟았다. 이런 시각이면 이따금 또라이 비슷한 친구들이 으레 유령들같이 나타나 밤거리를 배회한다는 것을 잘 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차를 몰았다. 젊은 친구 치고는 부지런하고 친절하다. 밤늦게까지 사납금을 벌려고 하는 젊은 기사가 건강하게 보인다.
“내리시죠?”
캄캄하다. 동서남북 방위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바다 속 한복판 같이 어둡고 답답하다.
“여기가 어디죠?”
나는 지갑을 꺼내면서 물어 보았다. 택시기사는 재미있다는 듯이 흰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이리로 쭉 올라가면 귀신들이 많습니다. 내 단골 손님 가운데는 아예 이곳으로 태워다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해골이 그냥 걸어 다닌다니까요? 나는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그 기사는 귀신에라도 홀린듯 바쁘게 달아났다. 자기가 태워다 주고는 막상 와 보니 겁이 났던 모양이다. 진눈깨비로 인해 병아리 등뼈 같이 희미한 오솔길이 보였다. 다행하게도 암흑 속에서 희뿌염하게 보이는 것은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길에만 진눈깨비가 쌓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늑대와 부엉이 울음 소리가 즐겁게 들렸다. 그들의 환호 소리는 깊은 산 속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아까의 젊은 기사는 택시가 올라 올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올라왔던 모양이다.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골 깊은 골짜기인 것 같은데 어느 산 중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서울 주변에 있는 웬만한 산들은 그 느낌만으로도 어느 산, 어느 모퉁이일 것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나는 산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 도피할 수 있는 곳이란 산 아니면 바다가 아닌가. 나도 늑대에게 입산신고를 하기 위해 큰 소리로 느윽대 아아버엄!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여러 맹수들의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역시 늑대들은 늑대 아범을 제대로 알아보는가 보다. 나는 방배동의 늑대 왕초다아… 자알들 있었냐아!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라우웅… 나는 두 손을 높이 쳐들고 길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듯이 소리쳤다. 내 고함이 끝나자마자, 언 인간 또라이가 나타나 우리들 구수 회담을 방해하느냐아, 이 잡노옴아아… 늑대들의 환성과는 달이 오랑우탕 같은 날카로운 호통이 들려 왔다.
나는 오르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한 바퀴 돌아다 보았다. 닫다가 노란 불빛이 두 개 다가섰다. 산신령이다. 나는 얼른 엎드려 큰 절을 했다. 그는 내 머리 위로 흙을 긁어 던지더니 뒤돌아 갔다. 수놈인지 호랑이의 귀와 궁둥이가 크고 날렵했다. 많은 맹수들의 환영사로 보아 관악산 쯤 되는 것같다.
명산에는 진짜 도사들이 하나씩은 있다는 것이 명산마다 명사찰이 있다는 이치와 같다. 산 좋고 물이 좋으면 가장 성스럽고 깨끗한 것이 숨어들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들어도 우는 건지 웃는 건지 계속 비명을 지르며 올라 갔다.
관음사 쪽 산등성이로 돌아갈까 하고 오른쪽으로 꺾어 들려고 하는데 여우가 혼자서 덤블링을 하고 있었다. 잽싸게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허연 도포 자락같기도 하고 황색의 여우털같기도 한 것이 바위 위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았다. 저렇게 일백 번을 돌면 다른 동물로 변신이 되고, 다시 일천 번을 돌면 사람으로 변환된다고 했던가.
나는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던 여우는 흠칫 나를 뒤돌아 보더니 어느 순간에 박쥐가 되어 날아 올라갔다. 내가 얼음판에 미끄러져 넘어지며 그 바위로 좇아 올라갔을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환영일까? 바위 주변을 훑어 보니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관악산에도 이런 절벽이 있었던가 싶게 칼로 자르듯 떨어져 나갔다. 엎드려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신음 소리 같은 것이 암 여우가 새끼를 낳는 고통 같기도 하고 남녀 늑대가 교합을 하는 흥분 소리 같기도 했다.
“게서 뭘 하느냐?”
얼른 뒤돌아 누웠다. 머리빗 같이 희미한 하늘을 쓸어 내리고 있는 솔잎들 사이로 아까의 허연 도포 자락이 얼굴 가득히 덮쳐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일어나 앉거라. 그대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바로 도사님 같은 분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니 신령님!
그는 이 나무 저 나무 우듬치를 평지 걷듯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교향곡 같이 야상곡들을 연주하던 야수들의 울음 소리도 뚝 그쳤다. 도사가 무슨 말을 할 때면 그들은 소리를 그쳤고 도사의 말이 끝나면 더욱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런 모양을 보면 그들도 도사가 하는 말귀를 알아듣는 듯도 하다. 특히 겨울잠을 자는 뱀이나 개구리들도 텔레파시가 되는지 바위 아래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젊은이, 꽃이 진 자리에서 다시 꽃이 피듯이 고민이 시작되는 그 자리가 바로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야. 해결점을 밖에서 찾지 말라구, 내 말이 들리는가?”
“네에, 도사님 들리다마다요. 각인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 새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은 열 손가락의 손바닥이 떨리고 있었다. 아, 이 도사님은 그 동안 내가 찾아 헤메던 ‘이데아’를 보여 줄 것인가.
“자네는 지금 과욕을 부리고 있어. 두 여자를 다 차지하려고 하는 게야.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서 두 여자를 데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자기의 욕망 하나도 추슬리지 못하면서 무슨 도 공부를 한다고 좇아다니는 거야?”
“아닙니다. 하나님 아아니, 도도도사님.”
“헛된 욕망의 뿌리부터 자르거라.”
찬 바람과 함께 한 마리의 기러기가 창공으로 까맣게 치솟고 있었다. 도사니임! 나는 뛰어 일어나 달려갔다. 그러나 나는 미끄러져 곤두박질 쳤다. 환영일까?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그는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지리산 홍익대사와는 또 다른 문제를 보여 주는 도사다. 내곁에 있다는 두 여자란? 하나는 마누라이고 또 하나는 머리깎은 비구니 스님이다.
양기은, 통도사에서 만난 비구니이다. 어쩌면 도반일지도 모른다. 머리를 아주 깎아버릴까 어쩔까 하고 마지막 기로에서 지극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말하자면 만행(萬行)을 하며 전국 각 사찰을 순회하고 있는 비구니를 만난 것이다. 아직은 여린 머리통 위에는 시퍼런 정맥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처롭게 하는 어린 여승이었다.
그때 나는 매일 밤 부처님 앞에서 일천 배를 하며 자신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있었다. 아니 철저하게 자신을 찾아 보려고 했을 때였다. 그러나 오지투체의 일천 배는 일종의 자학이었다.
“김수언 씨는 머리 깎지 마세요.”
새벽에 기진해 떨어져 있는 나에게 양기은 비구니는 찬 물 한 바가지 떠다 주고는 휭하니 사라졌다. 김수언?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을까. 김수언 씨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라 중 되기는 글렀어요… 맑은 바가지의 물 속에는 그미가 던져놓고 간 목소리만 남았다. 나는 빡빡 깎은 그미의 머리통과 함께 그 목소리도 단숨에 마셔버렸다.
“인연이 되면 만나겠지요.”
며칠 후, 나는 먼저 내려간 홍승동 씨의 뒤를 따라 보따리를 쌌다. 보따리라야 구멍난 양말과 찢어진 팬티가 몇 장 있을 뿐이다. 그미가 결정이나 한 것같이 나는 정말 산에서 내려와 버렸다. 몇 년 간의 긴 방황이 그미의 물 한 바가지로 간단히 판가름 나다니, 좀 자신이 우습긴 하지만 시원하기도 했다.
그때는 홀몸이라 사실 양기은을 들쳐업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씩 들었었다. 그렇다고 그미와 무슨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그미가 일하는 부엌에 가서 나무를 해다 준 것뿐이다. 그럴 때마다 얻어 마신 것은 마당가의 냉수 한 컵 뿐이었다. 제기랄, 이렇게 될 바에야 그미의 빛나는 머리라도 한 번 쓸어볼 걸. 내가 하는 일이란 늘 이런 식의 후회 뿐이다.
몇 달 전, 부산에 계시는 큰 스님이 올라와서 설법을 한다고 해서 나는 도장 일을 마누라에게 맡겨 놓고 조계사로 달려 갔다. 할! 하고 주창자가 내려칠 적마다 나무 가지 위의 밤까치가 덜렁 떨어질 정도로 방안은 열기로 가득 찼다. 무엇인가, 어떤 영험이 나타나길 바랬고 무엇인가,
기적이 보여지길 열망했으나 그것은 역시 바람으로 끝났다. 욕심을 부리지 마라, 그 욕망이 달성되고 나면 허탈해지고, 사랑하지 마라, 사랑을 하면 이별할 때 괴롭다. 따앙! 주창자는 그렇게 끝났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욕망도 없이 사랑도 없이 그렇다면 세상은 무슨 재미로 산담?
그런 욕망의 뿌리를 끊고 전부 산으로 가서 중이 된다면 공장은 누가 지키고 농사는 누가 지을 것인가. 괜히 배부른 소리만 하고 있네… 다 끝나고 현관을 나오면서 누군가 봉투에 든 신발짝을 먼지와 함께 확 풀어 놓으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번만큼은 신문에 크고 굵직한 활자로 때린 것만큼이나 굵은 똥을 눌 수 있는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을 가지고 곳곳에서 꾸역꾸역 모여 들었지만 그것은 역시, 하는 허탈감으로 운동화 밑창의 먼지만큼도 못한 언어의 나열로 끝났다.
그 큰 스님은 나는 아직도 건재하고 있으며 돈이 억시로 많은 신도들을 거느리고 있다아, 하는 과시로 끝났을 뿐이다. 신문 전면의 광고도 그 재벌 마나님 보살님이 해주었지롱… 애롱, 서울 놈들 별 수 있간듸, 강남파다 강북파다 하고 뒷골목 깡패 세계 같은 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쯧쯧...
서울 바닥을 둘로 갈라 놓은 중들이 무슨 남북 통일을 위한 불교 연합회를 개최하겠다는 것인지, 원숭이가 하품할 일이다. 금칠을 한 주창자를 모셔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검은색 그랜져 살롱이 그렇게 암시하고 있었다.
그랜져 차 바퀴가 부드럽게 밟고 지나간 낙엽들을 걷어 차내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발등을 밟았다. 슬쩍 빼내려고 하는데도 계속 밟았다. 그 때서야 고개를 들어 보니 다람쥐 같은 여인이 웃고 있었다. 오른쪽 뻐드렁니가 어디서 본듯도 한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악수를 청했다. 건성 잡아 주긴 했지만 얼떨떨 하다.
“아직도 못 찾았어요?”
“뭘 못 찾아요?”
그러나 나는 대답 대신 그미를 내려다 보았다. 그미의 손바닥이 앓고 있는 사람마냥 뜨겁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이런 식으로 만나리라고 예감했어요. 방배동에는 회원들이 많이 있나요? 저에게도 보험을 하나 권해 보세요. 우선 돈으로 생명을 담보해 놓아야 안심이 되잖아요. 아직도 나를 모르시겠지요. 알면 또 뭐하겠어요? 모두가 부질 없는 짓이예요. 김수언 법사님이 찾고자 하는 명제도 막상 찾고 보면 또 부질 없는 짓이란 걸 아실 거예요. 시지프의 바위 덩어리 마냥 자꾸 반복될 뿐입니다.”
나는 그미의 엉덩이 뒤를 따라 인사동 근처의 한식집으로 들어 갔다. 중 같은 까까머리 주인이 뛰어 나왔다. 나도 그 먹거리 거사를 좀 알고 있다. 큰 절에서 오랫동안 절 음식을 만들어 오다 보니 먹거리에는 도사가 되어 세간에 나와서 치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미는 일방적으로 술부터 시켰다. 그 편이 오히려 편했다. 격식을 따지고 어쩌고 시간을 빼앗기느니 적절하게 처리하는 게 좋다. 막걸리 두어 동이 비워지자 나는 무릎을 쳤다. 양기은! 나는 그미의 손목을 두 손으로 잡았다. 시퍼렇던 머리가 생머리로 길게 늘어져 있어 전혀 몰랐던 것이다.
“왜 파계했느냐고 묻고 싶겠지요?”
“아니, 파계가 아니라 나는 더 큰 깨달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이 꼭 갇혀 있는 절간이라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제도적인 파계 보다 자기 자신의 인식에 대한 파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어떠세요?”
“내가 무슨 사건 때문에 파계했다는 것 같은 질문이네요. 또 사랑 사건같이 뭐 그런 유치한 일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잘못인가요? 나는 그 동안 김수언 씨를 찾아 헤메었지요. 이 좁은 서울 바닥에서 김수언 씨가 갈만한 데라는 곳은 뻔하잖아요. ... 그 소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는 김수언 씨를 찾는 것이지요. 그 형체를 찾음으로 해서 나는 그 형체 자체를 싸악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랬더니 알면 알수록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큰 짐으로 눌러 오더군요. 그래서 만행을 끝으로 그냥 내려왔지요. 한 십년쯤 방황했던 것 같아요. 산 속에서 3년, 세속에서 3년, 외국에서 3년이 되었으니까요.”
“외국이라구요?”
“소원하던 인도예요. 인도 전역을 돌았지요. 중국의 돈황도 말예요. 화려다고 빈정거리시겠지요. 그러나 나에겐 끝없는 고통이었어요. 단지, 김수언 씨를 잊기 위한 행각이었으니까요. 이제 일어 나시지요. 이렇게 헤어지면 나는 언제 또 나타날 지 몰라요. 나도 나 자신을 모르고 있으니까요.”
그리곤 장난같이 헤어졌다. 거의 십년 만에 우습게 만나선, 우습게 헤어졌다. 또 어쨌든 헤어지지 않으면 또 어쩔 것인가. 두 여자를 거느릴 수 있는가.
눈이 부셨다.
천천히 일어났다. 진눈깨비가 눈보라로 휘몰아 치고 있었다. 햇빛을 따라 일어섰다. 내가 누웠던 자리에만 등신대 크기로 따뜻하게 아지랑이 같은 온기가 피어 올랐다. 나는 지난 밤 전혀 추운 줄 모르고 잤는데 눈을 뜨니 오한이 난다. 면돗날로 목덜미를 후려친다.
지난 새벽 만났던 도사는 간 곳이 없다. 그가 걸어 다니던 꼭지판 소나무는 그대로였다. 나는 선채로 선밀공을 시작했다. 축기공의 용동을 했다. 추위가 서서히 차단되기 시작했다. 용-파-우-연동을 거쳐 수공을 하고 나니 날아 오를 것같은 기분이다. 나도 그 도사마냥 꼭지판 위로 올라가 볼까. 산 속이어서인지 추운데도 공법이 아주 잘 풀렸다.
관악산 입구에 이르자 새벽 약수터 등산객들이 올라왔다. 그들에게 광천수 한 모금 얻어 마시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환상일까. 현실로 돌아서자 지난 새벽 일이 연득없이 멀게 느껴졌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밤새 얼어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거뜬하지 않은가. 오히려 눈을 뜨니까, 추위를 느꼈다.
8
평일이라 그런지 정수사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는 그 길로 강화도 정수사를 찾았다. 아예 며칠간을 선밀공에 주력해 보기로 했다. 주말에는 서울에서 몰려 드는 관광객들로 시장판 같다. 특히 인근 인천 지역의 시민들에게는 강화도만큼 원시적인 곳이 없다.
군사적으로 일체의 개발이 금지된 곳이어서 광복 이전이나 이후에도 변한 것이 별로 없다. 바로 앞 바다에는 삼팔선이 그어져 있어 무엇인가 숨 막히는 곳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섬이 아니라 육로로도 연결되어 있어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은 도시 사람들에게는 가깝고도 친근한 한국의 자연을 맨살로 만져 볼 수 있는 곳이다. 삼팔선은 누구에게나 원한의 155마일이 되었지만 기뻐서 환장하는 사람도 있다.
생물학-고고학-인류학자들이다.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는 지구상에서 가장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자연의 온실이다. 얼마전 남북한 관련 학자들이 모여서 공동 연구를 하자며 뭐 빠지게 그곳으로 달려 가기도 했다. 그곳은 산새 물새들의 낙원이다. 온갖 희귀 식물들이 하리한 꿈을 꾸고 있는 곳이다.
아마 근대사회 국가들 가운데는 삼팔선 일대가 마지막 천국일지도 모른다. 거의 반 세기 동안 사람의 발자국 한번 지나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남북한 스파이들이야 도둑 고양이처럼 넘나들었겠지만 그거야 그믐날 달 그림자가 스친 정도이리라. 나는 정수사로 가면서 이지렁거렸다.
무어 급한 것도 없지만 새삼 주변의 사물에 친밀감이 생겼다. 홀가분하게 혼자 불쑥 떠나서일까. 아니면 관악산에서 어젯밤의 그 도사 때문일까. 나는 안암동 소크라테스마냥 지리산에 들어가 삭발을 할까, 홍익대사를 따라서 백두산으로 날라 버릴까. 그런다고 받아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더러 반은 등산복 차림으로 젊은 남녀들이 빠른 걸음으로 앞서서 올라갔다. 나는 한때는 양기은과 저런 모습으로 산 속을 쏘다니는 꿈을 꾸었댔지. 그거야 꿈이면 어떻고 생시면 또 어떠냐, 마음에 일어나는 현상이 문제일 뿐이다. 전등사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철 이른 미나리 고사리 등 산채를 할머니들이 팔고 있었다.
또 한쪽에는 야생밤을 구웠다. 쌍쌍이들이 명동을 거닐듯 군밤을 까먹으며 올라갔다. 나는 망혜 스님의 보름달 같은 얼굴을 떠올리고 야생밤 한 봉지 샀다. 나중에 망혜 스님과 연애를 걸어보자고 혼자 웃었다. 도사는 도사끼리 어깨 동무하고 사랑해야 안 되겠는가.
늙은 할마시가 정성스레 싸 주는 봉지를 받아드는데 전류가 손끝으로 해서 심장을 때렸다. 감전된듯 멈칫하여 할마시를 쳐다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알밤을 몇 개 더 얹어 주었다.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선상님은 안즉 멀었시유, 산에는 아무나 가는 게 아니쥬... 아무렇게나 들어 갔다가는 열이면 열 다 내려오구 말지유!”
할머니는 나를 잘 아는 것같이 말했다.
“네에? 할머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도 재미있게 군밤장사 할머니를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선상님 얼굴에 그렇게 쓰였지유. 공연히 헤매고 있어요. 딴 생각 말고 얼른 집에 가서 애들 숙제나 도와 주시구레.”
그리고는 내 옆의 손님에게 다시 군밤을 팔았다. 무슨 소리인가. 나는 멋쩍게 이만큼 올라와서 다시 할머니의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사람으로 변신한 여우일까. 백년 묵은 야시? 어떻게 지금의 내 마음을 어항 속 들여다 보듯이 읽어내고 있는가. 아니면 어젯밤 관악산 도사가 변신하여 내 앞에 먼저 와 앉아있는 것일까.
그러면서 군밤을 어금니로 짓이겼다. 어제 저녁부터 뱃속이 텅 비었는데도 별로 입맛이 없다. 시멘트를 씹는 기분이다. 근처의 가게로 들어가서 막걸리를 샀다. 그런데도 목구멍에 걸린 군밤이 내려가지 않는다. 새 아침의 원시를 만끽하며 대자유를 즐기려고 유유자적 했던 기분이 엉뚱한 할마시를 만나 짜드락났다.
별 재수없게 시리. 지난 주에 방송한 일본인 기공사가 생각난다. 그가 예정한 트럼프의 3이란 숫자는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집혀져 나왔다. 그것은 마술이 아니었다. 손바닥의 장력으로 전화카드도 사진기로 찍어 내었다. 아무 것도 없고 손가락만 가리키고 있는 실물을 그대로 현상해 낸 것이다.
물론 그것은 마술과 같은 속임수가 아니고 고급 기공수련에 의한 것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믿고 있듯이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다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실험에 참여했던 어느 여성이 말했던 것과 같이 트럼프 카드를 드는 순간 어떤 힘이 저절로 집어지게 한 것과 같이 그것은 기력의 전달이다.
그 기공사의 기가 손 끝에서 손 끝으로 이어져 마지막으로 실행하는 사람의 기력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 기공사의 뜻대로 안 되게 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 기공사의 손 끝에 전달된 기를 안 받으면 되는 것이고 받았다 해도 마음으로부터 의심을 하면 3이란 숫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러한 초능력을 악한 데에 이용하면 소위 말하는 신벌을 받는다. 그 기공사가 만약에 라스베가스에 가서 재주를 부린다면 수 억만 달러를 긁어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부정한 방법은 대가를 받는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래서 세상은 재미있는가 보다.
아무리 삼키려 해도 군밤이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숨통을 조여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가 할머니에게 내 목구멍을 가리켰다. 할마시는 여전한 미소로 이윽히 올려다 보더니 내 목을 쓰다듬어 주고는 내 손바닥을 악수하듯 흔들어 주었다. 그러더니 방귀부터 나왔다. 참 귀신 곡할 노릇이다.
“그러니 께유, 마음 고쳐먹고 가정생활을 착실히 해야헌다 이 말예유.”
할마시는 자기가 그래 놓고도 남의 말을 하듯 한다. 이 할마시도 그 일본인 기공사마냥 텔레비전에 출연시키면 인기를 끌 것이다.
“할머니 도사입니까?”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이런 곳에서 도사를 만나다니? 진짜 도사를 찾아 그렇게 헤매어 다녀도 만날 수가 없더니,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도사를 만났다. 나는 그 군밤장수 도사 할마시 앞에 넙죽 큰 절을 했다. 주변에 있던 관광객들이 키들키들 웃기도 했다. 맨 땅에 무릎꿇고 있는 내가 코미디 하게 보였으리라. 아니 또라이가 나타난 줄 알았으리라. 그 할마시는 손을 크게 내저으며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나는 오체투지로 다시 한 번 큰 절을 올렸다.
“워매 어쩐댜아?”
그 옆의 다른 군밤장사 아줌마들도 눈을 크게 뜨며 가까이 다가왔다. 백원짜리 동전이라도 꺼내어 보내고 싶었을 게다. 겉으로는 이 도사 할마시가 아닌 척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선 나를 아주 앉은뱅이를 만들 수도 있다. 나뿐이 아니고 누구든 마음만 먹었다 하면 말이다.
그러나 이 할마시는 도사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군밤장사를 해도 행복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63층 대생 빌딩 쇼핑 센터에서 금은방을 해야만 또 그런 비싼 물건을 끼고 다녀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쪼그리고 앉아 ‘사랑의 군밤’을 팔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한 일인가. 아직은 살아 있고 더구나 움직일 수 있다는 건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돈 많은 재산가들이 얼마나 많이 감옥에 갇혀 있는가. 거기에 비하면 이 할마시는 쌍쌍이들에게 행복을 파는 자유인이 아닌가. 진정한 대자유인. 소박하지만 자유자재 할 수 있는 자유인 말이다.
해병대의 애기봉에 올라갔다. 동서남북이 탁 트여보였다.
저 아래 쪽에는 방금 올라온 전등사 입구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전화로 홍승동 씨를 불러내었다. 근무 중인데도 그는 이내 나타났다. 오랜 도반이기도 한 그는 내 목소리만 들리면 밤에 자다가도 뛰쳐나오는 의리를 가졌다. 홍 선생도 나와 같이 반쯤은 구름 속에서 산다.
남들이 보기엔 우리를 환상의 구름과자만 좇아다니는 또라이로 볼진 모르지만 우리는 백암 스님 밑에서 공부할 때부터 최소한 세상을 이렇게만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터득해 왔다. 인간이 동물적인 기능만으로 끝날 수는 없쟎은가. 분명히 인간적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내가 정수사 입구에서 한 두어 시간 기다리자 홍 선생이 헐레벌떡 나타났다. 시간적으로는 두어 시간이지만 그의 직장이 있는 강남역에서 예까지 오려면 아마 전화를 받고 바로 출발을 했을 것이다. 거대한 고목 아래에서 잠깐 기를 돌렸는가 하는데 벌써 그가 나타났다.
선밀공 수련 이후 기공력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으며 막혔던 수채 구녕 뚫어지듯 기가 기차게 돌았다. 역시 기공은 한 가지만 고집하기 보다 여러 가지 공법을 종합하는 게 효과가 빠르다. 맛 있는 요리일수록 재료나 양념이 여러 가지로 들어가 합성되어야만 맛이나 영양가가 뛰어난 것이 아닌가. 기공술이 바로 그렇다. 우리 몸 구석구석을 원활하게 돌리려면 다양한 자세와 방법이 필요하다.
정수사에 가까이 이르자 몹시 소란스러웠다. 알고 보니 천도제를 지내고 있다. 망혜 스님은 우리를 보고 맨 발로 뛰어내려 오다시피 반겨 맞아 주었다. 그 스님은 늘 그랬다. 항상 밝고 항상 도와 주었다. 신도들의 일상사나 동네의 어려운 일에 발벗고 나섰다.
안동의 포교당 일을 하다가 이곳으로 온 지 얼마되지 않지만 그는 가는 곳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산다. 그렇다고 꼬깃꼬깃한 여늬 스님과는 달리 호탕하고 적극적이다. 방송국 아나운서 같은 차분한 음성에다가 흘러간 옛노래 솜씨는 남진을 뺨칠 정도다. 말하자면 원효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천도제를 얼마나 지극하게 지냈는지 얼굴에는 줄줄이 땀이 흘러내렸다. 일차 이차 삼차로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세상의 온갖 귀신 구경은 다한 셈이다. 초혼은 그렇게 어렵게 정성이 드는 것이다. 이튿날 새벽 우리는 스님을 따라 임진강 쪽으로 나갔다.
“이치는 어느 순간에 깨치게 되는 것입니다. 늘 정진해 있다가 보면 화장실에 앉아서도 깨우치게 되지요. 깨달음은 순간적이지만 현상은 단박에 제거되지 않는답니다. 차례를 따라 없어지는 것이지요.”
스님은 멀리 수평선을 올려다 보며 내 마음을 읽기나 한 것같이 서두를 꺼냈다. 아침 해가 머리털을 쳐들고 일어섰다. 동해에선 바다 한 복판에서 해가 솟아오르듯 하는데 서해 바다는 안개 속에서 굴러나오듯 여명이 흔들려 내려오는 것 같다.
“비록 자기의 본성이 부처인 줄은 깨달았지만 오랫동안 굳혀온 버릇은 물론 한꺼번에 녹여 버릴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보면 임종에 이르러서나 거의 제거될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깨우치나 안 깨우치나 평생을 무지몽매에서 헤매는 것을 결국은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이것이지요.”
홍 선생이 한참만에 망혜 스님의 말에 의문을 제기했다.
“얼음못이 모두 물인 줄 알지만 햇볕을 받아야 녹고 일반 사람이 곧 부처인 줄 깨달았지만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야만 닦아지는 것이지요. 얼음이 녹아서 흘러야만 그 물을 마실 수가 있으며 망상이 다해야만 명상이 나타나 신통광명의 세계가 보이는 것입니다.”
아직은 겨울이라 춥고 냉갈령했지만 강가의 찬 바람과 한적한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침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망혜 스님은 어젯밤을 꼬박 세우고도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다. 강가의 방갈로가 중세의 나포리 강변 같이 무겁고 중후하다.
“진정한 수행을 위해선 스님이나 신부와 같이 가정을 떠나야만 참으로 이치를 깨칠 수 있고 또 얼음물을 녹이듯이 돈오와 점수를 실천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세속에 있어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정을 유지하고 가족을 좀더 풍요롭게 해 주려면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 욕심을 자꾸 채우다 보면 용맹정진을 이룬다는 것이 불가능해 지는 게 아니겠어요”
“글쎄요, 성당이나 사찰에 갇혀서 세속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수행할 수 있다면 더 좋은 방법이겠지요. 그래서 싯달타도 많은 고민 끝에 왕자의 몸으로 더구나 왕비까지 두고서 집을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자기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전갈을 받고는 평생 고민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탄했습니다.
... 세간과 출세간의 차이는 그래서 어렵지요. 더구나 출세간과 출출세간은 더욱 어렵답니다. 머리 깎고 산 속에 들어 왔다고 해서 다 깨우치는 것은 아닙니다. 싯달타의 한탄은 자기로 인한 아들의 불행을 어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왕궁에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가진다 해도 정신적인 부족을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애비없는 자식이란 애정의 결핍 같은 거 말이지요.”
“구세군 같은 제도가 그런 면에서는 좋은 방법이 되는 것 같아요. 부부가 다 교역자로 일할 수 있고 군대식 계급제도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으니까, 세속적인 문제들을 어느 만큼 제거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그거야, 우리 불교계에서도 재가 불자라는 제도로서 전법사를 양성하고 도시 한복판에 포교당을 설치하여 불법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떠한 법 제도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법 제도에 구속당함이 없이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 진정한 깨우침은 산 속에 있으나 세속에 있으나 결혼을 했으나 안 했으나 그런 것에 관계됨이 없이 진리를 터득하는 것입니다. 산 속에 있으면서도 지금 불교계가 어떤 판국입니까. 전국의 대사찰들이 강남파다 강북파다 해서 주지가 두 명 씩이고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는 외제 향이며 외제 과일들이 판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스님이나 신도들이나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기독교 종파도 마찬가지이지요. 휴거다 뭐다 해서 사회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서울 신학대의 후기대 입시문제지 도난 사건을 비롯해서 개신교 교파들의 분쟁이 극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정치판이 뛰어들고 각종 사교가 뛰어들고 해서 지금 현대 종교는 사회를 정화하는게 아니라 더욱 혼탁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왕자와 같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사막 속에서 물이 흐르듯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어쩌면 신문에 난 것보다 더 많은 아름다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으니까요.”
나도 끼어들어, 새벽 임진강가의 논쟁은 의외로 달아올랐다. 우리는 방갈로를 나와 강변을 따라 걸었다. 물새들이 하늘을 수 놓았다.
“바람은 멈추었지만 물결은 출렁이는 법입니다. 어느 수행자는 뒷간에서 똥을 누다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깨우침이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어려운가 하고 아래를 내려다 보고는 크게 엉덩이를 흔들었지요. 아주 기뻤던 것입니다...
‘아하, 똥물에도 파도가 있구나아!’ 하고 그 길로 깨친 것이지요. 돈오와 점수는 두 개의 수레바퀴입니다. 소를 먹이는 목우자의 행위를 착실히 실행하는 것이지요. 절대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연득없이 크게크게 웃었다. ‘똥물에도 파도가 있다.’ 망혜 스님은 조용히 찬불가를 불렀다. 자유인, 진정한 자유인이란 가사였다. 요새는 찬불가도 현대적인 곡이 붙어서 편안하게 와 닿는다. 홍 선생과 나도 천천히 따라 불렀다. 저 하늘을 가르는 물새들같이 자유롭게 자유를 찾아 불렀다.
우리는 트리오로 목청껏 불렀다. 나는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혼자 생각했다. 이번에 가려던 인도행을 포기하기로 말이다. 나는 이번에 가면 한 5년은 히말라야 산 속의 요기들과 같이 수행할 각오였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처자식을 내팽개치고 히말라야에 간다고 해서 또 도사를 만난다고 해서 내가 깨우칠 수 있는가?
진정으로 깨우칠 수 있다면 인도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마찬가지이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깨달음이 문제이다. ‘똥물에도 파도가 있듯이’ 어느 곳의 똥간이든 파도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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