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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장 관중과 포숙 (1)
- 나는 관중(管仲)이다.
이것은 이때보다 근 9백 년 후의 사람인 삼국시대 촉한의 명재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의 말이다.
공명은 일찍이 양양성 교외의 융중(隆中) 이라는 곳에서 땅을 일구며 숨어 지냈다. 비록 초라한 들베옷 차림이었지만, 그는 일찍부터 가슴속에 세상을 향한 큰 뜻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공명의 그러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함께 글공부를 하는 서서, 최주평, 서도 등 가까운 친구들조차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공명(孔明)이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 그대들은 벼슬길에 나가면 주(州)의 자사나 군(郡)의 태수자리에는 능히 오를 수 있을 것이네.
그러자 서서가 공명에게 물었다.
- 그렇다면 자네 자신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공명(孔明)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 나는 관중(管仲)이네.
불세출의 명재상 제갈공명이 자신의 능력을 관중에 비교한 이 일화는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면 관중(管仲)은 태공망, 제갈공명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재상으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남긴 정치가이다.
그는 제나라 재상이 되어 제환공을 일약 춘추시대 제일의 패공(覇公)으로 끌어올리며, 제나라를 천하의 중심국으로 격상시킨 최고의 공로자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관중(管仲)을 '춘추시대의 빛나는 별' 이라고까지 극찬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관절 관중(管仲)은 어떠한 사람이기에 후대 사람들로부터 이같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지략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제갈공명의 정신적 스승이 되었던 것일까.
또한 그는 과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제환공과 인연을 맺고 제나라의 재상 지위에 오르게 되었을까.
이제부터 우리는 관중에 대한 행적을 추적해보도록 하겠다.
관중의 본래 이름은 이오(夷吾),
물론 성(姓)은 관(管)이다.
- 관이오(管夷吾).
이것이 그가 어릴 적 불리어진 호칭이다.
관중의 '중(仲)'은 자(字)이다.
대체로 성인이 되면 자를 지어주어 이름대신 그것을 부른다.
예우하는 의미에서이다.
문자는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이름자 역시 문자이므로 당연히 뜻을 포함하고 있다.
대체로 사족 이상의 지배층에서는 자(字)를 지어줄 때 그 사람의 인품이나 앞날을 축원하는 바람으로 이름자를 짓는다.
앞서 거론한 삼국시대의 명재상이자 지략가인 제갈공명의 '공명(孔明)'역시 자(字)인데, 두루두루 밝게 세상을 빛내는 인물이 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집안사람들로부터 어느만큼의 기대를 받고 있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이름자이다.
그러나 관중의 이름자를 보면 그렇지가 못하다.
이오(夷吾)의 '이(夷)'자는 본래 한족(漢族) 이외의 이민족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나 꼭 오랑캐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나라로 치면 '개똥이'정도의 의미라고나 할까.
다소 경멸의 뜻이 담겨져 있다.
자(字)인 '중(仲)'의 의미 역시 그러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중(仲)이라는 글자에는 거창한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 단순히 둘째라는 뜻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풀어 말하자면 관씨 집안의 둘째 아들놈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뜻이 없다. 이런 작명법은 이 시대의 특징일 수도 있다. 이것으로 짐작건대, 관중에게는 형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역사서에서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의하면, 관중은 영수(潁水) 유역의 영상(潁上)마을 태생이다. 영수는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서북부와 하남성 서부에 걸쳐 흐르는 강이다.
중국에는 네 개의 큰 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황하, 장강, 제수, 회수가 바로 그것이다. 사독(四瀆)이라 함은 바로 이것들을 일컬음이다.
그 중 회수(淮水)는 하남성과 하북성에 걸쳐 솟아 있는 동백산에서부터 발원하여 황해로 흘러 들어간다. 주변으로 여러 갈래의 지류들이 속속 회수(淮水)와 합류한다.
삼회(三淮)라고도 한다.
영수(潁水)는 그 삼회 중의 하나이다.
숭산 남쪽의 소실산에서 발원한다고 하니까 지류치고는 꽤나 크고 긴 강이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