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86
쿠르스크의 고차방정식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전투병 규모가 1만 2천 명에 달하고 1차로 1,500명이 이동을 완료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북한 특수부대 소속으로,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훈련을 받은 후 전선에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확인이 어렵지만 이미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러시아의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군이 교전을 벌여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체면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내년 2월이 되면 우크라이나 침공이 3년째를 맞게 된다. 열흘 내에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쫓아내고 친 러시아 괴뢰정부를 세울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발생한 사상자는 600,000명에서 730,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사망자가 100,000명을 초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에 650명 정도가 죽거나 부상병이 발생하는 꼴이다. 이런 전황을 지켜보던 청년들은 상당수가 해외로 도피했다. 보충할 병력자원이 곧 고갈될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기습적으로 러시아의 쿠르스크 지역을 침공했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국토와 비교하면 아주 작은 면적이지만 의미가 있다. 의문은 2차 세계대전 후 자신들의 본토가 외국군에 의해 점령당하는 치욕을 푸틴은 왜 막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서울시의 2배 정도의 영토를 내준 러시아가 정말 국토 수복의 의지나 군사적 능력이 없는 것인가는 더한 의구심을 낳게 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을 침공한 날이 지난 8월 6일이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합의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은 지난 6월 19일에 체결되었다. 일련의 과정이 우연적이지 않다. 조약 제4조가 답을 준다.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쿠르스크의 작은 무대에서 곰이 북한군을 끌어들이는 재주를 부렸다. 러시아는 다른 국가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았고 북한은 파병의 명분을 얻었다. 푸틴은 진즉 북한군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 명백하다. 북한이 노리는 반대급부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에 그치지 않는다. 끝없는 소모전에 북한군이 참전한다는 것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도 기회를 맞았다. 지난 3월 예정이던 대통령 선거는 전시 상태라는 이유로 연기되고 있다. 쿠르스크는 전쟁의 피로도가 점증하는 국민들에게 양귀비 농장이 될 수 있다. 종전 협상 테이블에서는 잃어버린 국토반환 협상에서 제법 쓸만한 카드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후회하는 푸틴으로서도 굳이 쿠르스크를 회복하겠다고 자국 군대를 갈아 넣을 것 같지 않다. 젤렌스키에게 초코파이 하나쯤은 던져 줘야 종전 협상을 할 수 있다. 북한군의 핏값이 여러 주머니에 들어가게 생겼다.
전쟁은 냉혹하다. 이번 전쟁을 국제적으로 확장할수록 젤렌스키의 정치생명은 강화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보다 북한군을 표적으로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한국에는 첨단 군사 무기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어쩌면 탈영하거나 포로로 잡힌 북한군이 한국행을 희망할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북한군이 전쟁 경험을 통해 실전 능력을 강화할 경우, 이는 한반도 안보 환경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북한의 파병이 러시아와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면, 이는 한미 동맹과 같은 기존의 동북아 질서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첨단 무기 기술을 이전받을 가능성이다. 이는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을 위협할 수 있는 실질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일반의 우려다.
중국이 묘한 반응을 보였다. 11월 8일부터 한국인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는 발표가 지난 1일 있었다. 비록 내년 말까지 한시적 조치지만 중국이 한국을 무비자 대상국으로 지정한 건 처음이다. 한국 외교관계자도 몰랐던 깜작 발표였다고 한다. 국제관례에 비춰 상호 비자 조건 일치 원칙을 깨고 한국에 일방적 호혜를 표시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속내가 드러난다. 북러의 어깨동무가 꼴사나운 중국의 반응치곤 유치하지만, 상징성이 있다.
미국 대선을 두고 국내 언론은 중심을 잃었다.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와의 대결에서 헛다리를 긁고도 반성이 없다. 날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과 같은 민주당 지지언론의 여론조사를 그대로 읊어대기 바쁘다. 하지만 싫든 좋든 트럼프의 재등장은 우리의 의지 밖이다. 트럼프의 국제질서는 우크라이나의 종전에 결정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설사 해리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종전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만큼 불곰을 지치게 했으면 끝낼 때가 되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첨단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이런 때일수록 긴 호흡으로 외교전략을 짜야 한다. 곰은 어리석지 않다. 종전이 되면 먹이를 찾아 옥수수도 말라비틀어진 두만강을 건널 일은 없다. 푸틴이 북한에 첨단 무기 기술을 제공할 것이라는 우려도 지나친 기우다. 주변 강대국 중 한반도의 통일을 지원할 국가가 있다면 러시아가 먼저다. 러시아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한국에 에너지를 팔려는 장삿속을 잊은 적이 없다.
자국 우선주의의 국제질서가 심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쟁의 참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에 의료지원 등 비군사적 지원을 강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창공에도 흰 비둘기가 날도록, 종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작더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 어린 북한 병사들의 어이없는 죽음의 행진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곰의 재주에 말려든 것은 북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