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터져버린 울음
Text Gn 33,1-4
(1)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1. 오늘은 세계의 교회들이 한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서도 아직 평화통일이 아닌 북한의 멸망이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대결과 대립을 주장하거나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고, 심지어 국내의 교회들 중에서도 이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한 공동 기도 주일’을 반대하여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 아픈 현실입니다. 또한 오늘은 광복절 79주년 기념 주일이기도 합니다.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겨 35년 동안 식민통치를 받으며 온갖 어려움을 겪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된 것을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하지만 해방이 된 지 79년이나 흘렀건만 아직도 일제의 강압 통치를 우리나라와 민족에 대한 일제의 선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형편입니다. 역시 이에 대하여서도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오늘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공동기도주일을 주관하는 NCCK(한국교회협의회)에서 제공한 예배 안내를 따라 창33,1-4을 본문으로 ‘터져버린 울음’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 설교문은 기독교장로회 소속인 주민교회의 담임자이고 NCCK의 신학위 부위원장인 이훈삼 목사가 제공한 것을 보충한 것임을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내려주시길 기도합니다.
2. 에서와 야곱 형제에게서 울음이 터져 나온 본 사건은 두 형제 모두 지난 20년 세월 동안 매우 한 불행의 늪속에 빠져있었음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그날 터져 나온 울음은 그 같은 불행의 늪에서 두 형제와 가정 사이에 화해와 평화, 즉 평안을 가져다주었음을 보여줍니다.
야곱으로부터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긴 에서는 20년 동안 복수의 칼을 품고 살았습니다. 야곱의 살기를 피해 멀리 하란으로 도피했던 야곱은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그동안 네 명의 아내와 거대한 재산을 모았지만 야곱의 귀향길은 기쁨보다는 두려움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혹시나 형의 마음이 누그러졌기를 기대했지만 에서는 복수를 위해 4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야곱을 향해 진격해옵니다. 한바탕 형제 살육의 피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는 지경이었지만 야곱과 에서는 해후하였을 때, 복수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뜨거운 포옹과 용서의 눈물이 터졌습니다.
두려움 반 기대 반인 심정으로 몸을 일곱 번이나 땅에 굽히며 천천히 다가가는 야곱을 본 에서는 먼저 달려가서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니 그간의 섭섭함과 미움과 원한은 사라지고 뜨거운 형제애가 솟구쳐 서로 울게 되었습니다. 20년 만의 해후와 동시에 터져버린 형제의 울음은 미움과 대결과 복수 일념으로 살았던 그간의 세월을 일거에 녹여버린 화해의 울음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가장 감동적인 사건 중의 하나이고 기적 중의 하나입니다.
20년 동안 외갓집에서 형의 미움과 원한을 피하고 있던 야곱은 늘 좌불안석이었습니다. 부모님을 뵙고 싶었지만 형의 미움을 촉발했던 과거로 인해 갈 수 없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을 받은 야곱은 ‘장자’라는 명분을 도적질했을 뿐, 실제 장자로서의 권리는 하나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부모님 곁에는 형이 자리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부모님의 모든 재산은 형의 것이었으며 장자권을 도적질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형의 미움과 원한뿐이었습니다.
또한 타향살이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전혀 떳떳하고 자랑스럽지 못했습니다. 그가 사는 곳은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었으며 그곳에서의 삶은 언제고 떠나야만 하는 삶이었습니다. 가정도 이루어 아내를 넷이나 두고 자식도 열 명이나 두었지만 부모님과 그 누구로부터도 진심어린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엎질러진 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은 부모님께 자신이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부모님과 자신의 가족 모두가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없도록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주변의 모두가 경쟁자일 뿐이어서 마음 편히 기대고 쉴 수 있는 곳이 없는 부평초 같은 삶이었던 것입니다.
불행하기는 형 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동생이 야반도주를 하게 할 정도로 야곱을 미워한 에서의 마음에는 부모님의 재산을 다 물려받고 부모님과 함께 살며 오랫동안 산 익숙한 고향에서 별 어려움 없이 살고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동생에게 속았다는 배신감은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과거의 사건은 에서로 하여금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한 것입니다. 그 사건은 그로 하여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늘 경계하며 살게 했습니다. 언뜻 그 기억이 떠오르기만 하면 화가 치밀어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행복을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언젠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싸움을 위해 군사를 기르고 훈련하는 일에 많은 돈을 써야만 하는 것도 고역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이 동생을 짓누를 수 있는 힘으로 충분한지도 불안하게 했습니다.
두 형제는 20년간 떨어져 살았지만 늘 경계해야 했고 언젠가는 대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모든 면에서 둘 모두를 불행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동생이 머리를 일곱 번 조아리며 다가가고 형이 먼저 다가와 둘이 만나 서로 목을 어긋 맞추었을 때, 그들에게는 그간의 불행을 일거에 사라지게 하는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한반도가 남북한으로 나뉘어 각각의 정부를 수립한 지 7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한 차례 큰 전쟁을 치렀고 여러 차례 충돌이 있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은 높고 각자의 이기심은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상대로까지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는 우리 민족 모두를 살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하여야 하며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마셔야 합니다.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기도가 계속되기를 기도합니다.
2. 본문이 보여주는 두 형제의 만남과 터져버린 울음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주변 상황이 만나지 않으면 안 되게 했습니다. 야곱이 더 이상 외갓집에 머무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외삼촌의 재산을 관리해 주며 더부살이를 하고 있던 외갓집 가족들은 야곱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야곱의 재산이 불어나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야곱이 자기들의 재산을 몰래 가로채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갈 데 없는 그를 받아주었더니 이제는 도리어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으려 한다고 여겼습니다. 공공연히 시비를 걸었고 노골적으로 야곱의 재산을 탐냈습니다. 여차하면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는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형 에서는 동생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불안해졌습니다. 또다시 예전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가로챌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늘 동생의 근황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 돌아오는 동생의 세력이 만만찮다는 것을 안 뒤로는 그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더군다나 과거에 동생의 편을 들어줬던 부모님이 장자권을 가지고 있는 동생에 다하여 어떤 태도를 가질지도 그에게는 큰 불안 요소였습니다. 자칫 자신의 것이라 여겼던 부모의 재산을 동생과 나누라 하기라도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모든 돌아가는 상황은 둘이 만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창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또한 이 울음이 터진 만남에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터진 야곱의 울음이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자신뿐 아니라 아내들과 자식들의 목숨이 달린 위험 앞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감수하면서도 끝내 하나님 바짓가랑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니면 살 길이 없다고 야곱은 기도하고 매달리고 애원했습니다. 창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남과 북의 오랜 증오와 공멸을 불러올 갈등도 야곱과 에서의 만남처럼 울음이 터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그 역시 하나님의 은총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북한이 만나 함께 앞일을 도모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79년 전,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이끌어 주셨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광복절은 국경일이지만 교회에서도 기념하고 감사하는 주일로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 민족이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기도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뜨겁게 기도해야 할 명백한 이유입니다.
일찍이 우리의 선배 신앙인 중에는 ‘구국기도회’를 일생의 사명처럼 여기며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이 일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 분들이 여럿입니다. 골짜기 골짜기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해달라고, 이 민족에게 통일을 주시라고, 북에도 십자가가 세워지고 찬송소리가 울려퍼지는 날이 오게 해달라고, 이 민족이 하나 되어 세계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부르짖는 기도소리가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더 이 기도가 방방곡곡에 이어지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습니다. 혹 통일 후, 우리의 삶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리의 신앙생활에 방해 요소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면 그럴수록 더욱 힘써 우리 모두는 평화와 화해가 하나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 정세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일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재산의 어마어마한 양을 에서에게 선물로 내놓으면서 다가갔습니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만나러 갔습니다. 결국은 그 손실은 손실이 아니라 더 많은 부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비용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야곱과 에서 사이에 터져버린 눈물은 화해와 평화를 가져다 주었고 그 화해와 평화는 그 후의 두 사람 모두를 더욱 강성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마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이 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4. 남북 간의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어 비방하고 전쟁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지만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는 가르침(엡4,29-5,2)을 명심하셔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는 아직도 전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얀마 내전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많은 이가 상대를 누르고 자신을 지킬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방식이 아닙니다. 참 평화는 용서와 화해로 이루어집니다.
힘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2014년 유럽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그 테러에 대응하도록 주요 명소에 군인들이 배치되었습니다. 이는 테러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도심에서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은 오히려 긴장과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힘에 대한 더 큰 힘의 대응은 평화를 가져오기보다 더 큰 긴장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힘의 대결이 지속되는 한, 참 평화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상황도 그렇습니다. 북한은 미사일을 쏘며 힘을 과시하고, 남한은 군사 연합 훈련으로 이에 대응합니다. 더 큰 힘으로 서로 위협하는 이 상황에서 참 평화를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평화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잔인한 한국전쟁에서 세계 수많은 젊은이가 희생되었습니다. 세계교회는 지금도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에 빚진 우리는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의 전쟁,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마치 우리의 아픔인 것처럼 전쟁을 가슴으로 싸 안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려야 할 빚, 사랑의 빚, 기도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빚을 갚는 마음으로라도 다시 구국 기도 자리에 나가야 하겠습니다. 구국 일념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던 선열들처럼 기꺼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 나아가 세계 평화와 화해를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울 가져야 하겠습니다. 용서하기를 주저하지 말고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화해의 용사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