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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별 빛 가득한 집(bright star happily) 원문보기 글쓴이: 금봉
14. 짝 打 令
대현(大絃)은 농롱(농롱)하여(1) 노룡(老龍)의 울음이요
소현(小絃)은 쟁쟁(錚錚)하여(2) 청학(靑鶴)의 소리로다.
둥덩지덩 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虛照碧山月)이요
고목은 진입(盡入) 창오운(蒼梧雲)이라(3) 하던
이태백으로 한짝하고
삼년 적리(三年笛裏) 관산월(關山月)이요
만국병전(萬國兵煎) 초목풍(草木風)이라하던
두자미(杜子美)로 한짝하고
낙하(落霞)는 여(與) 고목제비(孤鶩齊飛)하고
추수(秋水)는 공(共) 장천일색(長天一色)이라(4) 하던
왕자안(王子安)으로(5) 웃짐 치고
백로(白露)는 횡강(橫江)하고 수광(水光)은
접천(接天)이라 하던 소동파(蘇東坡)로 말 몰리고
좌무수이(坐撫樹而) 종일(終日) 하고
탁청천이(濯淸川而) 자결(自潔)이라 하던
한퇴지(韓退之)로 한짝하고
삼입낙양(三入洛陽) 인불식(人不識)하니
낭음비과(朗吟悲過) 동정호(洞定湖)라 하던
여동빈(呂洞賓)으로(8) 한짝하고
유상곡수에 혜풍(惠風)이 화창이라 하던
왕희지(王羲之)로 웃짐 쳐서
부광(浮光)은 탁금(濯金)하고
정영(靜影)은 침벽(沈碧)이라하던
범중엄(范仲淹)으로 말 몰리고
어양비고 (漁陽비鼓)동지래(動地來)하니
경파예상(驚罷霓裳) 우의곡(羽衣曲)이라 하던
백낙천(白樂天)으로(11) 한짝하고
분수탈상증(分手脫相贈)하니
평생일편심(平生一片心)이라하던
맹호연(孟浩然)으로(12) 한짝하고,
청산(靑山)은 수첩(數疊)이요
벽계(碧溪)는 일곡(一曲)이라 하던
도연명(陶淵明)으로(13) 웃짐쳐서,
통만고지(通萬古之) 득실(得失)하고
감백왕지(鑑百王之) 흥망(興亡)이라 하던
사마천(司馬遷)으로(14) 말 몰리고
위빈어부(渭濱漁夫)로서 주천하(周天下)
팔백기업(八百基業)을 창개(창開)하던
강태공(姜太公)으로 한짝하고
운주유악지중(運籌유幄之中)하여
결승천리지외(決勝千里之外)하던
장자방(張子房)으로(16) 한짝하고
대몽(大夢)을 수선각(誰先覺)고
평생을 아자지(我自知)라 하던
제갈량(諸葛亮)으로(17) 웃짐 쳐서
백일공사(百日公事)는 뇌양일조(뇌陽一朝)요
연환묘계(連環妙計)는 적벽(赤壁)의 수공(首功)이라 하던
방사원(龐士元)으로(18) 말 몰리고
용성오채(龍成五彩) 망기(望氣)하고
옥결(玉결)을 자주 들던
범아부(范亞父)로(19) 한짝하고
백등해위(白登解圍)하고,
육출기계(六出奇計)하던
진평(陳平)으로 한짝하고
팔십만 수륙대도독(水陸大都督)
적벽오병(赤壁오병)하던
주공근(周公瑾)으로(21) 웃짐 쳐서
강남(江南)에 개가(凱歌) 불러
금릉(金陵)으로 돌아오던
조빈(曹彬)으로(22) 말 몰리고
백수변정(白首邊庭)에 탕소요진(蕩掃妖塵)하던
마원(馬援)(23)으로 한짝하고
광초구군(광楚救君)하여(24)
망사보국(忘死報國)하던
기신(紀信)으로(25) 한짝하고,
미보국사(未報國思)하고
공사결의(空死決議)하던
장순(張巡)으로(26) 웃짐 쳐서
신사수절(身死守節)하여 충관백일(忠貫白日)하던
허원(許遠)으로(27) 말 몰리고
연백만지수(連百萬之帥)하여
전필승(戰必勝) 공필취(功必取)하던
한신(韓信)으로(28) 한짝하고
두발(頭髮)이 상지(上指)하고
목지진렬(目자盡裂)하던
번쾌(樊쾌)로(29) 한짝하고,
남궁운대(南宮雲臺) 중흥공신(中興功臣)
이십팔장(二十八將) 중 제일공신(第一功臣)
등우(鄧禹)로(30) 웃짐쳐서
충의정성(忠義精誠) 앙관백일(仰貫白日) 하던
곽자의(郭子儀)로(31) 말 몰리고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는
초패왕(楚覇王)의(32) 버금이요
추상절(秋霜節) 열일층(烈日忠)은
오자서(伍子胥)의(33) 우희로다.
봉금괘인(封金掛印)하고
독행천리(獨行千里)하던
관운장(關雲長)으로(34) 한짝하고
장판파변(長板破邊)에 퇴병백만(退兵百萬)하던
장익덕(張翼德)으로(35) 한짝하고
당양장판(當陽長板) 만군중(萬軍中)에
아두(阿斗)를 품에 품고
백만진중(百萬陣中) 횡행(橫行)하여
도시담(都是膽)이라 하던
조자룡(趙子龍)으로(36) 웃짐 쳐서
서량명장(西凉名將)으로
보전육장(步戰六將)하던
마맹기(馬孟起)로(37) 말 몰리고
오호(五湖)에 편주(扁舟) 타고
범소백(范少伯)을(38) 따라가던
서시(西施)로(39) 한짝하고
회두일소백미생(回頭一笑百媚生)하니
육궁분대무안색(六宮紛黛無顔色)이라 하던
양귀비(楊貴妃)로(40) 한짝하고
월궁옥장하(月宮玉帳下)에
추파(秋波)에 눈물 짓던
우미인(虞美人)으로(41) 웃짐 쳐서
영웅의 친근지의(親近之義) 일조(一朝)에 이간(離間)하던
초선(貂嬋)으로(42) 말 몰리고
사마상여(司馬相如)(43) 봉구황(鳳求凰)에 깨달아서
들어가던 정경패(鄭瓊貝)로(44) 한짝하고
태산궁액(泰山宮掖) 백화번(百花繁)한데
영작(靈鵲)이 보래(報來) 희미연(喜美緣)하던
이소화(李簫和)로(45) 한짝하고
안소부대(雁疎不帶) 남비거(南飛去)하니
삼오성희(三五星稀) 월재동(月在東)이라하던
진채봉(秦彩鳳)으로(46) 웃짐 쳐서,
위주충심(爲主忠心)은 보보상수(步步相隨) 부잠사(不暫捨)라
위선위귀(爲仙爲鬼)하던 가춘운(賈春雲)으로(47) 말 몰리고
월중단계(月中丹桂) 수선절(誰仙折)고
금대문장(今代文章)이 자유인(自有人)이라 하던
계섬월(桂蟾月)로(47) 한짝하고
하북명창(河北名唱)으로 삼절색(三絶色) 현명(顯名)하던
적경홍(狄驚鴻)으로(47) 한짝하고
복파영중(伏波營中)에 월영(月影)이 적막(寂寞)하고
옥문관외(玉門關外)에 춘색(春色)이 의희(依稀)라 하던
심요연(沈요烟)으로(47) 웃짐 쳐서
청수담(淸水潭)에 수절(守節)하여
음곡(陰谷)에 생춘(生春)이라 하던
백룡파(白綾波)로(47) 말 몰릴까 하노라.
【解 說】
이 <짝타령>은 어떤 인물과 인물을 서로 짝을 짓게 하고 다른 한사람을 웃짐으로 치고 또 한 사람으로 말을 몰리게 하는데, 역대 문장들의 명귀(名句)만을 골라서 떼다 붙이고 그 다음에 사람의 이름을 갖다 댔다. 말하자면, 이태백과 두자미(杜子美)로 짝을 짓고 왕발(王勃)로 웃짐을 치고 소동파(蘇東波)로 말을 몰려 이것이 한틀이 된다. 이렇게 하여 한퇴지(韓退之)와 여동빈(呂洞賓)으로 짝을 짓고 왕희지(王羲之)로 웃짐 치고 범중엄(范仲淹)으로 말 몰리는 것이 한틀이 된다.
백낙천(白樂天)과 맹호연(孟浩然), 도연명(陶淵明), 사마천(司馬遷)으로 한틀을 짓고 강태공과 장자방(張子房)으로 짝을 하고 공명(孔明)으로 웃짐 쳐서 방통(龐統)으로 말을 몰려 한틀을 한다.
범증(范增)과 진평(陳平)으로 짝을 짓고 주유(周瑜)와 조빈(曹彬)으로 한틀을 하고, 마원(馬援)과 기신(紀信)으로 짝을 짓고 장순(張巡), 허원(許遠)으로 한틀, 한신(韓信)과 번쾌(樊쾌)로 짝을 짓고 등우(鄧禹), 곽자(郭子儀)의로 한틀, 항우(項羽)와 오자서(伍子胥)로 한짝을 짓는다.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로 한짝, 조운(趙雲)과 마초(馬超)로 한틀을 하고, 서시(西施)와 양귀비(楊貴妃)로 한짝, 우미인(虞美人)과 초선(貂嬋)으로 한틀하고 정경패와 이소화(李簫和)로 한짝하고 진채봉(秦彩鳳)과 가춘운(賈春雲)으로 한틀을 삼는다.
계섬월(계섬월), 적경홍(적경홍)으로 한짝하고, 심요연(심요연)과 백능파(백능파)로 한틀을 짓는다.이러한 식으로 미사여구(미사여구)로 짝을 지어 멋스럽게 엮었다.
註 (1) 大絃은 농롱 큰 줄은 농롱하다는 말. 농롱은 새가 읊조린다는 뜻인데, 여기에서 농롱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굵은 줄 소리는 중후하고 우렁찬 소리를 내는데 왜 농롱이라 했는지 의문스럽다.
(2)小絃은 錚錚 작은 줄은 錚錚하다. 즉 玉이나 금속이 울리는 소리같이 쨍쨍하다는 말. 大絃은 老龍의 울음이라 하고 小絃은 靑鶴의 울음이라고 하는 표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다.
(3)虛照碧山月이요 古木은 盡入蒼梧雲 이글의 原文은 荒城이 위에 있다. 荒城은 비었는데碧山月만이 비치고 古木은 蒼梧의 구름에 쌓였더라. 唐 李白 詩 「荒城虛照碧山月 古木盡入蒼梧雲」
(4)洛霞與孤鶩齊飛하고 秋水共長天一色 꺼져가는 안개는 한 마리 따오기와 더불어
날아오르고 가을빛을 띤 강물과 끝없이 긴 하늘은 다 같이 푸른빛을 띠었다.
(5)王子安 이름은 勃, 字는 子安. 唐나라 前期의 詩人. 早達한 천재시인으로 劍南으
로 가서 都督 閻伯嶼를 위하여 쓴 <騰王閣序>와 詩는 유명하다. 그러나 29세에 南海
를 건너가다 물에 빠져죽었다. 그는 문장을 짓게 되면 먼저 먹을 풍부히 갈아놓고 술
을 마시고 이불을 둘러쓰고 한숨 잔 후에 잠을 깨어 일어나면 곧 붓을 들어 줄줄 문장
을 써 내려가는데 한 글자도 고치는 일이 없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은 이를 腹藁라고 하
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一筆揮之로 문자를 만들어 내곤 하였던 재사이다.
(6)蘇東坡 北宋의 詩人. 이름은 軾, 字는 子膽. 號는 東坡이다. 아버지 狗와 아우
轍과 더불어 三蘇라고 불림.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 王安石과 대립하여 左遷되었으나
후에 哲宗에게 重用되어 舊法派를 대표했으며, 文人으로서 宋大第一人者임. 특히 <赤壁賦>는 유명하며 書畵에도 능했음. 著書로는 <東坡全集>이 있음.
(7)韓退之 <不須嚬> 註 (37) 참조
(8)呂洞寶 <중장망혜> 註 (15) 참조.
(9)王羲之 字는 逸少, 이름은 羲之. 東晋 때의 書家. 그의 楷書· 行書· 草書의 전아
하고 힘차며 品位있는 書風은 일찍부터 書聖로서 안팎의 존경을 받았음. 대표적인 <蘭
亭序> <聖敎序>등이 있음.
(10)范仲淹 北宋때의 名臣. 字는 希文. 蘇州 吳縣 사람. 仁宗 때 參政知事가 되어
개혁해야 할 政治上의 10個條를 上疏하였으나 反對派의 공격을 받아 실패함. 당시 文
武를 통하여 으뜸인물로 존경을 받았음. 著書로는 <范文正公集>이 있음.
(11)白樂天 <竹杖芒鞋> 註(17)참조.
(12)孟浩然 <竹杖芒鞋> 註(14)참조.
(13)陶淵明 <探景歌> 註(7) 참조.
(14)司馬天 <不須嚬> 註(36) 참조
(15)姜太公 <不須嚬> 註(6) 참조.
(16)張子房 姓은 張, 이름은 良, 字는 子房. 韓人. 韓이 秦에게 망한뒤 韓을 위해
원수를 갚고자 滄海力士를 구하여 博浪沙中에서 秦始皇의 수레를 鐵椎로 저격하였고
뒤에 漢沛公을 도와 楚覇王을 멸하고 漢의 開國功臣이 되어 留侯를 봉하였음. 그러나
부귀영화를 버리고 安期生 赤松子를 따라간 뒤 종적을 감추었다.
(17)諸葛亮 <不須嚬> 註(34) 참조.
(18)龐士元 성은 龐, 이름은 統, 字는 士元. 號는 鳳雛 蜀漢人. 劉備를 도와 治中從
事가 되었고 諸葛亮과함께 伏龍鳳雛이라 일컬음.
(19)范亞父 이름은 增, 居巢人. 나이70세에 項羽의 謀士가 되어 諸侯를 굴복시켰으
므로 亞父라 일컬었다. 項羽가 范增의 計策을 듣지 아니하자 통분하여 벼슬을 사임하
고 돌아가다가 등창이 나서 죽었다.
(20)陳平 漢 陽武人. 젊을 때에는 비록 가난하였으나 글읽기에 힘을 기울여 뒤에 한
고조의 신하로서 여섯 가지 奇策의 공을 세워 曲逆侯의 封함을 받았다. 六出奇計는 다
음과 같다.
①黃金 4만 兵으로 楚 陣中의 將帥들을 매수하여 項羽의 謀士范增이 漢과 內通하고
있다는 虛僞 풍문을 流布하여 不信케 하였고
② 楚나라 使臣이 僞造 편지를 훔쳐 가게 하여 范增의 計策을 不用케 하였고
③ 榮陽城이 楚軍에게 포위되었을 때 밤에 여자 2천명을 내보냄으로써 포위를 解除
시켜 漢沛公을 탈출케 하였고
④ 韓信을 齊王에 封하게 하여 齊에게 속히 回軍하여 楚軍과 對戰케 하였으며
⑤ 沛公이 帝位에 오른 후 雲夢으로 狩獵을 간다고 핑계하고서 韓信을 사로잡게 만
들고
⑥ 白登城의 危境을 벗어나게 하였다.
(21)周公瑾 중국 三國時代 吳나라 將軍. 자는 公瑾, 이름은 瑜이다. 安徵省 사람.
文武에 능했음. 처음 吳나라의 孫策을 섬기고 策이 죽은 뒤에는 그의 아우 權을 도왔
음. 吳나라 사람들은 周郞이라 부름. 劉備와 협력하여 赤壁에서 曹操軍을 크게 쳐부수
었음.
(22)曹彬 宋나라 靈壽人. 字는 國華, 이름은 彬. 成德軍節度使로 江南에서 전쟁에
이기고 全陵으로 돌아온 名將이다. 당시 第一良將이었다. 죽은 뒤 濟陽君王을 追封.
諡號는 武惠.
(23)馬援 後漢의 勇壯. 字는 文淵, 諡號는 忠成. 茂陵人. 光武帝때 濁을 쳐서 伏波
將軍이 되고 交趾를 쳐서 新息候에 封해짐. 武陵의 五溪충을 정복할 때 戰死함. 馬伏
波.
(24)광楚救君 楚에 거짓 항복을 하여 자기 인군을 구함을 말함.
(25)紀信 漢 高祖의 忠臣. 項羽가 漢 高祖를 榮陽에서 포위했을 때 高祖를 대신해서
죽었음.
(26)張巡 唐나라 南陽人. 群書에 博通하여 戰陣法에 밝았음. 開元중 進士에 擢進되
었다. 安祿山의 亂이 일어나자 起兵하여 이를 토벌했다. 그러나 賊將 尹子琦가 10만
大兵으로 공격해왔다. 巡은 士兵들과 固守하고 하루에 20회나 싸웠다. 그래도 救援兵
이 오지않으므로 먹을 것이 없어 자기 愛妾을 죽여 士兵를 먹였다는 名將.
(27)許遠 陽太守로 張巡과 더불어 죽음으로써 守節하던 충성스런 名臣.
(28)韓信 漢나라 功臣. 准陰人. 劉邦을 도와 項羽를 멸하고 天下를 통일하여 추陰侯
에 封하였다. 젊을 때 가난하여 城下에서 낚시질을 할 때 飢饉이 심함을 보고 漂母가
밥을 주었다. 韓信이 「뒷날 두터이 갚으리라」한즉 漂母가 「내, 王孫을 사랑하여 밥
을 준 것이지 어찌 갚기를 바라리요」하였다. 그 뒤 韓信이 帝王이 되어 千金으로 漂
母에게 은혜를 갚았다 함. <史記> 「韓信至國 召從食漂母 賜千金」
(29)樊쾌 漢나라 初期의 武將. 高祖 劉邦을 섬겨 싸움터에서 공을 세웠으며 조門의
會에서 沛公의 危急을 救하여 그가 즉위한 후에 舞陽侯에 封해짐. 諡號는 武侯.
(30)鄧禹 後漢때 新野人. 後漢 光武帝 卽位時 大司馬를 排하다. 때의 나이 24세였
다. 赤眉討伐의 一等功臣으로 高密侯에 封함. 明帝 때에 太傳가 되어 永平年間에 卒하
다. 諡號는 元.
(31)郭子儀 字는 子儀. 唐나라의 名將. 河南省 鄭縣 사람. 玄宗때 朔方節度使가 되
어 安祿山의 亂을 토벌하여 河北의10餘君을 恢復하였고 제宗 ·代宗때에 吐審을 쳐서 많은공을 세우고 司徒 中書令에 이어 汾陽王으로 封함을 받음. 諡號는 忠武. 世稱 郭 汾陽이라함.
(32)楚覇王 <不須嚬> 註(28) 참조
(33)伍子胥 <不須嚬> 註914) 참조.
(34)關雲長 關은 姓 雲長은 字, 이름은 羽. 처음에는 字를 壽長이라하다가 雲長으로
고쳤음. 河東 解良人(現 山西地方). 키가 9尺 수염길이가 2尺, 낯은 대추빛 같고 입
술은 연지를 바른 것 같고 鳳의 눈에 누에 눈썹으로 위풍이 늠름하였다 한다.
(35)張翼德 성은 張, 翼德은 字 이름은 飛. 탁郡사람. 키가 8尺. 豹頭에 고리눈과
제비턱에 범의 수엽을 가졌고 소리는 큰 雷聲과 같았다 한다.
(36)趙子龍 이름은 雲 字는 子龍. 상산 眞定人으로 三國時代 濁漢의 名將. 身長이 8
尺. 濃眉大眼 활面重이로 위풍이 늠름하였다.
(37)馬孟起 三國時代 탁漢 五虎大將의 한 사람. 이름은 超. 字는 孟起. 扶風 茂陵人.
諡號는 威. 탁漢의 先主(劉玄德)을 도와 騎馬將軍이 됨.
(38)范少伯 <丈夫恨> 註(22) 참조.
(39)西施 <不須嚬> 註 (40) 참조.
(40)楊貴妃 <丈夫恨> 註(34) 참조.
(41)虞美人 <不須嚬> 註(30) 참조.
(42)貂嬋 後漢때 王允의 歌姬. 王允이 董卓을 타도하기 위하여 美人計를 쓰는데 이
용하였다 함.
(43)司馬相如 중국의 前漢의 文人. 字는 長향, 泗川출신. 景帝 때 벼슬에서 물러나
後梁에 가서 <子虛之賦>를 지어 이름을 떨침. 그의 辭賦는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며 後
六朝의 문인들이 이것을 많이 모방하였음.
(44)鄭瓊貝 고대소설<九雲夢>에 나오는 선녀의 이름.
(45)李蕭和 <九雲夢>에 나오는 인물
(46)秦彩鳳 <九雲夢>의 인물.
(47)賈春雲·桂蟾月·狄驚鴻·沈요烟·白凌波 모두 <九雲夢>에 나오는 八仙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