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일조는 생명의 빛(진리)으로 변화된 아들이다.
나. 선악과로 위장하여 실제인 것처럼 속이는 자가 겉 사람으로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다.
다. 하나님의 지성소(베레쉬트)는 내면의 몸 된 성전(속사람)이 실제다.
라. 창 1:1은 내(예수 차원)가 하나님의 이치로 개간(옥토밭)된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2. 본론
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일조는 생명의 빛(진리)으로 변화된 아들이다.
규정(율법)대로 물질의 십 분의 일을 드렸던 그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변질되어 병든 것, 잘못된 것도 드렸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십일조는 부패한 마음이 아니라 생명의 빛(진리)으로 변화된 아들로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원리다. 돈이나 물질이 아니다.
사기꾼 같은 야곱(강도에게 빼앗겼음)도 이스라엘로 변화하여 하나님께 돌아가 아들로서 자신이 십일조가 된 것이다. 앞에 등장하는 뱀들이, 독사의 새끼들이 이천 년 전 서기관 바리새인들임은 물론 지금 우리 앞에 다가온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바로 종교 행위를 통해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겉 사람(몸과 마음)을 지칭하는 것이다. 나를 겉 사람으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이 겉 사람에 속해 있는 아주 교활하고 머리 회전이 정말 빠르고 약삭빠른 마음을 속이는 요술사와 같은 자다. 이 요술사에 안 넘어가는 인생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 선악과로 위장하여 실제인 것처럼 속이는 자가 겉 사람으로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다.
서기관과 바래새인들은 선악과의 선을 실제 생명인 것처럼, 눈가림을 통해서 속이는 데는 천재다. 그리고 할 일을 다 했다고 안위하며 칭찬받기를 좋아한다. 겉 사람은 예외 없이 모두 이 같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며 또 사기꾼 같은 야곱과 같은 자다.
이 겉 사람이 예수를 만나서 몸과 마음을 끝내고 속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종교 행위를 통해 이루려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성직을 통해 이루려 하는 모든 겉 사람의 꿈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레위 제사장에게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참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왔던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처럼 내면에 있는 보석을 캐내서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생명의 십일조다.
참 십일조(참 마음)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다. 원래 나(예수 차원)의 것이었는데 속아서 빼앗겨버렸던 것을 속사람으로 다시 회복하는 원리다.
다. 하나님의 지성소(베레쉬트)는 내면의 몸 된 성전(속사람)이 실제다.
히브리서 7장에서 ‘십일조를 바친다(데카토오)’라는 말은 ‘십일조를 받는다(데카토오)’라는 말과도 같은 의미다. ‘받는 것’이 ‘바치는 것’이다. 십일조를 바치고, 받는 것이 동시에 발생한다. 내면에 계시는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내가 왕의 제사장으로서 바치고, 내가 왕으로서 받는다. 바치고 받는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 순간적인 일이다. 우리(하나님과 하나 된)는 십일조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십일조(이들)를 바쳐야 한다(보석을 캐내야 한다). 아들 됨이다.
십일조를 받는 것(속사람)이, 바치는 것(겉 사람)이다. 참 십일조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제사장만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이 속사람인 나(예수 차원)를 찾는 것인데 원래 나의 근본은 ‘베레쉬트(엔 아르케)’다. ‘베레쉬트’ 보석을 마음(휘장)이라는 강도 때문에 잃어버렸다. 내가 마음(겉 사람)이라는 강도에게 속아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 보석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결국, 마음이라는 강도에게 나의 근본인 ‘베레쉬트’를 탈취당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의 빛(진리)을 보고 깨달음으로서 그것을 다시 강도(겉 사람의 마음)에게서 찾아온 것이다.
라. 창 1:1은 내(예수 차원)가 하나님의 이치로 개간(옥토밭)된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본래 나는 하나님의 씨를 가지고 있었다. 참 십일조(데카토오)는 내가 거룩한 왕의 제사장으로서 내가 드리고 내가 받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사망의 십일조는 드리는 자와 받는 자가 따로 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하나님의 몸된 성전인 지성소다. 그 지성소가 바로 나의 내면의 거룩한 깊은 곳에 있다. 몸 된 성전이다. 몸 밖에서(특정한 사람) 찾으면 수천 년이 지나도 헛일이다. 목사 선교사 장로 신학박사의 직분을 통해 찾아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내 안의 하나님은 결코 나의 육신의 눈(眼耳鼻舌身意)으로는 계시 되지 않는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