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시는 행시와 다르게, 1차시험일과 2차시험일의 간격이 1달정도밖에 안된다. 그나마 1차합격자 발표가 있고 나서는 일주일 정도 후에 2차시험을 보게 된다. 때문에 1차합격에 자신이 없으면 소중한 한달을 허송세월하기 쉽다. 그래서 1차합격의 결과에 상관없이 2차에 대비하는 것이 정석이라고는 한다. 하지만 사실상 심리적으로 그러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나또한 그러했다. 막상 일주일뒤에 2차를 본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의미없이 보낸 한달이 아쉬웠다. 그동안 2차시험 대비도 많이 했는데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남은 일주일이나마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 계획을 세웠다.
일단 아침에 영작문과 일작문을 집중적으로 두시간씩 연습하고, 기출문제와 모범답안을 구해서 그대로 따라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 답안지 작성하는 요령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필사라도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좋은 경험이 되었다. 단순한 필사라도 답안지를 작성하는 데 겪는 문제점을 체험할 수 있었다.
예컨대 목차는 어떻게 잡을 것인가, 글자크기는 어떻게 맞출 것인가, 여백은 어떻게 줄 것인가, 분량은 어떻게 할당할 것인가 등등..
이럭저럭 금새 시간이 가고 2차시험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모든 문제가 나에게는 황당하게 느껴졌지만, 목차를 떠올리며 최대한 관련있어 보이는 "주소"를 찾아서 답안을 썼다. 암기형 문제보다 응용문제가 많아서 나름대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답을 썼던 것 같다.
2차시험이 끝나고 일단 푹 쉬었다. 한달후 합격자발표가 있었다. 은근히 기대도 했었는데 명단에는 내가 없었다. 역시 붙을 거라고 확신했던 몇몇 선배가 합격했다. 되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 이런 것 같다. 점수를 알아보니 커트라인에서 평균2.8점 낮은 점수였다. 예상대로 외국어에서 고득점을 하고 전공인 국제정치학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5달간 줄기차게 공부했던 경제학에서도 예상외로 좋은 점수를 받게 되어 좋은 자극이 되었다.
0.1점 차이로 떨어지는 사람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이정도 차이는 매우 큰 것이지만, 아직 제대로 2차공부를 하지도 않았는데 꽤 잘봤다는 생각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내년에 있을 2차시험에 좀더 체계적으로 대비하기로 했다.
VI. 배운 것을 정리하던 시절
5월말에 2차시험 발표가 있고나서 한달을 푹 쉬었다. 3차시험 발표가 끝나고 2001년도 외시일정이 모두 지나게 되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한 일은 국제법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국제법은 경제학을 주로 공부하던 시절에 틈틈이 봐두었던 과목이고, 1차시험을 대비하면서 1,2차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2차문제에 단골로 출제되는 케이스문제를 늘 봐두었다. 소위 legal mind를 기르기 위해서는 역시 case문제를 자주 접해보는 게 상책이다.
6월말이 되면서 슬슬 여름향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7월이 되자 너무 더워서 공부하기가 힘들어졌다. 이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전년도에는 2차공부를 할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에 밤을 도와가며 책을 보았지만, 당해에는 왠지 마음 한구석에 2차시험 점수가 좋았다는 자만심이 싹텄기 때문에 공부의 강도가 예전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해 여름은 영어, 일본어를 꾸준히 하고 국제법 교과서를 차분히 일독한 것 외에는 별다른 공부는 하지 못했다. 나는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쉰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때에는 많이 쉬었던 것 같다. 심할때는 금요일 점심부터 월요일 저녁까지 책을 안들여다본 적도 있었다. 왠지 그해 2차에 합격할 수도 있었는데..하는 쓸데없는 후회에 빠졌던 날도 있었다.
80점을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재정학이 예상외로 40점대의 저조한 점수를 기록했기 때문에 불합격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재정학만 평균대로만 나왔어도 합격이었는데..하는 아쉬움이 매우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지난일을 어쩌랴. 만에 하나 합격이라고 하더라도 하위권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위로가 되기도 했다.
느슨하게 공부를 하다보니 어느새 9월이 되었다. 갑자기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는 것을 깨닫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불합격의 원인이었던 재정학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시작한 것이 서브노트 작성이었다.
아침에 외국어를 공부하고 점심부터 재정학의 한 chapter를 숙독하고 저녁에 노트에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밑줄친 B5크기 용지를 구해서 한 chapter당 4~5장 정도로 요약을 했다. 재정학은 경제학과 관련이 깊은지라, 재정학을 정리하면서 경제학도 같이 요약을 하기로 했다.
예상외로 서브노트를 만드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2월말까지 서브노트를 쥐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서브노트는 다 만들고 나서 보는 것보다는 만드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이 충분히 이해한 연후에 만들기만 한다면 늦게 완성되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12월말이 되면서 재정학, 경제학 서브노트가 대략 완성이 됐다. 두께 4~5센치 짜리 바인더 하나에 재정학, 경제학이 모두 들어가게 되니까,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되었다. 그 많은 책들이 소화되어 나의 목소리로 정리가 되었다는 것을 바인더 한권의 무게로 느끼게 되니까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
대충 재정학-경제학 서브가 완성이 되고나서는 곧바로 국제법-국제정치학 서브노트를 같은 방법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국제법 역시 한 chapter를 기준으로 만들어 나갔고, 국제정치학은 주요 이슈를 내 나름대로의 mind-map에 따라 정리를 했다. 특히 외교사 서브는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다.
국제법은 여름에 억지로나마 공부해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서브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2월말까지 그작업을 계속하고 틈틈이 외부교수님들이 하는 외시특강도 열심히 쫓아다녔다. 교수님 특강을 통해 예상문제를 잡아낼 수는 없지만, 교수님들의 시각은 수험생보다 훨씬 세련된 것이기 때문에 접해볼 필요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3월이 되면서 완성된 서브노트를 돌려보면서 미흡한 부분은 메모 형식으로 보완해나갔다. 이제는 02학번 후배들을 볼 수 있었지만 덤덤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가 종착점처럼 느껴졌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학교는 결국 학교라는 평범한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때는 흔히들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야한다면서, 방에 틀어박혀 고시공부하는 사람들은 뭔가 꽉막힌 삶을 산다고 보는 경향이 분명히 있는데, 사람마다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2년여의 수험기간이 지나면서 확실히 지적능력이 향상됨을 느낄 수 있었다. 혹자는 고시공부라는 것이 따지고보면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단순노동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으나, 어학, 법,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여러 과목을 공부하다보면 여러 영역을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이 반드시 생긴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신문이 이해가 되고, 특히 국제이슈를 나름의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소박한 기쁨을 외시공부를 안해본 사람은 모른다.
생각해보면, 좋은 대학/좋은 과에 입학하여 별달리 공부를 하지 않은채 학점이나 대충 따면서 졸업을 하면 그동안에 잊지못할 추억거리는 많이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상태로 졸업을 하고나서 스스로 좋은 학교/좋은 과를 나왔으므로 자기는 수재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상태로 대학을 졸업한다면 수학정석 몇문제 풀줄 알고 기초 영단어를 암기하는 고등학교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진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고시공부 자체가 시험에 불합격한다고 해서 전혀 무익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4월이 되고 시험날이 닥쳐왔다. 전년도와 같은 시험일정이었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시험을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예상치 못한 문제, 도저히 분량을 채울 양이 안되는 작은 문제, 쓸 내용이 너무 많아서 주체할 수 없는 문제, 단순암기문제, 고난도 응용문제 등등 여러 유형의 문제가 출제됐다. 그러나 2차시험은 늘 그렇다. 그리고 자기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남들도 똑같다. 초안은 10분에서 15분정도 잡고 여백을 적절히 활용해서 답안지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쓰려고 노력했다.
마지막날 일본어 시험을 종료하는 종이 울리면서 시험장을 나왔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가슴이 후련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 푹 쉬었다. 그리고 다음날 기숙사로 가서 짐을 꾸렸다. 봄날이라 날씨도 따뜻해서 더 후련했던 것 같다. 합격자발표가 있기까지, 그동안 못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잠도 자고 싶은만큼 마구 자면서 보냈다.
VII. 합격
5월말이 되고, 합격자발표날이 가까워왔다. 그동안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시험 때문에 가슴이 좀 무거워졌다. 오후 2시에 인터넷으로 합격자발표가 있었다. 발표나기 5분전부터 접속해서 새로고침 단추를 계속 누르면서 기다렸는데 한순간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제36회 외무고등고시 2차시험 합격자발표"가 떴다.
용감하게 클릭을 했다. 명단에 조그맣게 내 이름 석자가 있었다.
인터넷에 이름 하나 올리기가 이다지도 힘들다니..
VIII. 고마운 사람들
합격한 후 한동안 즐거웠다. 기쁨이 진정되고 나자 나를 도와줬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아들이 하겠다는 일에 말없이 힘을 실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싶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가족의 소중함을 늘 느끼게 해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훌륭한 학교강의를 해주신 연대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실명을 밝히는 것이 결례가 될 것 같아 이름을 나열하기 어렵지만, 같이 공부하며 도움을 준 선배, 후배, 동기들에게도 깊이 감사한다. 학교특강, 학원특강에서 뵈었던 교수님들, 강사님들도 나의 합격에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끝으로 초보시절 외시정보를 모으는데 도움을 주시고 이렇게 글을 쓸 기회를 주신 자유인님께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첫댓글 님의 합격수기... 특히, 징용온 것도 아니고.. 고시공부도 해볼만 하다는 점..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화이팅.!!!
좋은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몇년안에 부서 내에서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렵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후회가 없다는 말다라는 말이 있더군요.
바쁘실 텐데 좋은 합격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동적인 합격 수기입니다 ! 머지 않아 꼭 같은 건물에서 일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와~ 대단합니다...존경스럽고요,,,수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태해질 수 있는 순간에.. 3편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잠시나마 1차, 2차, 그리고 최종의 순간까지,, 그 순간들을 한번 그려보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는 것이 은근과 끈기겠죠~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저도 화백실 들어가고싶은데,,ㅡㅡ;; 어떻게하면 들어갈수 있을까요? 정보가 전혀 없어서여ㅜ.ㅜ
마음을 고쳐잡을 수 있게 해주신 소중한 합격기.. 고맙습니다.
멋있습니다..
지금은..외시1차 하루 전날밤..수기를 읽으니..코끝이 시큰해지네요.."인터넷에 이름 하나 올리기가 이다지도 힘들다니..."이 부분..정말 공감합니다...내일 1차 보시는 모든 분들..시험 잘 보세요..파이팅!!
눈물이 핑 도는 수기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멋지세요! 감사합니다~
멋져요 멋진 외교관되셈
-_-근데 도대체 서브노트란게 뭐죠? 요약정리 해놓은 노트를 말한건가요?
멋져요!! 마침 나태해지고 있었는데... 이거 읽고 나서 자극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