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라임열(羅林烈) - 나는 아버지와 함께 울었다
4. 남례권사를 중심한 울릉도교회 창립
1 강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은 발이 땅에 닿는 건지 나는 건지를 모를 만큼 상쾌하고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날 밤 그 권사가 다른 부인 한 분을 데리고서 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왔다.
2 창조 원리의 일부를 강의했는데 어떻게나 잘 받아들이는지 내가 강의를 하면서 은혜 속에 불을 받기도 했다. 이날부터 나흘간 밤 강의를 하였고 8월 28일 주일엔 입도(入島)한 지 한 달 만에 새식구를 얻어서 그 권사 댁에서 첫 예배를 보았다. 예배 식구는 권사와 집사 한 분과 권사의 장남과 나까지 합하여 모두 네 사람이었다.
3 그런데 이분들의 부탁은 기성교인들의 이목이 두려우니 새벽 기도 시간(오전 4시)에 권사 댁으로 와서 원리 강의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뜻있는 사람들을 집으로 모이도록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4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생각을 해보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어릴 때부터 내일 몇 시에 일어나겠다고 해놓고 정확하게 일어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5 그래서 나는 탁상시계 하나를 준비했었지만 현 일신석재 유 사장님이 속초로 전도를 떠나면서 “무슨 시계를 두 개나 갖고 있느냐”라며 달라 하시기에 드린 것이 생각나 아쉬웠으나 도리가 없다.
6 나는 자리에 들기 전에 하나님께 간단한 기도를 드렸다. “아무쪼록 아버님께서 내일 새벽 시간에 늦지 않게 가서 강의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새벽에 누가 깨워 주는 것 같아 놀라서 깨어보니 주변엔 아무도 없고 시계는 새벽 4시 10분 전이었다.
7 이와 같이 신기하고도 세심한 하늘의 보살피심 속에 전후편 원리 강의를 새벽시간에 다 할 수 있게 되어 일생 잊을 수 없는 은사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창조원리를 전부 마치게 될 무렵은 각 교회의 집사 권찰 등 모두 10여 명이 청강하게 되었는데 타락론을 듣고는 내가 돌아 온 이후 몇 사람의 부인들이 아침도 하지 않고 통곡했다는 것이다.
8 인류 역사 이후에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 사탄의 정체와 인간의 원죄를 중심한 타락의 전모를 이 세상에 선포하신 분은 비범하신 분임을 알고 원리를 펴신 선생님의 천적인 위치를 스스로 깨닫기에 이르렀다.
9 그러나 권사로서는 말씀을 듣고 보니 의심할 여지는 없으나 최종적으로 기도로써 응답을 받기 위해 밤에 기도 가운데 “통일교회는 어떠한 곳이며 통일교회 전도사의 말씀을 계속 들어도 됩니까”라고 여쭈어본즉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요한복음 6장 16절에서 20절을 보아라”라고 말씀이 있어서 성경을 펼쳐보고 “……내니 두려워 말라”라는 말씀이 있었다.
10 또 “통일교회는 하늘의 뜻으로 세워지는 교회입니까, 그리고 그분은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분입니까?” 하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고서야 통일교회의 입교를 확고하게 결정짓게 됐다. 이 분이 나의 후임으로 다년간 울릉도에서 지역장으로 시무한 남례(商禮)권사이다.
11 하루는 새벽에 원리 강의를 마치고 난 후 황 집사가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묻기에 라임열이라고 대답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손뼉을 치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느냐?”라고 했더니 “울릉도에 나 장로님이 들어오시도록 7년간을 기도해 왔는데 하늘에서 통일교회의 라 선생님을 보내 주셨다”면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12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금부터 3년 반 전에 기도 중 환상을 본 것을 얘기하는데, 울릉도 성인봉에 횐 옷 입은 모습으로 “내가 울릉도에 모병을 하러 왔다”라고 하던 나 장로님의 모습이 몇 년 전 용문산에 가서 은혜를 받던 그때의 나 장로님이 아니고 지금 자세히 선생님을 보니 환상에서 본 나 장로님이 바로 라 선생님이라고 했다.
13 그렇다! 과연 옳게 받은 새시대의 계시임이 틀림없다. 우리들이 지상천국 건설을 위하여 사탄을 무찌르기 위한 천군을 모병하는 것이 전도가 아니고 무엇이랴.
14 남 권사를 위시해서 울릉도의 몇몇 뜻있는 교인들이 나에게 전도 받기 전에 울릉도의 분열된 기성 교단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나 장로님을 모셔다가 심령 부흥회를 열면 될 것이라고 믿고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7년간을 기도하면서 수차 용문산으로 연락한 결과 나 장로로부터 일자만 정해서 통지해 달라는 연락이 원리를 듣고 있는 기간에 비로소 온 것이다.
15 나는 취소할 것을 얘기했으나 도의적인 면에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성구를 인용하면서, “그는 이미 새시대의 섭리노정에서 우리 교회를 악랄하게 핍박하고 있는 자이므로 만일 그가 이곳에 와서 집회를 한다면 그의 화살은 통일교회로 집중될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도민들은 새말씀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히고 말 것이니, 울릉도에 들어오는 것을 나 장로로 하여금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라는 권고를 하자 모두들 잘 이해하였다. 그때의 취소 전문은 다음과 같다. “각 교회 지도층에서 나 장로님의 왕림을 반대함. 죄송. 남례”
16 드디어 입도한 지 만 2개월 되는 9월 28일 새벽 시간에 행한 재림론 강의로 전후편 원리 강의를 일차로 전부 끝맺었다. 이리하여 나 장로의 입도를 위하여 함께 정성의 기도를 7년간이나 드리던 세 사람(권사 1명 집사 2명)은 차례로 뜻길에 입교를 하여 울릉도 교회의 중심 식구가 되었다.
17 그런데 이와 같이 교회의 기반이 확보되면서 전도가 정상적인 궤도로 진입되자 기성교회의 핍박의 역사는 이성을 벗어난 지경으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통일교회 청년을 육지로 나가는 다음 배로 나가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18 그때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죽여서 시체를 배에 실어두면 얹혀서 나갈지 몰라도 결코 울릉도에다 교회를 세우기 전엔 핍박 때문에 살아서 내 발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것을 밝혀 두었다. 하늘의 뜻을 알고 인생의 갈 길을 깨달은 나는 하늘의 일선에 서 있는 전초병으로서 사탄편의 발악적인 협박에 굴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19 한편 기성교회에서는 남 권사의 사위되는 집사를 통해서 권사를 통일교회에서 손 떼도록 하면서 일면으로는 나에게 전도를 포기하라는 강요를 하게 했다. 그는 “당신 때문에 평화롭던 우리 집안은 종교적으로 대립이 되며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면서 몰아붙였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