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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사윗감 (1회) 두더지부부의 고민
먼 미래에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하러 도솔천궁에서 인간세계로 내려온다는 미륵부처의 터전 덕룡산 미륵사, 커다란 미륵입상 기단 아래 집 지어 터전을 일구고 사는 부지런한 두더지 부부는 아들 열에 딸 하나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지금 두더지 부부는 집에 없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들에 나가 씨앗을 뿌려 그것을 거두어 먹고사는 두더지 부부는 근면하고 성실해서 이 여름날 논 잡초라도 뽑고, 불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고추밭에 나가 붉은 고추라도 따서 말려야 할 텐데 열 아들에게 모두 맡겨 놓고 먼 길을 떠나고 없었다.
도대체 두 내외가 어디를 간 것일까? 두더지 부부가 어느 날 밤 곰곰 생각해 보니 이제는 검은 머리가 무서리 맞은 것처럼 하얗게 새고 눈이 자꾸 어두침침해질 만큼 살았으니 젊어 팔팔하던 기세도 수그러져 매일 들에 나가 일 욕심내고 살아왔던 지난날이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생명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은 언젠가는 늙어 죽음을 맞게 된다더니 이 두더지 부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열 아들 낳아 길러 짝 맞춰 오두막에 땅 장만이라도 해서 동네 골목 여기저기로 딴살림 물려주고 나니 이제 두더지 부부도 젊어 처녀 총각으로 만나 결혼식 올리던 시절이 까마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열 아들내외의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손자, 손녀 재롱에 이래저래 즐거운 일, 속상한 일을 겪으며 늘그막에 도란도란 사는 맛을 부대끼고 있는데 막상 이 두더지 부부에게 커다란 근심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낳은 열한 번째 외동딸이 이제 막 올해 열여덟 살이 되었으니 좋은 배필을 하나 만나 혼례식을 올려 주면 부모로서 할 일은 다 하는 셈이 되었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에 맞는 신랑감이 썩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 속으로 난 자식 예쁘지 않은 부모 없겠지만 아들만 열에 끝에 딸 하나를 얻었으니 남의 집 귀한 외동아들 키우듯이 온 정성을 다해 기른 딸이었다. 어려부터 명석하기도 하거니와 행동거지가 바르고 단정해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두더지 부부는 이 딸이 나이가 열다섯, 여섯 이렇게 먹어가면서 여인으로서 자태가 고와지고 품행이방정해 마치 울안에 핀 작약 꽃같이 화사하고 예쁘게만 보이는 것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그런 딸을 바라볼 때면 은근히 가슴에 삶의 보람 같은 게 괴어오르는 것이었고, 그 보람 만큼이나 야무지고 당찬 꿈이 일렁이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이 나라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최고의 사윗감을 얻어 배필을 맺어 주어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던 것이다.
딸이 자라면서 두더지 부부는 이런 옹골찬 생각을 설핏 가슴에 안아보곤 했는데 이젠 딸의 나이가 열여덟이 되고 보니 더 이상 주저할 수도 없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딸과 같은 또래의 이웃의 처녀애들은 여기 저기 맞선을 보기도 하고 하나 둘 시집을 보내기도 하는 터라서 두더지 부부도 자신의 딸 일에 대하여 이젠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아니 될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지난 봄 덕룡산 자락 골짜기마다 하얀 겨울눈이 쌓였던 것이 녹고 파란 싹들이 들에서 산에서 다투어 피어났다. 그새 멀리서 다가온 남녘의 해풍은 보리밭에 보리를 푸르게 일으켜 세우는가 싶더니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쑥이며 민들레를 파랗게 들 가득 깔아버렸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날아온 여름철새들은 파랗게 눈을 뜨는 나뭇가지에 앉아 반가운 울음을 울며 고단한 깃을 다듬는 것이었다.
이제 두더지 부부도 또 한해를 시작하는 봄을 맞아 논과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모종을 내고 길러야 했다. 그새 부지런한 이웃들이 논밭을 갈아엎느라 덕룡산 미륵사 주변 밭 자락은 쟁깃날에 갈아엎은 붉디붉은 선홍빛 황토를 내보이며 봄을 앓고 있었다. 이렇게 새봄을 맞이한 두더지 부부는 이제 딸이 열여덟이 된 것을 알고는 딸의 혼사에 대하여 어느 날 밤 불현 듯 말을 내었던 것이다.
최고의 사윗감 (2회) 가장 힘센 사위
“여보, 영감 우리 딸도 이제 열여덟이니 시집갈 나이 아니겠어요?”
잠자리에 누운 두더지 영감은 아내가 불쑥 던져오는 말에 귀를 열고 조용히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벌써 그렇게 되었구만, 할멈, 혹시 어디 사윗감으로 생각해 놓은 좋은 사윗감 있나?”
두더지 아내는 영감의 말을 듣고는 속으로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내가 아는 곳에서는 아직 사윗감을 발견하지 못했다오. 영감은 누구 나 몰래 점찍어 놓은 사윗감이라도 있소?”
이렇게 물어오는 아내의 말에 두더지 영감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 보는 것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배필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없었다. 이웃집 두돌이 녀석은 힘은 세지만 머리가 미련하였고, 건넛집 두생이 녀석은 머리는 약삭빨랐지만 힘이 모자랐고, 인물이 성에 차면 머리가 부족했고, 가문이 좋고 재산이 실하면 사람이 보잘것없어 보이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두더지 영감은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듯 봄날 꽃송이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제 딸을 여기 저기 이웃의 덜 떨어진 허점투성이에 못나게만 보이는 총각 녀석들과 비긴다는 게 몹시 마뜩찮았다.
“없어! 무슨 그 녀석들은 절대로 안 되지!”
두더지 영감은 아내의 말을 몹쓸 것을 입에 문양 퉤! 하고 멀리 내뱉어 버리듯 말했다.
“그럼 영감, 애 나이도 혼기가 찼는데 이러고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하긴 그러네…”
두더지 부부는 밤새워 말을 나누며 딸의 장래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렇게 그날 밤 말이 나오자 이제 두더지 부부는 밤마다 딸의 신랑감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밤 두더지 부부는 딸의 신랑감에 대하여 일종의 합의에 이르렀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자기 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어 결혼식을 올려 주기로 했던 것이다.
이제 두더지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가 누군가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서 가장 돈이 많은 두돈이 대감의 아들이라 해도 권력과 돈을 함께 가진 고을의 원님 아들보다는 힘이 약했고, 고을의 원님 아들은 또 한양의 정승 아들보다는 힘이 약했고, 정승의 아들은 한 나라의 임금의 아들인 왕자보다는 힘이 약할 것이었다. 물론 임금이 며느리 삼자고 두더지 영감에게 딸을 주라고 할리 만무했지만, 두더지 영감이 생각하기엔 그 임금의 아들 왕자라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두더지 영감의 의견에 아내도 동의를 해왔다. 왕자라고 해봐야 세상의 모진 풍파에 몰리면 하루아침에 가을바람에 낙엽처럼 신세가 험악하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고, 또 권력에 대한 암투에 휘말리거나 내란이나 전쟁을 당하면 자칫 생명조차 부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고된 일을 해야 했던 모내기철을 보내고 있는 어느 밤이었다. 두더지 영감이 저녁을 먹고 진달래꽃이 지고 푸른 잎이 돋아나는 깊은 산 속에서 두견새가 울어대고 무논에 개구리가 우는 저녁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는데 아내가 퍼뜩 말을 건네 오던 것이다.
“영감,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는 아무래도 저 하늘의 해님이 아니겠소.”
“…!”
그 말에 두더지 영감은 번갯불 맞은 양 머리가 번쩍 틔었다.
최고의 사윗감 (3회) 염천국(炎天國)
“내가 오늘 낮에 논에 가면서 생각해 보니까 산에 나무들도 다 해님이 길러 주고, 우리 논에 나락도, 우리 밭에 고추도 상추도 다 해님 덕에 파릇하니 자라나니 세상에 하늘의 해님만큼 힘이 세고 강한 사윗감이 어디 있겠어요!”
“어이 옳거니! 인자 봉깨로 늙은 할망구가 그래도 쓸 모양이 많네 그랴! 허허허!” 두더지 영감은 이제야 비로소 제 딸의 사윗감을 찾았구나 하고 만면에 웃음을 베어 물며 맞장구를 쳤다.
늘그막에 혼기가 찬 예쁜 딸 배필도 찾지 못하고 끙끙 앓다 덜컥 죽어 가려는 팔자는 아닌가하고 괜스레 겁이 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윗감을 용케 찾아내다니 생각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쑥 내려간 듯 두더지 영감은 마음이 금세 부풀어 올랐다.
‘음! 그럼!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내 사위는 저 하늘의 해님 정도는 되어야지!’ 두더지 영감은 속으로 이렇게 되 뇌이며 이 세상의 밝은 낮을 온통 지배하고 하늘에 높이 떠서 만물을 길러주는 해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라고 확신하는 것이었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윗감을 알아냈으니 그 사윗감을 만나 설득해 딸의 배필로 정해 날짜를 잡아 결혼식을 올려주면 될 것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그 날 이후부터 해님을 만날 일에만 몰두했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제 자식 잘되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겠는가. 세상에 없는 것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구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인데 하물며 매일 보는 하늘의 해님쯤이야 딸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못 얻어주랴. 이런 심정으로 두더지 부부는 해님이 사는 곳을 수소문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님이 사는 곳을 수소문하기를 또 한달 드디어 덕룡산 골짜기에서 온통 새하얀 머리에 긴 수염을 휘날리는 어느 늙은 도인을 만나 동쪽으로 천리 길 동해 바닷가 염천국(炎天國)에 해님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드디어 해님이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낸 두더지 부부는 집으로 돌아온 곧바로 열 아들을 불러모아놓고 일렀다.
부모는 내일 아침에 중요한 일로 오랜 여행을 떠날 것이니 논과 밭을 열 아들이 열흘에 한 번씩 돌아가며 잘 돌보라고 말이다. 열 아들은 부모인 두더지 부부의 여행에 대하여 물었으나 두더지 부부는 그 일을 비밀에 부치고 천리 길을 떠날 채비를 챙겼다. 부러 그 일을 아들들에게 먼저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여행에 필요한 넉넉한 여비에 짐을 챙겨 등에 메고 다음날 해님이 산다는 염천국을 향하여 동으로 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위하여 이만큼의 노고야 힘든 일이 아니었다. 두더지 부부는 향기로운 봄꽃 만발한 늦봄의 들길을 지나 호젓한 산길을 걸어 때론 지나가는 우마차에 몸을 의지해 가기도 하고, 끼니때면 주막에 들어 국밥을 사먹기도 하고, 인심 좋은 동네에 들어가 한 끼 점심이나 저녁을 신세지기도 했다. 날이 저물면 여관에 들어 자기도 하고 또 길가 집에 들어 사정을 말하고 하룻밤 얹혀 자고 가기도 했다.
최고의 사윗감 (4회) 해님
이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되는 뜨거운 길을 걸어 두더지 부부는 줄기차게 동쪽을 향해 나아갔다. 집 떠난 지도 그새 한 달 여가 지나가고 달포가 가까워지자 마침내 바다가 나타났다. 드넓은 바다가 나타나고 한없이 푸른 물결 위로 갈매기들이 날아다녔다. 두더지 부부는 해님이 산다는 동해에 도착한 줄을 알고는 지나가는 수염이 텁수룩한 생쥐영감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생쥐 영감님, 여기가 해님이 산다는 염천국인가요?”
“오호라! 염천국을 찾아가시는 객이시군요. 염천국은 여기서 배를 타고 한참가면 섬이 나타나는데 그곳이라오. 염천국행 배는 석양에 딱 한번 있으니 그때를 놓치지 마시오.“
두더지 부부는 자신들이 제대로 염천국을 찾아온 것을 알고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 이곳 바닷가에서 염천국행 배만 타면 해님을 만날 것이었다. 석양에 한번 있는 배를 타기 위하여 두더지 부부는 근처 바닷가 주막에 들어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두더지 부부는 불볕 이글거리는 여름날의 바닷가에 나가 시원한 바닷물에 생전 처음으로 해수욕을 즐겼다. 그리고 드디어 서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 바닷물이 온통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오는 석양이 되자 선착장에 집채만큼 큰 배 한 척이 뿌아앙! 뱃고동을 울리며 나타났다. 염천국행 배였다. 두더지 부부는 서둘러 배에 올랐다.
막 해님이 바닷물에 닿는 순간 배는 출발했다. 빛살처럼 미끄러지듯 바다를 가르는 배는 해님이 바닷물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동쪽 끝 커다란 섬에 도착했다. 섬은 고요한 어둠 속에 쌓여 있었다.
용솟음치는 거대한 바다 물결이 섬을 곧 삼켜버릴 듯 일렁이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두더지 부부는 시퍼런 바다 물결이 두려워 잽싸게 선착장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 곳에는 낙지영감이 있었다.
“낙지 영감님, 해님의 집은 어디인가요?”
“저기 동쪽 산 아래 커다란 대궐이 있는데 그곳이라오.”
두더지 부부는 낙지영감이 가르쳐준 곳을 향해 재우쳐 걸어갔다. 과연 얼마를 가니 동쪽 산비탈에 커다란 대궐 같은 집이 나타나고 커다란 대문이 보였다. 두더지 부부는 대문 앞에 다가가 소쩍새 문지기에게 물었다.
“여기가 해님의 집인가요?”
“네 그렇소. 우리 해님은 지금 막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들고 계시는 중이라오. 그런데 댁은 뉘시오?”
“우리는 저기 지구 조선국 전라도 서쪽 땅 덕룡산 미륵사 미륵님 아래 사는 두더지 부부라오. 해님을 만나 부탁드릴게 있어서 왔으니 우릴 좀 해님에게 데려가 주시오.”
“참으로 먼 길들 오셨군요. 나를 따라오시오.”
석양을 안내하는 소쩍새 문지기는 두더지 부부를 밤을 지키는 두견새 안내인에게 데려다 주었다. 두견새 안내인은 두더지 부부를 응접실로 데리고 가더니 가재 시녀들을 시켜 저녁을 내오게 했다. 두더지 부부는 맛있는 저녁을 배불리 얻어먹고 응접실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해님이 모습을 나타냈다. 얼굴이 거울처럼 반짝이는 해님은 과연 하늘의 왕답게 위엄 있었는데 인자한 미소로 두더지 부부를 반겨 주었다.
최고의 사윗감 (5회) 구름님
“어서 오십시요. 저를 만나기 위하여 먼 길을 오셨다지요?”
“예, 해님! 이 늙은 두더지 부부가 해님에게 부탁이 있어 이렇게 먼 길을 왔군요.”
해님은 가재 시녀에게 차를 내오게 해서 두더지 부부를 대접하며 말했다.
“덕룡산 미륵사 미륵님은 하루에 한 번 씩 내가 내려다보고 지나가는데 저에게 무슨 부탁이 있어 그 먼 길을 오셨나요?”
“실은 저에게는 아들 열에 딸 하나가 있지요. 그런데 저.........”
두더지 영감이 해님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들어주실 수 있는 일이라면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주저하지마시고 말씀해 보시시오.”
해님이 점잔하게 말했다.
“내 그럼 말씀 드리리다. 아들 열은 다 결혼 시켜 잘 살고 있는데 끝에 낳은 예쁜 딸 하나를 아직 상대를 고르지 못해 혼례식을 올려주지 못하였소. 그래서 늙어 언제 황천길 객이 될 줄 모르는 나이가 되었는데 그게 걱정이 되어 우리 부부가 의논한 끝에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윗감을 골라 딸의 배필로 삼아 주기로 했소.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한 결과 하늘의 해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이렇게 내 딸의 배필이 되어 주시라 부탁하러 먼 길을 왔소. 그러니 해님 우리 부부의 부탁을 거절하지 말고 우리 사위가 되어 주시오.”
두더지 영감은 부부가 먼 길을 온 까닭을 말하고는 해님에게 간절히 부탁 했다. 그 말은 들은 해님은 한동안 말없이 두더지 부부를 쳐다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뜻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저도 두 분의 뜻을 들어주고 싶으나 실은 저는 세상에서 힘이 제일 센 것이 아니랍니다.”
뭐라고? 이 말을 들은 두더지 부부는 커다란 쇠망치로 쿵하고 머리라도 얻어맞은 양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져버렸다.
“해님! 그 무슨 말씀인가요? 땅이나 파먹는 하찮은 두더지라고 해서 우리 집 사위가 되기 싫은 게요 그래서 지금 우리를 무시하는 것인가요? 부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우리말을 거절하지 말아주시오.” 두더지 영감은 혼미한 정신을 겨우 가누며 힘주어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두 분은 잘 들어보십시오. 저는 날마다 하늘에 그냥 높이 떠 있을 뿐이랍니다. 그런데 그때 만약 구름님이 내 얼굴을 쓰윽 가려버리면 저는 꼼짝도 못하고 구름님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은 구름님이 아니겠습니까! 두 분께서는 어서 구름님을 찾아가서 잘 부탁해 보십시오.”
해님의 말을 들은 두더지 부부는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해님 말이 맞지 않는가!
최고의 사윗감 (6회) 운천국(雲天國)
두더지 부부는 하마터면 자신의 딸을 해님에게 줄 뻔 하였구나하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해님의 집을 부랴부랴 빠져 나왔다.
어서 구름님을 찾아 가야 했다. 그런데 구름님은 어디에 살고 있단 말인가? 해님 말에 의하면 구름님은 남쪽으로 천리 길 바닷가 운천국(雲天國)에 살고 있다지 않는가! 두더지 부부는 구름님이 산다는 운천국을 향해 서둘러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더지 부부는 염천국을 빠져 나와 이제는 남으로 운천국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딸의 배필을 구하기 전에는 절대로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두더지 부부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더지 부부가 갖은 고생을 하며 천리 길을 걸어 남쪽 바닷가에 도착할 때는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었다. 들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추수가 한창이었고, 밭에 콩, 수수, 옥수수들이 익어 풍요로운 들길의 연속이었다. 산에는 산열매들이 익고 나뭇잎들이 가을빛으로 울긋불긋 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겨울을 준비하는 산짐승들의 발걸음도 바빴다.
밤알이나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 논에 나락 알을 훔치는 참새 떼, 이를 하얗게 내고 웃는 허수아비, 보랏빛 쑥부쟁이에 샛노란 들국화가 핀 가을 길을 걸어서 이윽고 남쪽 바다에 닿은 두더지 부부는 하늘에 빨갛게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를 보고 감과 배들이 주렁주렁 익고 있을 고향집을 떠올려 보았다.
열 아들은 번갈아 가며 논밭의 곡식들을 잘 거두어 들였는지, 집에서 보던 그 하늘과 산과 들은 잘 있는지 그리움이 자꾸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런 감상에 젖을 수는 없었다. 사랑하는 딸의 배필을 구해 열여덟을 넘기기 전에 결혼식을 올려주는 것이 더 큰일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길가는 수염이 허연 메뚜기 영감에게 말했다.
“영감님, 여기 운천국 가는 길이 어딥니까?”
“허허! 운천국을 찾아가시는 객들이신가 보군요. 운천국은 저기 산 너머 칠흑보다 더 새까만 안개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거기 있다오. 너무 어두워 길이 안보일 테니 횃불을 준비해 가십시오.”
메뚜기 영감은 맑은 눈을 반짝거리며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두더지 부부는 횃불을 준비해 들고 산 너머 운천국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과연 운천국 가는 길은 짙은 안개로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서 힘이 제일 센 구름님을 만나 사위로 삼아야 할 것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힘을 내서 횃불을 부여잡고 안개 속을 한 걸음 한 걸음 헤쳐 나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더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만큼 걸었을 때 갑자기 눈앞이 훤해 지더니 저 멀리 외길을 따라 솜털구름, 새털구름, 먹장구름 등 각종 구름으로 만든 대궐같이 커다란 집이 나타났다.
최고의 사윗감 (7회) 구름 궁전
황제가 산다는 궁궐과 같은 어마어마한 집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과연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구름님이 사는 집은 저렇게 크고 좋구나하고 생각하며 딸이 구름님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아득히 먼 외줄기 먹장 구름길을 걸어 이윽고 하얀 뭉게구름 대문 앞에 도착하니 미꾸라지 수문장이 두더지 부부를 가로막았다.
“운천국 구름 궁전에 오신 분들은 누구신가요?”
“우리는 저기 아득히 먼 서쪽 덕룡산 미륵사 미륵님 밑에 집을 짓고 사는 두더지 부부입니다. 구름님을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 먼 길을 왔으니 제발 만나게 해주십시오.”
두더지 영감이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시군요. 이곳으로 오십시오.”
미꾸라지 수문장은 가물치 집사에게 안내를 해주었다. 가물치 집사를 따라 들어가 너른 응접실 구름 방석 위에 앉자 두더지 부부에게 붕어 시녀들이 점심을 내왔다. 두더지 부부는 맛있게 점심을 먹고 구름님을 기다렸다. 가물치 집사 말에 의하면 구름님은 지금 일을 나가 세상을 한 바퀴 돌아다니며 목마른 나무와 곡식들, 그리고 짐승들에게 한바탕 단비를 내려 주고 있다고 했다.
오후 늦게 일을 마친 구름님이 돌아왔다. 구름님은 뜻밖의 손님에 반가워하며 두더지 부부를 만나러 나왔다. 검은 먹구름 옷을 걸친 하얀 얼굴의 구름님은 과연 그 위세만큼이나 잘 생기고 부드러운 인상에 포근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금빛 은빛 잉어 시녀가 차를 들고 나왔다. 차를 마시며 구름님이 말했다.
“덕룡산 미륵사 미륵님은 제가 한 달에도 서너 번씩 내려가 만나는 분인데 그 먼 곳에 사시는 분이 이곳까지 오시다니 어인 일이십니까?”
“구름님, 저희는 아들 열에 딸 하나를 낳아 길렀는데, 아들 열은 다 짝을 만나 결혼을 시켜 주었으나 끝에 낳은 딸이 하나 있어 아직 혼인 전인데 기왕이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고자 생각한 끝에 하늘의 해님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분이라 생각하고 해님을 찾아가 우리 사위가 좀 되어달라고 부탁했지요. 그런데 해님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구름님이라고 하여 이렇게 왔지요.”
두더지 영감은 지나온 과정을 소상히 이야기했다.
“허허! 그러한 연유로 두 분께서 이렇게 저를 찾아오셨군요.”
구름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고의 사윗감 (8)풍천국(風天國)
“구름님, 이 늙은 부부의 부모 된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부디 청을 들어주어 제 딸아이의 배필이 되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우리 딸은 세상에서 제일 마음씨 곱고 예쁜 색시랍니다.”
두더지 영감은 간곡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구름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두 분께서는 잘못 찾아오셨군요. 사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가 아니랍니다.”
“에잉! 저 하늘의 해님이 우리에게 거짓을 말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그 말을 들은 두더지 부부는 순간 깜짝 놀란 눈빛으로 구름님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제 스스로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은 바로 바람님입니다. 저를 움직이는 것은 바람님이니까요. 바람님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이지요.”
“아!.....” 그 소리를 들은 두더지 부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바람님이 아닌가!
“바람님은 여기서 천리 길 북쪽 얼음 바다 끝 풍천국(風天國)에 살고 계신답니다. 두 분께서는 늦기 전에 어서 그리로 바람님을 찾아가 보시지요.” 구름님이 은근한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고 말했다.
두더지 부부는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구나’ 하고 생각하며 구름님에게 얼른 작별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가도 가도 아홉 겹 칠흑 안개의 바다 운천국을 부리나케 빠져 나오며 두더지 부부는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여기서부터 천리 길 북쪽 얼음 바다 끝에 있다는 풍천국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성큼 찾아온 겨울이 드세었다. 늦가을 된서리가 하얗게 지붕을 덮고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깊은 동면으로 들어가 버렸다. 감나무 끝에 까치밥 하나 붉게 달린 찬 하늘을 바라보면서 쌩쌩 겨울바람 사납게 불어오는 북쪽을 향해 얼굴을 목도리로 감싸고 두더지 부부는 하염없이 걸었다. 하늘에는 기러기, 고니, 오리, 까마귀 등 겨울 철새들이 떼로 몰려오고 있었다.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아마도 눈이 퍼부을 기세였다. 동네 앞에서 연을 날리는 조무래기들은 신명이 나서 떠들며 팽이를 치고 얼음을 지친다지만 늙은 몸에 한기가 스치니 두더지 부부는 금방 쓰러질 듯하였다. 그렇다고 가던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기어이 풍천국에 가서 세상에서 힘이 가장 센 바람님을 사위로 얻어야만 했다. 두더지 부부가 북쪽 얼음 바다 끝에 도착한 것은 겨울이 한창 깊은 때였다.
최고의 사윗감 (9) 바람님
눈이 내려 온몸이 빠지고 뼈가 얼리도록 시린 바람이 불어대는 때였던 것이다. 두더지 부부는 겨우 북쪽 얼음바닷가에 도착해 마침 썰매를 타고 지나가던 흰곰 영감에게 물었다.
“영감님, 풍천국은 어느 길로 가는 것이지요?”
“에구! 추운데 풍천국을 찾아 가신다고요. 그럼 이 썰매에 오르시오. 나도 거기로 가는 중이라오. 내 아들놈이 풍천국 바람궁에 근무하는데 일이 있어 거기 가는 길이지요.”
두더지 부부는 잘 되었구나하고 얼른 흰곰의 썰매에 올라탔다. 썰매는 바람처럼 미끄러지며 얼음의 바다 위를 달려 나갔다. 한참을 달려가니 하늘에 반짝이는 얼음성이 나타났다. 얼음으로 뾰쪽 뾰쪽 깎아 만든 기기묘묘한 성이었다.
성문 앞에 도착하자 독수리 대장이 지키고 있었다. 흰곰 영감은 성문 안으로 들어가고 두더지 부부는 따로 독수리 대장을 만났다.
“두 분은 무슨 일로 풍천국을 찾아 오셨나요?”
“저희들은 덕룡산 미륵사 미륵님 아래 사는 두더지 부부인데 풍천국에 사는 바람님을 뵈러 온 것이지요.”
독수리 대장은 두더지 부부를 고니 성지기에게 안내를 해주었다. 고니 성지기는 두더지 부부를 귀빈실로 데리고 가서 저녁을 대접했다. 기러기 시녀들이 맛있는 저녁을 내왔다.
저녁을 먹은 두더지 부부는 바람님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고니 성지기가 내주는 방에 들어 잠을 청했다. 바람님은 밤새워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아침에나 올 거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난 후 두더지 부부는 귀빈실에서 바람님을 만났다. 바람님은 그 위풍만큼이나 투명한 얼음 옷을 걸쳐 입고 근엄한 얼굴에 매서운 눈썹을 휘날리며 가는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맞아주었다.
“두 분 이 먼 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저는 하루에도 열 몇 번씩 덕룡산 미륵사 미륵님을 뵙지요. 봄에는 따뜻한 봄바람으로 여름에는 강력한 태풍으로 가을에는 서늘한 산들바람으로 지금 같은 겨울에는 매서운 북풍으로 만나곤 한답니다. 가끔씩 비와 눈을 몰고 가 퍼붓고 오지도 하지요.”
“오! 그러신가요 바람님. 다름이 아니라 내겐 아들이 열에 딸이 하나 있는데, 아들은 모두 결혼을 시켰으나 하나 있는 딸을 아직 사윗감을 구하지 못해 결혼을 시켜주지 못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고 싶은 게 소원이 되었지요. 그래서 모든 생명을 길러주는 저 파란하늘의 해님이라 생각되어 찾아갔더니 해님은 자기가 아니고 구름님이라 일러 주었지요. 그래서 다시 구름님을 찾아갔더니 자기도 아니고 바로 바람님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이라고 일러주어 이렇게 내 딸의 배필이 되어 주십사 하고 찾아왔군요. 내 딸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시이니 바람님은 거절하지 말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최고의 사윗감 (10) 미륵님
두더지 영감은 그간의 고생에 비쩍 야윈 얼굴로 간절히 바람님에게 말했다. 정말 이렇게 바람님을 만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던가! 발은 띵띵 얼어붙고 살갗은 헤져 트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었다. 바람님은 두더지 영감의 말을 듣고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뜻을 들어주기는 어렵지 않으나 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가 아니랍니다.”
“뭐라고요?”
해님을 만나고 구름님을 만나고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바람님을 만나기 위하여 세상의 끝 이곳 바람궁까지 왔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가 바람님 자신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두더지 영감은 바람님을 넋이 나간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분 잘 들어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이는 인간들이 사는 사바세계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천리 두 분이 오신 덕룡산 미륵사 바로 거기 서있는 미륵님이랍니다.”
“뭐라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 위 바로 미륵님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그 말을 들은 두더지 부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두더지 부부는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놀란 눈빛으로 바람님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지금껏 자신들은 바로 자기 집 위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미륵님도 몰라보고 살아왔단 말인가? 이런 바보천치 멍텅구리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결코 그럴 리는 없었다.
“바람님, 무슨 농담을 그렇게 잘하시나요. 우리들이 아무리 무식하기로서니 우리 집 위에 서 있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도 몰라보고 지금껏 살아오며 여기까지 왔겠어요. 그러지 말고 우리 청을 들어주시오.” 두더지 영감은 미륵님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그게 정말이랍니다. 제가 천년동안이나 거센 폭풍우에 차디찬 눈바람을 그 미륵님에게 하염없이 몰아쳐 불어댔으나 한 번도 미소 변하지 않고 지금도 까딱없이 그 자리에 서있지 않나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은 바로 제가 아니라 덕룡산 미륵사 그 미륵님입니다. 두 분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그분에게 사위가 좀 되어 달라고 잘 부탁해 보시지요.”
바람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게 옳지 않은가! 두더지 부부는 정말 자기 집 위에 항상 미소를 그윽하게 짓고 서있는 커다란 미륵님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자신들을 후회하며 바람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자기 집 위에 있는 사윗감도 몰라보고 동에서 남으로 다시 북으로 수천리 길을 발이 닿도록 돌아다니지 않았는가!
최고의 사윗감 (11) 구도자
두더지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가슴을 치고 탓하면서 어서 그 힘이 센 사위를 얻어 성대하게 딸의 혼례식을 올려주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그리운 고향집을 향해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두더지 부부가 집에 도착한 것은 계절이 바뀌어 다시 온 세상에 푸른 생명 일렁이는 봄이었다. 지난 봄 고향을 떠날 때 새로 푸르게 돋아나던 이파리들을 나뭇가지마다 달고 있었고 여기저기 색색의 봄꽃들이 향기를 머금고 일제히 피어나고 있었다. 그 나뭇가지마다 지난 가을 남녘으로 날아갔던 여름 철새들이 돌아와 새로운 사랑을 위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두더지의 열 아들들은 멀리 길 떠난 부모를 기다리며 올해 농사를 새로 지으려고 소를 몰고 나가 논밭 쟁기질에 열중이었고, 딸은 부모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집을 잘 지키고 있을 것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오랜 여행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잖아도 늙은 몸이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겠다는 욕심으로 동으로 해님을 찾아, 남으로 구름님을 찾아, 북으로 바람님을 찾아 고행의 길을 떠났다가 마침내 서녘 끝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오면서 그 기나긴 여로에 몸이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었던 것이다.
얼굴의 주름 골은 논고랑처럼 깊이 패었고, 머리카락은 파뿌리처럼 새하얗게 새버렸고, 허리가 지끈지끈 쑤시고 다리는 퉁퉁 부어 흡사 절름발이처럼 절뚝거렸다. 그러나 두더지 부부는 몸은 쑤시고 아팠지만 마음은 매우 편안했다. 그들이 애초에 가졌던 열망에 대한 답을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번뇌 망상의 열망이 가슴에 불씨가 되어 그것을 구하러 집을 떠난 구도자(求道者)가 되어 천하를 주유하는 가파르고 고단한 고행 끝에 비로소 자신의 고향 땅에 자신들이 찾아 헤매는 가장 힘센 사위가 있다는 위대한 깨달음을 얻고 돌아오는 거룩한 성자(聖者)와도 진배 없었다. 집 대문 앞에 돌아온 두더지 부부는 급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뒤로 미룬 채 집 위의 미륵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륵님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바보 같은 우리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위에 있는 미륵님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이라는 것도 모르고 이렇게 한 평생을 살아왔군요.”
“아니, 그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그 말을 들은 미륵님은 순간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은 우리 내외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자는 소원을 가지고 지난해 봄 집을 떠나 해님과 구름님과 바람님을 찾아 세상 곳곳을 헤매었지요.”
“아! 그러한 연유로 두 분께서 오랫동안 집을 비우셨군요.”
최고의 사윗감 (12) 두더지 총각
“그런데 그 고단한 여정 끝에 비로소 미륵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 집에 막 도착했습니다. 미륵님, 우리 딸의 배필이 되어 주십시오. 날을 잡아 음식을 많이 장만해놓고 일대의 수많은 분들을 초대해 성대하게 혼례식을 올립시다.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싯감이란 것을 미륵님도 잘 아시겠지요?”
두더지 부부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간절히 말했다. 빙그레 미소를 지은 채 그 말을 들은 미륵님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뜻을 들어주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나 사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가 아니랍니다.”
“뭐? 뭐라! 미륵님! 지, 지금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매일 흙이나 파먹고 살아가는 무식한 두더지라 싫어서 그러십니까? 우리 부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에 우리 딸을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어 시집보내는 게 마지막 소원입니다. 미륵님은 제발 거절하지 마시고 이 늙은 부부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두더지 영감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애절한 목소리로 공손히 말했다.
“아이고! 두더지 영감님, 절대로 그것이 아닙니다. 제가 서있는 아래를 잘 살펴보십시오. 지금 저는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랍니다. 당신 두더지들이 제가 선 발아래를 파서 집을 만들고 사니 언제 제가 쓰러질지 몰라 두려워서 날마다 가슴을 콩닥콩닥 졸이고 있답니다.”
미륵님의 말을 들은 두더지 부부가 설마하고 미륵님의 발아래를 살펴보니 정말 두더지들이 이리 저리 흙집을 짓느라고 파헤쳐 미륵님이 언제 쓰러져 버릴지 모를 지경이었다. 깜짝 놀란 두더지 부부가 미륵님의 얼굴을 바라보니 은은한 미소 깊숙한 곳에 두려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저렇게 단단하고 육중한 돌로 만들어진 미륵님도, 온 세상을 다 품에 안을 듯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륵님도 한낱 자신들 두더지들의 흙 작업에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다.
“두 분 이제 잘 아시겠지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힘이 센가를요!” 미륵님이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미륵님의 그 말을 들은 순간 두더지 부부는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충격으로 자신도 모르게 ‘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활연관통(豁然貫通) 대오(大悟)의 찬란한 희열(喜悅)이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오도(悟道)의 찰나였다.
“어허! 그럼 우리 두더지들이 해님보다도 구름님보다도 바람님보다도 여기 미륵님보다도 더 힘이 센 존재란 말인가! 우하하하하하! 아니 세상에서 우리 두더지가 제일 힘이 센 존재란 말인가! 우우하하하하하하!”
“아니 정말 우리 두더지들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라니! 여보 그게 정말인가요! 호호호호호!”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위대함을 발견한 두더지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얼싸안고 소리치며 하늘이 무너져 내리라고 크게 웃었다.
두더지 부부가 세상에서 하나뿐인 예쁜 자기 딸을 마음씨 착하고 근면한 그리고 진실하고 정직한 성품을 지닌 건강한 이웃집 두더지 총각에게 시집보낸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