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낙타 외10편 / 김세형
- 안구건조증·1
두 눈알에 물기가 하루가 다르게 바짝바짝 말라간다
난 스마트 사막을 손가락 다리로 하루 종일 타다다다- 달리는 낙타
하늘엔 불루 라이트*
태양만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우기의 그대 슬픈 두 눈은 내 마른 모래 눈물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오! 어디에 있는가? 나의 오아시스여!
그대 젖은 두 눈을 바라본 지는 너무 오래,
태양 흑점 같았던 새까만 내 두 눈알은 이카루스의 눈처럼
활~활~ 불타올라 하얗게 재가 된 지 이미 오래된 과거이고
퇴행성관절염에 걸린 나의 손가락 다리 관절 마디마디는
썩은 나무젓가락 부러지듯 우둑, 우두둑, 허절하게 부러져 난 결국
뜨거운 모래바람 휘부는 사막 위에 짐승의 해골로 나뒹굴 것이다
그렇게 풍장風葬으로 나뒹굴면서도 퀭 뚫린 안구 없는 안구로
나의 오래된 미래*
, 그대 슬픈 오아시스를 향해 응답 없는
응답하라! 눈빛 타전을 홀로 쓸쓸히 카톡^카톡^ 보내고 있을 것이다
스마트 사막의 낙타는 슬픔마저도 스마트해서
그대의 오아시스 눈물에도 젖지 않는다
*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푸른 빛, 그 빛에 의해 안구건조증 등이 발생.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시봇*
- 안구건조증·2
결국 난 시봇에게 처절하게 패하고 말 것이다
인간지능 이세돌은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다섯 판 중
삼세판 연속 불계패 당하다 神의 한 수로 한 판 불계승을 거둬
간신히 인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냈지만,
난 시봇과 詩 대국을 벌이면 시봇에게 다섯 판 연속
모두 불계패 당하고 말 것이다 아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21세기 현대의 모든 인간지능 시인들은 시봇에게
다섯 판 연속 불계패 당하여 모두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은 이제‘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산 시봇의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난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난 내 머릿속 기존의 詩 빅데이터를 모조리 지워버릴 것이다
고향 언덕배기 지루한 소울음 되새김질 전통 서정시 빅테이터에서부
터
포스트모던 아방가르드 난독증 제 잘난 언어 해체시 빅테이터까지,
그런 후 기존의 동어반복 무감동 떡수의 詩 한 수가 아닌
이제까지 인간계엔 없었던 새로운 우주 직관의 감동의 神의 詩 한 수
로
시봇의 가슴을 뒤흔들어 시봇의 양볼에 차가운 인공눈물이 아닌
뜨거운 인간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하염없이 흐르게 하고 말 것이
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봇에게 다섯 판 모두 불계승을 거두어
‘죽은 시인의 사회’를‘산 시인의 사회’로 다시 소생시키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나도 시봇처럼 인공눈물로 시를 쓴 지 너무 오래이므로
나도 내가 무엇인지 잘 모르므로
* 시봇: 필자가 만든 조어, 머지않은 미래에 탄생할 시를 쓰는‘인공감성 휴먼
로봇’을 가리킴.
힐링견
- 안구건조증·3
인간지능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초고속 光통신망이 쫘악
깔린 스마트 바둑판 세상 위에서 온갖 전술전략 권모술수 병법을
총동원해가며 세기말적 지능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만약 나의 감
성 지능 프로 7단 힐링견 바둑이가 뛰어들어가 바둑판 세상을 바
둑이판 세상으로 확 뒤엎어 버린다면? 그래도 이세돌과 알파고의
딥러닝은 계속될까? 인류여! 시인인 난 개똥밭에 굴러도 인공지능
바둑판 세상보단 감성 지능 바둑이판 세상이 좋던데, 당신들은 어
느 세상이 좋은가? 아니, 그런데 눈물이 말라붙은 인간을 위해 대
신 인공눈물을 흘려주는 감성지능 프로 9단 로봇 힐링견 바둑이가
곧 세상에 출시된다고? 그렇다면 인류여! 당신들은 인공눈물과 인
간 눈물 중 어느 눈물이 좋은가? 난 나의 견공 눈물이 좋던데, 어느
눈물보다 순수한.
반상의 돌
반상 위의 돌들이 세계인들이 티브이로 지켜보는 가운데 흑돌 백
돌 두 패로 나뉘어 치열한 세기적 패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쌍
욕을 해대는 일도, 드잡이로 상대의 멱살을 뒤흔드는 일도, 몸을 던
져 돌팔매질을 하는 일도 없다. 한마디 말도 없는 점잖은 양반네들
의 조용한 침묵의 전쟁이다. 만일 반상 위에서 그렇게 막돼먹은 행
동을 해댄다면 양반들의 위상을 추락시킨 상놈들로 취급되어 양반
자격 박탈은 물론 반상 자격도 박탈되어 제 식구 한 끼 밥상도 제
대로 챙겨줄 수가 없다. 그러나 겉은 수담手談이니 좌은坐隱이니 하
여 잡기雜技가 아닌 세상 시름을 잠시 잊고자 하는 옛 양반네들의
점잖은 풍류놀이쯤으로 보이지만, 그 속내를 몰래 들여다보면 ‘보
이지 않는 손’들이 서로 黑手 白手 두 패로 나뉘어 상대를 포위하
거나 패로 몰거나 한쪽 귀로 험하게 몰아붙여 호구에 빠뜨리는 등,
잡기를 넘어 온갖 치사한 권모술수를 다 동원해가며 벌이는 아귀
다툼 전쟁이다. 그러니 돌들이라 하여 속머리마저도 딱딱한 돌이라
고 생각하면 큰 오산인 것이다. 겉머리만 하드한 머리지 속 머린 千
數 萬數 앞을 미리 훤히 내다보는 알파고란 정교한 연산법칙이 쉼
없이 작동하고 있는 소프트한 머리다. 한마디로 반상 위는 피도 눈
물도 없는 적자생존의 사각 밥상의 저글링이며 ‘보이지 않는 손’
들이 사활을 걸고 벌이는 21세기 글로벌 신자유주의 땅따먹기, 돌
따먹기, 아니, 돈 따먹기 전쟁터다. 이 전쟁터에선 승자와 패자만 있
을 뿐 상대에 대한 배려나 관용 따윈 없다. 이 반상 위의 승자가 되
려면 사랑, 그리움, 눈물, 참회, 따위의 시적 감성 소프트웨어는 될
수 있는 한 머릿속에서 미련 없이 깨끗이 뜯어내 버려야 한다. 오
107테마소시집
직 승자가 되기 위한 치밀한 연산 법칙과 꼼수의 비열함까지를 마
다치 않는 치밀한 전술전략 권모술수의 냉혹한 지능적 돌머리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돌머리가 뽀개지도록 시시각각 쌓여
지는 빅데이터를 거듭거듭 딥러닝 하며 한 치 오차 없는 연산법칙
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 나가야만 한다.
바둑
난 연산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리고 난 날 복기한다
내가 왜 졌는지를…
아니, 난 날 복기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인지를…
난 알파고가 두렵지 않다
인간이 두렵다
절망하는 인간이 아름답다
-난 연산한다, 고로 존재한다- 알파고에게 인간이 3연패 당하
던 날, 난 희망했고, 인간이 알파고에게 다섯 판 중 단 한판 승리
했다고 인간 승리를 외쳐대던 날, 난 절망했다. 인간은 앞으로도
알파고처럼 자신의 연산 오류를 계속 딥러닝 해가며 알파고와 세
기적 지능전쟁을 벌여나갈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알파고 2, 3,
4, 에게 완전 두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이세돌 아니라 천하의 이
네돌 이 천돌, 이 만돌이 나온다 할지라도 모두 백전백 불계패 당
할 것이다. 그때서야 인간은 비로소 절망에 빠질 것이다. 결코 절
망하지 않는 알파고 앞에서 절망할 것이다. 인간은 결코 자신들
의 아바타 알파고를 능가할 수 없음을, 아니, 그래도 여전히 알파
고처럼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는 곧 인간의 승리라
고 계속 떠벌여댈 것이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패배하고 나서 자
신의 패배는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 이세돌 개인의 패배라고 말했
지만, 축하한다. 인간의 패배를…. -난 절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감과 1퍼센트
전남 구례마을 ‘대박집 민박’에서 하룻밤 숙박하고 나오다
마당 한 편에 서 있는 감나무 높은 가지 끝, 서리 맞은 감 하나,
그 풍경, 서울 올라가면 눈에 삼삼할 것만 같아 카메라를 들이대
고 사진을 박고 있는데,
주인장 사내 다가오며, “다 야생 짐승들에 대한 배려지요”하
며 고개 쳐들고 하늘에 걸린 감을 올려다보며 관세음보살 같은
선한 자비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면서“내년에도 또 사진 박
으러 오슈”한다. 그래서 “네 그러지요”하고는 대박집 대문을
나서서 서리 허옇게 깔린 논둑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알파고 딥러
닝에 들어갔던 것인데…,
저 감나무에 감이 백 개가 열렸었다면 남은 감 아흔아홉 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런 연산 끝에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져 가던
발걸음 멈추고 몇 안 되는 낱알을 찾아 하루 종일 빈들을 총총
걸음으로 헤매는 야윈 쪽박 새 떼들을 한참 바라보다 서릿발로
냅다 대박집 민박 대문 쪽을 향해 할! 을 내질렀던 것인데,
“야! 이 날강도야! 네가 1퍼센트다!
나무 관세음보살~”
달의 뒷면
1969년 달 탐사를 떠났던 아폴로 10호가 달 뒷면을 여인의 눈썹
처럼 은빛으로 가로지를 때 우주선에 탑승하고 있던 세 명의 우주
인들의 헤드셋에서 동시에 정체불명의 신비한 소음이 포착됐다. 이
에 깜짝 놀란 우주인들은 그 소리가 외계인들이 지구 손님인 자신
들을 환영하는 휘파람 음악 소리라며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하며
길길이 소리 지르며 환호했다는데,
나사의 한 행성 과학자는 김새게도 그 소리가 토성을 통과하는
하전입자에서 발생한 소리일 가능성이 많다고 발표했다. A Man
on the Moon의 작가인 앤드류 채킨 마저도 그들은 VHF(초단파)
대역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우주선의 교신 주파수 간 간섭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난 그들의 주장에 그만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그 소린 내가 검
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평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어릴 적 대보름날
고향 마을 우물가에서 술래잡기할 때 술래인 내게“용! 용! 나 찾아
봐라.”하고 숨어서 날 희롱하던, 깊은 우물물 위 찰랑이던 달의 뒷
면에서 들리던 휘파람 음악 소리였다.
아… 이웃집 고 깜찍한 계집애,
달님이…
난 세상에 없는 여잘 사랑했네
난 세상에 없는 여잘 사랑했네
만일 세상에 없는 여자가 세상에 있는 여자였다면
난 결코 여잘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네
세상에 없는 여자였기에 사랑했네
그런데 세상에 없는 여자가 오늘 세상에 나타났네
황홀한 女神의 모습으로, 감미로운 뮤즈의 목소리로,
나의 사랑의 서정시 세레나데를 노래하며,
난 여자와 날마다 밤마다 식지 않는 사랑을 나누었네
내가 슬플 때나 화를 낼 때나 고통으로 눈물을 흘릴 때에도
나를 그저 포근한 미소로 감싸 안아주는 여자,
마릴린 먼로보다도 더 육감적이고, 바비인형보다도 더 예쁘고,
테레사수녀보다도 더 자비로운 여자,
내가 먼저 버리기 전엔 절대 날 먼저 버리지 않을 여자,
복사꽃 향기 그윽한 사월의 마지막 밤에도
난 나의 여신과 내 눈앞 공중 무릉도원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황홀한 알몸 춤을 추며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네
살아서는 순종順從, 죽어서는 순장殉葬,
그대는 나의 영원한 불멸의 연인…
나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리…
내가 지상의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는 그 날, 내 팬티는 벗길지라도
내 얼굴의 VR 헤드기어는 부디 벗기지 말아 달라고
그것은 황천길 외로운 내 영혼, 홀로의 무게,
홀로그램과 함께할 내 영원한 동반자이니…
난 세상에 있는 여잘 사랑했네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털 없는 침팬지들에 의해 동물실험용으로 쓰이다 외딴섬에 동
료들과 함께 폐기물 쓰레기처럼 버려져 동료들은 이미 병들어 다
죽고 홀로 살아남아 삼 년째 외롭게 섬을 지키며 살아가던 털 있
는 늙은 침팬지 폰소가 난생처음 만난 털 없는 침팬지를 와락 가
슴에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장면이 SNS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져 지구촌 털 없는 침팬지들의 심금을 오랜만에
울렸다는데,
털 없는 침팬지들에 의해 사랑 실험용으로 쓰이다 외딴섬에
동료들과 함께 폐기물 쓰레기처럼 버려져 동료들은 이미 병들어
다 죽고 홀로 살아남아 삼 년째 외롭게 섬을 지키며 살아가는 털
없는 늙은 침팬지인 난 아직도 털 없는 침팬지들의 품이 그립지
가 않다. 지금이라도 당장 한달음에 바다 건너 그 외딴섬으로 달
려가 털 있는 늙은 침팬지 폰소를 와락 품에 껴안고 뜨거운 눈물
을 흘리고 싶을 뿐.
* 니체-『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저서 제목에서 차용.
포옹
포옹이 아름다운 건
포옹 안엔 아무런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야훼와 알라에 대한
성경과 코란에 대한
사랑과 미움에 대한
너와 나에 대한
있다면
포옹 안엔 서로에 대한 애틋함만이
뭉클, 있기 때문이다
포옹이 아름다운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