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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쁨(서론)
우리는 자신의 마음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의 고대 문화는 이런 기법을터득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친한 친구와 얘기하듯이 자신의 마음과 실제로 대화를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자잘한 일상과 잡념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 나머지 짬을 내어자신의 마음과 대화하는 이 중요한 기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_잭 콘필드Jack Konrnfield
당시 내 슬픔이 그토록 절망적이고 쓰라렸던 까닭은 오랫동안 함께했던 파트너와 헤어진 탓도 있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 사랑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두려움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나로서는 설사 사랑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 할지라도, 더 이상 내 삶에서 그것을 찾아내지는 못했을것이다. 세상은 온통 권력에 매혹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있었고, 그 어디에서도 사랑에 대한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나 역시도 사랑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냉소의 시대
지금 우리 시대는 사랑에 관해 드러내놓고 토론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기껏해야 대중문화 - 영화, 대중음악, 잡지, 책 등 - 분야에서만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활발히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문화는 1960년대나 1970년대처럼 사랑과 삶을 긍정하지 않는다. 그 시절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라는 주장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랑은 무의미하며, 삶에서 사랑은 별로 중요치 않다는 메시지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문화는 사랑을 냉소하는 것이 대세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사랑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해롤드 쿠쉬너 Harold Kushner는 원하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할 때When All You've Ever Wanted Isn't Enough』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사랑하기를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을 기피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까 봐 몹시 걱정스럽다. 이들은 사랑을 얻는 과정이 매우 힘들다는 이유로, 또는 잘못되었을 때 입을 마음의 상처가 두려워서 사랑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그들은 모험을 걸지 않아도 되는 사랑, 힘들게 감정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 즉 쾌락만을 구하려고 한다. 사랑을 찾다가 실망과 고통만 안게 될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어려움을 이겨내고 사랑을 얻었을 때 얼마나 순수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냉소주의 사랑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감추기 위한 거대한 가면인 것이다.
나는 미국 곳곳을 돌며 인종주의와 남녀 차별주의를 없애자는 강연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을 펼치는 데도 사랑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청중들 가운데 특히 젊은이들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여태까지의 위대한 사회운동들은 항상 사랑의 윤리를 운동의 중심에 놓았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사랑에 사회를 바꾸는 힘이 있다는 말을 좀체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이란 순진하고 나약한 사람, 대책 없이 낭만적이기만 한 사람들이나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그들 세대의 대변자격인 엘리자베스 워첼Elizabeth Wurtzel의 『비치: 음탕한 계집Bitch: In Praise of Dificult Women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녀는 자기 세대가 환멸에 빠져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갈수록 사랑을 하는 게 힘겹다. 점점 더 사랑이 두려워진다. 우리는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도 없었다. 그래서 사랑을 위해 뭔가 해보려고 할수록 사랑이란 결국 헛되고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만 더 강해진다." 그런데 그녀가 하는 말은 그들보다 더 앞선 세대가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세대들과 사랑에 대해 얘기를 해보면 그들도 뭔가 예민하고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인다. 특히 내가 "난 좀더 사랑을 느끼고 싶어"라는 식으로 말하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나더러 심리치료사를 찾아가보라고 충고하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병적으로 사랑에 집착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가 만날 때마다 사랑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가니까 지겨워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은 사랑의 의미를 깊이 탐색하다 보면 자신들이 직면하고 싶지 않은 어떤 진실을 만나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내가 우리 문화에서 차지하는 사랑의 의미를 좀더 깊이 천착하게 된 것은 사랑에 대한 믿음을 잃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보는 두 가지 관점
암의 공포는 지나갔지만 곧이어 나는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중병에 걸렸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직면하자 나는 더욱더 내 삶과 우리 시대에서 사랑이 가지는 의미에 천착하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문화비평가로 활동하면서 매스미디어, 특히 영화와 잡지가 사랑을 다루는 방식에 주목해왔다.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대개 이렇다. 즉 모든 사람이 사랑을 원하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서툴다는 것이다. 대중문화에서는 사랑을 항상 판타지로만 취급한다. 이것은 아마도 사랑에 관한 담론을 남성들이 주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판타지는 늘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특히 남성의 판타지는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힘이 있다고 보는 반면, 여성의 판타지는 현실 도피로 간주된다. 여성들이 연애소설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 사랑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성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랑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만 알고 싶었을 뿐, 저자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사랑에 관한 관점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사랑을 주제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서야 여성과 남성이 사랑에 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을 다룬 문헌들을 조사하면서 또 다른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부장제의 영향에 대해 언급한 저자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남자들의 지배가 사랑을 얼마나 방해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이 주제로 쓰인 책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존 브래드쇼John Bradshaw의 『사랑 창조하기: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 Creating Love: The Next Great Stage of Growth』이다. 그는 남성 지배(가부장제의 제도화가 가족 사이에 사랑의 부재를 초래한다고 용감하게 주장하면서, 가부장제를 끝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브래드쇼는 일찍이 어른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아이 같은 마음, 즉 '내면아이inner child'에 주목하라고 촉구한 책을 써서 유명해졌다. 그러나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이 책은 대단한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묻혔다.
우리 사회가 사랑이 가득 찬 문화로 변화하려면 우리의 사고와 행동 방식부터 크게 바뀌어야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나 존 웰우드 John Welwood 『사랑과 깨달음 Love and Awakening』 같은 인기 있는 남성 작가들의 책들은 페미니즘적인 관점을 채택해 남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태도이다. 그러나 이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의 관점이 다른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특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단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만약 위의 작가들이 주장하듯이 남성과 여성이 정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감정적으로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면, 사랑에 관한 담론에서 남성들이 지금처럼 권위를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천적으로 여성은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존재이고 남성은 이성적이고 무뚝뚝한 존재라면, '진정한 남성'은 사랑에 관해 말하기를 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
그런데 일부 남성 작가들이 사랑에 관한 주제에서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사랑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털어놓지 않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일상생활에서는 사랑에 관해 말을 아끼는 편이다. 그렇게 침묵하는 까닭은 어떤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내심 사랑에 대해 잘 알기를 원하지만, 막상 그렇게 됐을 때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미국인들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사랑에는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는 걸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믿으면서, 정작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사랑을 해야할지 모른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자신의 신앙심이 부족해 삶에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자책하면서 신앙의 위기를 맞는 경우도 있다.
또한 우리는 가슴보다 머리를 중시하는 문화에 살고 있는 탓에, 감정에 들떠서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덜떨어지고 나약한 사람으로 볼까 겁내기도 한다. 게다가 사랑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입에 올리지만 실제로는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더욱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누구나 내심으로는 사랑에 대해 더 잘 알기를 바란다.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일상생활에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몹시 알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해야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지 간절히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간절한 바람도 우리 문화에 팽배한 불확실성을 없애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사랑이 중요하다고 배우지만, 실제로 보고 듣는 것은 실패한 사랑 이야기뿐이다. 정치, 종교, 가족과 연인 관계에서도 사랑이 가진 힘 -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고 공동체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고,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그런 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어두운 그림자도 사랑을 향한 우리의 본질적인 갈망을 없애지는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이 사회에 사랑이 넘쳐나기를 바라고, 사랑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다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하여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성적 욕망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섹스에 대해서는 하나도 숨김없이 모든 것을 까발려서 말하고 보여주고 연구한다. 섹스에 관해서는 심지어 자위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노하우를 다룬 책과 수업이 난무하지만 정작 '사랑'을 가르쳐주는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법 정도는 때가 되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가정이야말로 사랑을 배우는 좋은 학교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산더미처럼 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가정에서 사랑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로맨틱한 관계(연인 관계)에서 사랑을 깨우치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모두 틀렸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은 가족이나 연인에게 받은 무관심, 냉대, 난폭함 등등 사랑의 부재로 인한 행위 때문에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지난날의 상처는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 크면 마음의 문을 닫아걸기 때문에,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사랑이 가진 힘과 은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사랑에 관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용기 있게 인정해야 한다. 비록 실망스럽고 혼란스럽겠지만, 여태까지 사랑에 대해 배운 것들은 실제 삶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삶 구석구석에 사랑의 신성함이 존재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숙고해왔다. 이 책은 우리가 다시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사랑의 기술에 관해, 사랑이 가진 힘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희망에 찬 비전을 제공해주리라고 자부한다.
-<올 어바웃 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