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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면 강원도는 단풍이 붉습니다. 삼국통일을 이룬 태종무열왕의 6대손 김주원의 묘가 있는 명주군왕릉에서부터 구불구불한 임도를 따라 동쪽으로 두 시간쯤 걷다 보면 ‘해살이마을’이라는 아주 예쁜 마을이 나옵니다. 이름까지도 참 예쁘지요. 마을길도 예쁘고 마을길로 들어가는 들판의 개두릅(엄나무)밭도 예쁩니다.
옛날에는 강원도의 아주 오지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개두릅으로 전국에서도 아주 잘 사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우리는 그곳을 사기막이라고 불렀습니다. 옛날에 그곳에 옹기를 구워내던 가마터가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기에 가마터는 다른 곳보다 흙이 좋은 곳에 있을 것 같은데, 사실은 가마에 땔 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 자리잡았습니다. 예전에 사기막 마을이 바로 그랬던 거지요.
우리가 어릴 때는 거기에 작은 분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사천초등학교 사기막 분교인데, 분교는 3학년까지만 다니고 4학년 때부터는 본교로 다녀야 합니다. 그러니까 거기 사기막에서부터 30리가량 걸어 사천초등학교로 가야 했던 거지요.
저는 어릴 때 명주군왕릉이 있는 무일마을 아이들이 왜 사기막 분교로 가지 않고 조금 더 멀게 느껴지는 송양초등학교로 올까 궁금했었는데, 그게 바로 분교이기 때문에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3학년까지는 거기 다닌다 해도 4학년이 되면 무일에서 사천까지 열한 살 먹은 아이가 매일 걸어다닌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 먼저 소개한 심스테파노길을 걸어 송양초등학교로 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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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온갖 꽃이 피어난 사천 둑방길의 가을 속을 걷는 바우길 손님들. 2 개드릅밭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해살이마을 풍경. 3 해살이마을 명물인 징검다리로 개울을 건너는 바우길 탐방객들.
- 해살이마을은 경작지 절반이 개두릅밭
봄과 여름이면 해살이마을엔 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마을은 ‘개두릅축제’를 하고, 밭에서 딴 개두릅 잎을 박스에 넣어 전국 주문자에게 택배로 보냅니다. 예전에 개두릅나무는 산에 있거나 아무리 가까이 있어봐야 고작 밭둑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해살이마을 전체 경작지의 절반 이상이 개두릅밭입니다.
이 개두릅이 얼마나 인기가 좋으냐 하면 강릉단오 난전에서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난전의 많고 많은 음식점들 가운데 ‘두릅전’을 파는 곳은 해살이마을 가게가 유일한데 그 메뉴 하나만으로도 강릉의 소문난 호텔에서 임시로 차린 식당보다 더 인기가 좋을 정도입니다.
마을 안쪽으로 계곡 물이 흘러 여름에도 해살이마을을 찾는 피서객들이 많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산 위에서 내려다봐도 그렇고 마을 안으로 들어와 봐도 ‘여기서 한 닷새쯤 쉬었다가 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마을 징검다리도 예쁘고, 돌담길도 예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장장 12km를 우리나라에서 둑방의 원형보존이 가장 잘된 사천둑방길을 따라 바다로 나갑니다. 봄이면 둑방에 온갖 꽃이 피고, 여름이면 들풀이 자라고, 가을이면 이 냇물로 연어가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보리농사와 밀농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어떻게든 식량을 자급자족하려던 시기의 일입니다. 보리는 방앗간에서 쌀처럼 껍질을 벗겨 밥을 해먹고, 밀은 빻아서 대부분 국수를 해먹었는데 그게 요즘 밀가루처럼 하얗지 않고 조금은 검은색이 나는 통밀가루였습니다. 찰기도 요즘 흰 밀가루만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이야 밀가루 하면 눈처럼 하얀 걸 떠올리지만 정작 예전에 우리땅에 우리 밀을 심던 시절엔 밀가루는 흰색이 아니라 누런색이었던 거지요.
그런 우리나라의 시골 마을에 흰밀가루가 들어온 것은 광복 이후의 일입니다. 지금처럼 수입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구호양곡’으로 무상으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 미국에서 무상으로 들어오는 밀가루 포대엔 태극기가 그려진 팔뚝과 성조기가 그려진 팔뚝의 두 손이 악수를 하는 그림 아래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미국시민이 우방국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원조하는 양곡으로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어른들은 그것을 ‘사팔공 밀가루’라고 불렀습니다. 왜 ‘사팔공’인고 하니, 미국 어느 법의 480조가 바로 ‘잉여농산물 처리에 관한 조항’인데 그 법에 의거해여 들어온 밀가루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으니 이승만 정권 때는 애초 원조로 온 구호양곡의 취지 그대로 물건을 도시든 농촌이든 가난한 집에 배급을 주듯 공짜로 나눠주었습니다. 그 과정에 착복과 부정이야 말할 수 없었겠지만 어쨌든 ‘무상 원칙’을 지켰는데, 박정희 정부는 받을 때는 미국으로부터 공짜로 받아 국민에게 나눠줄 때는 절대 공짜로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받고 판 것도 아닙니다. 정부가 배급권을 갖고 국가적으로 실시하는 공사판의 노임으로 이 밀가루를 지급했던 것입니다. 사방공사 노임도 밀가루로 지급하고, 봄철에 대대적으로 나무심기를 할 때에도 품삯으로 밀가루를 지급했습니다. 지금도 시골 마을에 가면 ‘사팔공 제방’이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홍수 때마다 물이 넘치던 마을 둑을 이 사팔공 밀가루로 쌓았던 것입니다.
해살이마을에서 동해바다까지 이르는 12km의 사천둑방이 바로 이 시절 사팔공 밀가루로 공사를 한 제방인데, 그때부터 매년 비가 오고 홍수가 나도 지금도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 원형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큰 물이 져도 둑이 파여 나가지 않게 철사그물 망태에 돌을 채워 흙의 휩쓸림을 막습니다. 그런 철사조차 귀하던 시절 아이들은 돌로 철사를 두드려 끊어 그걸 자신의 썰매 밑바닥에 대거나, 여름이면 그 냇물로 올라오는 은어를 철사로 물 위를 두드려 잡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일급수의 어종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는데, 최근 이곳 사천천에 다시 진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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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물로 건져올린 물고기를 손질하느라 바쁜 사천항의 아낙들. 2 연어가 올라오는 사천을 건너는 사람들. 3 해살이 마을로 이어진 임도. 4 해살이마을 솟대.
- “우와! 연어가 올라온다!”
지난해 가을의 일입니다. 해살이마을에서부터 둑방을 따라 걸어오는데, 별로 넓지도 않은 사천천에 팔뚝보다 큰 고기가 죽어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처음엔 누가 치성을 드리고 나서 버린 커다란 북어인 줄 알았는데, 그게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여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을에 바다로부터 이 냇물을 따라올라와 알을 낳고 수정을 시킨 다음 장렬하게 죽은 연어의 암컷과 수컷들이었습니다.
양양 남대천에만 연어가 올라오는 줄 알았는데, 그보다 아래쪽의 연곡천으로도 연어가 올라오고, 또 그보다 좁은, 어떻게 보면 시골의 한 개울 같은 사천천으로도 연어가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어의 모습을 보고 사천에 사는 선배한테(그냥 선배가 아니라 바우길을 자주 걸으러 나오는 선배한테) 연어 이야기를 하니, “거기에 무슨 연어가 올라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선배가 어린 시절에 이미 연어의 자취가 끊겼는데 수십 년이 지난 다음 지금 다시 그 좁은 냇물로 연어가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 가을에 이 길을 걸으면 연어를 만날 수 있고, 또 연어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안도현의 ‘연어’ 이야기처럼 연어를 냇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징검다리에 앉아 물과 수평이 되게 옆으로 바라봅니다. 멀고도 먼 북태평양의 베링 해협을 지나 동해로 접어들어 다시 자기가 태어난 이 작은 마을로 찾아온 연어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어디 연어만의 길이겠는지요. 둑방 옆의 꼬부랑 논둑길을 따라 걷는 재미는 또 어떤지요? 그렇게 걸어걸어 우리는 교산 허균이 태어난 애일당 마을 뒤편에 세워진 허균의 시비를 지나 푸른 동해까지 나아갑니다.
전국에 임도야 참 많지요. 나무가 울창한 곳엔 어김없이 임도가 있지만, 대관령 자락의 임도에서부터 하루걸음으로 바다를 보러 가는 길, 그게 바로 사천둑방길입니다. 우리는 산에서 바다로 나가고, 연어는 바다에서 물을 타고 산쪽으로 올라옵니다. 우리는 지금 바우길의 상징과 같은 솟대그림의 오리가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 연어가 올라오는 그 길을 걷고 있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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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간 : 사천둑방길 (17km 소요시간 약 6시간)
■ 길안내
- 출발지-명주군왕릉
명주군왕릉~임도~사천 해살이마을~사천천 둑방~사천한과 마을~교산 허균시비~사천진리 해안공원
교통
■ 자가용·전세버스
- 영동고속도로~횡계(용평) 나들목~구 영동고속도로 휴게소~대관령 하류지점에서 보광리(보현사) 방향 좌회전~직진~고속도로 교각 밑 통과~대궁산장 앞 통과~보광리 버스종점(주차장)~명주군왕릉(구 영동고속도로 보광리 입구부터 약 5.5Km)
/ 글 이순원 바우길 탐사단장
사진 이기호 바우길 탐사대장
첫댓글 부지런하신 참돌님. 미쳐 못 읽은 기사를 이렇게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이번주 일요일 이길을 걸어볼까 했는데...
이기사를 보고나서 마음을 굳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