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Y389M3IwnSg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에서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시간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다양한 어휘들 가운데 신앙적 맥락에서 중요한 단어들을 발굴하여 깊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단어의 성경적 정의와 원어적 배경을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본문의 깊이를 이해하고, 마침내 바르고 건전한 신학을 수립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입니다.
오늘은 아흔번째 시간으로서, 신약성경의 핵심 역사적 무대이자 공간인 '회당(會堂)'이라는 어휘 단어에 대해서 함께 연구하겠습니다. 회당은 성경 구속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구주 예수님의 생애 및 가르침과 사도 바울의 이방인 선교 여행에서 연관이 가장 깊은 전초 기지가 바로 회당입니다. 이 회당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시대에 따라 어떠한 명칭으로 불렸으며, 내부에 어떠한 신학적 기구들을 갖추고 예배를 드렸는지 입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강의의 전개를 위해 ① 회당의 역사적 시작과 기원, ② 시대별 다양한 회당의 명칭, ③ 회당의 사회적·영적 기능과 운영 체제, ④ 회당 내부의 5대 핵심 신학 기구, ⑤ 예수님 및 사도 바울과 회당의 관계, ⑥ 회당의 5단계 예배 순서, ⑦ 성경에 실명으로 기록된 세 명의 회당장 고찰, 그리고 마지막으로 ⑧ 유대인의 회당과 기독교 교회의 대조적 비교 및 요약과 결론 순으로 전개하겠습니다.
1. 회당의 역사적 시작과 구속사적 기원
우리말 성경을 보면 '회당'과 '회당장'이라는 단어가 대단히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그 사용 빈도를 계량해 보면,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구약에 1회, 신약에 52회 등장하여 도합 53회 쓰였습니다. 그리고 '회당장'이라는 직무적 단어는 신약에 총 10회 등장하여 전체적으로 63회에 걸쳐 회당에 관한 개념이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최신 개역개정판 성경을 보면 회당은 구약 1회, 신약 53회로 1회가 늘어 54회 등장하고, 회당장 역시 1회 증가하여 11회 등장하므로 도합 65회 사용되었습니다.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 사이에 회당의 횟수가 1회 차이 나는 원인은 사도행전 13장 43절 때문입니다. 개역한글판이 "폐회한 후에"라고 번역한 구절을, 개역개정판은 원어의 뉘앙스를 살려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라고 회당이라는 단어를 직접 명시하여 교정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공동번역이나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를 회당 대신 "회중이 흩어진 후에"라고 다르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의미상으로는 똑같으나 어떠한 단어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통계적 횟수가 달라진 것입니다.
또한 '회당장'의 횟수가 1회 늘어난 이유는 마가복음 5장 35절 때문입니다. 개역한글판에는 그냥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라고 되어 있는 문장에, 개역개정판은 문맥을 명확히 하기 위해 원어의 대상을 고려하여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라고 회당장이라는 단어를 두 번 넣어 선명하게 정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에 딱 한 번 등장하는 회당 구절은 어디일까요? 바로 바빌론 군대에 의해 국가적 파멸을 맞이하던 시기에 기록된 시편 74편 8절입니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모든 회당'이라는 한자어 번역을 보고, 신약 시대의 산헤드린이나 바리새파식 회당 조직이 구약 시대 수백 년 전에도 이미 가동되고 있었다고 오해하는 학자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편 문맥에 사용된 원어적 본질은 신약의 제도화된 회당 건물이라기보다는, 백성들이 여호와를 예배하기 위해 절기마다 정기적으로 '성별하여 모이던 공적인 집회 장소나 처소'를 총칭하는 표현으로 보아야 마땅합니다.
또한 예레미야 39장 8절을 보면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할 때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고대의 유명한 유대교 랍비 학자들인 라시(Rashi)나 킴히(Kimhi) 등은 이 구절의 '백성의 집'이 다름 아닌 고대의 초기 회당 형태였다고 강력하게 주석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주석가들의 견해일지라도 역사적 선후 관계를 볼 때 예레미야 시대에 정식 회당 건물이 가동되고 있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역사학적, 신학적으로 제도적이고 영구적인 자치 기관으로서 '회당'이 본격적으로 출범한 역사적 시초는, 바로 솔로몬 성전이 처참하게 파괴당하고 나라를 잃어버린 '바빌론 포로 시대(Babylonian Captivity)'라는 것이 신학계의 확고한 정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등한히 여기고 우상 숭배를 일삼다가 이민족 바빌론의 칼날에 징벌을 받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뜨거운 사막 길을 무려 두 달 동안 울부짖으며 걸어 이역만리 포로 수수(유수)의 비참한 신세가 되고 보니, 성도들의 마음속에 뼈저린 영적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아하, 우리가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 건물만 믿고 껍데기 제사만 드리다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순종하는 영성을 잃어버려서 이 모진 환난을 당하는구나! 다시 여호와의 말씀법으로 돌아가자!"라는 신앙 부흥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 더 이상 동물의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릴 공간이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으므로, 백성들은 포로지 현지 마다 거점을 마련하고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빌론 그발 강가 텔아비브 정착지 등에서 포로 백성들을 모아놓고 피를 토하듯 모세의 율법을 전수하며 영적 지도를 감당했던 위대한 선지자 '에스겔(Ezekiel)'이 있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장로들과 백성들을 자기 집 거실이나 공터에 둥글게 모아놓고 여호와의 가르침을 깊이 교육하고 강론하던 영적 집회 형태가, 역사학적으로 회당 제도의 거대한 태동이자 출발점이며, 에스겔 선지자야말로 회당 제도의 신학적 창시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라와 성전을 빼앗긴 서러움 속에서 말씀의 닻을 내린 장소가 바로 회당의 시작이었습니다.
2. 시대별·지역별 다양한 회당의 명칭
바빌론 포로지에서 출발하여 헬라 시대와 로마 시대를 관통하며 유대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이 건물 기구에는 시대와 종파에 따라 대단히 다채로운 이름이 명명되어 불렸습니다.
첫째, '예배당(House of Prayer)' 혹은 기도처라고 불렸습니다. 희생제사는 없었으나 오직 여호와를 향한 공적인 기도가 중심이 되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어로는 '프로세우케(Proseuche)'라고 불렸습니다.
둘째, 순수한 히브리어 명칭으로는 '베이트 크네세트(Beit Knesset / 집당)'라고 부릅니다. 베이트(Beit)는 집을 뜻하고 크네세트(Knesset)는 모임, 집회, 회의를 의미하므로 곧 '회중들이 모여 회의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셋째, 독일과 동유럽 등지에 살던 유대인들의 혼합어인 이디시어(Yiddish) 문화권 속에서 정통파 유대인들이나 하시디즘(Hasidism) 종파 성도들은 회당을 가리켜 '슈일(Shul / 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슈일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추적해 보면 놀랍게도 독일어에서 학교를 뜻하는 '슈레(Schule)'에서 유래했습니다. 영어의 'School(스쿨)'과 어원이 똑같습니다. 즉, 유대인들에게 회당은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철저하게 배우고 연마하는 '거룩한 학교'라는 인식이 뼈저리게 박혀 있었음을 입증하는 역사적 명칭입니다. "나 오늘 시울(학교/회당)에 말씀 공부하러 간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넷째, 19세기 이후 등장한 현대의 개혁파 유대교(Reform Judaism) 진영에서는 회당을 대단히 과감하게 '성전(Temple / 템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 제도가 끝났으니 이제 우리가 매주 모여 율법을 행하는 이 회당 공간 자체가 곧 거룩한 성전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정통파 유대인들은 "성전은 오직 예루살렘 시온산의 오리지널 성전 한 곳뿐인데, 감히 동네 회당을 성전이라 일컫는 것은 신성모독적 남용이다"라며 대단히 거부감을 나타내고 기피하기도 합니다.
다섯째, 온 세계 학계와 성경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은 헬라어에서 유래한 '시나고그(Synagogue)'입니다. 이는 헬라어 원어 '신아고게(Synagoge)'를 영어식으로 음역한 것입니다. 신(Syn)은 '함께'를 뜻하고 아고게(Agoge)는 '이끌어 모으다'를 뜻하므로, 히브리어 '베이트 크네세트'를 글자 그대로 헬라어로 직역한 모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 신아고게가 영어의 시나고그가 되었고 우리말 성경의 한자어로 '회당(會堂)'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현대 이스라엘의 국가 권력 구조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뉴스에 자주 나오는 이스라엘의 최고 입법부인 단원제 '국회'의 공식 명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구약과 회당 명칭에서 고스란히 따온 '크네세트(Knesset)'입니다. 화면에 보이는 문양이 바로 이스라엘 국회의 공식 상징 문장인데, 가운데 유대교 성전의 일곱 촛대인 '메노라'를 중심으로 좌우에 올리브 가지가 둘러싸고 있으며 밑에는 히브리어로 '이스라엘 크네세트'라고 위엄 있게 새겨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가슴에 국(國) 자 마크 휘장을 달고 다니듯이, 이스라엘 국회의원들은 이 크네세트 마크를 달고 활동합니다. 예루살렘 구도심 서쪽 언덕 위에 웅장하게 세워진 이스라엘 국회 의사당 건물이 바로 이 백성의 대표들이 모여 입법을 논하는 현대판 정치적 회당인 '크네세트' 건물입니다.
3. 회당의 사회적·영적 기능과 운영 체제
신약 시대 유대인들의 삶의 완전한 중심지였던 회당은 오늘날의 교회보다 훨씬 더 다목적이고 광범위한 기능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던 자치 공간이었습니다.
첫째, 공적인 '예배와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개인적인 일상의 기도는 각자 집의 골방이나 처소에서 수행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법적 축복이 임하는 공중 예배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당에 모여야 했습니다. 유대 율법 규칙에 따르면, 회당의 공적 예배가 합법적으로 성립되어 개시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 유대인 남성 최소 10명 이상이 공간 안에 정족수로 채워져야만 했습니다. 이 '예배 성립에 필요한 최소 10인의 정족수 숫자'를 유대 신학 용어로 '민얀(Minyan)'이라고 부릅니다. 10명의 남성이 채워져 민얀이 성립되어야만 칸토르가 등단하여 웅장한 공중 예배 기도를 리드해 갈 수 있었습니다.
둘째, 최고의 '교육과 학습(Bet Midrash / 베이트 미드라시)'의 전당이었습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를 출산하면 어릴 때부터 회당 학교(슈일)에 보내어 토라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나이가 정확히 만 13세가 되는 날, 유대 사회는 회당에서 대단히 장엄한 성인식을 거행해 주었습니다. 이 13세 성인식을 통과한 소년을 가리켜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합쳐 '바르 미츠바(Bar Mitzvah)'라고 선언합니다. 바르(Bar)는 아들을 뜻하고 미츠바(Mitzvah)는 율법을 의미하므로, 즉 존재 자체가 '율법의 아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는 부모의 영적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행위에 대해 율법 앞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신판을 당당히 감당하는 성인 대우를 해주는 것입니다. 성인식을 마친 후에도 유대 남성들은 평생 동안 안식일과 평일 저녁마다 회당에 모여 랍비들과 치열하게 토라와 미시나 율법을 토론하고 학습하는 영적 교육을 이수했습니다.
셋째, 공동체의 '친교와 경조사 사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온 동네 유대인들이 안식일마다 한 공간에 무조건 모였기 때문에, 부족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성인식 등 모든 가문의 경조사와 친교 활동이 회당 안 마당과 홀에서 축제처럼 거행되었습니다.
넷째, '자선과 구호 구제 활동(Tzedakah)'의 사령탑이었습니다. 회당 입구에는 항상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 저금통과 연보함이 비치되어 있어 성도들이 기쁨으로 금품을 기부했습니다. 회당 공회의 이사회는 매주 이 자선 기금을 투명하게 모으고 정돈하여, 진영 내의 가난한 과부나 고아, 불안한 처지에 놓인 나그네,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한 이웃들에게 공평하게 배부하고 구호하는 사회복지관 역할을 집행했습니다.
다섯째, 유대 사회의 자치 행정을 관장하는 '주민센터 및 타운홀(Town Hall)'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거대한 디아스포라(Diaspora / 온 세계 사방으로 흩어진 유대인 부족) 상황 속에서, 타국 땅에 살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법적 소송이나 행정 조율, 세금 징수 등 주민 자치회 업무를 처리하던 동사무소이자 중심 법정 역할을 수행한 곳이 바로 회당 건물이었습니다.
이처럼 영적, 교육적, 사회 복지적 기능을 완벽하게 총괄하던 회당의 내부 운영 체제는 대단히 독특한 '평신도 자치 형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회당은 지위 높은 제사장 계급이 다스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동네에서 가장 존경받고 재정이 풍부하며 지혜로운 평신도 리더들로 구성된 '회당 이사회(Board of Directors)'라는 자치 협의체가 회당의 모든 재정과 재산 관리, 행정을 민주적으로 유지하고 운영했습니다.
이 평신도 이사회가 필요에 따라 학문적 권위가 높은 '랍비(Rabbi)'를 서치하여 목회적 교사로 초빙했고, 예배의 음악을 리드할 위대한 솔리스트 성악가인 '칸토르(Cantor)'를 재정을 들여 채용했습니다. 랍비는 라비 즉 '나의 스승이여'라는 뜻의 전문 교사로서 공동체의 영적 상담과 가르침을 주도했고, 칸토르는 라틴어로 노래하는 싱어(Singer)라는 뜻인데 히브리어로는 '하잔(Chazzan)'이라고 부릅니다. 이 칸토르(하잔)는 안식일 예배 시 대단히 막강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유대교의 안식일 회당 예배는 목사 혼자 설교하고 사회 보는 기독교식 예배와 완전히 다릅니다. 예배 전체가 웅장하고 애절한 메조소프라노나 테너 풍의 찬가와 시편 낭송 노래로 빈틈없이 주축을 이루어 진행됩니다.
제가 과거 예루살렘의 정통파 대회당에 들어가 안식일 예배에 직접 여러 차례 참석하여 리서치하고 참관했던 영적 기억이 생생합니다. 예배가 시작되면 회당의 불이 엄숙하게 조율되고, 단상 중앙에 등단한 최고의 테너 칸토르가 온 성전 기둥을 뒤흔드는 우렁차고 맑은 목소리로 "쉐마 이스라엘~" 찬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애절하고 웅장한 선율에 온 청중이 숨을 죽이고 동참합니다. 이어 한 어린 소년이 앞으로 나아가 거룩한 궤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성도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통곡하듯 찬미를 부르고, 두루마리를 들고 강단으로 행진할 때 찬양대가 화답 노래를 구합니다. 이때 찬양대는 철저하게 오직 성인 남성과 소년들로만 구성되어 웅장한 하모니를 냅니다. 이 거룩한 예배의 전 과정을 음악적으로 아름답게 조율하고 연출해 내는 음악 목회자가 바로 칸토르입니다.
평신도 이사회는 이처럼 랍비와 칸토르를 엄격히 선별 채용해 회당을 운영했으며, 만약 재정이 부족하여 전임 랍비를 모시지 못할지라도 장로 귀족들이 스스로 제단에 서서 율법을 읽으며 랍비 없이도 자치적으로 회당을 든든하게 운영해 나갔습니다. 회당의 유지 재정은 성도들이 매달 납부하는 정기 '연회비'와, 자원하여 바치는 특별 '후원금(연보)'으로 투명하게 충당되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교회가 십일조와 각종 헌금으로 운영되는 재정 구조와 대단히 유사합니다.
또한 회당 제도의 가장 위대한 특징은 바로 '수평적 독립성'에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라는 최고 종교 법정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일반적인 회당 조직 위에는 총회나 노회, 혹은 교단이나 합회, 지회 같은 상부 지휘 기구가 일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동네의 시나고그 회당은 저마다 완벽한 독자성과 자치권을 지닌 동등하고 독립적인 개별 조직(Independent church)으로 수평적으로 평등하게 가동되었습니다.
4. 회당 내부의 5대 핵심 신학 기구
회당 내부의 공간 구조를 들여다보면, 과거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 성소 안에 떡상과 촛대, 언약궤가 장치되어 있었듯이, 성전의 영성을 계승하기 위해 배치해 놓은 '5대 핵심 신학 기구'를 만나게 됩니다.
첫째, 회당의 가장 중심 깊은 곳에 장치된 거룩한 보관함인 '아크(Ark)'입니다. 영어로 아크라고 하면 노아의 방주(Noah's Ark)나 지성소 안의 언약궤(Ark of the Covenant)를 떠올리지만, 회당의 아크는 히브리어로 '아론 카도쉬(Aron Kadosh)'라고 부릅니다. 아론(Aron)은 옷장이나 수납장 같은 상자(Chest)를 뜻하고, 카도쉬(Kadosh)는 거룩함을 의미하므로 즉 '거룩한 상자'라는 뜻입니다. 구속사의 대제사장 '아론(Aharon)'의 이름과는 철자도 다르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순수한 가구 명칭입니다. 또한 노아의 방주를 뜻하는 히브리어 '테바(Tebah)'와도 어원이 다릅니다. 거룩한 상자라는 뜻의 아론 카도쉬를 축약해 영어로 아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아크는 회당 내부의 가장 신성한 정면 벽에 설치되는데, 건물 방향을 어떻게 지었든지 간에 이 아크의 등받이 방향만큼은 지구상의 영적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전산'을 정확하게 향하도록 정조준하여 매립 장치해 놓았습니다. 다니엘이 바빌론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듯이(단 6:10), 온 세계 회당의 아크는 예루살렘을 바라봅니다. 이 웅장한 아크 문을 열면 그 내부에 인류 최고의 보화인 모세오경 '토라 두루마리(Torah Scrolls)'들이 거룩하게 안치되어 있습니다. 아크는 외형적으로 화려한 캐비닛 문으로 짜여 있고, 그 문을 열면 안쪽에 다시 눈부신 직물로 짠 안쪽 '휘장 커튼(Parochet)'이 성소 휘장처럼 장치되어 있어, 예배 시 이 휘장을 경건하게 걷어 올리고 토라 두루마리를 두 손으로 받들어 단상으로 모셔왔습니다.
둘째, 아크 상단 머리 위에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등불인 '네르 타미드(Ner Tamid)'입니다. 네르(Ner)는 램프 등불을 뜻하고 타미드(Tamid)는 상번제처럼 영원히, 지속적으로라는 뜻이므로 곧 '영원한 등불(Eternal Light)'이라는 신학적 기구입니다. 출애굽기 27장 20절~21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의 등잔대 불빛을 밤낮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켜두라고 하신 그 성소의 상번제 등불 영성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장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신적 임재의 상징물입니다.
셋째, 이스라엘 부족의 위대한 상징물인 촛대 '메노라(Menorah)'입니다. 성소의 일곱 등잔대를 상징하는 기구입니다. 제가 매주 강의할 때 서판 옆에 늘 두고 보여드리는 이 상징물이 바로 메노라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이제 대단히 익숙하실 줄 믿습니다. 성막의 메노라는 가운데 줄기를 중심으로 좌우에 세 개씩 가지가 뻗어 나와 총 일곱 개의 등잔 불빛을 내도록 법적으로 양식이 규정되어 있습니다(출 25:31~37).
그런데 회당 안에 장치하는 메노라를 설계할 때 유대 학자들은 대단히 정교한 차이점을 장치해 두었습니다. 회당의 메노라는 절대로 오리지널 성전의 일곱 가지 양식과 똑같이 만들지 못하도록 율법 규칙으로 금지해 놓은 것입니다. 성전의 신성한 일곱 메노라와 완전히 똑같은 카피 제품을 세속 동네 회당에 두는 것은 성전의 권위를 훼손하는 무례한 남용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당의 메노라를 주조할 때는 가지의 개수를 고의로 줄여서 여섯 개로 만들거나, 아니면 수사적으로 늘려서 여덟 개 혹은 아홉 개짜리 등잔대로 형태의 차이를 두어 제작했습니다. 성전과 똑같이 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처절하고도 철저한 성전 우대의 거룩한 차별성 의식입니다.
넷째, 회당 한가운데에 장엄하게 설치된 높은 원형 단상인 '비마(Bimah)' 혹은 주추대입니다. 회당 중심부 바닥보다 한 층 높게 계단형으로 쌓아 올린 널찍한 플랫폼 무대 공간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강단 중앙 무대와 똑같습니다. 아크에서 모셔온 무거운 토라 두루마리를 이 높은 비마 단상 위의 성경대 위에 올려놓고 온 백성이 들을 수 있도록 높이 외쳐 낭독했던 거룩한 사법·영적 무대입니다.
다섯째, 비마 단상 중앙에 놓인 웅장한 성경 낭독대인 '아무드(Amud)' 혹은 렉턴(Lectern)입니다. 오늘날 목회자가 설교 원고나 성경책을 올려놓고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 연설대 상단 다이와 똑같은 기구입니다. 펼쳐진 토라 두루마리가 손상되지 않도록 널찍하고 단단한 나무나 석재로 제작되어 비마 중앙 정면에 위엄 있게 설치되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사진이 바로 전형적인 정통파 유대교 회당의 내부 인테리어 구조를 촬영한 것입니다. 모든 회당이 다 이처럼 대리석으로 호화롭지는 않지만 예루살렘의 대회당은 실로 장엄합니다. 정면 중앙에 거대한 대리석으로 짜인 집 모양의 구체적인 기구가 바로 아크(아론 카도쉬)입니다. 그 아크 상단에 붉게 빛나는 조명이 바로 영원한 불 네르 타미드이며, 그 아크 문을 열고 들어가 휘장을 걷어내어 토라를 모셔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당 한가운데 한 층 높게 난간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나무 무대 공간이 바로 비마이고, 그 비마 중심에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낭독 대가 아무드입니다. 청중 성도들은 이 비마 단상을 중심으로 좌우와 후면에 길게 배치된 좌석 의자에 정중히 앉아서 랍비들의 강론을 경청하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회당의 입체적인 신학 지도가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집니다.
5. 예수님 및 사도 바울과 회당의 구속사적 관계
이 역사적 회당 공간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복음 전파와 사도 바울의 이방인 세계 선교의 가장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최전방 전초 기지(Strategic Base)'로 위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① 예수님과 회당의 관계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전개하실 때, 주로 안식일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예외 없이 100% 모여 있는 이 회당 공간을 최고의 복음 선포 무대로 채택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미 다 정돈되어 모여 있으니, 굳이 집집마다 방문할 필요 없이 회당 강단에 서서 외치면 가장 효율적이고 파급력 있게 천국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 친히 가르치시고 활동하셨음을 명시하는 기록은 수십 번에 달합니다. 대표적인 은혜의 현장들을 읽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 초창기 복음의 시초 장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가복음 1장과 누가복음 4장에도 완벽히 똑같이 증언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들어가 율법 두루마리를 펴서 가르치시고(Teaching), 천국 복음을 역동적으로 전파하시며(Preaching), 몰려든 환자들의 모든 질병을 자비로 치유하시는(Healing) 위대한 '3대 메시아 공생애 사역'을 바로 이 회당 안에서 전폭적으로 쏟아부으셨습니다. 회당 제도가 포로기 시대에 미리 예비되어 가동되고 있지 않았다면, 주님의 초림 복음은 초기 확산에 커다란 공간적 애로사항을 겪었을 것입니다. 창조주의 절묘한 역사적 예비하셨음입니다.
마태복음 9장 35절에서도 똑같은 사역이 요약 반복됩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도시와 촌락의 크고 작은 시나고그가 전부 주님의 복음 강단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9절~13절에는 안식일 율법 논쟁의 역사적 현장이 나옵니다. "거기를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종교 지도자들이 안식일 법 조항을 들이밀며 고발하려 독기를 품을 때, 주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준엄하게 선포하시고 회당 한가운데서 손 마른 자의 신체를 완벽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자비의 현장도 회당이었습니다.
가장 격정적인 기록은 주님의 고향이었던 나사렛 회당에서 발생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4절 이하와 누가복음 4장의 기록입니다. 주님께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가 안식일에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온 동네 고향 이웃들이 주님의 지혜와 권세 있는 설교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도대체 어느 신학 대학에서 나온 것이냐? 이 자는 우리 동네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그 동생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니냐 그 누이들도 다 우리 이웃에 살고 있거늘, 우리와 똑같이 평범하게 자란 이 시골 청년이 어찌 이런 엄청난 신성을 내뿜느냐?"라며 믿음으로 영접하기는커녕 인간적인 편견에 눈이 멀어 도리어 예수님을 배척하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뼈아프게 탄식하셨고, 누가복음 기록을 보면 분노한 나사렛 고향 사람들이 설교하던 예수님을 회당 밖으로 끌고 나가 동네 벼랑 끝 밀어 떨어뜨려 죽이려고까지 감행했습니다. 주님이 신비롭게 그들 한가운데를 지나 피신하셨지만, 고향 사람들의 불신으로 인해 그 회당에서는 많은 기적을 행치 못하시고 고독하게 발걸음을 돌리셔야 했습니다. 영광과 배척이 교차하던 역사의 무대가 바로 회당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1절~26절에는 주님의 본동네 격이었던 갈릴리 가버나움 회당의 장엄한 영적 전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니 무리가 그 교훈에 경탄했습니다. 그 설교의 매 순간마다 터져 나오는 신적 권위가, 껍데기 문구만 읊조리던 서기관들의 시원찮은 설교와는 격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 회당 안 좌석에 숨어 앉아 설교를 듣던 더러운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주님의 눈부신 신성의 광채 앞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정체를 드러내며 악을 쓰고 비명을 지릅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뱀이 불 앞에서 지르듯 귀신이 두려워 떨 때, 주님이 단호하게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에게 큰 발작 경련을 일으키고 떠나갔습니다. 초자연적인 신성의 권능으로 사탄의 군대를 멸하시고 정복하신 영적 전쟁터의 최전선 역시 바로 가버나움 회당 내부였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거대한 돌기둥 건축 유적이, 바로 주님이 방금 귀신을 쫓아내고 안식일마다 서서 위엄 있게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던 '가버나움 회당(Capernaum Synagogue)'의 실제 부지 역사적 유적 현장입니다. 비록 현재 눈에 보이는 하얀 석회암 웅장한 건물 벽 기둥들은 예수님 사후 후대인 서기 4~5세기경에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다시 재건해 놓은 비잔틴 시대의 회당 유적이지만, 고대 고고학자들이 이 하얀 대리석 기둥 바닥 밑면을 드릴로 뚫고 발굴해 내려갔더니, 그 바로 직하방 밑바닥에서 예수님 당시 서기 1세기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거칠고 검은 현무암으로 쌓은 '오리지널 가버나움 회당의 기초 바닥 돌벽'들이 완벽하게 발굴되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즉 바울과 예수님이 밟고 서셨던 그 역사적 공간 자리가 100% 입증된 결정적인 거룩한 성지 유적입니다. 그 회당 바로 앞마당 건너편에는 사도 베드로의 생가 집 터(베드로 장모의 집)가 가버나움 유적으로 나란히 보존되어 흐릅니다.
② 사도 바울과 회당의 관계
예수님의 승천 이후, 신약 사도행전 역사를 보면 회당이라는 단어는 총 19회 사용되었고 회당장은 3회 등장합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거의 모든 회당 공간은, 다름 아닌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Paul)의 전도 여행 선교 기지'로 대단히 밀도 높게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직후, 사도행전 9장 20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라고 성령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동역자 바나바와 더불어 구브로 섬의 살라미 회당(사 13:5), 소아시아의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사 13:14), 이고니온 회당(사 14:1), 마케도니아 전선인 데살로니가 회당, 베뢰아 회당, 그리스 아테네(아덴) 회당, 고린도 회당, 그리고 에베소 회당에 이르기까지 소아시아와 유럽 대륙의 대도시마다 선교 여행의 첫 발걸음은 무조건 그 지역에 설치된 유대인 회당으로 정조준하여 걸어 들어갔습니다.
왜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하면서 기어이 유대인 회당을 가장 먼저 찾아갔을까요? 거친 타국 땅에 흩어져 살면서도 안식일마다 말씀 중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회당에 모여들던 유대인 부족들과, 유대교의 도덕성에 감동되어 회당 예배 주변을 맴돌며 하나님을 경외하던 헬라인 입교자들, 즉 '디아스포라(Diaspora)' 영혼들이 회당 안에 고스란히 밀집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약 성경 지식을 탑재하고 창조주를 경외하는 준비된 영혼들이 회당에 가득 모여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구약의 예언을 펴서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아라는 사실을 입증해 외치기만 하면 영적인 폭발이 일어날 최적의 선교 모내기 밭이었습니다. 바울에게 회당은 구원의 복음을 세계 열방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신학적 최고의 교두보이자 전초 기지였습니다.
6. 고대 회당의 5단계 예배 순서
신약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이 안식일 아침마다 회당에 모여 집행하는 엄숙한 예배의 순서는 크게 5가지 신학적 단계로 정교하게 구성되어 진행됩니다.
쉐마 (Shema) 재창 낭송: 예배의 문을 열며 전 성도가 일어서서 신명기 6장 4절~9절의 위대한 이스라엘의 신앙 강령인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구절과 신명기 11장, 민수기 15장의 말씀들을 온 마음을 다해 우렁차게 암송하고 재창합니다.
파라샤 (Parashah) 율법 낭독: 아크에서 토라 두루마리를 귀하게 비마 단상으로 모셔와서, 그 주에 배당된 모세오경의 고유한 율법 조항 조항 조문을 전 성도 앞에 엄숙하게 펼쳐 낭독합니다.
하프타라 (Haftarah) 선지서 낭독: 율법 낭독에 이어서, 그 율법 조항의 신학적 맥락과 짝을 이루는 예언서나 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고유한 성경 구절을 이어서 교독하고 낭독합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두루마리를 건네받아 읽으셨던 순서가 바로 이 세 번째 '하프타라' 순서였습니다(눅 4:16~17).
드라샤 (Derashah) 설교 강론: 낭독된 율법(파라샤)과 선지서(하프타라)의 말씀 내용을 기초 삼아, 단상에 선 랍비나 초빙된 교사가 그 말씀의 담긴 구속사적 진의를 성도들의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세부적으로 풀이하고 강론하는 '설교(Sermon)' 시간입니다. 드라샤는 히브리어로 깊이 조사하고 파고들어 연구한다는 뜻입니다.
축도 (Priestly Blessing) 및 마감 기도: 모든 설교를 마친 후, 민수기 6장 24절~26절에 기록된 아론의 위대한 제사장 축복 기도문("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을 온 회중 위에 선포하며 기도로 예배의 문을 닫는 최종 마감 순서입니다. 과거 제사 제도가 있을 때는 제사장 계문 가문이 자격을 가지고 집행했으나 오늘날에는 랍비들이 이를 계승해 집행합니다.
이처럼 쉐마, 파라샤, 하프타라, 드라샤, 축도로 이어지는 정교한 5단계 예배 형식을 회당은 수천 년 동안 엄숙하게 고수해 오고 있습니다.
7. 성경에 실명으로 보존된 '세 명의 회당장' 고찰
회당의 모든 예배 질서와 사법 자치 행정을 총괄 책임지고 조율하는 최고 수장을 한자어로 '회당장(會堂長)'이라 하며, 헬라어 원어로는 '아르키시나하고고스(Archisynagogos)'라고 부릅니다. 우두머리를 뜻하는 '아르키(Archi)'와 회당을 뜻하는 '시나고그'가 결합한 최고의 관리자 직책입니다. 신약성경에 이 회당장이라는 단어는 총 11회 사용되었는데, 놀랍게도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경 역사 속에 유대 사회의 막강한 리더였던 세 명의 회당장의 '실명(Real Name)'을 명확하게 기록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보존해 주셨습니다. 그 인물들의 면면을 신학적으로 고찰해 보겠습니다.
첫째, 갈릴리 가버나움의 회당장 '야이로(Jairus)'입니다.
마가복음 5장 22절과 누가복음 8장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려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당시 바리새인과 종교 귀족들은 예수님을 사탄의 앞잡이라 비방하며 배척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최고 종교 리더인 회당장 야이로는, 자기의 열두 살 된 외딸이 죽어가는 절망적인 위기 앞에서 사회적 체면과 기득권, 권위를 다 내려놓고 대중이 보는 앞에서 시골 청년 예수의 거친 발바닥 아래 덮석 엎드려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위대한 믿음과 겸손을 보시고 집으로 동행하셨으며, 중간에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들었을 때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위로하시며 방 안으로 들어가 사체 침대 누워있던 소녀의 손을 잡고 아람어로 대선언을 외치셨습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주님의 전능하신 신성 명령 앞에 죽었던 회당장의 딸이 단번에 호흡이 돌아와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절망의 위기 속에서 자존심을 버리고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가문을 살려낸 위대한 믿음의 첫 번째 회당장이 바로 야이로입니다.
둘째, 헬라 대륙 고린도 회당의 최고 회당장 '크리스보(Crispus)'입니다.
사도행전 18장 8절에 기록된 놀라운 선교 승리의 역사입니다. "또 회당장 크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사도 바울이 거대한 타락의 도시 고린도에 당도하여 매 안식일마다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예수가 메시아라고 치열하게 법정 신학 토론을 벌였습니다. 대다수 유대인이 대적하여 비방하고 옷을 털며 바울을 쫓아내려 했으나, 놀랍게도 그 고린도 유대인 사회의 총책임자이자 최고 우두머리 리더였던 회당장 크리스보가 바울의 설교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가 진짜 구주이심을 정면으로 확신하고 자기 온 가족과 더불어 기독교로 전격 개종해 버린 것입니다. 회당장의 개종은 고린도 유대인 사회의 거대한 영적 지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고린도 신민들이 도전을 받아 연쇄적으로 주를 믿고 침례를 받는 폭발적인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다. 자기가 가진 회당장의 최고 기득권 자리를 복음을 위해 배설물처럼 버리고 예수의 제자가 된 용기 있는 두 번째 회당장이 바로 크리스보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4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 자신이 직접 손으로 침례를 베푼 몇 안 되는 고귀한 인물 중 하나로 이 크리스보의 이름을 소중하게 기억하여 수록해 놓았습니다.
셋째, 크리스보의 뒤를 이어 고린도 회당장이 된 '소스데네(Sosthenes)'입니다.
사도행전 18장 12절~17절의 긴박한 폭동 사건 속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최고 회당장이었던 크리스보가 기독교로 탈퇴 개종해 버리자, 격분한 고린도 유대인들은 바울을 확실하게 때려잡고 자치 법통을 수호하기 위해 대단히 완악하고 강성인 인물이었던 '소스데네'를 후임 최고 회당장으로 전격 임명했습니다. 소스데네는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유대 군중을 선동해 이끌고 로마 아가야 총독 갈리오의 재판정 앞으로 바울을 결박해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로마 총독 갈리오는 "너희들의 종교적인 유대 법 조항 다툼이라면 내 알 바 아니니 너희들끼리 알아서 처결하라"며 재판을 기각하고 유대 폭도들을 법정 밖으로 단호하게 쫓아내 버렸습니다.
로마 법정에서 고발이 허망하게 기각당하고 쫓겨나자, 흥분과 독기에 가득 차 있던 유대인 군중들은 화풀이 대상을 찾아 엉뚱하게 자신들의 리더인 최고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잡아 법정 앞마당에서 무차별적으로 집단 구타하고 매질을 가했습니다. "네가 회당장이 되어서 재판 준비를 이따위로밖에 못 하느냐!"라며 동족들에게 무참하게 매를 맞은 것입니다. 바울을 잡으려다가 도리어 자기 동족들에게 피 터지게 매를 맞고 버림당하는 비참한 수치를 겪은 회당장 소스데네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고린도 역사에 소름 끼치는 대반전의 은혜가 일어납니다. 동족들에게 버림당하고 흠씬 두들겨 맞아 병상에 누워 있던 소스데네의 곁에, 다름 아닌 자기가 체포해 죽이려 했던 사랑의 사도 바울이 찾아와 그의 상처를 닦아주고 복음의 위로를 건넨 것입니다. 동족의 잔인한 배신과 원수였던 바울의 조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 대조 앞에서 소스데네의 완악했던 심령이 완전히 깨어지고 부서졌습니다. 그는 눈물로 죄를 자복하고 크리스보의 뒤를 이어 고린도 교회의 위대한 신실한 그리스도인 제자로 완벽하게 회심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 증거가 바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보낸 편지의 첫 장 제1절에 장엄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本 1절의 대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보십시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할 때 자신을 체포해 죽이려 선동했던 원수 부족장, 후임 회당장 소스데네를 가리켜 이제는 내 곁에서 함께 복음의 교회를 세워가는 소중한 '나의 형제 소스데네'라고 전 우주와 온 시대 앞에 당당히 소개하며 편지의 공동 발신인으로 그의 실명을 위대하게 올려 주었습니다. 원수가 변하여 형제가 되는 위대한 기적의 주인공이자, 성경에 실명 보존된 복음의 세 번째 회당장이 바로 소스데네입니다. 실로 가슴 뭉클한 구속사의 로맨스입니다.
8. 유대교 회당과 기독교 교회의 입체적 비교 대조
구약의 성소 영성을 계승해 출범한 유대교의 '회당'과, 신약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토대로 탄생한 기독교의 '교회'는, 외형상 유사해 보이지만 신학적 본질과 구조에 있어서 대단히 웅장한 '상이점(차이점)'과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두 기관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대조해 드리겠습니다.
9. 신학 강의 최종 종합 요약과 결론
오늘 아흔번째 시간으로 고찰한 '회당의 구조와 구속사적 내막'에 대한 신학 강의 전체 내용을 최종 요약정리하겠습니다.
둘째, 유대인들에게 회당은 단순히 제사 지내는 곳이 아니라, 학교를 뜻하는 독일어 슈레와 어원이 같은 '슈일(Shul)'이라 불렸을 만큼 하나님의 법을 철저히 배우고 전수하는 '거룩한 율법 학교'였으며, 이 외에도 예배당, 집당, 시나고그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셋째, 회당은 평신도 최고 리더들로 구성된 '평신도 자치 이사회'에 의해 상부 총회나 교단 지휘 없이 각 회당마다 수평적으로 평등하고 독립적으로 가동되었으며, 이사회가 채용한 전문 교사인 '랍비'와 안식일 노래 예배의 모든 전 과정을 주체적으로 인도하는 음악 목회자인 '칸토르(하잔)'에 의해 정교하게 운영되었습니다.
다섯째, 이 역사적 회당 공간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3대 공생애 사역(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귀신과 질병을 고치시는)의 가장 찬란한 복음의 무대(가버나움 회당 유적 등)가 되었으며, 사도 바울이 세계 선교 여행을 전개할 때 온 세상 사방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디아스포라 영혼들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전도 여행지마다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갔던 최고의 복음 전초 기지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을 때 50번, 60번 넘게 수없이 만나는 이 '회당'과 '회당장'이라는 단어 속에는, 이처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속사의 무대를 치열하고 정교하게 준비해 오신 창조주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의 발자취와 피 묻은 사도들의 선교적 눈물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이제 성경을 통독하시다가 회당이라는 단어를 마주치신다면, 그 옛날 검은 현무암 돌바닥 가버나움 회당 강단에 서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위엄 있게 원수를 꾸짖으시던 우리 예수님의 눈부신 신성의 얼굴과, 채찍에 맞아가면서도 회당에 들어가 예수를 증거했던 사도 바울의 장엄한 뒷모습을 영혼의 눈으로 선연하게 조우하시기를 바랍니다. 회당 속에 흐르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날마다 믿음의 전진을 이루는 신실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회당의 구조와 목적에 대한 깊은 성경 어휘 강의를 모두 마감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성경의 보화 어휘를 가지고 기쁜 얼굴로 성도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평강 안에서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