逆鱗(역린)
이 말은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에 나오는 말로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인데 건드리면 용이 날뛴다는 용의 급소를 가리키며,
신하가 왕의 약점을 거론하면 왕의 분노를 사게 되어 큰 화를 입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춘추시대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라는 사람이 있었다.
위나라 법에 왕의 수레를 몰래 타는 자는 발을 자르는 형벌에 처하게 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병이 들자 그는 왕의 명이라 속이고 왕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위왕이 이를 전해 듣고
‘효자로다! 어머니의 병 때문에 발이 잘리는 벌을 받는 것조차 잊었구나’라고 칭찬했다.
그 후 어느 날 미자하가 왕과 함께 과수원에 갔는데 복숭아가 너무 맛있어
다 먹지 않고 그 반쪽을 왕에게 주었다.
그러자 위왕은 ‘미자하는 나를 사랑하여 맛있는 것도 제가 다 먹지 않고
나에게 먹게 하는구나’라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 후 미자하에 대한 왕의 총애가 식었을 때 미자하가 벌을 받을 일이 있었다.
왕은 ‘이자가 그전에 나를 속여 내 수레를 몰래 탄 일이 있고, 자기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먹인 일도 있었다’라고 말하며 그를 내쳤다.
왕의 태도가 바뀐 것은 전에는 미자하가 총애를 받았고
지금은 총애가 식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윗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주는 것으로 간언을
할 때도 왕이 자신을 총애하는지, 미워하는지 잘 살핀 후에 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용(龍)은 길들여서 사람이 탈 수 있지만
용의 턱밑에 직경 한 자 정도의 거꾸로 박힌 비늘,
즉 역린이 있어 만일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용은 분노하여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고 한다.
조선 21대 영조대왕의 어진(御眞) (보물 제932호)
조선조 영조 대왕은 그가 무수리 숙빈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이 그의 역린이었고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라는 역사책에서 한문제(漢文帝)가 ‘짐은 고황제의
측실(側室, 첩) 소생이었다’라고 적힌 구절을 싫어했다.
어느 날 세손 정조에게 요즈음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세손이 별 생각 없이
통감강목 제4권을 읽고 있다고 하자 ‘그 책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구절이 있는데도
읽었는가?’하고 또 물었다.
그러자 영민한 세손 정조는 ‘그 대목은 찢어놓고 보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영조는 내관에게 동궁에 가서 그 책을 가져오라는 명을 내렸다.
마침 동궁전에 있던 세손의 측근 홍국영(洪國榮)이 내관이 책을 가지러 왔다고 하자
얼른 영조의 뜻을 알아채고 통감강목의 그 구절이 있는 페이지를 찢고 책을 내주었다.
세손 정조는 홍국영의 기지로 왕을 기망(欺罔)한 죄를 극적으로 피하였고
오히려 영조로부터 기특하다며 사랑을 더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사실 크고 작은 역린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상대방의 약점이나 꺼려하는 말을 하는 것, 또는 신체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은
자칫 역린을 건드리는 것과 같아 자칫 관계를 망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가령, 오랫만에 만난 사람에게 ‘어디 아파보이는데요?’, ‘왜 이렇게 살이 쭉 빠졌어요’,
‘얼굴이 까매지셨네요’ 등 무심코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는 아무런 유익함이
없을 뿐 아니라 불쾌감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역린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