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때가 차매“
설교 중심 사상:
사람의 구원을 위해 최적의 때에 맞추어 일하시는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시다.
2022년 대학수학능력 시험[수능] 날이었습니다. 1교시 시험이 진행 중이던 오전 9시 43분에 한 수험생이 자신의 SNS에 사진 두 장을 올렸습니다. 하나는 수험표였고, 다른 하나는 알람이 설정된 휴대폰 화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들과 함께 안타까운 사연도 올라왔습니다. 수능 전날 밤, 그가 잠자리에 들면서 오전 6시가 아닌 오후 6시에 알람을 맞추는 실수를 했습니다. 결국 애써 준비한 시험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그 학생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사람이 때를 잘못 맞추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4-5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은 때가 찼을 때 그리스도가 이 땅에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때를 맞추는 데 종종 실수를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언제나 최적의 때에 맞추어 일하십니다.
A. 물리적인 때[크로노스 시간]
구주에 대한 약속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처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맏아들이 구주가 되기를 바랐지만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사람들은 계속 구주를 기다렸지만, 그분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주를 보내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구주의 탄생 시기는 다니엘 9:24-25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4:4에서는 예수님이 오신 시기가 가장 적절한 때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은 구주께서 오시면 그 소식이 신속히 전파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여러 지역(중동, 소아시아, 유럽 일대)이 로마의 통치 아래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헬라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BC 4세기부터 알렉산더대왕의 정복 전쟁과 함께 헬라어가 보급되어 제국 안에서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셋째, 로마 제국 내에 도로망이 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로마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광범위한 도로를 건설했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동이 편리했습니다. 넷째,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돌아간다면 구주의 탄생 소식은 온 세상에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직전의 상황은 오늘날의 세상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요즘은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고 비행기를 타면 어느 나라든지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소식도 신속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 하나님께서 어떤 기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하신다면 그것이 신속히 전파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B. 영적인 때[카이로스 시간]
그러나 물리적인 조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사람들의 영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36, 37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죄의 기만은 최고도에 달하였다. 사람의 심령을 타락하게 하는 모든 작인(作因)이 움직였다.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의 몸은 악마의 거처가 되었다. 사람의 감각, 신경, 감정 및 기관(器官)이 비루한 정욕의 방종을 행하는 일에 초자연적 대리자들로 말미암아 움직여졌다. 악마의 인이 사람들의 얼굴에 찍혀 있었다. 죄는 하나의 과학이 되었고 부도덕은 종교의 한 부분으로 성별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심은 사람의 마음속 깊이 뿌리를 박았고 하늘에 대한 사람의 적개심은 매우 강렬하였다."..
이 내용은 요즘 세상이 아닌 약 2000년 전,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세상에 대한 설명입니다. 당시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지배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악마의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죄의 기만이 극에 달했고 하늘에 대한 적개심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는 데 더욱 대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으며 세상을 덮은 어둠은 점점 깊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둠 속에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를 찾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7세기 프랑스 과학자인 블레이즈 파스칼은 “각 사람의 마음에는 어떤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게 되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하나님 모양의 빈 공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앙이 깊었던 그는 진리를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파스칼의 경우처럼 진리를 찾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그들 중에는 유대인이 아닌 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 성경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구주가 오실 것을 깨달았고, 그 받은 빛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https://youtu.be/o-Aoa3a18tk?list=PLlGqzc7XTwx_lphIok0ahjCq0jp2qoTkn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들 대부분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성전 봉사의 책임을 맡았던 제사장들조차도 제사 제도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시대의 소망 36페이지는 "그들은 제물을 드리는 일을 연극하는 배우같이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연극을 보신 적 있으시죠? 배우들은 대본을 외워 무대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연기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대에서 내려오면 무대 아래에서의 인생은 무대 위에서의 삶과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직전 유대 제사장들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누구보다 진지했지만, 예식이 끝나면 일상은 그 예식과는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예배에는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빠져 있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이러했기에 백성의 모습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잘못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사탄의 대리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디딤돌로 부름 받은 그들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부름 받은 우리는 어떨까요?
몇 년 전, 세 컷으로 된 짧은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만화는 관을 쓰고 있는 예쁜 공주가 마녀의 저주 때문에 두꺼비로 변한 이웃 나라의 왕자를 보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공주가 두꺼비에게 키스를 해야 했고 그러면 두꺼비는 다시 멋진 왕자로 돌아오게 될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공주가 두꺼비에게 키스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화의 마지막 컷에서는 공주와 왕자가 아닌 두 마리의 두꺼비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그 만화를 보면서 저와 신자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우리를 통해 세상 사람이 아름답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닮아가며 변질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빠져버린 교회, 성령이 없는 신자들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초림 직전 이스라엘의 영적인 형편과 지금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매우 비슷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생 제사 제도와 율법을 주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생명이 빠져버린 그들의 제도에서 본질을 회복시켜 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의 성경 해석에서 인간의 생각을 제하고 진리를 밝히 드러내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가려지고 왜곡된 진리를 온전히 드러내고 바로잡아 주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당시 사람들이 직면한 영적인 상황이었습니다.
C. 최적의 때에 맞추어 일하시는 자비의 하나님
사탄은 사람들을 죄에 빠뜨린 후, 하나님이 더 이상 그들을 참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거두어들이고, 그들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과 사람들은 완전히 자기의 지배 아래 들어올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계획이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타락하지 않은 세계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거나 그들을 멸망시키는 대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사탄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던 위기의 순간에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죄에 빠진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적절한 때에 맞추어 일하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사탄은 이러한 하나님의 품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최적의 때에 맞추어 일하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군대에서 안식일을 위해 더 이상 투쟁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신학대학원 시절 등록금이 없었을 때, 성경 공부를 하면서 구도자의 마음을 결심시킬 수 없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은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신 때를 돌아보면 그보다 더 좋은 타이밍들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적절한 때에 일해 오신 타이밍의 하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담가로 40년 이상 부부들에게 도움을 준 게리 채프먼의 책, 5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모국어가 있듯이 각자에게는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있습니다. 채프먼이 제시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신체적 접촉" 그리고 "봉사"입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할 때, 그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도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4: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은 여러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셨지만 가장 중요한 표현은 그분이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사탄이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지 않고 그들을 포기하기 바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는 대신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며 생명을 누릴 때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올바로 아는 것이 하나님의 제1의 사랑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최적의 때에 맞추어 일하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시련이 있다면 그분이 일하시는 최적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립시다. 하나님이 그분의 시간표에 맞추어 가장 선하게 일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경험함으로 우리 인생의 시간표를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