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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덕의 수필 세계
-갈참나무 잎새처럼 생광하게 빛나는 삶의 풍경 -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교수
I. 스위치 on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본격수필의 생명이다. 문학의 생명이 감동에 있다고 할 때, 한 편의 수필에는 우리의 메마른 가슴을 울리는 그것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수필은 그것을 창출해 내는 것이 진짜 수필다운 수필이기 때문이다. 수필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수필다운 수필에서나 가능하다. 최순덕의 수필을 읽으면, 누구나 감동을 느끼게 된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적셔지기도 한다. 그녀의 글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소재에 접근하고 있으며, 완벽한 인식과 형상의 조화로 감동을 전해준다. 주위를 밝히기 위해 군림하지도 제압하지도 않는 인간적 체취를 물씬 풍기는 작가이기에 부끄러운 속모습까지 가감없이 내어 보일 수 있는, 청량한 눈과 마음의 작가다. 왜 최순덕의 수필이 이처럼 진한 감동과 공감 그리고 접근성을 주는 걸까. 필자는 진솔성, 인간애, 문장력, 그리고 눈물 등의 차원에서 그녀 수필의 감동적 근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그녀의 글은 항상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희망을 모색하기에 가슴을 울리며 우리들의 누선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전제로 할 때, 최순덕은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본격수필을 우물 속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사람이라 하겠다. 오래 전에 교직에서 명예 퇴직하여 패밀리스트로서 가정의 행복을 지키며, 세상의 그늘을 투시하는 카톨릭 교도로서 오늘도 성실하게 자기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정진하는 구도자적인 여인이다. 최순덕은 일찍이 「문예시대」로 등단하여 문인이 되었지만, 본격수필에 대한 열정 차원에서 다시 본격수필 전문지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재등단, 틈틈이 생활의 여적을 수필로 적어온 분이다.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아 창작활동과 병행하면서 기간제로 학교에 나가는 등, 우리 시대 보기 드문 교육자다. 늘 좋은 수필을 쓰면서도 문단에 공해가 되지 않겠다는 각오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여러 해나 수필심화반에 적을 두었던 분이다. 다스림 1기 동인으로 활동하며, 부산여성수필문학회 동인지 「여인의 날개」3집에 필진으로 참여하였고, 첫수필집 <껍질 벗는 나무>를 상재하였다. 그녀가 생을 선한 마음으로 그러나 절망하지 않는 자세로 걸어가는 작가라 한다면, 그녀의 수필은 치환의 미학이 빛나고 자연의 빛깔과 인정의 향기가 서정이 되어 내면을 촉촉이 적시는 정감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II. 클릭 click
1. 짜릿한 모성이 있고 기적이 있는 삶의 공간
수필과 수기가 구별되는 접점은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느냐 아니면 제재에 담아 간접화하느냐에 있다. 최순덕은 본격수필가답게 주제를 담고 있는 ‘누워있는 옷’ 즉 제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문학화의 통로를 거쳐 제재를 간접화하고, 여기서 생성되는 상징을 연상과 상상으로 연결해 독자를 감동의 고지로 끌어 올린다. 모성과 그리움의 미학을 주제로 하는 수필은 현대사회의 특성상 여성 수필에서 필연적으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시 생활의 정신적 긴장이나 공동체 의식의 상실이나 비인간화와 같은 도시적 병리 현상으로 인하여 파생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움은 언어적 소중함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일종의 아름다운 의식의 성찬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탐색을 위해서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삶의 영토 확장에도 바람직한 일이다. 또한 그것은 얽매인 일상의 생활에서 새로운 창조의 기쁨을 누리는 희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필시 모성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모성 체험과 같은 자녀와의 관계성은 여성의 도덕적 인식을 구성하는 요체다. 여성에게는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모성성을 요구하는 어머니라는 위치가 그녀에게 존재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서의 모성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위치는 가정이며 여성의 임무는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그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사회적 통념을 의미한다. 딸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쓴 그녀의 수필 속에는 전통적 지위와 역할을 거부하지 않는 모정의 원리가 뜨겁게 솟구친다.
경제가 어렵고 살림살이가 힘들어 질수록 누워있는 옷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누워있는 옷은 가만히 누워서 조용한 침묵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모든 욕망을 벗어 던지고 마지막으로 포기를 선택했을 때 누워있는 옷은 비로소 알뜰한 주부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얇은 지갑으로 자식과 남편 먼저 생각하고 나면 정작 자신의 옷은 결국 누워있는 옷 옆에서 머뭇거리는 이 땅의 엄마들이다. 누워있는 옷은 그런 고귀한 엄마의 얼굴에 환한 웃음으로 다시 살아난다. 정녕 비움으로 얻는 기쁨이요 버림으로 얻는 행복이다. 조건 없이 그저 주고 싶어도 못다 준 아버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음으로 누워있는 옷의 미소가 더욱 정겹다.
- <누워있는 옷> 중에서
부모를 향한 작가의 정이 어떠한가를 제시해주는 작품이다. 현대인들은 부모에게 물질적으로 폐 끼치지 않고 풍요롭고 불편 없이 살 수 있게 된 사실만으로도 자식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부모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다. 아무리 황금만능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부모와 자식 간은 물질이 전부일 수 없다. 최순덕은 이런 진리를 작품을 통해 잘 보여준다. 최순덕은 ‘누워있는 옷’을 통해서 희생과 허신으로 살아온 우리 부모님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위암으로 여생을 고통 속에 보낸 아버지의 모습 도한 되살린다. 암은 눕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진술은 그나마 누워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아름답게 보이는 건 모녀간의 정이다. 작가는 누워있는 옷에서 어머니의 환한 웃음을 발견하고, 이를 비움으로 얻는 기쁨, 버림으로 얻는 행복으로 치환해서 조건 없이 오고가는 사랑의 화음을 전해주며 독자를 감동의 고지로 끌어올린다. 무정물 하나에서도 부모의 사랑을 느끼며 뭉클한 감동에 젖는 것은 그녀의 부모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절대적이며, 애틋하고 간절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혈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자 한다. 부모와 자식간의 정이 예전 같지 않은 요즘이라 이런 글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이 수필 역시 문학적 감동은 제재와 주제의 상관화에서 나온다. 그녀는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제재인 누워있는 옷을 통해서 발견한다. 독자에게 연상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상관성 있는 제재를 선택하고 그 제재와 자신의 체험을 버무려 그 속에 주제를 구현하는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
작가는 누워있는 옷에서 고된 삶의 껍질을 벗어 던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쨌든 인간에게 생사의 문제란 최대의 난제이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또한 죽음을 이긴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최순덕 수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생사에 대한 사고와 감성이 유례없이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당수의 작품에서 암의 공포와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투의 시간이 그려진다. 최순덕이 자신의 수필에서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대 문학은 죽음의 고찰에서 비롯되었으며 현 세기의 문학 세대를 식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바로 죽음의 사실에 반응하는 그 방법 여하에 있다고 한 루이스의 지적이 최순덕 수필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중되고 있는 셈이다.
정신적으로 안주할 수 있는 과거와 약속된 미래에의 가능성으로부터 단절되어 버릴 때 일반적으로 죽음의 의식은 싹을 틔우게 된다. 지올코우스키는 현대문학의 차원에서 죽음이 현저해진 요인은 바로 사회적인 붕괴의 시대에 있어서 가장 격렬해진다고 보고 있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되면서 신념의 갈등과 마주치게 되면 죽음의 의식은 개개의 인간 정신에 불안하게 다가오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삶이 끝나면 어찌 되는가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나 인생에서의 죽음이 특수한 관계성이므로 어느 누구도 어느 곳에도 시원한 답변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그 시간이 눈앞에서 전개된다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삶에 마지막 종말로서의 죽음이 살아남은 자의 현실적인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유난히 정이 많은 작가에게 있어 부모의 죽음은 유난히 아픈 기억이 되어 뇌리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2. 생존의 무거움을 벗어 던진 구원의 터전
수필의 주제는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하는 문제, 가슴 깊이 담아두어야 할 가치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수필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올바르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수필가는 워드워즈가 말한 "모든 시인은 교사다"라는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수필은 인생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시킴으로써 바른 인생의 길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즉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모색이 있어야 한다. 더 이상 '개인적'이라는 이유로 사실에 머물러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면 좋은 수필이 못된다. 최순덕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믿음, 소망, 사랑의 가르침을 생활의 지침으로 삼아 구도자적인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다.
지식이나 관념의 노래라기보다는 일상의 소중한 체험에서 지혜를 건져낸 글이기에 그녀의 수필은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향기가 풍긴다는 게 강점이다. 그녀 수필의 특징은 도입부부터 평온하다는 점이다. 자연의 서정이 물결치는가 하면 인정의 넉넉한 품이 있어 좋다. 그냥 스쳐 지나는 인연도 예사롭게 여기지 않고, 긍정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삶에서 희망의 여운이 보인다. 긍정을 향한 신심은 자기 존재의 성찰과 인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완성에 이르는 구도의 길에서 찬연한 꽃을 피우고 있다. 모든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긍정적 인생관과 선의 경지는 그녀의 수필을 포근한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따스하게 한다. 그러하기에 수필은 언제나 생명력이 넘친다. 딸에 대한 사랑과 가족애도 물결친다. 이런 온정이 책장을 잘 넘어가게 하는 요인이다. 그녀의 글은 인간 사회 숨겨진 진실과 나상을 보여주는 주제의식을 참신한 관조로 끄집어내기에 감동을 준다.
딸이 결혼을 하고 시드니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여 바로 이웃에 사는 듯 얼굴도 보고 목소리도 듣는 좋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어미의 걱정은 끝이 없다. 살기 좋은 도시로 첫 번째 손꼽히는 세계적인 도시 시드니에서의 신접살림이 녹녹하지만은 않은 눈치다. 깨끗한 환경과 아름다운 경치를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언어의 장벽을 등에 업고 고물가와 씨름하며 엄청난 주거비까지 감당하며 어찌 사는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내 눈에는 온통 고생이고 걱정이다. 정작 본인은 새롭게 주어진 기회에 가슴이 설렌다고 너스레를 뜬다. 새댁 학생으로 영어 공부에 열중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젊음과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부모 그늘의 지난날을 훌훌 벗어 던지고 자립의 뿌리를 내리는 한 그루의 튼실한 유칼립투스 나무가 되기를 빌 뿐이다.
딸에게는 더욱 부족한 엄마였다. 딸을 생각하면 나쁜 짓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부끄러워진다. 딸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말을 딸이 듣기만을 바랬으니까. 딸의 생각보다 더 어리고 유치한 생각으로 얼마나 딸을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틀을 고집하는 어미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딸은 언제나 평행선을 달렸고 서로에게 상처만 안겨주었다. 남들이 인정하는 딸의 좋은 점을 왜 미처 보지 못했을까. 모든 것이 부모의 자식사랑이라는 변형된 욕심 때문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반대의 계절인 그곳에서 껍질 벗은 나무의 여린 살을 따스한 봄 햇살과 바람이 살랑살랑 보듬어주는 것을 보았다. 딸에게도 너무 세지 않은 그런 부드러운 바람이 불면 좋겠다.
- <껍질 벗는 나무> 중에서 -
위 수필은 화자의 소박하고도 진솔한 소망과 함께 삶에 대한 의미를 다독이는 존재의식의 천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미의 걱정은 끝이 없다.’, ‘내 눈에는 온통 고생이고 걱정이다.’, ‘딸에게는 더욱 부족한 엄마였다.’, ‘얼마나 딸을 힘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등 이 모든 진술이 갖고 있는 이미지의 실상은 필자의 자녀에 대한 진솔한 반성의 모습이며, 구원을 향한 모습이며, 심상에 있는 그림자 형상의 분신들이다. 호주의 시드니에 결혼을 해서 정작한 딸이 어렵게 사는 모습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어떻게 이 정도로 클까. 작가는 ‘껍질 벗은 나무의 여린 살을 따스한 봄 햇살과 바람이 살랑살랑 보듬어주는 것을 보면서 딸에게도 너무 세지 않는 그런 부드러운 바람이 불면 좋겠다는 결말부 마지막 한 문장은 압권 중에 압권이다. 최순덕의 수필이 감동적으로 읽히는 것은 제재를 감정이입의 대상으로 삼는 데 있다. 부드러운 바람은 자신이며, 동시에 자연이다. 이 작품 역시 ’껍질을 벗는 나무‘를 제재로 해서 전개되는, 딸에 대한 따스한 정이 묻어나는 글이다. ’딸에게도 부드러운 바람이 불면 좋겠다‘는 그녀의 일성이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거늘 그녀의 너무나 헌신적인 그리고 열린 마음은 우리의 눈물샘을 자꾸만 자극하는 것이다.
III. 아웃 out
본격수필의 깃발을 당당히 들고 수필의 길에 나섰으니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삶의 풍경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데 전념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두 수필이 이만한 품격을 갖춘 것은 그만큼 진지하게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수필은 수필적인 생활에서 찾아지는 법이다. 살아오면서 자연을 통해 희망과 긍정의 소중함을 그려내는 휴머니즘 수필에서부터 모성적 그리움이 물씬 풍기는 수필까지 다양한 세계를 확보하고 있는 그녀의 수필 영토를 작가적 삶에 연계시켜보면 그녀의 인생관과 삶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앙인으로 작가로서 또 교육자로서 그리고 모범적인 주부로서 누구보다도 깨어있는 자세로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족사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 작가의식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등 그녀는 수필의 사회적 역할에도 배려를 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한마디로 그녀의 수필들은 마치 생광하게 빛나는 갈참나무 잎새처럼 그녀의 삶에 윤기를 흐르게 한다고 할 수 있다. 교육자로서 절실한 교인으로서 성실하게 살아온 인생이 작품에 투영되어 있어 그녀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정이 많기로 시골의 우물이 있는 집의 주인 같다. 받으려고 하는 마음보다 언제나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다. 최순덕 수필은 예지와 성찰이 내재되어 있어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수필가 최순덕의 눈은 사물의 내면으로 향하기 때문에 시선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뚫고 사물의 본질로 향한다. 그래서 다양한 제재 속에 숨어 있는 인생사의 진리를 발견해 내는 데 성공한다. 한 편의 수필을 창조하는 데에는 내적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 삶의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글을 읽고 감동할 사람은 없다. 이런 측면에서 제재의 이미지에 현실의 모습을 오버랩시키는 그녀의 전략은 늘 성공한다.
수필은 완성의 문학은 아니다. 어쩌면 완성을 향해 가기 위해 우리는 수필을 쓰는지도 모른다. 주제적 장르로써 수필은 무엇보다도 주제의 내면화를 요구한다. 최순덕은 수필의 제목을 제재로 정하고, 수필의 결미를 여운적으로 처리함으로써 본격수필이 요구하는 작품 외적 조건을 나름대로 충족시키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모자람이 없다. 가족을 다루면서도 가족사적인 문제에 머물러만 있지 않고 시선을 자기 안으로 가져간다. 가족에 그리움을 흘리고 따스한 체온을 전해주는 작가이기에 우리는 그녀의 다음 작품에 더 기대를 걸 수가 있는 것이다. 최순덕 수필가가 걷는 인생의 길은 구도의 길이니만큼 더욱 더 문학성을 갖춘 작품을 써내리라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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