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의 하늘 아래 아버지(2026.3.4.), 최종(2026.8.31.)
송 유 창
단풍이 산자락을 타고 내리면 내 안에서 먼저 겨울이 움튼다. 찬 공기가 코끝을 스치기 시작하면, 나는 알 수 없는 조급함에 시달린다. 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한 여행의 욕구라기보다, 잠시 다른 계절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에 가깝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내게 책임의 계절이다. 어설픈 어깨 위에 얹힌 아버지 역할과 의무, 사회와의 관계들이 나를 단단히 감싸고 있다. 한 해 동안 단감밭에 농약을 치며 잡초를 제거하고, 지붕의 물막이까지 고치며 가장 구실을 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러나 11월이 되면 이상하게도 그것들이 모두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이 세상의 삶을 정리하는 연습이나 하듯, 나는 조용히 떠날 채비를 한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말없이 짐을 챙기면, 생의 기록을 마무리하려고 떠난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도 두 달쯤 걸리겠지 하고…. 가장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아직 내 안에 머물고 있지만, 그 믿음을 잠시 접어 두고 떠나는 일은 어쩌면 나만의 작은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짐은 늘 많다. 멸치와 고추장, 두 달간 버틸 견과류며 잡다한 것들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는데, 왜 이리 챙길 것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수하물 저울 위에 무거운 여행 가방을 올려놓을 때마다 생각한다. 마지막 길을 나설 때도 이렇게 무엇을 붙들고 가려 할까. 그때만큼은 부디 가벼웠으면 좋겠다고.
비행기가 남쪽으로 머리를 틀면 휴대폰 와이파이 눈금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고, 한국에서의 이름표가 차례로 벗겨져 나간다. 남편도, 아버지나 가장이란 이름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의 평범한 여행자가 된다. 그와 함께 한국에서 역할도 잠시 희미해진다. 그 순간만큼은 삶이 단순해진다. 몇 시간을 날아 도착한 호치민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감싼다. 겨울을 통째로 벗어 던지는 느낌이다.
방한복 속에서 웅크렸던 몸이 스르르 풀린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단숨에 계절을 뛰어넘은 것이다. 한국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과 손녀의 얼굴도 함께 떠오른다. 찬 날씨에 지하철에서 부대끼는 아들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패딩을 여미고 있을 것이다. 나는 호사처럼 느껴진다. 이는 나를 불편하게도 하고, 편하게도 한다.
반바지에 짧은 티 차림으로 빈즈응성 아침 거리로 나선다. 오토바이들이 도로에 강물처럼 흐르고, 노점마다 쌀국수 집 국물 냄새가 안개같이 피어오른다. 한국의 겨울 거리가 분주한 생존의 현장이라면, 이곳의 아침은 느슨한 여름 오후처럼 늘어진 느낌이다. 사람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열 걸음 내에 비슷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어도 다투지 않는다. 서로 경쟁보다 공존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골목길 모퉁이의 국수집 좌판에서 자리를 잡고 쌀국수 한 그릇을 주문한다. 밤새 우려낸 육수에다 한 움큼 넣어 준 허브에 국수를 감아서 들이킨다. 향이 먼저 코를 찌르고, 따뜻한 국물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며 찌릿하게 속을 데운다. 값은 천 원을 조금 넘지만, 이 한 그릇이 내게는 겨울을 건너온 작은 보상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따뜻한 이 나라에 와 있을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아버지다. 당신은 강제징용으로 스무살 무렵 파파뉴기니 라바울 일본군 해군 비행장 공사에 끌려가셨다. 전쟁과 가난의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한 분이다. 어릴 때 가끔 아버지는 술기운이 돌 때면 그곳 이야기를 꺼냈다. “거긴 덥더라. 미군 폭격에 조선 사람도 많이 죽었어….” 그러나 나는 안다. 아버지의 그 더위는 생사의 현장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더위였고, 집으로 살아오기 위해 견뎌야 했던 열기였다. 나는 스스로 이 땅을 찾았지만, 아버지는 선택의 여지 없이 떠밀려 왔다. 나는 겨울을 피해 왔지만, 아버지는 시대를 피해 갈 수 없어 왔다. 나는 다섯 시간의 비행에 피곤 따위를 운운하지만, 아버지는 부산서 시모노새끼를 거쳐 라바울까지 석 달간 항해 끝에 그 섬에 도착했다. 미군 폭격기와 군함을 피해 생사의 길을 넘어서. 그래서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지친 삶의 현장에 막연히 그리웠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이국의 하늘 아래 서 있는 내 삶이 사치스럽게 여겨진다. 따뜻한 공기를 들이키는 숨조차 오히려 노을 색 얼굴로 화끈거린다. 아침마다 남쪽 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아버지의 하늘을 생각해 본다. ‘그때의 하늘도 내 지금의 하늘과 같았을까’하고. 그리고 ‘당신이 누리지 못한 평화를 헛되이 소비하지 말자고’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사람의 삶을 바꾸는 가장 큰 경계는 생과 사일 것이다. 나는 해마다 겨울과 여름 사이를 건너며 작은 죽음과 작은 부활을 경험한다. 한국에서의 나를 잠시 내려놓고, 아버지의 기억을 더듬으며 다른 사람이 되어 본다. 그 변화가 나를 다시 숨 쉬게 한다. 내용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추위가 오면 어김없이 동남아로 떠나는 나를 ‘강남 제비’라 부른다. 제비는 돌아올 둥지가 있기 때문에 먼 길을 날 수 있다. 따뜻한 나라가 있어서가 아니라,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둥지는 아버지가 살던 집이고, 아내가 지키는 자리이며, 아이들이 다시 찾아올 곳이다.
해마다 나는 남쪽으로 떠날 것이다. 단순히 추위를 피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생과 사를 다투게 했던 그곳 여름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당신이 고통으로 견뎌낸 그 여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으로 오르는 비행기에서는 정말 아무 짐도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시대에 대한 빚도 모두 내려놓은 채로.(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