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활용소설창작계획서>
32163260 이수빈
소설 제목 : 울음방
전체 줄거리 : 도연은 ‘울음방’이라는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울고 싶은데 울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생긴 가게였지만, 진짜 울고 싶은 사람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연은 정민이 버리고 간 종이를 발견한다. 정민의 글을 본 도연은 정민을 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민은 더 이상 울음방에 찾아오지 않는다.
주제와 의도 :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과 취업 준비에 막막한 현대인들을 연결 지어서 쓰고 싶었다.
인물 설정과 관계 소개 :
김도연 - 전문대 졸업 후 ‘울음방’에서 적당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살아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서정민 - ‘울음방’에 자주 오는 손님이다. 대학교에 졸업한 후, 취업 준비를 하며 자격증을 따고 있다, 미래에 대해 큰 걱정과 고민을 하는 인물이다.
발단 : 도연은 집 근처 ‘울음방’이라는 가게에서 일 년 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울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가게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게의 본질은 흐려졌다. 도연은 이곳에서 적당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울음방’에 찾아오는 사람 중 실제로 울고 가는 사람은 없다. 가끔 울음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찾아오곤 하는데, 도연은 그럴 때마다 가게의 이름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전개1 : 손님이 나가면 바로 방을 청소해야 한다. 도연은 남자가 두고 간 벨트를 본다. 꽤 값이 나가 보이는 벨트를 보관해둔다. 요즘 자주 오는 정민이 쓰고 나온 방을 청소하던 도연은 쓰레기통에서 그가 쓴 종이를 발견한다. 도연은 자주 오는 손님 중 한 명인 ‘정민’이 유일하게 울고 싶어 하는 손님이란 걸 알게 된다. 또한 도연은 정민의 글을 읽으면서, 취업을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쓸데없이 걱정이 많다는 생각을 가진다.
전개2 : 도연은 그를 관찰 하게 된다. 그를 울리기 위해 이것저것을 준비한다.(슬픈 만화책이나, 음악 등)
절정 : 정민이란 남자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도연은 정민에게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긴 편지를 쓴다. 정민이 왔을 때, 방을 아직 덜 청소했다고 하며 그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둔다. 그 다음 날, 도연은 정민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한다. 또한 그에게 긍정적인 위로를 건넨다. 이후로도 그에게 말을 자주 건다. 도연은 그 뒤로 그가 울 수 있는 물건들을 준비하지 않는다. 더 이상 울 이유가 없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말 : 며칠 째 정민은 찾아오지 않는다. 울음방이 더 이상 울 수 없는 곳임을 알았기 때문인지, 취업을 했기 때문인지, 그저 손님과 알바생의 관계였기에 이유를 알 수 없다. 남자는 도연에게서 자신이 두고 간 벨트가 있는지 물어본다. 도연은 보관해둔 벨트를 건넨다.
수필 활용 방법 : 정민이 쓴 종이를 수필로 이용할 예정이다.
소설의 시작 부분(원고지 10~20장)
가게에 손님이 들어온 줄 몰랐다. 벽에 밀착되어 있는 커피머신 기계에서 원두 원액을 다 내리고 카운터로 몸을 돌릴 때까지 말이다. 대체로 가게들은 출입문에 종이 달려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딴 짓을 하고 있어도 손님이 왔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도록 달아놓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게는 종이 없었다. 개업 당시에 가게 특성상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의도는 개업 두 달 만에 사라졌다.
까만 코트에 모서리가 각진 백팩을 멘 서른 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나는 그에게 혼자 온 거냐고 물어봤다. 그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는 비어있는 일번 방을 가리켰다. 사실 일인실인 일번 방부터 삼번 방까지는 비어 있지 않은 시간이 적었다. 나는 남자가 일번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것까지 바라보았다. 내 시선은 움직이는 물체를 무의식적으로 쫓는 것에 가까웠지만, 가끔 저렇게 일인실을 이용하는 손님을 보면 궁금증이 일었다. 무얼 하기 위해 오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두 잔을 더 뽑고, 칠 번 방문을 두드렸다. 교복을 입은 세 명의 학생들이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옆 건물 다이소 가면 살 수 있는 아메리카노가 담긴 천 원짜리 유리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나왔다. 이렇게 여럿이서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카운터에 양 팔꿈치를 기대고 섰다.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그제야 시선을 문으로 향했다. 손님이 오는 건 일이 느는 거나 다름없지만, 일이 없으면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입구인 유리문에는 ‘우음방’이 뒤집혀 적혀 있었다. ‘우’ 아래 ‘ㄹ’ 받침이 어느 샌가 벗겨져버렸다. 나는 리을 대신 시옷이 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음 편히 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의 울음방에 리을이 사라져 우음방이 된 것처럼 이곳은 애매한 가게였다. 아마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왜 룸카페를 울음방이라고 부르냐고 할 것이다. 종과 일번에서 삼번 방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남은 울음방의 흔적이었다.
한 시간이 흐르고 남자는 일번 방에서 나왔다. 한 시간에 이천 원이라는 비싼 것도 싼 것도 아닌 가격을 치르고 가게를 벗어났다. 나는 기다랗고 작은 창이 뚫린 문을 열고 일번 방을 들어갔다. 바닥과 갑티슈가 올려 진 테이블을 살폈다. 보통 때면 방에 들어가기 전에 젖은 행주와 빗자루를 챙겼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필요 없었다. 음료를 시키는 게 아니면 갑티슈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역시나 테이블과 바닥은 깨끗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은 테이블 아래 떨어진 허리벨트였다. 윤기 나게 코팅이 된 검정 벨트의 한 쪽 끝에는 실버 스퀘어 버클이 달려 있었다. 버클 위에는 몽블랑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에르메스 가격까지는 아니겠지만 이십 만원은 족히 돼 보였다.
나는 벨트만 챙겨 카운터로 돌아왔다. 카운터 아래 서랍에는 손님들이 두고 간 물건을 모아두는 바구니가 있었다. 아마 벨트는 그 중 가장 고가의 물건일 것이다. 나는 매끈거리는 버클 부분을 매만졌다. 벨트가 바닥에 떨어진 줄 모르고 두고 갔을 수는 있다. 나는 벨트를 왜 풀었을까, 보다 다른 생각이 더 앞섰다. 벨트를 풀고 가도 모를 정도로 바지 허리춤이 헐렁거리는 것도 아닌데 굳이 벨트를 찰 필요가 있었을까.
또 손님이 들어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카운터 위로 지는 그림자에 나는 벨트에서 손을 떼고 서랍을 닫았다. 앞에 선 사람은 서정민이라는 내 또래의 사내였다. 전에 카드 대신 신분증을 내민 적이 있었다. 그때 이름을 봤다. 정민은 일인실을 종종 이용하는 단골 손님격이었다. 그 역시 방에서 무엇을 하고 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다. 평일 다섯 시에 혼자 이곳에서 한 시간을 때우고 갈 정도로 하릴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삼번 방에 들어가라고 알려주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아까는 일번 방을 줬으니까 이번에는 삼번 방을 준 것 뿐이다. 심심하기 때문에 가능한 쓸데없는 짓이었다. 오늘은 일인실을 찾는 손님이 둘이나 연달아 왔다. 액운이 꼈는지 오늘따라 가게가 적적했다.
수필 전문 인용
수필 - 울음방
울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울음방에 들어오면 옛날 우리 집이 떠오른다. 대낮에도 넓은 그늘이 드리우던 우리 집은 방 크기만큼이나 작은 창문에 의지하고 있었다. 반지하 특유의 눅눅한 곰팡이 냄새에 창문은 언제나 열어 두었다. 그렇다고 큰 효과가 있진 않았다. 가뜩이나 작은 창문에 방범철장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는 느낌만 들었다. 가끔 창문을 통해서 햇빛 한 줄기가 들어오곤 했는데, 나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아득한 방 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말이 와 닿았던 적이 없었다. 학교를 갔다 오면 집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었다. 아빠가 있으면 엄마가 없었고, 엄마가 있으면 아빠가 없었다. 아무튼 둘 중 한 명은 집에 꼭 있었다. 아빠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인력사무소를 향했다. 봉고차를 타고 건설현장에 도착하면 밤 9시까지 일을 했다. 엄마는 전단지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일이기 때문에 몸이 항상 좋았던 날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가 일이 없는 날에만 엄마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좁은 집, 일인용 매트리스에 좌식 책상만으로도 꽉 차는 작은 내 방. 이런 곳에서 방음이 될 리는 없었다. 벽이 있어도 원룸 같은 그런 곳이었다. 가끔은 집 밖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거실의 TV 소리, 술 마시고 목소리 커진 아저씨들이 골목을 걸어가는 소리, 모든 게 방 안에 울렸다. 반대로 내가 낸 소리도 다른 이의 귀에 잘 들릴 것이 분명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이 숨을 죽였다.
완벽한 방음이 되어 있다는 울음방에서도 가끔 옆방의 소리들이 들리고는 했다.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울기 위한 곳이다. 만약 정말로 울기만 한다면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소리 내서 엉엉, 울고 싶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공간이 갖추어져도 대부분 그러지 못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울음방은 울음방이 아니었다. 일인 소파와 테이블이 전부였던 작은 방에, 긴 테이블과 좁지만 넓은 의자가 두 개 놓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원래 의도는 지키고 싶다며, 울음방의 구색을 갖춘 방들이 두세 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이 커피까지 만드는 건 어김이 없었고, 어느 순간 울음방은 룸카페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되기 이전에도 울음방에서는 울 수 없었다. 다른 생각이 안 들게끔 하는 아무 것도 없는 방, 테이블 위 휴지까지 마련되어 있었지만 안심이 되는 공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기서는 울기만 하세요, 하고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다. 소파에 앉고 있으면 뭐 때문에 이곳을 찾으러 왔더라,부터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차가운 벽이 양 어깨를 지그시 누르는 것 같아 몸을 웅크리게 된다. 한 없이 낮은 곳으로 나 자신을 끌고 내려갔다가, 이용시간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방을 나서 버렸다. 내가 쓴 휴지는 한 장도 없었다.
울음방에서 대체로 하는 생각은 취업이었다. 부모님처럼 살지 않겠다고, 멀쩡한 직업을 갖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어떻게 취업을 해야 되지 고민한다. 취업을 위해 내가 쌓아둔 스펙이 무엇인지 떠올린다. 그걸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한다. 이 생각을 무한반복 하는 것이다. 늘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가게를 나서면 집으로 향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빼지 않은 자취방. 옛날 반지하 집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가끔 옆집에 사는 대학생이 친구들을 데려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나는 차라리 울지 못하더라도 울음방에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