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성동구청 기독신우회 수요예배
설교 계획
성동구청 기독신우회의 설교를 인도한 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나는 신우회 설교를 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앙의 기본을 먼저 다루었다. 그것은 ‘기독교인은 무엇을 믿는가?’라는 시리즈다. 그것이 2023년도 설교 주제였다.
그후 작년 2024년도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루었다. 즉, 하나님의 아들, 어린 양,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다루었고,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라는 주제로 6회,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주제로 3회 다루었다. 그 후에는 시국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즉, 파리올림픽과 차별금지법 제정 논란과 관련하여 설교를 했다. 이 과정에서 큰 시련을 겪기도 했다.
작년 말에는 교회의 설교를 요약하여 다시 전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지난 1년도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민했고 잠시 기뻤고 그리고 다시 혼란에 빠졌다. 갈등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사는 것이 본래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류시화의 글에 이런 것이 있다: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그 다른 인생의 기쁨은 부스러기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작년 말에 나는 설교의 용기를 잃었다. 그 이유는 내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청중의 반응이 너무 싸늘했기 때문이다.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때 청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지루한 설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설교자는 하나님과 청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이방인일까, 아니면 그 둘을 연결하는 중매쟁이일까? 아니면 설교자도 청중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로서 서 있는 것일까? 아마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2025년도에 나는 매 순간 우리 시대의 과제에 충실하고 싶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무엇인지 구별해 내고 그 문제에 대한 바른 길은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서 찾아보자.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결론이나 열매를 회원들과 나누면 좋겠다.
금년 1월 현재 우리의 문제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탄핵 소추가 진행 중이다. 헌재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회도 양분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이런 문제는 우리 안에 잠재해 있었는데 이번에 그것이 수면으로 솟아났다고 할 수 있다.
정치나 공적인 영역에서 신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스도인은 공직자로서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현재 목회자들 가운데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많이 다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교회는 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두어야 하며 공공의 자리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의 신앙은 순전히 사적인 영역의 문제일까?
나는 이 문제를 좀더 솔직하게 직면해 볼 것이다. 그리고 본질을 회피하지 말고 성경을 가지고 씨름하되 오늘에 필요한 길을 찾아볼 계획이다. 우선, 문제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일까? 정치 참여가 문제일까, 아니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문제일까? 성경에서 정치적 견해를 찾으려는 태도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닐까? 아니면 우리는 성경을 정치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너무 게으르게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사생활과 공적인 삶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두 영역은 모두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저기 날뛰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만 할까?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 나라는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그 둘 사이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수록 우리는 점점 복음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만큼 복음은 힘을 잃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 주일낮예배 때 강단에서 느꼈던 그 느낌은 마치 허공을 치는 권투선수의 동작과 같았다. 현실과 괴리된 메시지를 정신나간 사람처럼 읊조리는 나를 본 것 같았다.
최근에 나는 사람에 대한 성경의 해설에 주목하자고 설교했다. 그리고 성경이 들려주는 이 세상의 그림에 대한 이미지를 마음 속에 그리며 세상을 바라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 두번째 이야기는 훨씬 더 빈약하다고 느꼈다. 강단에서 그렇게 느꼈다는 말이다. 어쩌면 나와 청중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생각과 너무 다른 내용이기에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삶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삶은 늘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고 하는 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 곳과 먹을 양식을 준비하는 일, 그리고 즐겁게 지낼 행사를 마련하고 그것을 치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우리는 자라고 소통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삶과 목회를 세우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인 이슈에 매몰되지 말고 도리어 일상을 바르고 건강하게 세워 나가는 일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1월은 구청의 인사이동이 있는 시기다. 어떤 이들은 자리를 옮겨 갔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새롭게 배치되어 올 것이다. 그러니 1월은 새롭게 세워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1월뿐이랴? 우리의 일생은 그렇게 세우고 돌보고 가꾸는 일로 이루어진다. 그런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겠는가?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구호만을 반복하지 말고 따뜻한 마음으로 실천할 작은 일들에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에 이 세상이 하나님의 세계이며 하나님은 이 세상의 번영을 바라신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더 멋지고 더 유익하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의 성경에서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설교를 진행해 보자.
나는 최근에 성경을 관통하는 주제에 대하여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그것은 톰 라이트의 강연을 바탕으로 된 것인데, 그 주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과 이 세상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그 중심에 성전을 세우셔서 거기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나님의 원수가 있다는 점, 그리고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 등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나가고 있다. 나는 이 주제를 다루면서 지난 해에 시작한 계획을 완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바이블 시놉시스’(Bible Synopsis)를 집필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지난 해에 하고 있던 설교를 계속 이어 가기로 결정했다. 대신에 지금 고민하는 주제들을 좀더 잘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