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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街시위대, 밤샘농성에 SNS까지… 촛불만 있으면 딱일까?
3주째 접어들면서 갈수록 세력이 확대되고 있는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가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9월17일 수십 명의 청년들이 맨해튼 남부의 월스트리트 인근에 있는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한 시위는 “매일 아침 방세와 끼니를 걱정하지 않게 해달라”는 소박한 요구를 내세운 소규모의 길거리 모임이었다. 하지만 찻잔 속의 태풍이 될 줄 알았던 그 소박한 길거리 모임이 나비효과를 타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를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횃불로 거듭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청년뿐 아니라 중년의 노동자 등을 끌어당기면서 급격한 세 불림 속에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미국 경제의 구조적 불평등과 대형 금융회사의 탐욕에 항의하는 미국인들의 분노가 급기야 캐나다와 호주 등 전 세계로 번지면서 자본주의는 몰라도 신자유주의만큼은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대규모 봉기로 탈바꿈했고, 호사가들이 중심이 되어 역사적 의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바야흐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심장부에서 혁명의 봉화가 타오르는 장면으로까지 미화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이번 시위를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 영국의 런던 폭동과 ‘아랍의 봄’ 시위에 견주면서 이들 세 가지 유형의 시위에서 볼 수 있었던 원인과 특징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시위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이번 시위가 자본주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벌어진 대규모 진보적 시위라는 점에서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와 비교하고 있다. 1999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 맞서 5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반세계화 시위인 ‘시애틀 투쟁’으로부터 12년이 다 되어가는 2011년 9월에 자본주의 최심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가 점령 시위’는 보기에 따라서는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충분히 미화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번 시위가 좌절된 세대의 분노의 폭발이라는 점에서 지난 8월 발생한 영국 폭동과 유사하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2010년 8월 4일 마크 더건(29)이라는 한 남성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는 보도가 있은 후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경찰의 과잉 대응에 항의하기 위해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열린 평화시위는 채 일주일도 안 돼 영국 각지를 휩쓴 폭력 시위로 변했다. 당시 ‘더건 사망 사건’은 지역 주민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일종의 방아쇠로 작용했을 뿐이고, 이후의 폭력사태는 평소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실제로 폭력시위가 발생한 토트넘이나 브릭스톤 등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낙후해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곳으로, 실업난과 경제난 등으로 고통을 받은 젊은이들이 정부에 대한 반감을 폭발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분석이었다.
세 번째로 이번 시위가 SNS를 통해 미전역과 캐나다, 호주 등 세계 각지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재스민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아랍의 봄 시위’와 비교되기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인 재스민(Jasmine)은 ‘영춘화(迎春花)’라고도 불리는 개나리를 닮은 노란 꽃이다. 이름 그대로 봄을 부르는 아름다운 꽃이 왜 피 비린내 나는 혁명이라는 단어와 어우러져 사용되는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재스민이 처음 아랍의 봄 시위가 시작된 아프리카 튀니지의 국화(國花)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지난 해 튀니지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던 한 젊은이의 분신자살로부터 시작된 민주화 혁명이 이집트, 리비아 등 아랍 전역에 전파되면서 수십년 권좌를 지켜오던 독재자들을 축출하는 성과를 보인 데는 SNS가 큰 역할을 한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재스민 혁명이 중국에 오면서 힘이 약화되고 북한에는 아예 닿지도 못한 것 역시 SNS망의 부재라는 얘기까지 있는 것을 보면 아랍의 봄은 재스민 향기를 실어 나른 SNS 덕분이라는 얘기다. 이번 월가 점령시위도 일정한 리더가 없으며, 매일 열리는 총회 역시 특정 리더 없이 진행되고 있다. 시위대들은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여 매일 총회를 열고, 인터넷 홈페이지(www.occupywallst.org)를 운영하며 '아큐파이드 월스트리트저널(Occupied Wall Street Journal)'을 발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월가점령 시위가 엘리트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진보주의판 '티파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타임'지는 3일 이번 시위를 보수주의 유권자 운동단체인 '티파티'와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티파티와 반월가 시위대의 이념적 지향점은 정반대지만 정치·경제 엘리트들에 대한 불만, 실업에 대한 우려, 경제의 뚜렷한 방향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보는 것 같다. 조지 소로스도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서로 정반대인) 反월가 시위대와 티파티가 (금융권에 대한 반응에서만큼은) 상당히 닮아 있다"고 했다. 反월가 시위대뿐 아니라 공화당 내 강경 보수 세력인 '티파티(Tea Party)'가 보여준 분노는 금융권의 처신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월가라는 자본주의 심장부를 넘어 미국 전역으로 확산돼가고 있는 시위에 대해 미국의 학계와 언론은 그 역사적 의미에 있어서는 가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한 분노를 한두 가지 요구 조건으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민주적 의식, 정치적 의식이 깨어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는 코넬 웨스트 교수(프린스턴대)의 논평이나 "옛 소련 붕괴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와 유권자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선거제도에 대한 근본적 각성"이라는 뉴욕타임스의 평가가 그러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번 시위에 대해 일부에서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에 대한 경종'이라고 분석이, 다른 한편으로부터는 '계급투쟁의 전조'로 보려는 시각이 나타나고 있는데, 어떤 점에서는 다 일리 있는 해석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보여준 시위대의 행태를 볼 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반월가 시위’를 촉발한 직접적 원인은 경제 위기 속 빈부 격차와 높은 청년 실업률 등에 따른 좌절감과 여기에 월스트리트의 타락과 사회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또 다른 이유로 가세된 것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던지는 구호가 각양각색이고 참가하는 동기도 제각각이어서 그 메시지를 하나로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낀다는 실망 섞인 주장도 나온다. 통일된 이념이나 지도부가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백골난망인 듯하다. 시위가 일상다반사인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좌파 운동권이 보기에는 무슨 쇼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시위대를 ‘진보판 티파티’라고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최소한의 정체성도 없어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티파티는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에서 있었던, 독립전쟁과 아메리카 혁명으로 이어진 ‘한겨울밤의 습격사건’을 주도한 세력을 말한다. ‘대의권 없이 과세 없다’를 구호로 채택하고 대영제국의 부당한 과세에 대해 항의를 했던 일명 ‘보스턴 티파티’는 두 세기가 경과한 오늘날까지도 건재해 있는데, 부자감세정책을 추진해온 공화당 정부의 신자유주의의 뿌리가 바로 그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초기부터 추진해온 경기부양책과 금융개혁, 의료보험 개혁 등을 통해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감세정책의 포기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이야말로 변질된 티파티 운동의 전승자들인 셈이다.
부채증액협상 과정에서 미국을 디폴트 직전까지 몰고 갔지만 최소한의 반성조차 없이 자신의 길을 가소 있다. 최악의 상황은 지난 8월 13일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공화당 예비선거로, 티파티 지지자들의 표를 얻으려는 대선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증세불가를 약속하는 진풍경까지 연출했다. 오늘날의 티파티 후예들은 2세기 전의 그 티파티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어떤 면에서는 가치관이라고 할만한 것도 갖지 못한)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대의권에 대한 언급은 없이 그냥 ‘과세 없다’라는 구호로 변질된 구호를 앞세워 미국 시민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엠비노믹스의 친기업주의로 친숙해진 신자유주의적 부자감세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비록 이번 시위가 성공할 가능성이 낮지만 던져진 메시지만은 명확하다. "최고 부자 1%에 저항하는 99% 미국인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구호에서 극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현재 미국 상위 계층 0.1%가 벌어들이는 개인 소득이 전체 국민 소득의 10%를 넘어서는 등 빈부 격차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수준이며 미국 청년 실업률은 20%대를 향해 치닫고 있는 현실이 어떻게든 치유되지 않는 한 답이 없어 보인다.
"궁극적으로 이 시위는 감시받지 않은 권력과 탐욕에 관한 것이며 월가의 간부들은 감옥에 가야한다"는 반전단체인 ‘코드 핑크’의 공동설립자 조디 에번스의 주장처럼 극단적인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금융위기 이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중의 열망이 채워지지 않은 채 지나갔고 이제 와서 뒤늦게 그 주장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좌절, 절망, 분노'라는 감정을 공유하지만 구체적 요구 조건이 없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시위가 월가 금융인들에 대한 개별적인 공격 형태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일부 은행가들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위대가 직접적으로 린치를 가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월가 종사자들과 반월가 시위대의 도덕성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기우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시위가 아직은 폭력성을 띠지 않고 있지만,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번져가는 시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알아내지 못한다면 기우가 현실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 해설 기사에서 시위대의 주장은 '월가 금융인과 기업인들이 금융위기와 점증하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미국 경제의 부진이 지속될 경우 유럽 일부 나라에서 본 것처럼 국민 소요로 확산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방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말을 하기 어렵지만, 지금 이 주목할 만한 현상이 던지는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해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신자유주의라는 돌연변이 현상을 치유하고 자본주의가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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