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7-03
귀 로(歸路)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씨앗 뿌리기 시작하는 새봄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번 늘어놓아 보려고 한다. 나는 안목(眼目), 혹은 소견(所見)이 좁다. 그래서 조물주(造物主)의 산물(産物)인 그 넓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을,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천태만상(千態萬象)이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소안(小眼) 속에 다 담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졸부(拙夫)의 산문가(散文家)는 될지언정 고매한 시인(詩人)이 되지를 못하고 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산만한 나로서는 쥐어짜듯 하여 물기 빠진 비지떡과 같은 시를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오늘아침에 성서 시편 속에서 좋은 시 한편을 발견하고 기뻤다. 성전(聖殿)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부제(副題)와 함께 시작되는 이 시는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편 131:1-3). 소박한 소시민이 성전에 오르면서 발로(發露)의 기세가 아닌 그저 잔잔한 가운데 고요하고 평온하기만을 희망하는 연약함이 담겨져 있는듯하여 좋다.
나는 그 예전에 소식지의 암 하레쯔 곧 “땅의 사람들”이라는 곳에서 목표(目標)는 높은 나무의 꼭대기의 가지를 말하는 “우듬지”를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분에 넘치는 기상을 가진 사람의 허울 좋은 얼굴을 꼬집으며 더 살아오신 분들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고 옛적부터 말하셨다. 사람들은 위를 보고자하는 타성(惰性)이 있나보다. 그러므로 성서에서도 “사람”의 어원을 재미있게 말하고 있다. 사람을 안트로포스(ανθρωποs)라 말하는데 “위를 쳐다보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눈은 높아만 가기에 눈이 허우대의 위쪽에 자리한 것 같다. 목표를 가지고 위를 쳐다보는 사람들은 비행기가 없던 시대에도 날고 싶었다. 아니 하늘 꼭대기까지 닿는 탑(塔)을 쌓아 조물주(造物主)와 겨루고 싶어했다(창세기11:1-4). 그래서 TOP를 탑(塔)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후대에 금자탑(金子塔,피라미드)은 쌓았는지 모르지만, 바벨탑은 쌓지 못했다. 오히려 말 많은 혼잡한 세상, 흐트러진 세상이 되고 말았다(창세기11:7-8). 하늘의 사람이 아니라, 온 곳으로 다시 되 돌아 내려가야 하는 귀정(歸程)의 본연(本然)의 사람이 되었다라고 쓴바가 있었다.(땅의 사람들 1999년 12월호)
추운날씨가 풀리면서 돌아가시는, 즉 귀향(歸鄕)하시는 어르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다. 어제도 건너 고향 마을의 친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접하였다. 한 달여 전에는 중년의 나의 사부(師父)님께서 돌아가셨다. 생사고락의 이야기 가운데 그 어르신의 가르침이 생각되어진다. 한 아이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서 무엇인가? 할 것 같은 기세로 주먹을 불끈 쥐고 나오지만, 죽을 때의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을 세상에 다 놓고 가는 모습을 취하며 손바닥을 펴고 가신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또 그분의 입관예식을 진행하셨던 목사님의 그런 얘기가 떠오른다. 돌아가신 어른을 위하여 주위 분들이 가슴 아파하지 말고, 남은 가족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자는 말씀이셨다. 등에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향해서 가시던 예수님도 그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여인들에게 “예루살램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하였다(누가복음 23:28). 옛적 어느 이는 내가 죽거든 행진곡을 틀어 달라고 말을 하였단다. 죽음도 시간의 흐름선상의 한 시점(時點) 위에 놓여있다.
공동체 이야기
마음의 장애
친구 목사님이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서양철학은 동양철학에 비해서 공동체적이다. 동양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서양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곧이어 잠시 후에 계속 해서 전해온 문자는 “서양은 근대의(칸트) 해양진출 이후에 개인주의 강화, 동양은 서양에 대항하기 위해 공동체 강화”라는 말이었다. 한참 동안 음미해 볼 말이다.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떻게 한국인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이 전후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말인가? 관심을 받던 사람도 장애인이 된 후로는 관심 밖에서 멀어지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을 보라. 평범하던 사람이 장애를 겪게 된 이후 더 많은 격려와 관심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한국계로 이민 1.5세대인 이승복 씨의 수기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씨가 평범하지는 않았어도(국가대표 체조선수였으니까) 사지마비 장애인이 된 이후에도 방황 없이 미국 최고의 대학에서 의사가 되기까지 멸시와 편견을 받지 않고 당당히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답게 장애인 복지 분야에도 상당한 진척이 있었던 미국의 사회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한국에서 계속 살아왔다면 오늘날의 영광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연한 우리나라의 복지 현주소이다. 지난 이야기지만 장애인 학생이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집단 괴롭힘을 받아 결국 케나다로 이민을 떠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터뷰 결과 그 학생은 죽어도 한국에 오고 싶지 않다고 해 충격을 준 적이 있었다. 한국에 죽어도 오기 싫은데 살아서 오고 싶겠는가?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손을 움직일 수 있는 휠체어 장애인이 앉아서 하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사무원이나 전산원 등). 언어 장애인은 말은 못하더라도 글을 쓸 수 있다. 외국의 예를 들어 베토벤은 청각 장애인으로 자신은 들을 수 없어도 남들에게 소리를 들려주었고, 헬렌 켈러도 시각 장애인이지만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 외에도 양팔이 없어 입이나 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하물며 휠체어를 타고 앉아서 일을 못하고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글을 쓰지 못하겠는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는 말이 일리가 있지 않은가!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장애인들은 똑같은 편견을 받고 살아간다. 후천적 장애인이 “나 왕년에 잘나가던 사람이야” 하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면 상대방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식으로 나온다. 한마디로 그래야 비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왜 불만이야? 꼬우면 이 나라를 떠나든지”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엄연한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러니 우리나라를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추세이지 않은가?
장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언젠가 기존의 장애인을 조롱한 그 사람이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장애인의 고통을 모른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장애, 편견을 주는 사람은 정신적 장애인일 수 있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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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2007년 2월 17일에 충남 금산군 초현교회에서 온 박기주 집사님이 새터공동체에서 4주간의 생활을 잘 마치고 3월 16일에 대전으로 가셨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주식회사EG(이광형).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김기홍.양오석.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0인).박종덕외1인.대전성남교회.대전충남지방통계청.이병덕.세광교회.김경주.진명구.채윤기(박현실).금산군청복지여성과(김일지).금산주부클럽(4인).살림교회(박상용외9인).김포중앙교회여전도회.김종택.신건태.금산읍교회(김철우).삼호교회(길만호).그리스도의집.동춘교회6여선교회(12인).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정인구외1인).대덕교회.진주문교회여전도회(7인).최종현(진수정).충전교회(표기연.최순자).우리집공동체(박성훈외3인).최선희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