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현지사 자재만현 큰스님의 정기법문
부처님에 대한 법문을 여러차례 했습니다.
한국 불교는 마음이 부처라는 가르침을 펴왔습니다.
불자들이 심즉시불이라는 가르침에 세뇌돼 있습니다.
자재만현 큰스님은 부처님 이후 최초로 부처님은 계신다고 선언했습니다.
깨달음(견성)은 끝이 아니고 이제 시작이라는 폭탄과도 같은 선언을 했습니다.
선종의 기본 명제인 심즉시불, 불교의 기본 명제인 무아설에 비춰보면 자재만현 큰스님의 선언은 맞을 수 없습니만 이 선언은 진리입니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교가 아닙니다.
불과를 이루는데는 억겁의 수행이 필요합니다.
그런 후로 억겁을 수행하고 보살도를 완성해야 불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억겁의 수행과 이타행으로 탐진치 삼독심을 녹이고, 과거생의 업장을 녹이고, 천만생의 사악한 습과 기를 없애고, 전생의 모든 빚을 갚고, 그래서 깊은 삼매, 대적정삼매를 통과하면 자기 불신을 얻는 불과를 증해 부처가 됩니다.
깊은 삼매에 자재하여 우주진리와 하나되어 억겁을 수행하고 보살도를 완성했기 때문에 만덕을 갖추게 됩니다. 가령 지혜, 자비, 복덕, 온갖 팔만사천 신통,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법신, 보신, 화신 이 세 몸을 얻는 삼신을 구족한 붓다가 됩니다. 붓다가 되면 미래가 다하도록 죽을 수 없습니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생사를 자재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들의 꿈은 불과를 증하는데 두어야 합니다. 붓다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아라한과를 얻으면 윤회를 벗어납니다. 윤회를 벗어나면 생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붓다의 생사를 자재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라한은 시공을 초월합니다.
자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타력에 의지해야 합니다.
칭명염불을 해야 합니다.
위대한 부처님의 절대적인 가피를 입어야 아라한이 될 수 있습니다.
기존 불교의 부처님은 없다는 주장에 정면 도전했습니다.
부처님은 계신다.
무아 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고 선언했습니다.
기존 불교의 무아설은 무아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생사해탈을 위해서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깨달음은 우주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나?
한순간이라도 부처님을 뵐 수 있다면 윤회생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정도로 부처님은 상모에 있어서도 위대하시다.
깊은 삼매, 대적정삼매에 들어야 비로소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
부처님 이후 대 적정삼매를 통과한 사람은 수보리존자와 사리불 존자 2분 뿐이었다.
그만큼 어렵다.
불과를 증하고 대반열반하면 자기의 영체가 자기의 불신과 하나가 됩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사람 몸을 받아오시기도 합니다.
이 때 당신의 몸인 원만보신은 상적광세계에 놔두고 사바세계에 오십니다.
불국토에서 설법하시기 위해 원만보신이 직접 가시기도 하지만 화신이 가시기도 한다.
환영은 시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환영은 말을 할 수 없다.
천마의 소행이라면 천마는 삼매 속으로 들어올 수 없다.
천마의 모습과 진불의 모습에는 백천만억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화신의 모습에도 백천만억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천마는 탐진치가 남아있어 천마의 눈에는 살기가 남아있다.
부처님을 친견할 정도의 수행자는 영체가 너무너무 밝아서, 빛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천마가 이를 보면 도망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