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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소월시문학상,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풀꽃문학상, 송수권시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하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 시인이신 선생님께서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드신 밥,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반찬 없이 국물 없이 목메게” 드신 밥,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쓸쓸하고 서럽고 눈물겨운 밥은, ‘진화하는 건강한 서정’은, 선생님의 시를 통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시작(詩作) 40여년의 발자취를 감히 따라가 보고자 한다.
《대표시》
감나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 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시집『몸에 피는 꽃』)
걸어 다니는 호수
소의 커다란 눈은 호수 같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는 호수
소가 눈 들어 앞산을 바라보니 앞산이 호수에 잠긴다
눈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잠긴다
소가 꿈벅, 하고 눈을 감았다 뜨니 산이 눈을 빠져 나오고
소가 또 꿈벅, 하고 눈을 감았다 뜨니 구름이 빠져 나온다
소는 느리게 걸어 다니는 호수를 가지고 있다
(시집『슬픔은 어깨로 운다』)
밥알
갓 지어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시집『몸에 피는 꽃』)
•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미소와 눈웃음이 넘 매력적이세요.(웃음) 제27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하셨을 때, 문태준 시인님의 심사평을 옮기겠습니다.
(이재무 시인의 시는 아무런 특권을 갖지 못한 서민들이 발 딛고 사는 격랑의 현실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시는 줄곧 글썽이는 가난 곁에 있어왔다. 이른바 그가 스스로 지칭한 우악스런 ‘생활의 손아귀’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의지가 그의 시의 육성이다.)
선생님의 시집에서 아프게 드러내 보이시는 ‘우악스런 생활의 손아귀’, 즉 가난에 허적이던 선생님의 유년시절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님께서도 가난으로 인하여 48살의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연년생 동생분의 이야기도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엄니
마흔여덟 옭매듭을 끊어버리고
다 떨어진 짚신 끌며
첩첩산중 증각골 떠나시는규
살아생전 친구 삼던 예수 따라
돌아오리란 말 한마디 없이
물 따라 바람 따라 떠나시는규 엄니
가기 전에 서운한 말
한마디만 들려달라고 아부지는 피 울음 쏟고
높은 성적 받아왔으니
보아달라고 철없는 막내는 몸부림을 쳐유
보시는규, 모두들 엄니에게 못 갚은 덕
한꺼번에 풀고 있는 이웃들의 몸 둘 바 모르는 몸짓들인데
친정집 빚 떼먹은 죄루다
이십 년 넘게 코빼기도 안 보이던
막내 고모도 갚지 못한 가난
지 몸 물어뜯으며 저주하구유
시집오면서 청상과부 올케에게
피눈물로 맡겨놨다던 열 살짜리 막내 삼촌도
어른 되어 돌아오셨슈
보시는규, 엄니만 일어나시면
사는 죄루다 못 만난 친척들의
그리움 꽃 활짝 필 흙빛 얼굴들을
보시구서도 내숭 떠느라 안 일어나시는규
지척거리며 바람이 불고 캄캄한 진눈깨비 몰려와
마루 끙끙 울리는 동지 초이틀
성성하던 엄니의 기침 소리는
아직 살아 문풍지를 흔드는데
다섯 마지기 자갈논 가쟁이 모래밭 다 거둬들이던
그 뜨겁던 맨발 맨손 왜 자꾸 식어가는규
가뭄 탄 잡초 같은 엄니의 입술 보며
크고 작은 동생들 올망졸망 함께 모여서
지청구 한마디가 듣고 싶은디
왜 시종 말이 없는규
궂은 날 지나 갠 날이 오면
아들딸네 집 두루 돌아댕기며
손자 손녀들 재롱 시중드는 게 소원이라시더니
그 갠 날 지척에 놔두시고선
끝끝내 아까워 못 꺼내시던
한복 곱게 차려입고서
진주댁이 쥐어준 노잣돈 쥐고
기어이 물 따라 바람 따라 떠나시는규 엄니
(시집『섣달그믐』)
간경화꽃
농약에 과로에 찌든 가슴은
간경화꽃의 비료입니다
설움에 원한에 멍든 가슴은
간경화꽃의 거름입니다
증각골 가득 간경화꽃이 피었습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지치고 힘 부친 가슴은
무엇이든 투정 없이 먹어댑니다
지금, 증각골 가득
섬뜩한 간경화꽃이 피었습니다
(시집『섣달그믐』)
재식이
아비의 평생과 죽은 엄니의 생애가 고스란히 거름으로 뿌려져 있는
다섯 마지기 가쟁이 논이 팔린 지
닷새째 되는 날
품앗이에서 돌아온 둘째 동생 재식이는
한동안 잊었던 울음 쏟고 말았다
맷돌 같은 손으로 흘러넘치는 눈물 찍으며
대대손손 가난뿐인 빛 좋은 개살구의
가문의 기둥 찍고 찍었다
동생의 아이고땜으로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자”
가훈이 덜컹 마루 끝으로 떨어지고
동네 허리 감싸 안은 야산도
함께 울었다 여간한 슬픔
끝 모를 절망의 늪에
온몸 빠졌을 때도, 눈물에 인색하면서
선웃음 잃지 않던 뚝심의 동생이
썩은새로 무너지며 터뜨린 눈물로
텃밭 푸성귀들을 자지러지게 흔들던 날
예순의 머슴 아비도
죽은 엄니 초상화 꺼내 들고
아끼던 눈물 한 방울
방바닥으로 굴리셨다
팔려버려 지금은 남의 논이 된
그 논에 모를 꽂고 온 동생의 하루가
내 살아온 부끄러운 나날에
비수 되어 꽂히던 달도 없던 그날 밤
건넛집 흑백 TV 브라운관 뛰쳐나온
프로야구의 들끓는 함성이
허름한 담벼락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시집『섣달그믐』)
• 시인은 시로써 말하는 게 좋은데 인터뷰 형식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 췌언을 보태면, 저희 세대(베이비붐)의 유년은 누구나 엇비슷한 토대와 환경에서 나고 자랐지요. 절대적 가난과 궁핍 속에서도 천진과 무구를 잃지 않았던 시절 말입니다. 저에게 고향은 상반된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도피하고 싶은 욕망과 근원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와 시간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도 과거의 파편들은 계통 없이 수시로 출몰합니다. 오늘 현재는 오지 않은 미래의 전사이고 지나간 과거의 후사입니다. 그러니까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교차로인 셈입니다. 현재에 무의도적으로 개입하는 과거의 조각들로 인해 내 삶은 매순간 다르게 구성됩니다. 요컨대 출몰하는 과거로 인해 나는 새롭게 구성되어 다시 태어납니다. 이럴 때 과거는 소멸이나 망각이 아니라 생성이나 창조의 원인 혹은 근원이 됩니다.
‘재식이’는 연년생 동생인데 결혼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이른 나이에 ‘火, 水, 地, 風’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동생은 지금도 제 가슴에 아픈 가시로 남아 있습니다. 동생은 가정 형편 때문에 스스로 고교진학을 포기했고,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서 몇 년 동가숙서가식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는데 한참 형편이 나아지려 할 즈음에 결혼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를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동생은 제게 갚을 길 없는 부채만을 안겨주고 떠난 셈입니다.
• 선생님의 시집을 읽으면 참 많이도 울먹이는 선생님을 뵐 수 있습니다. 모든 시인들이 그러하겠지만 유난히 한이 많으신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시를 쓰시게 된 계기, 배경을 들려주실까요?
• 헝가리 문예 비평가 게오르크 루카치의 말을 빌리면 시대적 상황이나 개인의 전기적 생애가 미학적 형식을 불러들일 때 시인과 작가가 탄생한다 하였는데 저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누구들처럼 문학 청년기의 체험이 없습니다. 살다보니 우연히, 거짓말처럼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제가 최초로 쓴 시는 위에서 소개되고 있는 <엄니>인데 이 시는 군 제대 후 복학(계절학기)을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늦가을, 엄니를 장지에 묻고 돌아와 부의록에 쓴 것입니다. 이후 틈틈이 시가 찾아왔습니다. 이렇듯 저는 파란만장, 우여곡절, 요철의 굴곡진 생애가 어느 날 문득 미학의 형식을 불러와 운명처럼 시의 인생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몰래 온 사랑
밤사이 비가 다녀가셨다
우리가 잠든 사이 도둑처럼 오셔서 산과 들을 깨끗이 쓰고 닦고 가셨구나
나는 이렇게 몰래 다녀간 것들이 좋다
몰래 온 비
몰래 온 눈
몰래 온 사랑
몰래 와서는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들
몰래 들어와 내 안에서 기숙하는 사랑아!
올 때처럼 갈 때에도 몰래 가거라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제부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그러나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가득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말인가? 이별 말인가?
하루에 두 번이면 되지 않겠나
아주 섭섭지는 않게 아주 물리지는 않게
자주 서럽고 자주 기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자랑스러운 변덕이라네
(시집『위대한 식사』)
백련사 동백꽃
동백나무들은 장애수障碍樹였다
암 병동 환자들처럼 하나같이 괴롭고 불편한 육신들
성긴 가지끼리 깍지를 껴,
서늘한 그늘 드리우고
임종 직전 꾸역꾸역 환자가 토해내던 피
뭉클뭉클 붉게 피우는 꽃숭어리들,
지병 안고 사는 자들의 소리 죽인 통곡으로
체한 듯 속이 먹먹하다
추추가 만든 미미, 추사 김정희 서체를 닮은,
백련사에 가지 말았어야 햇다
봉해놓은 과거의 매듭 풀리고 방 안 가득
질펀하게 울음 쏟아붓는,
귀양에서 풀려나 다시 몸과 마음 꽁꽁 묶어오는 것들
지독히 불운한 인연들,
아름다운 사랑은 모두 속 붉은 병이었다
(시집『저녁 6시』)
•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시편들을 참 많이 가지고 계시고, 선생님의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백련사 동백꽃」의 마지막 구절, “아름다운 사랑은 모두 속 붉은 병이었다”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교사로 재직하고 계신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 아내는 전교조 1세대 교사였습니다. 1980년 후반 명동성당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단식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교사를 하고 싶었으나 대학 재학 시 교육 무크지 <<민중교육>>誌에 르뽀 <교사 임용 이대로 좋은가?>를 상재하는 바람에 블랙리스트에 올라 교사 임용이 어렵게 되어, 지방에서 상경하여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문인단체 <<민족문학 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의 상임간사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진보적 성향의 출판사 <<청사>>에서 편집장 일을 하는 한편 ‘작가회의’ 시분과 부위원장 직을 맡고 있었는데 몇몇 시인들과 함께 교사들을 위로하고자 성당을 찾아가 지지 시낭송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내를 만났고 결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고무친에 적수공권이었던 처지라 처가 쪽에서 반대가 심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묵 이야기
1
멱을 감다가 가재를 찾아 골짜기를 두 팔 두 다리 아프게 훔치다 배가 출출해지면 간 큰 놈들이 해오는 참외 수박 서리로 배를 채우고 우리들은 맨입 맨손으로 집에 가기가 허전하고 죄스러워서 이제 일과의 하나가 되어버린 상수리나무 숲으로 가을 양식을 벌러 가야 했다 주인인 재정이 할아버지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조무래기 몇을 보초로 세워놓고 머리통보다 두 배나 세 배 더 큰 돌을 머리 위로 세워 들어 나무의 허리께를 향해 던졌다 자지러지게 팔다리를 흔들며 나무가 울고, 싹 꿈꾸며 땅 그리워하던 다 익은 열매들은 떨어지면서 깔깔깔 웃어댔다 빵병 앓는 머리통에 버짐 핀 얼굴 위에 그때마다 밥벌이에 바쁜 왕텡이 식구들이 소낙비로 쏟아지는 총알 같은 열매 사이를 뚫고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우리들은 적을 만난 병정들처럼 잽싸게 엎드려 자세로 숨을 죽이고 동정을 살펴야 했다 수색마친 벌들이 윙윙거리며 그들의 진지로 돌아가는 시간이 천 년처럼 길고 아득했다 언뜻, 밀린 숙제가 떠오르고, 선생님의 회초리가 아프게 다가오고, 술 취한 당숙의 뒤켠이, 장에 간 엄니가 그새 보고 싶고......
2
여기저기 우리 동네의 앞날처럼 시체로 널브러진 열매들이 들뜬 손을 부르면, 날아간 벌들의 꽁무니에 가을 공판장 술 취한 어른들의 손짓 발짓으로 네에미시팔 욕설을 실컷 퍼붓고, 질세라 졸라맨 허리띠 다시 추슬러 런닝구가 불룩하도록 열매를 주워 담았다 그해 여름 내내 손등 발등에 훈장처럼 빛나는 상처가 늘어갈수록 장독대의 항아리 가득 열매가 부어졌고, 그것으로 엄니들은 묵 빚어 가을 양식을 삼고 더러는 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시집『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서울 오는 길
막차가 떠났다 뽀얀 먼지가 일고
나이 든 누이와 막내
품앗이 마치고 집으로 가던
아낙들 서넛
저녁 바람에 고즈넉이 흔들리는
미루나무와 나란히 서서
오래도록 손 흔들어주었다
멀리, 사립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 누워 계신 먼 산 보며
아버지 청자담배 피워 무셨고
남녘서 날아온 새 한 마리,
가난에 매 맞고 죽은
둘째 동생 재식이와의 추억이
솔잎으로 돋아나는
서편 숲으로 가뭇없이 사라졌다
아리랑 부르며 울며 넘던 고갯길을
숨 가쁘게 차가 달렸고
인가의 불빛은 꽃잎처럼 피어나는데
철들어 품은 기다림 그리움은
멀고 아득하기만 해서
마음의 심지 타오르는 희망의 등잔불
바람 앞에 언제나 서럽고 위태로웠다
마을 사람들 마음의 손이
꽁꽁 동여맨 간절한 기구의 보따리
허리에 차고
평생을 가도 가닿지 못할
그러나 기어이 가야만 하는
멀고 험한 길 가며
바닥을 잊은 가슴샘에서
솟는 눈물은 또 얼마나 퍼올려야 하는 것인가
멀미가 일어
달게 먹은 점심의 국수 가락 토해내면서
서울 오는 길
고향은 끝내 깍지 낀 내 몸
풀지 않았다
(시집『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 선생님의 시집을 읽으면서 아련한 그리움으로 섧기도 하였고 애잔하여 저도 모르게 눈물을 닦기도 하였습니다. 제1시집(『섣달그믐』)과 제2시집(『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은 시로 엮은 자전적 소설처럼 읽힙니다.
• 제 시적 이력은 크게 세 번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첫 시집 <<섣달그믐>>, 두 번째 시집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세 번째 시집 <<벌초>> 등은 전반기에 속한 것들로서 주로 고향에서의 유년, 가난, 가족서사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네 번째 시집 <<몸에 피는 꽃>>에 와서야 서울 생활에서의 체험이 우러나기 시작합니다. 이후 생태학적 세계에 몰두하다가 최근 들어서는 실존적 범주로 시의 관심이 이동하게 됩니다. 저는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시를 쓰지 못하는 체질입니다. 그때, 그때 대상과 세계에 대한 순간적 감응에 시의 몸을 맡기는 쪽입니다.
저는 제 나날의 구체적 일상에서 시의 소재를 주로 구하는 편입니다. 일종의 ‘생활의 발견’이랄까? 리얼리즘의 기율에 충실한 편이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부지불식간 모더니즘의 경향을 띄기도 합니다. 아마도 몸으로서의 체험이 줄어든 대신 독서 편력이 가져다 준 결과 때문일 텐데 이것으로 시의 우열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내가 생활에 지고 온 날 늦도록 전전반측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면 머리맡으로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달아오른 이마를 짚고 축 처진 어깨를 두드리신다. “얘야, 괜찮다, 아직은 괜찮다.” (2012 제27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인 시선집 『길 위의 식사』, P. 219)
깊은 눈
마을회관 한 구석 고물상 기다리며
한 마리 늙고 지친 짐승처럼 쭈그려 앉은,
흙에서 멀어진 적막과 폐허를 본다
젊어 한때 쟁기가 되어 수만 평 논 갈아엎을 때마다
무논 젖은 흙들은 찰랑찰랑 얼마나
진저리치며 환희에 들떠 바르르 떨어댔던가
흙에 생 담궈야 더욱 빛나던 몸 아니었던가
논일 끝나면 밭일, 밭일 끝나면
읍내 장터에, 잔치 집에, 떡 방앗간에, 예식장에, 초상집에
공판장에, 면사무소에, 군청에, 시위 현장에
부르는 곳이면 가서 제 할 도리 다해온 그였다
눈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밤 만취한 주인 실고 오다가
멀쩡한 다리 치받고 개울에 빠져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저 또한 팔 다리 빠지고 어깨와 허리 크게 상하기도 했던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노동의, 그 오랜 시간을
에누리 없이 오체투지로 살아온 그가 오늘은
바람이 저를 다녀갈 때마다
저렇듯 무력하게 검붉은 살비듬이나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몸의 기관들 거듭 갈아 끼우며
겨우 오늘에까지 연명해온 목숨 아닌가
올 봄 마지막으로 그가 갈아 만든 논에
실하게 뿌리내린 벼이삭들 달디 단 가을 볕
쪽쪽 빨아 마시며 불어오는 바람 출렁, 그네 타는데
때 늦게 찾아온 불안한 안식에 좌불안석인 그를
하늘의 깊은 눈이 내려다보고 있다
(<제1회 윤동주 문학대상> 수상작품)
• 저는 시인은 신들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생님처럼 선생님의 시야에 들어오는 무엇이든 낚아채어서 시를 쓰실 수가 있으실까요? 신들렸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선생님의 신은 어떤 존재일까요?
• 하하하, ‘신들린 사람? 이라’ 글쎄요, 제가 詩魔에 들었다고는 차마 낯간지러워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시에 미쳐 사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40여년을 한결같이 시를 떠나 살지 못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일상의 종교처럼 걷는 일에 열중합니다. 걷다보면 수시로 잡념이 찾아옵니다. 그 잡념 속에는 더러 운 좋게 씨의 시앗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시는 길이 준 선물입니다. 길이 제 시의 자궁인 셈이지요. 제게 신은 길입니다. 즉 걷는 일입니다. 걸으면서 저를 정화하고 기원하고 용서하고 사유를 빚기도 하니 이만하면 종교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팽이
오늘 나는 한 방향만을 고집하는
저 낯익은 사내에 대해 다시 노래하련다
회초리가 와서 자신의 몸을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돌고 돌면서 미쳐 날뛰면서 그는
회초리가 빨리 더 빨리
다녀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맹렬한 속도로 돌고 도는 관성은
바라보고 있으면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직립의 회전을 보이기도 하나
주기적인 매질이 없으면
언제라도 바닥에 내팽개쳐질 가련한 신세
그러기에 팽이는 돌면서 매를 부르고
회초리는 팽이의 몸에 척척 감기며
가학의 쾌감에 전율한다
저 현기 속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오, 저것은 얼마나 지독한
자본의 마조히즘과 사디즘이란 말인가
(시집 『저녁 6시』)
유빙들
어긋난 사랑 엇도는 관계를 저렇게도
아프고 무력하게 말하는 것들이 있다
한파가 맺어준 단단한 결속을 저렇게도
한순간에 허무는 것들이 있다
둥둥 물살에 휩쓸려 떠다니면서
한 몸으로 살았던 어제를 잊고
서로를 불신하며 밀어내고 있는 것들이 있다
쩌렁쩌렁 겨울 천하를 호령하던 이력 지우고
흐르는 세월에 재빠르게 순응하는 것들이 있다
(시집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옻나무
어릴 적 나는, 토담집 한 귀퉁이
십수 년 우리 집 가난과 함께 자라온
옻나무가 무서웠다 살갗만 살짝 스쳐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던 그 괴괴한 나무의 서늘한 눈빛과
무심코 눈이라도 부딪는 날이면
어김없이 밤마다 진저리치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해인가
할머니의 가슴앓이로 다리 한 짝 잃고도
아버지의 진기 빠진 근력을 위해
팔 한 짝 선뜻 내주던 은혜였던 나무
그리고 그다음 해의 늦봄
해수병의 당숙 기어이 속옷으로 쓰러뜨리던
성성한 이파리로
그늘을 넓혀 이십여 평 양지의 마당
삼키어가던 식욕 좋던 그 나무가
어릴 적 나는, 왜 그리 무서운 금기의 나무였는지
지금도 추억 떠올리면 종아리에 소름꽃 핀다
옻 타지 않는 이에게 더없이 약 되면서
옻 타는 사람에겐 더없이 병 되던
은혜와 배반의 이파리로 엮어진 나무
그 시퍼런 이중성의 표정이
근엄한 판검사의 얼굴로 닥지닥지 열리는 것을
어느 날 나는, 법정의 방청석에서
오돌오돌 떨며 그러나 똑똑히 보았다
(시집『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 서정시에서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점이 저에게는 날카로운 현실비판과 새로운 비전 제시였습니다. 하지만 서정시에 그런 첨예한 의식이 드러나 있지 않은 것은 아니거든요. 이것이 저의 편협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선생님의 시집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실비판이 잘 들어나지 않게 보이는 것은 서정시가 가진 온건함, 온화함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어쩜 자연친화적인 세계를 노래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모든 악과 맞서는 비전을 제시해 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서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곳을 말해주거든요. 제 나이쯤에 이르러서는 무언가를 잘 모르면서도 다 알듯 하기도 하고요.(웃음) 그것이 허무인지 모르겠지만 절로 자연을 닮은 시를 찾아서 읽게 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드라마는 재벌의 얘기라든가 평범하지 않은 일상의 얘기들로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에 우리들 범상한 일상과 콘크리트 벽만 등장한다면 시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시에는 별이 등장하고 달이 등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자연은 우리들을 꿈꾸게 해주고 원형인 고향으로,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회귀하게 해줌으로써 출렁이는 양수 속에서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안락함과 평화로움을 제공해주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시를 읽는 내내 자연 속에서 함께 숨 쉬는 것 같아서 평화롭기도 하였고 아프기도 하였고 번득이는 사유에 이르러서는 감탄을 금치 못 하기도 하였습니다.
• 과람, 과찬이십니다. 자연은 우리 생활의 부모이자 스승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주 안의 편재하는 사물들은 다 같이 관계망, 그물망으로 얽혀 있습니다. 인간을 모든 사물은 인드라망 즉, 우주(자연)을 구성하는 한 인자일 뿐이지요.
칼 세이건의 <<코스머스>>를 보면 우주에는 수천억 별로 이루어진 은하계가 수천억 개가 있습니다. 지구가 소속된 은하계는 수천억 은하계 중 변방에 속합니다. 지구는 은하계에서 가장 변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푸른 먼지에 지나지 않는 지구에 70억 인구가 각축하며 살고 있으며 사람의 평생은 우주 시간으로 찰나보다도 짧습니다.
지금 이곳에서의 삶은 반목과 대립과 분열로 인한 증오가 용광로의 마그마처럼 들끓고 있습니다. 확증 편향으로서의 소음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는 것입니다. 나날의 삶이 허무하거나 지독한 절망에 빠지게 될 때 혹은 이유 없는 편집증에 시달리게 될 때 저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생각의 편차가 심한 사람들도 소월의 시를 읽으며 함께 감동과 울림을 공유했던 시절은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그런 날을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근접하도록 노력하는 것마저 냉대하거나 냉소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또 소월이 보여준 첨예한 현실 인식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감동과 울림이라는 문학의 당위가 이론에만 갇혀 있지 않고 현장에서 살아 돌아다니게 해야 할 것입니다.(2012 제27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인 시선집 『길 위의 식사』, P. 198)
다이아몬드
서양인이 들어오기 전 아프리카 소년들은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서양인들이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뒤로 아프리카는 다이아몬드 사냥꾼들의 차지가 되었다.
다이아몬드 최대 산지인, 최빈국 시에라리온은 내전이 끝나지 않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캐지 못하게 하고 또 투표를 할 수 없도록 반군들은 소년병들에게 마약을 먹여 주민들의 손을 자르게 했다.
다이아몬드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었다.
신은 아프리카를 버렸다.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 선생님의 시「다이아몬드」를 읽으며 절망하였고, 인간의 악마성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 최대 산지인, 최빈국 시에라리온”은 정말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고발하고 인간성 회복을 일깨워주는 시가 좋은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나쁜 시는 어떤 시일까요?
• 이 세상에 완전하게 나쁜 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쁜 시도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하셨으니 굳이 대답한다면 나쁜 시는 자기를 속이는 시입니다. 진정성 없이 꾸미는 시, 보여주기 위한 시, 자기 것이 아닌 시, 유행에 편승하는 시들을 저는 멀리하고 있습니다. 시는 자기만의 고유한 성질과 빛깔을 갖추어야 합니다.
일생
태어나 말 배운 뒤
엄마를 반대하다가
코 밑 수염이 생겨난 뒤로
아버지를 반대하다가
신발의 문수
바꾸지 않게 된 뒤로부터
독재를 반대하다가
배 불룩 나온 뒤로부터
아내를 반대하다가
나 어느새 머리칼
하얀 중노인이 되어버렸다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쓰러진 나무
나무도 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평생을 서서 사는 일이
어찌 고달프지 않겠는가
푸른 수의와 잿빛 옷 번갈아 입으며
벌받는 자세로 서서 그늘 짜는
일생의 노역에서 놓여나고 싶은
심정이 천둥과 번개를 불러들였을 것이다
나무도 눕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생을 벗는 일인 줄 알면서
그렇게 수직의 감옥을 벗어났을 것이다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 선생님의 시「일생」은 누구든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시라는 생각이에요. 성인이 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반대하다”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모두 이렇게 반대하다가 “어느새 머리칼 / 하얀 중노인이 되어버렸”어요. 이제는 반대의 결과물인 세어버린 머리칼을 반대해야할까요? 한편 선생님의 시「쓰러진 나무」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무도 눕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 그것이 생을 벗는 일인 줄 알면서 / 그렇게 수직의 감옥을 벗어났을 것이다” 우리들의 일생은 나무처럼 불편한 자세로 초록을 드리우고 백발성성한 눈의 계절을 지나 “수직의 감옥”을 벗어나는 일일까요? 때론 죽음이 그렇게 마냥 슬퍼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 서양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삶과 죽음을 분리합니다. 하지만 동양적 사유에서의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살면서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은 동시적으로 진행합니다. 삶 따로 죽음 따로 가 아닌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일리치의 죽음>>의 마지막 서술처럼 삶이 끝났을 때 죽음도 끝나게 됩니다. 이렇게 삶과 죽음을 하나로 인식할 때 우리는 삶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삶이 끝나면 죽음도 끝나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때문에 현재를 유보하거나 현재를 죽이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선풍기
한여름 내내 수도 없이 발가락으로 선풍기를 켜고 끄면서 사랑도 이렇게 켜고 끌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을 노예나 기계처럼 부리는 일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가 선풍기는 수요만큼 공급하는 이상적인 바람 공장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위아래로 몇 번 끄덕이다가 세상의 모든 도는 것들이 오른쪽을 고집하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상관이 있을거라 생각하다가 선풍기를 처음 만든 이는 휴머니스트일 거라는 추측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도대체 선풍기처럼 단순하게 사는 인간도 있을까 혀를 끌끌 차다가 혹여 내 인생을 하나님께서 선풍기처럼 켜고 끄며 관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속이 더워져 바람의 세기를 한 단계 높이게 되었다.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소리들
나는 소리의 형태를 관찰한 적이 있다
미장질 마친 벽처럼 고르고 평평한 소리
건축처럼 돌올하게 솟아있는 소리
유리처럼 투명한 소리 두꺼비 등처럼
우툴두툴한 소리 밀가루 반죽처럼 만질수록
부드럽고 찰진 소리 항아리 뚜껑처럼 둥근
소리 신발 밑창처럼 닳고 닳은 소리
떡가래처럼 길쭉한 소리
나무토막처럼 살갗이 까칠까칠한 소리
벗어놓은 아내의 브레지어같이 속 텅 빈
채 봉긋한, 공갈빵 같은 소리
버드나무 가지처럼 치렁치렁
늘어진 소리 윤슬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는
소리 봄날 아지랑이 아른아른
몽롱한 소리 팔부 능선 기어오르는
달빛처럼 환한, 은륜에 햇살 튕기는 소리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슬리퍼
슬리퍼를 신을 때마다 슬리퍼처럼
편하고 만만했던 얼굴이 떠오른다
슬리퍼는 슬픈 신발이다
막 신고 다니다 아무렇게나 이곳저곳에
벗어놓는 신발이다 언감생심 어디
먼 곳은커녕 크고 빛나는 자리에는
갈 수 없는 신발이다
기껏해야 집 안팎이나 돌아다니다
너덜너덜해지면 함부로 버려지는 신발이다
슬리퍼를 신을 때마다 안개꽃같이
누군가의 배경으로 살았던
오래된 우물 속처럼 눈 속 가득
수심이 고여있던 얼굴이 떠오른다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 사르트르는 “한 줄이라도 쓰지 않은 날은 없었다. 이것이 내 습성이고, 또 내 본업이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왔다.”고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선풍기」,「세탁소」,「빨간 신호등」,「손」,「소리들」,「소음들」,「슬리퍼」 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시를 쓰십니다. 쓸거리가 없어서 시를 쓰지 못한다는 소재고갈주의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 하하하! 그렇습니다. 저 역시도 길든 짧든 글을 쓰지 않는 날은 드문 일에 속합니다. 랭보는 시인을 견자라 말했지요. 시인은 ‘보는 자’입니다. 다만 이 때 보는 행위란 현상 이면의 진실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지는 실체를 담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박지원 선생이 쓰신 <<열하일기>>에도 나오는 말이지요. 현상 너머의 실체나 진실을 보는 자, 그가 시인입니다. 視力이 밝으면 詩歷이 생겨납니다.
우리 시대의 사용법
편지 봉투에 돈 들어있고 유모차에
벽돌 한 장 들어있고 가위는
김치나 무 김을 자르고 방망이나
홍두깨는 밀가루 반죽이나 밀고 빈집
대추나무 가지에 걸린 호미는
허공을 매고 키 작은 지붕
위에 놓인 왜낫은
달빛, 바람이나 자르고
식은 굴뚝 새벽이슬 매단 거미줄엔
파란 별빛이나 걸려들어 파닥거리고
금 간 항아리엔 빗물, 산그늘,
새소리나 고이고 회칼은
생선 대신 사람을 찌르고 있다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사람들은 도회에 와서 죽는다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도회로 와서 살다가 죽는다
도회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도회에서 살다가 죽는다
도회에서 살던 사람들은 죽어서야 도회를 빠져나간다
도회는 죽음이 성시를 이루는 곳
도처에 죽음이 즐비하게 도사리고 있다
죽기도 전에 유령이 된 사람들이 도시 곳곳을 누비고 있다
도시에 낀 안개가 날마다 두꺼워져 간다
안개 낀 도시에 사람들이 부표처럼 둥둥 흘러 다닌다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 저는 대학 졸업 논문으로「최승호 시인의 시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연구」를 썼던 적이 있습니다. 30대의 한때 최승호 시인에게 완전히 빠져있었습니다. 이 논문에서의 죽음은 정신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승호 시인께선 깨어있지 못하고 시대의 흐름에 떼밀려 다니는 현대인들을 비판하는 시를 많이 쓰셨거든요. 모든 시인들의 영원한 주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선생님의 시「사람들은 도회에 와서 죽는다」는 시를 읽으면서 최승호 시인이 오버랩 되었어요. 선생님께서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에 말씀하신 ‘건강한 서정’에 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최승호 시인은 저도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세속도시의 비루한 일상을 최승호 시인만큼 날카롭게 풍자한 시인도 없을 것입니다. 제게 건강한 서정이란 변화하는 현실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감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정도 진화하여야 합니다.
이재무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중심에 서서 일상의 삶과 그 경험의 진실성을 서정의 세계로 끌어올리며 아름다운 시 정신을 가꾸어온 중견의 시인이다. 특히, 최근작에서 깊이와 무게를 지닌 서정시의 본연의 모습을 지켜보고자 노력하는 진지한 시인의 자세가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한국 현대시의 앞날을 위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권영민. 문학평론가, 단국대 석좌교수)
• 저는 젊은 날의 한때 시집을 조금 많이 읽은 편인데요. 20대의 어느 날 「산정호수」라는 시집을 읽으면서 그 웅혼함에 감탄하였고요. 최승호, 최승자, 김혜순, 김정란 시인님께 깊이 경도되어 있었어요. 당시의 저는 국어사전을 펼쳐놓고 시를 읽었는데요. 제 공부의 짧음은 생각하지 않고 왜 시가 이렇게 어려워야만 할까? 나는 나중에 아주 쉽고 재미난 시를 쓸 거야, 라고 다짐하곤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나친 은유와 황홀한 비유 등등을 제 스스로 배척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시집은 쉽게 써져 있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시의 깊이 또한 융성한 시편들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윤동주문학대상, 소월시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셨어요.
• 비교적 상복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질시도 많이 받고 있어요. 하하. 시에는 쉬운 시와 어려운 시가 있습니다. 쉬운 시와 어려운 시가 시의 우열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쉬운 시에도 좋은 시와 그렇지 않은 시가 있고, 난해 시에도 좋은 시와 그렇지 않은 시가 있습니다. 또, 쉬운 시와 쉽게 써진 시는 구별해야 합니다. 쉬운 시를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서양근대에 대한 이중적 감정이 있습니다. 일본을 통해 서양 근대를 강제적으로 이식해온 사정 때문에 생긴 현상일 텐데 하나는 콤플렉스이고 또 하나는 거부감입니다. 난해에 대한 숭상은 전자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 봅니다. 이제는 이러한 난해와 새것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달빛 속에는
-오민석에게
달빛 속에는 이스트가 들어있나 봐
달빛 받은 것들은 부풀어 오른다
강물이 부풀어 올라 출렁거리고
바다는 부풀어 올랐다 깊어지고
산길이 부풀어 올라 꿈틀거리고
지붕과 언덕과 산이 부풀어 올라
솟아오르고
꽃이 부풀어 올라 활짝 피고
항아리가 부풀어 올라 불룩하고
태어나 처음 사랑을 만난
소녀의 가슴이 부풀어 올라 봉긋하고
늦도록 잠 못 드는 사내의
회한과 슬픔이 부풀어 올라 범람한다
달빛 속에는 이스트가 들어있나 봐
세상은 달빛 받아
높아지고 넓어지고 깊어진다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 시「달빛 속에는」“오민석에게” 란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흔히들 말씀하시는 절친이신 것 같아요.(웃음) 두 분의 우정에 대해서 들려주실까요?
• 우리는 이십대에 만났습니다. 친구 오민석은 영문학자이자 시인이고 평론가이기도 합니다. 이 친구는 삼십년 전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영문학에 전념하느라 홀연 연기처럼 사라져 이십 년이 넘도록 문단을 떠났다가 몇 년 전 불쑥 도둑처럼 다시 나타나 문단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내공이 만만치 않아서인지 文體/文採가 튼튼하고 매혹적입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서양이론에 밝은 그에게서 얻는 게 적지 않습니다. 위 시는 이 년 전 상처를 당한 후 상심에 젖어 사는 친구가 안쓰러워 술김에 쓴 시입니다.
장작을 패며
장작을 패며 나는 배운다.
싸움꾼의 원칙과 자세에 대하여.
두 눈 부릅떠 곁을 겨눌 것.
웅이는 절대 피할 것.
순서는 마른 것에서 젖은 순으로.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 이틀이 아니라
평생을 도끼질할 때
원칙과 자세가 바로 생명이라는 것을.
(시집『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 선생님의 삶의 원칙과 자세를 알고 싶습니다.
•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의리는 있다는 소리는 가끔 듣고 삽니다. 하하! 또 비교적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정을 지녔습니다. 밥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이 제 삶의 모토입니다. 밥처럼 위대한 종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누구도 밥을 먹을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밥보다 높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홍옥 혹은 시에 대하여
홍옥이 사라지고 있다. 신맛을 꺼려하는 사람들 입맛 때문에 점차 홍옥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과의 대명사였던 홍옥의 처지가 딱하게 되었다. 기호와 취향의 변덕 때문에 사라지는 것 어디 홍옥뿐이랴.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 시에도 유행이 있고 사람들의 입맛은 자주 변하고 사람들의 시적취향도 변합니다. 온갖 “기호와 취향의 변덕”에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시의 본령은 무엇일까요?
• 시의 본령은 서정입니다. 실험 시는 한 시대 유행하다가 운명을 마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실험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실험이 문학사에 기여한 면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실험은 시의 외연을 확장시켜왔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이 평생을 실험에 몰두하기란 난망한 일입니다. 실험 시를 쓰시는 분들 중 중도에서 그만 두는 경우 혹은 본래의 서정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고답적으로 옛것을 고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온고지신, 법고창신의 정신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옛 것을 익혀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에서의 본령은 서정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2018년 시선집『얼굴』을 출간하시고 시인의 말에서 “삶의 보폭과 시의 보폭이 나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인들의 영원한 숙제이자 소망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한편으론 너무 정직한 삶에서는 시가 발현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 저는 제가 산만큼 쓰자는 주의입니다. 자신을 과장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타자를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에서의 정직과 삶에서의 정직은 다른 것입니다. 시에서의 윤리는 감동입니다. 시에서의 비 윤리는 울림과 감동이 없는 것입니다. 삶은 정직하게 살되 시에서는 상상력의 영토에 제한이 없어야 합니다. 즉 시인의 내면에는 거지 성자 창녀 도둑 교사 등 인간의 모든 선과 악이 허용되어야 합니다만 삶에서는 가급적 그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서울 참새
이제 우리의 식량은 벼가 아니다
이제 우리의 일터는 들이 아니다
한때 더불어 살던 날의 아름다움
빛났던 날짐승의 비상도
잊어야 한다 수은비 내리는 여기는
빌딩의 밀림 모든 것은 혼자서 견뎌야 한다
우리가 겁나는 것은 돌팔매가 아니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먹이는 도처에 산재하지만
새로서 살 수 없는 것
예고도 없이 죽음은 찾아오고
정성情性을 버려야만 연명되는 곳
우리는 더 이상 새가 아니다
(시집 『몸에 피는 꽃』)
신도림역
검고 칙칙한 지하선로
살찐 쥐 한 마리 걸어간다
누군가 검붉은 침을
아직 불이 살아 있는 담배꽁초를
그의 목덜미께로 뱉고 던진다
쥐는 동요하지 않는다
전방 50m 화물열차가
씩씩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그는 동요하지 않는다
선로를 가로질러 태평하게 저 갈 곳을 가는
그는 나보다도 서울을
잘 살고 있다
한 무리의 쥐들이 열차에 오른다
(시집 『몸에 피는 꽃』)
• 「서울 참새」, 「신도림역」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잘 묘사하신 시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새였습니다. 누구나 한철 새였습니다. 누가 우리들의 날개를 꺾었을까요? 아무도 꺾지 않았습니다. 아프기 싫어서 스스로 꺾어버렸죠. 일선에서 물러나 어느 정도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말로 분질러버린 날개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20대의 어느 날, 신도림동에 무슨 인연인가로 잠시 머물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에 「신도림역」, 「신도림동」 등 신도림동이 많이 등장합니다. 선생님께는 어떤 추억이 있는 곳일까요?
• 결혼 직후 수원시 율전동에서 살다가 서울에 진입하여 2년 동안 신도림 아파트에서 전세를 산 적이 있습니다. 삼년 전 신도림동은 지금과 다르게 크고 작은 가내 공장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특유의 불쾌한 유황냄새가 코를 찔러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내게 신도림은 그저 생존의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내 일상의 종교
나이가 들면서 무서운 적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핸드폰에 기록된 여자들
전화번호를 지워버린 일이다
술이 과하면 전화하는 못된 버릇 때문에 얼마나 나는 나를
함부로 드러냈던가 하루에 두 시간 한강변 걷는 것을 생활의 지표로
삼은 것도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한 시대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던
위대한 스승께서 사소하고 하찮은 외로움 때문에
자신이 아프게 걸어온 생을 스스로 부정한 것을 목도한 이후
나는 걷는 일에 더욱 열중하였다 외로움은 만인의 병 한가로우면
타락을 꿈꾸는 정신 발광하는 짐승을 몸 안에 가둬
순치시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한강에 나가 걷는 일에 몰두한다
내 일상의 종교는 걷는 일이다
(시집『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 “나이가 들면서 무서운 적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걷는 일에 열중하였다. 외로움은 때로 독약과도 같아서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잘못 다스리면 사람은 얼마든지 추해지거나 망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내 한때의 위대한 스승이었던 분이, 아프게 일관된 평생을 하찮고 사소한 외로움 때문에 스스로 부정한 일을 목도한 이후 나는 걷는 일에 더욱 의미와 가치를 두게 되었다.”고 우리시대 시인 20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시『시인으로 산다는 것』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외로움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불치의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의 스승은 마광수 선생님을 말씀하시는지요?
• 아닙니다.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차마 이름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별
한때 나의 밤길에
동무였던, 위안이었던
별 하나, 오늘은 왠일인지
누군가 일부러
압핀으로 눌러놓은 듯
어둔 하늘 회색 도화지에
아프게 꽃혀
하얀 피를 흘리고 있다
(시집『벌초』)
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
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
빈 가슴에 흙바람을 불어넣고
종착역 목포를 향해 말을 달렸다
서산西山 삭정개비 끝에서
그믐달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주먹의 불빛조차 잠이 들었다
주머니 속에서
때 묻은 동전이 울고 있었고
발끝에 돌팍이 울고 있었다
온다던 사람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지 않았고
내 마음의 산비탈에 핀
머루는 퉁퉁 젖이 불고 있었다
(시집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 선생님께서 기다리시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 하하하, 기다림의 대상은 시절마다 다르겠지요. 저에게 이제 기다리는 사람은 저 자신입니다. 나름 순수했고 천진했고 무구했던 옛날의 내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만 불가능한 꿈일 뿐입니다.
부드러운 복수
시는 삶에 대한 부드러운 복수라는데
혹, 나의 시는 내 가난한 삶에 대하여
너무 지독한 복수를 꿈꾸어온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내 생을 지나치게 분식해왔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내 삶을 지나치게 연민해왔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떠난 사랑에게 지나치게 집착해왔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한 시대 불같이 뜨거운 이념에,
높고 푸른 이상에, 창백한 미래에, 어쩌다
바람에 불려 가로수에 매달리게 된 검은 봉지처럼
위태위태 휘둘려왔는지 모른다
생의 바다에 낡은 그물 고집스럽게 던져오면서
우연히 행운의 대어가 걸려들기를 바라왔는지 모른다
시는 삶에 대한 부드러운 복수라는데
나는 목청 높여 과장되게 고함치고 울어왔는지 모른다
시는 삶에 대한 부드러운 복수라는데
나는 목청 높여 과장되게 고함치고 울어왔는지 모른다
언젠가 나는 죽을 것이고 내가 낳은
부실한 시편들 중 몇몇은 남아 죽은 나를
비웃을지 모른다 생각하면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시집 『저녁 6시』)
• 위의 시에서 “시는 삶에 대한 부드러운 복수라는데 / 나는 목청 높여 과장되게 고함치고 울어왔는지 모른다”고 반성하고 계십니다. 이런 덕목은 시를 쓰는 모든 시인들이 지녀야할 겸양의 덕목이고 철저한 자기반성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의 시에 온전히 부끄럽지 않을 분들이 몇 분이나 계실까요? 그리하여 종국엔 “나는 표절 시인”이었음을 고백하고 계십니다.
나는 표절 시인이었네
나는 표절 시인이었네 고향을 표절하고 엄니의 슬픔과 아부지의 한숨과 동생의 좌절을 표절했네 바다와 강과 저수지와 갯벌을 표절하고 구름과 눈과 비와 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과 달을 표절했네 한 사내의 탕진과 애인의 눈물을 표절하고 기차와 자전거와 여관과 굴뚝과 뒤꼍과 전봇대와 가로등과 골목길과 철길과 햇빛과 그늘과 텃밭과 장터와 중서부 지방의 사투리를 표절했네 이웃과 친구의 생활을 표절했네 그리고 그해 겨울 저녁의 7번 국도와 한여름 강진의 해안선을 표절했네 나는 표절 시인이었네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
• 시에서 밝힌 그대로입니다. 자연 사물들과 이웃과 한 시절 함께 했던 이들이 제게는 모두 위대한 스승인 셈이지요.
가을 계곡
처서 백로 거쳐 추분에 들자
계곡은 더욱 맑고 투명해졌다
바닥 환히 드러내 보이는 물빛
밝아진 시력으로
제 몸보다 훨씬 더 큰 것들을 담고는
평상심으로 제 갈 길 가고 있었다
손을 담그면 서늘한 기운 솟구쳐 올라
쭈뼛, 머리끝이 곤두서기도 했다
가끔, 나는 그곳에 들러
문장 연습을 하다가 오고는 하였다
(<풀빛문학상> 수상작품)
목련
사회복지사가 다녀가고 겨우내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자 방안 가득 고여 있던 냄새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무연고 노인에게는 상주도 문상객도 없었다 울타리 밖 소복한 여인 같은 목력이 조등을 내걸고 한 나흘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유심문학상> 수상작품)
• 시선집까지 포함하여 총 13권의 시집을 상재하셨습니다. 김인희 시인께선 자신의 시세계 스토리를 “엄마를 위로하고 엄마에게 힘이 되는 방법을 찾아 온 우주를 방황하고, 기어이 그 힘을 가진 언어를 찾아서 엄마를 구해낸다.”는 것으로 요약하셨습니다.(웹진시인광장 2018년 1월호 시인광장 시인탐방, 손현숙 시인의 시인탐방 발췌) 또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91)는 “나는 나 자신을 찾아다닌다. 아도니스가 누구인지 누가 아도니스에게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장으로 시를 쓰시는 이유를 정의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시세계에 스토리를 입혀보면 어떤 스토리일까요?
• 시를 읽어보면 제가 보인다고 하더군요. 저는 생활에서 주로 시를 구해왔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듣는 것 같습니다. 제 시를 읽다보면 한국사회의 가장 평균적인 사내의 이력과 초상이 보일 것입니다. 전형적인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가 운 좋게 도시로 유학을 오고 졸업 후 도시 처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얻고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다가 눈 깜짝할 새 중노인이 되어버린, 회한과 후회뿐인 한 사내의 일생이 시의 언어와 산문의 언어로 표현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상수리 나무
생활이 나를 속일 때마다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대의 구릿빛 근육을 떠올리고 그대의 한결같은
성정을 떠올리고 또 나는 그대의 벌거벗은 아랫도리
곳곳에 숭숭 뚫린 구멍들을 떠올린다 그 구멍 속을
쉴 새 없이 들고나는, 일개미들과 풍뎅이들과
장수하늘소, 왕텡이들의 여름날 신성한 노동을 떠올린다
그들은 모두 내 유년의 정다운 벗들이다 그 구멍은
내 벗들의 서식처이고 일터이고
숨구멍인 셈인데 아, 이제 와서는
내 마음의 거처가 되어버린 것이다
살아서는 상처의 진액으로 그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죽어서도 불이 되어 시린 등을 덥혀 주던,
마을에 들어서면 어깨 위에 척하니 가지를 걸치고
환하게 웃어주던 죽마고우, 생활이 나를 속일 때마다
그대가 내게로 온다
(시집『데스밸리에서 죽다』)
• 선생님의 시「상수리나무」를 읽으면서 선생님이야말로 이 시대의 “숨구멍” 역할을 하실 수 있는 한그루 “상수리나무”가 아니실까? 생각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시인들이 많이 있는데 문예지에 소개되는 시인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좀 더 많은 시인들에게 골고루 지면이 허락되었으면 좋겠고요. 지면을 얻지 못해 시작을 포기하는 시인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시인이 많습니다. 문예지도 많습니다. 최근 들어 문예지들이 동인지화 되어 가는 현상이 안타깝습니다. 끼리끼리 챙기는 문화가 일반화된 지 오래입니다. 그러다보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머니 속 송곳은 언젠가는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가 막막하고 두렵겠으나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여 옥고를 낳다보면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발견되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문학도 예술의 한 유형이라는 관점에서 작품의 감각적 형상화가 어떤가, 문학은 물질이 아니라 언어를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그 안에 담겨진 세계관이나 이념이 어떤가, 창조적 작업이라는 점에서 상상력의 새로움은 어떤가, 이 세 가지 관점에서 이재무 시인의 시가 앞섰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오세영 시인)
• 선생님께서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서울디지털대학교 시사랑 동아리 “Seein 씨인” 게시판을 보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들과 이재무 교수님의 똑같은 잔소리란 제목으로 시를 쓸 때의 유의할 점, 심지어 이재무 교수님 활용법까지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웃음) 저도 잠시만, 선생님을 활용하도록 할게요.(웃음) 비대면 시대에 독자들에게 위로의 한 말씀과 선생님의 시작법이나 시론을 들을 수 있을까요?
•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착하게 살지 말고 주체적으로 삶을 운영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절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풍문에 의존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작법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지적 투자가 곧 생산입니다.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모든 글쓰기는 책읽기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마이산>>의 저자 토마스 만의 말처럼 작가는 소매치기와 같습니다. 훔치되 들키지 말아야 합니다. 들키는 순간 소매치기는 법의 저촉을 받습니다. 이 말은 모든 지적 생산물은 이전의 선 텍스트에서 자양분을 얻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얻되 자기화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들키지 않습니다.
•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과 확장하고 싶은 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 저는 계획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어진 현재에 충실해 왔을 뿐입니다. 현재가 쌓여 내일이 됩니다. 늘 그래왔듯 오늘만 생각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登頂이 아니라 오르는 과정을 중시하는 ‘登路’의 삶을 살 것입니다.
미래의 시 세계는? 글쎄요? 시간과 존재와 우주에 관한 사색, 성찰 등이 되지 않을까요?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선생님의 문학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실까요?
• 독자들이여, 글쓰기는 근육운동입니다. 근육은 날마다 운동을 할 때 생겨납니다. 또 글쓰기는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작업입니다. 열정은 재능입니다. 재지 말고 계산하지 말고 한 번뿐인 인생 뜨겁게 살아봅시다. 타다가 만 땔감처럼 보기 싫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의 삶과 생을 활활 태우다 갑시다. 완전하게 태운 땔감이 남긴 재는 얼마나 곱고 부드럽습니까?
시인으로서 내가 꿈꾸는 세상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들 삶에 최소한의 안전망이 구축된 세상, 사회적 약자가 자신들의 불우한 처지를 자유롭게 발언하고 호소할 수 있는 세상, 서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극단의 대결의식에서 벗어나 평화 속에서 민족이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는 길을 도모하는 국가적 분위기, 계층과 지역과 세대와 남녀 간의 불통이 해소된 세상, 이념의 차이로 편 가르기를 하지 않는 세상, 차별이 없는 세상, 실패한 가장과 청소년을 자살로 내몰지 않는 세상,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없는 세상, 일등만 기억하지 않는 세상, 사교육비 부담으로 결혼을 기피하지 않는 세상, 어느 정치인이 내세운 슬로건처럼 ‘저녁이 있는 삶’, 취직과 퇴직 걱정이 없는 세상...... 희망사항을 열거하자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시가 무엇이건대 이상 열거한, 이 엄청난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감당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시가, 시인이 이러한 일들에 작으나마 관심을 표명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시인으로 산다는 것』, p.244)
주름진 거울 파문
거울 속 붉게 팬 주름들 곁,
갓 태어난 잔주름들
어느새 일가를 이루었구나
저 굴곡과 요철은
시간의 밀물과 썰물이 만든 것
주름 문장을 읽는다
주름 속에는 눈 내리는 마을이 있고
눈에 거듭 밟히는
윤곽 흐릿한 얼굴이 있고
만지면 촉촉이
손에 습기가 배는 풍금 소리가 있다
이마에서 발원한 주름 물결
번져서 온몸을 덮으리라
(시집 『경쾌한 유랑』)
“주름 속에는 눈 내리는 마을이 있고 / 눈에 거듭 밟히는 / 윤곽 흐릿한 얼굴이 있고 / 만지면 촉촉이 / 손에 습기가 배는 풍금 소리가 있다” 한층 더 깊어진 풍금으로 시의 악보를 호령하고 탄주하실 선생님의 노래는 산하에 더 높이 더 깊게 스며들어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고 이 세상을 위로할 것이다. 선생님에겐 수많은 제자들이 있고 무수한 독자들이 있고 선생님을 흠모하고 존경하는 많은 시인들이 있다. 노장은 결코 죽지 않는다. 몸 자체가 백만편, 천만편의 시이신 선생님은 오롯이 또 시를 살아내실 것이다. 여전히 성하盛夏의 뜨겁고 짙푸른 녹음인 선생님의 시는 소월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는 교과서가 될 것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생님께 다시 한 번 더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선생님의 시 「기도」로 인터뷰를 맺고자 한다.
기도
기도란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바람 부는 벌판에 서서 내 안에서 들려오는 내 음성을 듣는 것이다.
《이재무 시인》
충남 부여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과 석사 수료. 1983년 <<삶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섣달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벌초>>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위대한 식사>> <<푸른 고집>> <<저녁 6시>> <<경쾌한 유랑>>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슬픔은 어깨로 운다>> <<데스밸리에서 죽다>> 시선집 <<얼굴>> <<길 위의 식사>> <<오래된 농담>> 산문집 <<생의 변방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집착으로부터의 도피>> <<쉼표처럼 살고 싶다>> 시평집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가 있음. 수상경력 윤동주문학대상, 소월시문학상, 난고문학상(시집 <<위대한 식사>>), 편운문학상(시집 <<위대한 식사>>), 풀꽃문학상(<<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송수권문학상(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 유심문학상, 이육사 문학상(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 등 수상. 현재 (주) <<천년의 시작>> 대표이사.
문단소식〕“길 위의 식사”, 이재무 시인과의 인터뷰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 아니라 / 비닐 속에 든 각진 찬밥이다 /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 아니라 /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 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먹는 밥이다 / 반찬 없이 국물 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 / 울컥, 몸 안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올라오는 밥이다
시인의 시「길 위의 식사」전문全文
http://m.poetnews.kr/9517
[시인뉴스 포엠] “길 위의 식사”, 이재무 시인과의 인터뷰
© 시인뉴스 포엠 “길 위의 식사”, 이재무 시인과의 인터뷰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 아니라 / 비닐 속에 든 각진 찬밥이다 /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 아니라 /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 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먹는 밥이다 / 반찬 없이 국물 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 / 울컥, 몸 안쪽에
m.poetnews.kr
고목
나무도 한 삼백 년 살면 한 권의 두꺼운 사상이 되고 철학이 된다 더 오래 한 천 년 살면 종교가 된다
구부러지다
강은 강물이 구부린 것이고
해안선은 바닷물이 구부린 것이고
능선은 시간이 구부린 것이고
처마는 목수가 구부린 것이고
오솔길은 길손들이 구부린 것이고
내 마음은 네가 구부린 것이다
https://m.blog.naver.com/edusang/222255767470
557. 이재무 -『데스밸리에서 죽다』
간이역처럼 귀뚜라미 울음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산국화 한 송이 보지 못하고 보도블록에 떨어진 낙엽 밟으...
m.blog.naver.com
섣달 그믐
‘한남문인상’ 수상자 김조년·이재무·손미씨
입력2010.09.30. 오후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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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는 ‘제5회 한남문인상’ 수상자로 산문 대상에 김조년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63·성문과 1970년 졸업), 운문 대상에 이재무 시인(52·국문과 1984년 졸업), 젊은 작가상에 손 미 시인(28·여·문예창작과 2007년 졸업)을 각각 선정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1987년부터 ‘표주박통신’을 발행하는 김조년 교수는 ‘성찰의 창문으로 바라본 세상’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씨알의 소리’ 편집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4년 ‘삶의 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재무 시인은 ‘섣달 그믐’ 등 10여권의 작품집을 출간했으며, 윤동주상과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받았다. 손 미 시인은 지난해 ‘달콤한 문’ 외 4편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았다. 동문 문인에게 수여하는 한남문인상은 2006년 한남대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한남문인회에서 제정했으며, 산문·운문 대상은 문단활동 10년 이상, 젊은작가상은 문단활동 5년 미만 경력으로 우수한 작품 활동을 펼친 작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을 주며 시상식은 10월 말 ‘한남의 날’ 기념행사장에서 있을 예정이다.
/moon@fnnews.com문영진기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재무 산문집)=이재무 시인의 첫 산문집이다. 58년 개띠인 저자는 1983년 등단한 이래 '섣달 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등의 시집을 냈다. 한국 시단에서 분명한 비중을 갖는 시인이자 평론가이다.〈화남·1만2000원〉
국밥
이재무
매번 고인께는
면목 없고 죄스러운 말이지만
장례식장에서 먹는
국밥이 제일 맛이 좋더라
시뻘건 국물에 만 밥을 허겁지겁
먹다가 괜스레 면구스러워 슬쩍
고인의 영정 사진을 훔쳐보면
고인은 너그럽고 인자하게
웃고 있더라
마지막으로 베푸는 국밥이니
넉넉하게 먹고 가라
한쪽 눈을 찡긋, 하더라
늦은 밤 국밥 한 그릇
비우고 식장을 나서면
고인은 벌써 별빛으로 떠서
밤길 어둠을 살갑게 쓸어주더라
이재무는 1983년『삶의 문학』으로 문단에 나왔다. 『섣달 그믐날』 외 다수의 시집을 냈다. 그는 삶의 문제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인간의 무한한 생명력을 예찬하는 시세계를 보여왔다. 이번 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 역시 그의 이와 같은 시세계를 깊이 있게 보여준다. 특기 할 것은 연륜에서 오는 생의 관조와 깨달음의 시편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국밥」은 장례식장의 풍경을 수식 없이 진솔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림으로 치면 가벼운 텃치의 그림인데 결코 가볍지 않다. 삶과 죽음의 극명한 대비에서 오는 무게일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먹는 국밥이 제일 맛있는 이유는 산 자의 살아 있음의 기쁨 때문일 것이다. 죽은 자 앞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 같은, 기실 죽은 자 앞에서 몇 년 후에, 아니다. 십년 후에 나도 저처럼 국밥을 나누어 먹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 머물었다면 좋은 시가 아니다. ‘넉넉하게 먹고 가라/ 한쪽 눈 찡긋, 하’는 죽은 자의 표정이 산 자를 위무하는 것이다.
죽은 자의 산 자에 대한 배려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어둠 속, ‘고인은 벌써 별빛으로 떠서/ 밤길 어둠을 살갑게 쓸어주’는 것으로 더 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별이다. 김윤배/시인
https://blog.daum.net/anys283/12292288
감동이 있는 시-70ㅣ국밥ㅣ이재무
국밥 이재무 매번 고인께는 면목 없고 죄스러운 말이지만 장례식장에서 먹는 국밥이 제일 맛이 좋더라 시뻘건 국물에 만 밥을 허겁지겁 먹다가 괜스레 면구스러워 슬쩍 고인의 영정 사진을 훔쳐보면 고인은 너그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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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재무의 산문집 <생의 변방에서>. 주류가 아닌 아웃사이더를 지향해온 이재무의 책 제목답다. 거기 실린 아래와 같은 저자서문은 옛일을 떠올려 나를 가슴 아프게 한다.
'우여곡절 생의 벼랑을 아등바등 기어오르면서 참으로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회한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무엇보다 시간을 낭비한 죄가 크다...'
대략 10여 년 전쯤이다. 1987년 출간된 이재무의 첫 시집 <섣달그믐>을 읽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집 속엔 '돈이 없어 약 한 첩 제대로 쓰지 못해보고 오십이 되기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대처(大處)로 나가 대학을 다니는 형 탓에 자신은 꼼짝없이 농사꾼으로 살아야하는 불쌍한 아우'의 이야기가 구슬픈 판소리 가락처럼 녹아있었다.
그 즈음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만을 가졌을 뿐, 학교를 졸업한지 2년이 넘었음에도 제 손으로 단돈 100원을 벌어본 적이 없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살고 있었다. 그해 맞은 아버지의 회갑. 두 살 아래 동생과 동생의 친구들이 바리바리 싸들고 온 회갑 선물들.
그것들을 보며 길러준 부친에게 양말 한 켤레 사 줄 수 없었던 신세가 스스로도 서러워져 골방에서 녹용으로 담근 술을 주발(周鉢)로 자작자음(自酌自飮)하고는 하루 종일 침통해 했다.
이재무와 나는 13년 터울이 지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야 이재무가 살아낸 시절이나 내가 살아낸 시절이나 비슷할 터. 모두 4부로 묶인 <생의 변방에서>의 1부는 바로 이 '가난한 날들의 기록'인 동시에 '가난이 결코 박탈할 수 없었던 아름다움의 기록'이다. 그런 까닭에 1부에 수록된 개개의 산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이 땅을 울린다.
특히, 이재무 문학의 발원지이자 스스로 '영원한 연인'으로 지칭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슬프고도 담담한 어조로 읊조리는 '괜찮다, 괜찮다 아직은 괜찮다'와 아들을 향해 '돈과 권력이 아닌 자연과 인간에게서 세상의 삶을 배워가라'는 시인의 따뜻한 가르침이 읽히는 '여름방학엔 아들과 함께 시골에 가자'는 이번 산문집의 백미(白眉) 중 백미다.
이재무와 막역한 사이로 지내며 서로를 아껴온 소설가 김영현은 "나는 그의 눈을 통해 지나간 우리들의 가난했던 세월을 보았고, 가슴 설레던 잃어버린 날의 초록빛 사랑을 떠올렸으며, 자연과 더불어 천천히 걸어가는 법을 배웠다"는 상찬을 산문집에 얹었다.
이재무는 1958년 충남 부여 생으로 83년 <삶의문학> <실천문학> <문학과사회> 등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초기에는 농촌서정의 복원과 가파른 삶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정에 집착했고, 이후 도회적 삶의 비의(悲意)에 천착하다가, <위대한 식사>를 통해서는 풍성한 생태적 상상력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생의 변방에서> 4부로 묶인 '우리시대의 민족시인 신경림'은 이재무와는 사제(師弟)지간인 신경림 시인의 출생과 유년시절, 작품세계에 대한 해설까지 세세하게 기록된 평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책 1권 값으로 2권을 얻는 의외의 기쁨이다. 좋구나.
[출처] 이재무|작성자 불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