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불가를 들은 보답으로 조사어록과 탁마한 글을 올립니다.(현대불교신문의 구도역정에서 옮김)
반야의 문빗장. ㅣ 전체 보기 2004-10-25 오후 4:34: 글쓴이= 풍경
반야의 문빗장
머물 것 없는 근본에 의지하여
일체 법은 건립하나니,
머묾 없는 근본은
머묾 없는 데 근본한다.
이를 투철하게 깨치면 만법이 한결같아
털끝 만큼의 머무는 모양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지금 드러난 행위 그대로가 모두 머묾 없음이다.
근본이 이미 밝혀 졌다면
이것은 마치 사람에게 눈이 있어 했빛이 밝게 비치면
갖가지 물건은 보는 것과 같으니,
이 어찌 반야의 문빗장이 아니랴!
영가 (永嘉) 스님은
"그 자리(當處)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하다."
하였으니, 이보다 더 가까운 말은 없으리라.
"찾은 즉 그대를 아나, 보지는 못하도다." 고 했는데,
담연한 당처에서 두변을 눌러 앉아서 평온해야지
알음알이를 내서 찾으려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찾았다 하면 마치 그림자를 잡은 것과도 같느니라.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였는데
마음의 광채를 돌이켜
스스로 비추어 보라.
"그대가 한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마시면 그 때에 가서 네에게 말해 주리라." 하였는데,
팔각의 맷돌이 허공에서 구르듯 하였다.
이를 참구해 꿰뚫으면 눈 앞에서 평지가 푹 꺼져서,
시작을 알 수 없는 망상이 말끔히 없어지리라.
덕산 스님이 강 건너에서 부채로 부르자 문득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고
조과 스님이 실을 하나 뽑아서 훅 불자 깨달은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큰 인연들은 시절이 이르자
뿌리에서 싹이 스스로 튼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기틀과 감응이
서로 딱 들어맞을 바탕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바로 그사람이 빈틈없이 가만히 운용하다가 스승의 문호를 빌려 발휘한 것이었던가?
이처럼 어려운 일을
어찌 그리 초준하게 끊어서 그리 쉽게 증득했을까?
옛 사람이 겨자씨를 굴려 바늘을 맞춘다는 비유를 하였는데 진실로 헛말이 아니다.
마음을 믿어서 다다르고
성품을 확연히 보면
날로 씀에 실낱만큼도 빈틈이 없다.
세간법 모두가 그대로 불법이며
불법 모두가 그대로 세간법이니 평등하여 한결같다.
어찌 말할 때 있다가 말하지 않을 땐 없으며,
생각할 땐 있다가 생각하지 않을 땐 없으랴.
이와 같다면 바로 망상과 알음알이 속에 있는 것이니,
어찌 철저하게 깨친 것이겠는가!
생각생각 마음마음,
빠짐없이 관조해야 한다.
세간법과 불법이 전혀 간격이 없으면 자연히 순수하게 익어
어디에서나 근원을 만나리라.
질문이 있으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고
질문이 없으면 담연하여 항상 고요하니,
이 어찌 실제로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는 요점이 아니랴.
== 원오심요 중에서...==
덧글 28개
푸른바다
풍경님 감사합니다. 구도역정의 오랜 선배이셨던 여산 스님을 만나 뵙고 오니 풍경소리가 자욱하네요. ‘어디에서나 근원을 만나리라’는 법문 감사합니다.
() 10/25 오후 8:40
토출용궁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였는데
"그대가 한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마시면 그 때에 가서 네에게 말해 주리라." 하였는데,
팔각의 맷돌이 허공에서 구르듯 하였다.
이를 참구해 꿰뚫으면 눈 앞에서 평지가 푹 꺼져서,
시작을 알 수 없는 망상이 말끔히 없어지리라.(원오심요)
=> 대답도 걸작으로 소문났지만, 실은 물음도 그에 못지 않는 걸작이지 않을까요?
방거사의 이 물음 하나로 동아시아의 재가불교는 독자적인 기틀을 확립할 수 있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믿거나 말거나~) 10/25 오후 8:58
토출용궁
공부가 많이 되는 구절이네요. 읽은 후 한동안 몸살을 앓고 겨우 정신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전 요즘 선어록을 보면 골수만 오롯이 드러낸 구절이 너무 너무 많아서 정말 감복과 놀라움이 그치지 않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이네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약식으로 해설해봅니다.
팔각의 맷돌이 허공에서 구르듯 하였다
=> 마조의 대답이 그 어떤 상상조차도 완전히 벗어날 정도로 너무 예상밖이고 뜻밖이고 놀랍고 충격적이다는 뜻이겠죠. 이런 순간에는 알음알이가 전연 작동하지 못하므로 알음알이의 공백이 출현하고, 이 때문에 알음알이의 기만적 정체가 폭로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순간을 겪고 나면 평생 안잊혀지고 항상 생생하므로 팔각의 맷돌이 허공에서 구르는 것쯤은 비교를 사양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적절한 표현도 찾을 수가 없을 겁니다.
이를 참구해 꿰뚫으면 눈 앞에서 평지가 푹 꺼져서, 시작을 알 수 없는 망상이 말끔히 없어지리라
=> 긴 세월의 생지옥과 극심한 고통을 획기적으로 물리칠 역사적 대전환의 단서를 드디어 잡기 시작했는데, 겨우 평지가 푹 꺼지고 망상이 없어진다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 미지근하네요. 어쩌면 원오는 원래 내적 모순으로 인한 고통이 비교적 적었던 편이어서 이처럼 시늉에만 그치는 표현밖에 못했는지도... 열혈기질의 선지식이었다면 훨씬 더 강렬한 표현을 했을텐데요. 10/26 오전 12:39
梅軒
풍경님 이제는 그만 하시고 쉬어보세요.다왔습니다.종착역인데 무얼그리 구하려 더가시려 하시나요.?사랑하는 풍경님.낭중에 대포에 삼합으로 한잔 하시지요. 10/27 오후 9:29
풍경
매화가지 늘어진 마루에 걸터 앉아 풍광이나 보시면서 시조나 읊으시면서 지나가는 이들과 풍류를 즐기시는 분은 즐기시면 될 것이고 찾을 것이 있어서 돌아 다니거나 아니면 찾을 것이 없어도 구하려고 다니는 사람이 보이시거든 멋들어진 시조나 한수 읊어서 그의 고달픔이나 달래 주시구려. 10/28 오후 5:16
풍경
까고 까도 알맹이가 없다고 하여 읊을 것이 없다면 진정한 풍류객이라 하지 못하지요. 알짜배기 풍류객을 보니까 누가 읊어 주기를 원하거나 읊어서 상대가 즐겁게 된다면 시도 때도 없이 멋들어지게 장구도 치고 소리도 하고 그러던군요. 10/28 오후 8:30
梅軒
풍경은 바람따라 울기만 하는데 알짜배기까지 보는눈을 갖추었으니 눈달린 풍경 일세라(요즘말로 딸랑거리는 시시티비?)
석달열흘 굶다보니 헛것도 보이고 검은것만 보면 짜장인줄 알앗는디 곱배기로 먹고난후 배가 부른데도 역시나 짜장인걸 어찌하요. 10/28 오후 11:27
토출용궁
도인상재풍류(道人常在風流, 도인은 항상 풍류에 있음)로다!
♬어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오~~~ 허어! 품바가 잘도 헌다.♬ 10/29 오후 1:49
풍경
땡겨온 글입니다.()
[ 앙산(仰山)16) 이 말하기를.
“깨달음이란 없지 않으나 제 2의 경지가 됨을 어찌하리오”라고 말하니, 절반 쯤 깨달음을 말한 것이다.
현사(玄沙)스님이 말하기를.
“감히 노형을 보니 아직은 철저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니, 실로 노파심이 간절한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깨달음이 철저한 경지가 있다는 것이 옳은 것일까. 깨달음이 철저한 경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를 알 수 있을까? 말없이 한참 동안 있다가 게송을 읊었다.
"해천(海天)에 밝은 달이 처음 솟아난 곳에 암벽의 원숭이 울음 그칠 때...." ] 10/29 오후 2:39
토출용궁
"해천(海天)에 밝은 달이 처음 솟아난 곳에 암벽의 원숭이 울음 그칠 때...." ]
=> 다음 구절이 없나요?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없으면 너무 인색한 것 같네요. 있다면 좀 소개해 주시죠. 10/29 오후 4:25
梅軒
그림자 내모습은 하얀 그림자...그림자 내모습은 허공에 흩어지네.말이란 모두가 헛소리죠.아무짝에도 소용이 없고 맞는곳도 없지요.그냥 말이고 글이죠.
잇다 없다도 모두가 부질없는 말일뿐이니 그곳에서 제일 제이를 삼는다면 상을 삼아서 그림자를 만들려는 노력이다라고 말할수밖에 없겟습니다.요윗글중~
"해천(海天)에 밝은 달이 처음 솟아난 곳에 암벽의 원숭이 울음 그칠 때...." ] <----요소리도 개소리죠.(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님). 말따라서 헤아리려는 분별의싹을 잘라내야만이 비로소 문안에 들었다 할것입니다. 10/29 오후 4:27
풍경
경을 외기전에 경을 여는 게송으로
"위없이 심히 깊은 미묘법이여 백천만겁인들 어찌 만나지리
내가 이제 보고 듣고 받아 닦을지니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아지게 하소서" 라고 서원을 한 후 경을 대하게 됩니다.
부처님도 말과 행동으로써 뜻을 전하려 하신 것이 팔만사천경전을 설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이 이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말은 실답지 않은 것이나 진실한 뜻을 헤아리는데에 헛되지 만은 않은 것입니다.
목마른 이에게는 물 한바가지가 갈증을 덜어 피곤을 풀어 주듯이 위대한 조사스님들께서 한말씀을 내려 주시는 것에 인색하셨다면 저 같은 후학이 무엇을 이정표 삼아 길을 갈것입니까.
그래서 고려장을 하러 가는 아들의 지게에 얹혀 있는 노친은 나뭇가지를 꺽어 버리는 것으로 빈지게를 지고 돌아 가야할 아들의 갈길을 알려 주셨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10/29 오후 6:31
풍경
토출용궁님, 제생각으로는 그것으로 끝이 나야 맞을 것 같거든요.
더 말을 한다면 사족이 되지 않을까요?
제 생각이었습니다. 10/29 오후 6:40
梅軒
배고픈 사람에게서 밥을 뺏으면 굶어죽을지도 모르겟습니다.
포만감에 휩싸인 사람이 밥그릇을 가까이 하면 영영.....
10/29 오후 6:43
풍경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 현실이 바로 진실이지요. 시래기죽을 먹고 포만하여 배부른 사람은 산해진미를 차려 주어도 먹지 않습니다.배고픔을 느끼는 사람만이 먹을 뿐입니다. 10/29 오후 6:51
토출용궁
말에는 진실이 없습니다. 하지만 또 말만큼 진실이 많은 것도 없습니다. 말은 말이 아니기에 말이기 때문입니다. 10/29 오후 6:55
梅軒
폭포수를 직접 맞지 않았더라도 샤워 해본 사람은 폭포수의 위력을 실감 할수 잇겟지요.비슷한 논리로 추론하여 상상함을 재일 금기시한것이 불법 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결과야 매한가지 이지만요.....
다만 이것뿐 하는 이것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이겟습니까.,,,그렇다 해도 음 이것 하면 어긋나니 이것이 무슨 조화일까요.
나를 없앤들 나가 없어지지 않으니 진실로 나가 없다면 이것 하는 이것은 무슨 조화일까요. 10/29 오후 7:02
풍경
말에 진실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에 대하여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우는 아이 젖을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기는 울음으로 말을 하여 엄마에게 뜻을 전하여 젖을 얻어 먹는 것입니다.
강아지는 멍! 멍! 하는 것으로 소는 음메~ 하는 것으로 새는 지저귀는 것으로 뜻을 전합니다.
마음이 동하여 뜻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뜻의 표출인 말을 보는 것으로 말뒤에 뜻과 마음이 동하여 나온 뜻 이전의 그 뭐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그 뭐시기라는 것을 그냥 짐작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화두는 그것을 참구하여 그 뭐시기를 진실하게 알아 보는데에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뭐시기가 양파를까고 또 까고 까도 알맹이가 없다고 하여 없다고만 할 것입니까.
아까 말했듯이 말을 나오게 한 뜻의 본래자리인 동하기 전의 그 무엇이 있으니 말도 하고 배고픈 줄도 알고 비록 시래기 죽을 먹었으나 포만하여 배가 부르면 산해진미를 마다할 줄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진실하다거나 질실하지 못하다거나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말은 말일 뿐이나 말로써 뜻을 전하는 것이고 뜻이 있어 그 본성을 미루어 짐작되는 것이라서 그 본성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 뭐시기를 참구하는 것이 불자의 바른 행이 될 것입니다.
죽기 생전 말입니다.
그깟놈의 화두를 깨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화두를 깨 박살을 낸 사람은 회광반조하여 좀 더 실다운 삶을 느끼면서 살게 될 것이고 화두를 참구중에 잇는 사람은 참구하여 구도하는 그 과정이 바로 실다운 삶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
삶이란 것이 실답고 행복하고 즐겁지 않다면 그 삶을 사는 방법에 크게 문제가 있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잘 살아 보자고 종교를 믿고 의지하여 탄탄한 길로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생겨난 것들의 마음씀이자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이 곧 구경이고 궁극의 진실한 삶이라고 봅니다.
구경은 필경에 구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에 충실하여 실답게 살아 있음에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라고 말하겠습니다. ()
10/29 오후 7:22
풍경
이것을 하든 저것을 하든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고 나라는 것을 생각 생각에 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본래로 나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이 곧 공을 아는 것인데 몸소 느껴보지 못하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나를 나로 삼아서 이것을 할 때나 저것을 할때에 나를 나로 삼고 행하는 것이니 똑 같이 보일지라도 나를 나로 삼고 행하는 것과 나라는 생각이 없이 무심하게 행하는 것은 우선은 그 당사자가 평안한 것이고 그 행하는 사람을 남이 볼때에 행복하게, 즐겁게, 진실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10/29 오후 7:37
梅軒
오늘도 이러히 배워서 즐겁고 헛품 안팔앗으니 되엇고...
심심헌것보담 좋구만요.
그리고 저는 여태껏 이몸뚱아리 나하고 뭐시기하고 다름을 몰랏었는데 오늘에 이르러서 새롭게 눈을 뜹니다.
苦를 여의고 樂을 얻음이라..
잘산다...
구경은 필경 구경으로..
무심하게 행한다...
오늘 많은 숙제를 얻엇네요.긴글 고맙습니다.
10/29 오후 7:58
풍경
오늘도 이러히 배워서 즐겁고 헛품 안팔앗으니 되엇고...
심심헌것보담 좋구만요.
그리고 저는 여태껏 이몸뚱아리 나하고 뭐시기하고 다름을 몰랏었는데 오늘에 이르러서 새롭게 눈을 뜹니다.
==> 곡해를 하시고 계시는군요. 이 몸뚱아리를 끌고 다니는 나와 마음이 동해 뜻을 세워 표현해 내는 짓을 하는 뭐시기 나와어찌 둘로 나누어 지겠습니까?
전제를 하시고 보면 상대의 말이 상대의 뜻과 같이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구경은 필경 구경으로..
==> 필경은 모두가 구경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모두가 불성을 갖고 있는 부처의 나툼이니 어쩔 수 없는 진실입니다.
苦를 여의고 樂을 얻음이라..
잘산다...
무심하게 행한다.
==> 등등의 말은 매사를(모든 경계) 대함에 최선을 다하되 그 매 경계에 집착하여 끄달리지 않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들었던 것을 들었던 그자리에 도로 내려놓는 것을 뜻합니다.
그 와중에 좋은 또는 나쁜 과보를 받을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을 희희락락하거나 두려워 하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10/29 오후 8:20
梅軒
먹고 사는것이야 그렇고 그렇습니다만
어찌 몸나 머시기나가 없겟습니까.
어찌 몸나 머시기나를 하나라 하겟습니까.
어찌 구경을 만들어 구경이라 하시는지.
구경이 어디라서 필경 돌아간다 하시는지.
.....죽으면 간다 하실런지.
좋은과보 나쁜과보는 또 무슨 말씀 이신지 아리둥 합니다. 10/29 오후 9:17
풍경
어찌 몸나 머시기나가 없겟습니까.
어찌 몸나 머시기나를 하나라 하겟습니까.
==> "하나다" 라거나 "둘이 아니다" 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뭐시기라는 것이 잇다라거나 없을 것이다 라거나 있지도 없지도 않다 라거나 그 어떤 생각도 갖다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잘 살면 그뿐입니다.
어찌 구경을 만들어 구경이라 하시는지.
구경이 어디라서 필경 돌아간다 하시는지.
.....죽으면 간다 하실런지.==> 바로 이말이었습니다.
필경에 구경이라고 하는 것은 인연의 소멸로 사대라는 색과 수상행식 이란 것이 흩어져서 없어지는 것처럼 인식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당사자는 인식을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좋은과보 나쁜과보는 또 무슨 말씀 이신지 아리둥 합니다.
==> 저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매헌님께서 콧등이 시큰한 홍어 한점과 탁배기 한잔을 사주셔서 배가 불끈 일어나고 탁빼기의 기운으로 힘을 얻어 흥얼 거리게 된다면 좋은 과보일 것이고
이 미친놈아 하면서 귀썀을 한대 올려 부친다면 볼때기가 얼얼하니 아플 것이니 나쁜 과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좋고 나쁨에 연연하지 않아서 홍탁을 기대하지 않으며 귀썀을 회피하려 하지도 않는 다는 말이었지요.
늘 복되고 재수도 좋은 좋은 날만 되시기 바랍니다.() 10/30 오전 9:56
梅軒
우하하하....홍...탁...참 좋습니다.
글을 보니 더더욱 좋습니다.
볼다귀 한점이면 어떻고 탁배기 한잔이면 어떻겟습니까만..
저는 그냥 구경만 할랍니다.
그리고 못본걸로 하겟습니다...흠!
돈마니 버시고 건강하세요. 10/30 오후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