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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후 서유럽정치 전개의 일반적인 조건들
- 2차대전 이후 서유럽의 정치변동과정을 중심으로 파악하려고 하면, 먼저 서유럽 정치 전개의 일반적인 환경조건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먼저, 전후에 서유럽이 미국 헤게모니 하의 이른바 '자유진영'에 소속하게 된 점, 1990년대 말까지 소련을 중심으로 세계시회주의체제가 성립됨으로써 양대체제가 '체제경쟁'의 관계 속에 놓이게 된 점, 서유럽의 제국주의국가들이 구식민지체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된 점등을 지적할 수 있다.
- 서유럽이 미국헤게모니 하의 이른바 자유진영에 속하게 된 것은 공산당 또는 사회주의적 노동자세력이 '반파쇼 인민전선운동' 내지 '반파쇼 민족해방전선'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일국 내부의 계급적 역관계에 비추어본다면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던 이탈리아, 그리스 및 프랑스 등에서도 변혁세력으로 하여금 혁명을 포기하거나 실패하게 만들고, 자본주의체제를 유지시키려는 이런 저런 정치세력들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미국은 자신의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 등에 기초하여 한편으로는 제3세계의 정치적 독립을 촉진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세계적 파급을 봉쇄하는 데에 앞장서고 서유럽의 경제적 재건 등을 지원함으로써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 세계자본주의체제가 안정적으로 재구축되는 데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그리고 서유럽을 강력한 반공보루로 만들려는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서유럽의 경제적 재건은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 체제경쟁은 전후 서유럽의 체제개혁을 크게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른 한편, 동서간의 관계는 처음에는 냉전국면에 의해 특징 지워지다가 70년대부터는 데당트국면으로, 그리고 80년대부터는 다시 '신냉전국면'으로, 그리고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에는 다시 신데탕트국면'으로 변화하였다. 그런데 데탕트국면은 유럽자본, 특히 독일자본의 동구 진출을 크게 촉진시킨 데에서 더 나아가 이후 세계사회주의체제의 해체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세계사회주의권의 해체는 서유럽 좌파운동이 더욱 우경화되는 데에 기여했다.(예를 들어 이탈리아 공산당의 '좌익민주당'으로의 전환 등)
- 정치적 독립을 획득했지만 특히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이후 유럽국가들에게 경제적-문화적으로 종속된 국가가 되었는데, 이러한 종속은 서유럽 자본주의의 축적위기가 (아프리카의 농산물이나 원자재의 가격하락 등을 통해) 이들 국가에게 대대적으로 전가될 수 있는 조건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가가 서유럽에서 이후 자본축적 위기의 출현을 저지한 것은 아니다.
2. 케인주의적 복지국가의 특징
-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 자본주의가 국가독점자본주의 발전단계로 이행한 서유럽 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불리기도 하는 발전된 부르주아민주주의 체제가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 체제는 국가레짐 수준에서는 '민중배제적 개입주의국가'라 부를 수 있는 개발독재체제 등과는 달리, '민중통합적 개입주의국가' 유형에 속하는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또는 '사회복지국가' 내지 '사회국가'의 형태를 띠고 출현하였다. (이 점에서 우리는 전후 유럽의 자본주의체제는 '케인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체제를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같은 학자는 '사회적 계획국가'로, 그리고 조절이론가들은, 이 국가체제가 '포드주의적 축척체제'에 상응하는 국가체체라는 점에서, '포드주의 국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수립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는 1960년대에 이르러 그 성숙한 모습을 띠고 출현하여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지배대중을 체제로 통합시키는 강력한 정치적 기제로서 기능했다. 이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는 - 노자대립이 아직 본격화되기 이전인 근대자본주의의 초기를 제외한다면 - 자본주의사회의 역사상 노동자계급의 체제로의 통합이 가장 광범위하게 진척되고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헤게모니가 가장 강력하게 구축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 제2차 세계대전이후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가 정착하게 된 원인들은 다음과 같다.
(1) 근로대중의 임금노동자화가 이미 광범위하게 진척된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노동자계급은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된 강력한 조직적 힘을 지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들 노동자계급을 체제로 통합시킬 수 있는 '체제개혁'은 어느 나라에서나 매우 절박한 과제가 되었으며, 그러한 체제개혁은 -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 우파세력들에게까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서 인식되었다. 더욱이 동유럽에서는 전쟁 기간 중 많은 나라에서 공산당이 주도적이거나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반파쇼 인민전선운동' 내지 '반파쇼 민족해방운동'이 고양된 데다가 전후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게 된 객관적으로 유리한 조건 속에서 '반파쇼 반독점 인민민주주의혁명'을 통해 사회주의체제가 수립되었는데, 혁명의 파급을 막기 위해서도 서유럽의 지배층에게는 체제개혁은 절박한 것이 되었다. 다른 한편, 전후 초기에는 서유럽에서도 - 반파시즘 인민역량이 괴멸되고 대중의 체제로의 통합이 고도로 이루어진 가운데 패전을 맞이한 서독을 제외한다면 - 급진화된 노동운동세력과 공산당 세력이 힘을 크게 증대했다. 그러나 서유럽이 미국의 헤게모니 하에서 성립된 이른바 '자유진영'으로 편입됨으로 말미암아 이들 세력의 정치적 입지는 현격하게 축소되었다. 실제로 미국은 마샬플랜의 시행 등을 통해 서유럽의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서의 혁명을 저지하고 급진적 노동운동세력과 공산당세력을 타 정치세력으로부터 고립화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로 인해 서유럽에서는 국정에 참여한 세력들은 대체로 온건 우파세력과 온건 좌파세력이었는데, 이들 세력들은 '계급타협체제'의 구축을 위해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수립에 공통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2) 케인즈주의적 국가체제가 단지 수립된 데에서 더 나아가 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면서 안정화되고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선진자본주의 사회가 전후 20여년 간에 걸처 장기호황을 누린 것에 크게 힘입었다. 이 시기에 선진자본주의체제가 누린 장기호황은 다음과 같은 조건 속에서 가능했다. 무엇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체제는 세계대전의 여파와 1930년대의 역사상 유래 없는 경제공황 등으로 말미암아 계급대립이 격화되는 심각한 정치적-사회적 위기를 경험했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이 역사상 최초로 성공했고, 이태리, 독일 등지에서는 파시즘체제가 수립되었으며, 자본주의국가 간의 갈등 및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어 급기야 제2차 세계대전이 돌발했었다. 혁명과 반혁명 및 전쟁으로 점철된 이 기간은 동시에 전후 자본주의의 장기호황을 가능케 한 조건들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기간을 거치면서 과잉자본의 폐기, 노동시간의 연장, 노동강도의 강화 및 실질임금의 하락 등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사태 진행은 특히 패전을 경험한 독일과 일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로써 전후에는 자본이 높은 이윤율을 누리면서 축적을 행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조건들은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이 전후에 장기호황을 누릴 수 있는 출발점을 이룬다.
(3) 전후에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선진자본주의 사회의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확산되었다. 포드주의는 원래 1920년대에 미국의 포드 자동차공장에서 채택한 일괄 조립공정체계로서 기계의 리듬과 작동에 인간노동을 최대한 적응시키는 노동편성 원리이자 경영관리 기법으로서 구상과 실행의 분리, 노동의 파편화와 탈숙련화 - 소수의 과잉숙련화와 다수의 탈숙련화 - 및 직무의 단순화 등을 특징으로 지닌 '테일러주의'를 대공장의 생산공정에 적용시킨 것이다. 이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기계에로의 노동의 종속과 노동강도를 최고도로 높임으로써 잉여가치의 생산 및 생산력의 증대에 크게 기여하게 되며, 이를 통해 선진자본주의 체제는 미증유의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그런데 전후에 이루어진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의 이러한 확산은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생산 제1부문에서 더 나아가 소비재를 생산하는 생산 제2부문으로까지 확대된 것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소비재 생산부분에서도 대량생산체계가 확립된 것은 잉여가치의 '실현'문제와 관련하여 외국시장만이 아니라 내국시장의 중요성을 크게 높였다. 이로써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으로 내국시장에서의 '유효수요의 창출' 문제가 이 시기에 이르러 자본축적을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시키기에 이른다.
또한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한편으로는 기계로의 노동의 종속과 노동강도의 강화를 가져오고, 노동자들의 (탈숙련공으로의) 균질화와 대사업장으로의 집결을 촉진시켜 노동자계급의 대규모적인 투쟁을 폭발적으로 등장시킬 가능성을 높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잉여가치의 실현을 위해 대량구매와 대량소비체계의 수립을 요구한다.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조직적 힘이 크게 성장하여 '억압의 비용'이 '통합의 비용'을 넘어서는 조건 속에서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이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노동력의 정상적인 재생산과 노동자대중의 구매력 증대에 기여하는 상대적 고임금체계 및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사회화' 체계와 함께 노동자계급의 대규모적인 투쟁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그 투쟁의 폭발적인 등장을 완화할 수 있는 여러 수준의 '계급타협장치들'이 요구된다. 이를 배경으로 전후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한편으로는 자본축적의 원활한 지속에 이해관계를 지닌 '총' (독점)자본의 요구에 부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자 동반자관계 수립 노선을 추구한 사민당세력과 노동조합 지도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계급타협 체제가 사회적 수준에서는 단체협상의 제도화와 생산성 임금제의 실시 등으로, 국가적 수준에서는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수립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체제의 중요한 구성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1) 케인즈주의(Keynsianism):
케인즈주의는 일차적으로 팽창예산을 통한 공공투자의 증대를 위기예방과 경제의 지속적 성장, 완전고용의 달성 및 유효수요의 창출을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이론체계이다. 그런데 케인즈주의는 대공황 등을 거치면서 이른바 '자기조절적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유효수요의 창출이 위기예방과 잉여가치의 실현에 중요성을 지니게 된 조건 속에서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새로운 자본축적전략으로서 등장했다. 그런데 케인즈주의는 전쟁 수행과 전후 재건을 위해 국가가 주도적으로 경제재건에 나서야만 했던 상황 속에서 국가에 의해 채택된 자본축적전략이라는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생산의 사회화의 증대와 독점자본주의의 성립이 가져오는 경제의 불안정성의 증대 및 위기경향을 국가가 항상적으로 조절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독점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요구되는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처음으로 이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케인즈주의는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의 문제를 단순히 총수요와 총공급 간의 관계로 단순화하고 있고, 공공지출의 증대와 유효수요의 창출을 통해 자본축적에 고유한 모순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보는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로 인해 케인즈주의는 이윤율이 높은 조건 속에서는 과잉생산을 가져오는 과소소비나 생산 제1부분과 제2부분간의 불비례가 가져오는 위기를 예방해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데에는 기여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야기하는) 이윤율의 하락에 기인하는 '자본의 과잉축적의 위기'에는 경제위기를 타개하는 수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경제위기의 초래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케인즈주의의 중요성은 그러나 경제이론으로서의 과학성 그 자체에 있기보다는, 자본축적이 임금상승과 사회보장의 확대 등과 결합할 수 있음을 제창함으로써 전후 호황의 조건하에서 계급타협 구조의 창출에 적합한 '개량주의적' 국가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 있다. 그리하여 케인즈주의는 한편으로는 '불황 없는 속에서의 자본주의의 지속적 성장'을 보장하는 이론체계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성장이 노-자 모두에게 이익이 됨을 선언한 이데올로기로서 이 시기에 이르면 (아담 스미스의 이론으로 대표되는) '고전 정치경제학'을 대신하여 '국가이데올로기'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차지하게 된다. 케인즈주의는 이 시기에 이르러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세력뿐만 아니라 '부르주아국가에의 참여를 통한 개량'을 추구한 사민주의세력에 의해 자신의 국가참여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도 적극 수용되었다.
(2) 신코포라티즘(neo-coporatism) 또는 사회코포라티즘 (societal coparatism) 내지 민주적 코포라티즘(democratic coparatism):
신코포라티즘은 - '국가코포라티즘'(state copoartism)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무솔리니체제나 히틀러체제 하의 '강압적, 권위주의적 -민중배제적 코포라티즘'과는 달리 - 노동자계급의 '자율적' 조직화와 제반 사회적 권리 및 노조( 및 자본측)의 국가로의 '직접적인' 이익 대변을 인정하는 속에서 국가를 매개로 하여 노자간의 계급갈등을 계급타협으로 전화시키는 정치적 장치인 '포섭적-민중통합적 코포라티즘'을 가리킨다. 이 새로운 코포라티즘체제는 기존의 의회제적 대의체계와 거기에 상응하는 국가개입체계와 더불어 자유주의적 전통이 강한 미국을 제외한 선진자본주의사회의 어디에서나 많든 적든 계급적 이익대변과 국가개입의 새로운 형태로서 자리잡게 되며, 특히 사민당이 집권한 국가에서는 이러한 신코포라티즘체제가 강력하게 뿌리를 내린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사민주의체제를 '신코포라티즘체제'의 가장 발전된 형태라고 부를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부르주아국가에로의 참여를 통한 개량'과 '계급타협'을 옹호하는 사민당세력과 노동조합 지도부층을 - 그러한 코포라티즘체제의 구축에 찬성하는 부르주아세력들과 더불어 - '코포라티즘적 정치세력'으로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전후 선진자본주의체제의 '지배블록' 내지 '권력블록'을, 그것이 코포라티즘적 계급타협을 지지하는 부르주아세력과 노동자세력을 중심으로 편재되었다는 점에서, '코포라티즘적 지배블록 (내지 권력블록)'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전후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국가체제 하에서의 코포라티즘체제가 케인즈주의에 기반 하여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시기의 코포라티즘체제를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체제'로, 그리고 이 시기의 '코포라티즘적 지배블록'을 '케인즈주의적 지배연합'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을 지지한 혁신자유주의세력과 사민주의세력( 및 노조상층부)은 그러한 성격의 지배연합체제의 가장 중요한 두 기 등을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의 확고한 헤게모니 하에서 국가적 수준에서는 코포라티즘체제가 수립되지 않았지만, 사회적 수준에서는 매우 견고한 계급타협체제가 수립되었다. 그런데 미국정치를 지배한 주요 부르주아정치세력들이 1930년대에 형성된, 혁신자유주의적 내지 준사민주의적 노선인 '뉴딜노선'을 기본적으로 지지했다는 점에서 전후 미국의 지배블록은 ('케인즈주의적 지배연합'의 미국적 형태라고 말할 수 있는) '뉴딜적 지배연합'의 성격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 그런데 케인주주의적 계급타협체제는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한 기업의 수익 증대를 노동자 복지 증대와 결합시킬 수 있는 경제의 성장국면에서는 노자 모두에게 이익 균점을 보장하는 정치적 기제로서 작동한다. 그러나 복지삭감과 위기부담의 노동자계급으로의 전가가 요구되는 과잉축적의 위기국면에서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모두에게 그들의 계급적 이익 관철을 방해하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변하게 된다. 이 점에서 그러한 계급타협장치란 그 자체로서 계급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계급갈등을 제도화하고 체제내적인 것으로 변경시키는 장치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나아가 그 장치의 원활한 작동 여부는 결국 계급투쟁의 발전 수준에 의해 조건 지워진다.
(3) 사회복지정책:
사회복지 정책은 전후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완전고용이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가운데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코포라티즘적 계급타협 체제가 이룬 최대의 성과 중의 하나로서 특히 사민주의적 개혁이 이루어진 국가에서 폭넓게 시행되었다. 전후에 서유럽 사회에서 실시된 사회복지 정책은 (1) 사회전체의 복지를,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주관적 복지의 사후적 총합으로 본 고전적 자유주의의 복지관과는 달리, 집합적 의미의 복지라는 새로운 복지관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2) '복지권'을 '시민적 권리' 내지 '국민기본권'으로 인정하고 복지정책을 보편성과 포괄성에 입각하여 실시했다는 점에서 전전(戰前)에 이루어진 빈민구제적 사회보장정책과는 질적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사회복지 정책의 주요구성 내용인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국가개입은 일정 수준까지는 자본주의사회 발전의 일반적인 경향성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축적의 지속을 위해서는 노동력의 재생산이 요구되지만, 자본의 이윤추구과정은 노동력의 재생산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생산의 사회화가 진척되면 될수록 노동력의 재생산이 지닌 사회적 성격 역시 증대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국가가 노동력의 재생산에 경향적으로 더 많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개입의 심도와 형태 등은 계급적 힘관계와 성립된 정치구조의 차이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전후 서유럽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보편적 사회복지정책이 많든 적든 실시되었지만, 비슷한 조건 속에서도 사민당에 집권한 나라에서 그러한 사회복지 정책이 보다 포괄적으로 실시되었다. 특히 노동자계급과 신중간층 (초기에는 농민층) 간의 민주개혁과 복지를 위한 계급동맹에 기초해 근 40년간 사민당이 연정에 의하거나 단독으로 집권함으로써 수립된 스웨덴의 사회복지국가 체제는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의 가장 발전된 형태라고 부를 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에스핑-안델센(G. Esping-Anderson)과 같은 학자는 스웨덴의 사회복지 정책이 지닌 특징으로서 보편주의 원칙의 철저한 관철, 질적으로 높은 사회적 서비스체계 및 (복지와 생산성 향상을 결합시킨) '생산주의적 사회정책(productivist social policy)을 들고 있다. 그런데 스웨덴 사민당의 사회복지 정책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전 산업분야에 적용시킨 '임금연대정책' 등에서 잘 드러나다시피, 다른 나라들의 그것에 비해 보다 연대적이고 평등지향적이라는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스웨덴 사민주의의 그간의 성과를, 사민주의적 경향의 학자들이 평가하는 바와 같이, 자본에 대한 노동의 힘의 우위에 의해 성립된, '복지자본주의'와는 구분되는 '복지사회주의'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적 임금정책'으로 높이 평가되기도 하는 '임금연대정책' 역시 '이미 생산된 것의 분배'의 성격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서 이 정책은 이른바 '계급 내 사회주의'(socialism in one class)의 실현에는 공헌했지만, '계급간의 사회주의'(socialism between classes)를 실현하는 데에 기여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이 정책은 임금 차등화 등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끊임없이 분열시키는 자본주의의 작용을 교정하여 노동자들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는 것을 촉진시켰지만, 임금제도에 기초해 있는 자본주의 자체에 어떤 실질적인 타격을 가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스웨덴 사민주의정책은 '생산주의적 사회정책'을 적극 추진했는데, 이러한 생산주의적 사회정책은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는 '적극적인 인력정책' 내지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경제효율성의 제고와 경제성장과 결합시킴으로써 사회복지의 추구가 자본축적을 위한 방책으로 기능토록 만든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임금연대 정책' 역시 '적극적인 인력정책'과 결합하여 저임금을 주는 기업을 도태시키고 자본축적의 수준을 고도화시켜나가는 생산주의적 사회정책과 궤도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산주의적 사회복지 정책은 복지정책을 실현시킴에 있어 자본가계급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현대화와 합리화를 촉진하고 자본축적을 가속화시켜 줌으로써 사회 전체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 및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권력을 증대시키는 측면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도 사회복지 정책의 확대과정은 자본 지배력의 신장과 자본독점화의 가속화를 동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사민주의적 사회정책의 자본주의경제에의 종속성'을 표시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1970년대 중반 이후 스웨덴 사민당이 생산과정에 대한 자본의 통제권을 제한하고 '임금소득자기금'(wage-earner funds)정책을 통해 기업소유권을 노동조합으로 이전시키려 한 것은 그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자본의 구조적 권력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그 정책 역시 '자본과 함께 하는 혁명'이라는 계급타협적인 기조 하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자본의 구조적 권력을 약화시키는 데에 별달리 기여하지 못했다.
-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칼과 같은 남유럽 국가에서는 산업프롤레타리아층이 공산당의 중요한 사회적 기반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 공산당 역시 실제로는 사민주의적 노선을 추구했기 때문에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 체제의 작동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은 되었지만,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못했다. 이와는 달리, 1968-70년에 프랑스,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전개한 대투쟁은 - 위로부터의 권위주의적인 학제개편 등에 저항한 학생투쟁과 결부되어 - 전후 처음으로 계급타협 체제의 유지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6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장기호황이 완전고용 등을 가져왔지만, 그것이 야기한 임금상승 등이 이윤율의 하락을 촉진시킨 사태를 배경으로 국가가 임금인상 등을 억제하기 위한 다각적인 움직임을 보인 데에 대한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저항으로서 발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투쟁은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보다 명백히 띠는 운동으로 발전하긴 했지만, 운동과정에서 표출된 체제변혁적인 목표를 실현시키는 데에 성공하지 못하고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새로운 양보를 받아내는 선에서 종결되었다. 이 점에서 이 투쟁은 기존의 케인즈주의적 코포라티즘체제의 개선과 민주화에 기여하고, 투쟁의 주요성과로서 '임금의 대폭적인 상승'과 노동강도의 약화 등을 가져와 이후 공황과 구조적 불황의 도래 및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해체를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투쟁이 종결된 후 노동자들이 다시 체제에 재포섭되어 갔다는 점에서, 왈러스타인(Wallerstein) 등의 평가와는 달리, 전후에 수립된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출발점 또는 전후에 수립된 자본주의적 지배질서의 위기의 시작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 체제는 그 체제가 정착한 나라에서는 (노동자들의 저항 역시 그 체제에 파열구를 내기보다는 그 체제를 더욱 완벽 하는 데에 기여하는 가운데) 노동자대중에 대한 강력한 통합력을 발휘했다. 이로 인해 이 체제하에서 계급대립의 이슈는 분배와 복지 및 고용창출의 문제로 축소되었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운동 역시 국가와 자본에 대항하고 체제변혁을 추구하는 '대항권력'과 '새로운 역사적 블록'의 창출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자본지배를 인정하는 가운데 국가 내부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체제종속적인 운동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체제변혁적인) '계급운동의 소멸'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다른 한편,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 체제는 그러한 계급타협 체제의 유지를 잠재적으로 위협하는 밑으로부터의 노동자투쟁을 억압하는 기제로서 기능 하는 가운데 계급타협을 위한 고용창출과 경제성장 등을 명분으로 '생산력주의'와 '성장제일주의' 논리를 관철시켰다. 이러한 과정은 환경문제와 같은, 계급문제로 남김없이 환원되지 않는 제반 사회문제들을 만들어내고 그러한 문제들을 악화시키는 과정을 동반했다. 이를 배경으로 신중간층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신사회운동'이 크게 대두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운동들은 이후 자신의 운동을 정당운동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노동운동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많은 학자들은 마르쿠제(H. Marcuse)와 같이 탈계급화된 주변층 운동에, 또는 오페(Claus Offe)와 같이 신사회운동에 사회변혁의 기대를 거는 이론들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견해들은 그러나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 체제를 특정한 조건 속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한 역사적 현상이 아니라, 전후 자본주의체제의 영구적인 형태로 파악하고 있고, 계급적 노동운동의 재활성화 없이는 사회변혁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3.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제형태들
-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체제는 크게 보면 (1) '사민주의 헤게모니' 하에서 성립된 국가체제와 (2) (기민당정권 하에서의 독일이나 미국 등에서 나타난) '혁신자유주의 헤게모니' 하에서 성립된 체제로 나눌 수 있다.
- 사민주의 헤게모니 하에서 성립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체제 역시 (1) 가장 발전된 형태에 속하는 '스웨덴 사민주의체제' - 이 점에서 스웨덴사민주의체제는 가장 민중통합적인 부르주아국가형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2) 그 발전수준이 상대적으로 미급했던 영국의 노동당 정권 하의 국가체제 및 (3) (1)과 (2)의 중간수준에 속한 (자유당과 연정한) 독일의 사민당정권 하의 국가체제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 영국과 스웨덴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김영순, "복지국가재편의 두개의 길"(서울대 정치 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