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의상대사
범어사를 창건한 의상대사(義相大師625년~702년)는 20세에 경주 낭산 자락에 있는 황복사(皇福寺)로 출가하였다.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留學을 가고자 마음을 먹고, 요동 땅을 지나다가 변경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정탐자로 오해를 받아 수감되어 있다가 풀려나 돌아왔다. 10년의 세월이 지나서 다시 유학의 길에 오른다. 지금 경기도 평택의 수도사 근처에서 하룻밤을 자다가 원효대사는 해골 바가지 물을 마시고 그 다음날 쿠토를 하다가 크게 깨닫는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심멸즉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을 깨달았다. 원효대사는 신라로 돌아오고 의상대사는 중국 등주登州로 가는 배를 타고 가게 된다. 등주에 도착한 의상대사는 탁발을 하다가 유지인를 알게 되고 그의 딸 선묘낭자를 만나게 된다. 그들의 도움으로 종남산 지상사至相寺에 무사히 도착 할 수 있었다. 지상사는 화엄 2조 지엄스님이 계시는 곳이다. 지엄스님은 의상대사를 보고 내가 수 일전에 꿈을 꾸었는데 “큰 나무 한 그루가 해동에서 나서 가지와 잎이 넓게 우거져 중국에 까지 와서 덮었다. 그 나무 위에 봉황새의 보금자리가 있었으므로 올라가보니 한 개의 마니보주摩尼寶珠가 있었는데 빛이 멀리 비치는 것이었다. 꿈을 깬 후 놀랍기도 하고 이상했는데 그대가 나에게 올 징조였구나”하였다.
지엄스님을 모시고 10년을 공부한 의상대사는 졸업논문을 쓰게 된다. 화엄경의 요체를 담은 대승장大乘章 10권을 만들어 지엄스님에게 전달하니 스님이 읽어 보더니 뜻은 좋은데 말이 너무 옹색하다고 하면서 마당에 나가서 장작불을 피우라고 한다. 지엄스님은 의상의 저술 대승장 10권을 모두 불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의상대사를 데리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부처님이시여! 당신의 뜻에 맞는 글자는 불에 타지 않게 해 주소서”하고 기원을 하였다. 대승장 10권 가운데 타지 않고 밖으로 밀려 나온 경문을 집개로 모아서 의상에게 주면서 이 글자를 가지고 화엄경에 계합하는 문장을 만들어 보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육신을 화장하여 불사리가 나오듯 대승장 10권이 모두 불에 타고 남은 210자를 가지고 조합하여 만들어 진 것이 오늘날 그 유명한 <법성게法性偈>이다. 때문에 법성게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같은 구절이요 게송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 가운데 영주 부석사浮石寺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찰이다. 서산에 가면 부석사가 또 있다. 얼마나 유명하면 똑 같은 이름의 절이 2개나 있을까? 영주 부석사는 법당이 무량수전이고 본존불은 아미타불이다. 의상대사는 화엄경을 공부하였고, 그러면 법당이 대적광전이고 비로자나불을 모셔야 하는데 왜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모셨을까?
그 해답은 여기에 있다.
의상대사의 제자 가운데 한 스님이 죄를 짓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절을 떠나 유행하게 되었다. 절(부석사)은 떠났지만 존경하는 스승 의상대사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승님을 불상 모시듯 나무로 존상을 만들어 걸망에 지고 다녔다. 이 소문을 들은 의상대사가 사람을 시켜 그를 데려오게 하였다. “내가 소문을 들으니 그대가 나의 존상을 만들어 걸망에 지고 다닌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일생동안 서쪽에 계시는 아미타불을 등지고 앉아 있지 않았다. 이 존상이 나와 같다면 반드시 그럴 것이다”하고 걸망에 있는 존상을 서쪽을 등지게 하고 앉혔는데, 존상이 스스로 몸을 돌려 서쪽을 바라보고 앉았다. 의상대사가 얼마나 아미타불을 존경하고 예경 하였으면 이같은 현상이 생겼을까?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다.
중국 당나라 백낙천의 염불게念佛偈를 한번 보자
내 나이 일흔 하나인데 다시는 풍월를 일삼지 않으리 余年七十一 不復似吟哦
경전은 안력眼力만 소모되고 작복은 분주하게 다녀야 하네 看經費眼力 作福畏奔波
무엇으로 심안心眼을 제도할가? 한 구절 아미타가 있도다 何以度心眼 一聲阿彌陀
걸어가도 아미타 앉아 있어도 아미타 行也阿彌陀 坐也阿彌陀
바쁘기가 화살 같아도 아미타를 떠나지 않겠네 從饒忙似箭 不廢阿彌陀
달인들은 분명 나를 보고 웃으며 아미타를 뿌리치겠지. 達人應笑我 多却阿彌陀
통달하면 어찌되고 통달하지 못하면 또한 어떤가? 達又作麽生 不達又如何
모든 사람들에게 권한다 오르지 아미타불만 염하라 普勸法界衆 同念阿彌陀
우리나라 관음신앙은 의상대사에 의하여 시작 되었다. “의상대사가 낙산사 홍련암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자 14일을 기도 했는데 성용聖容을 볼 수 없자 몸을 절벽 아래로 던진다. 이때 동해용이 대사의 몸을 받아 원래 있는 곳으로 모신다 그리고 관음진신이 나타나 친견할 수 있었다” 의상대사는 투사례投師禮를 강조한다. 존경하는 스승에게 내 몸을 던져 예경한다는 것이다. 의상대사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종교적 체험을 요구한다. 당신처럼 몸을 절벽 아래로 던지지는 못하지만 신명을 받쳐 기도하여 체험하라고 한다. 이것이 의상대사가 던지는 투사례 메시지이다. 행행본처行行本處 지지발처至至發處,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모두 의상대사의 주옥같은 말씀이다. 의상대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최후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투사례投師禮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창건한 범어사에서 우리는 투사례投師禮의 깊은 의미를 한번 더 생각 해 봐야한다.
2017년 4월 9일 범어사 설법전에서 법문
첫댓글 부처님께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예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욕망과 분별심에 벗어나지 못한 이중생 어찌하오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