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티브이가 혼자 바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채널을 돌리던 남편이 손가락으로 티브이를 가리켰다. 홈쇼핑 채널에서는 의료용 기구를 소개하고 있었다. 하얀색 둥근 고리에 검은색 뚜껑 모양이 연결되어 있는 별나게 생긴 물건이었다. 눈으로는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운데 자막에 ‘무지외반증 교정기’라고 쓰여 있었다.
얼마 전부터 발가락이 아프다던 남편이 가끔 절룩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물으니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 쪽으로 휘어져 아프다는 것이다. 남편의 발가락을 보니 정말 엄지발가락 부분이 안쪽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산처럼 나온 부분이 얼핏 보기에도 많이 불편해 보였다.
남편은 발가락 사이에 부드러운 화장지와 솜도 끼워봤지만 소용이 없다고. 이러다 엄지발가락이 산으로 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라고 했다. 가끔 발가락이 아프다는 말은 들어도 건성으로 넘겼는데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찜찜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채근하니 남편은 발가락 양말을 신으면 괜찮을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평소에도 병원을 멀리하는 남편은 미봉책으로 발가락 양말을 신고 다니지만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도대체 발가락이 왜 그렇게 생겼을까 생각하는데 불현듯 익숙한 발가락이 눈에 담겼다. 시어머님의 엄지발가락이었다.
어머님은 연세에 비해 키도 크고 발도 길었다. 우윳빛깔처럼 하얗고 윤이 나는 발이 고왔는데 유독 왼발의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공중목욕탕에서 어머님을 씻겨 드릴 때면 엄지발가락에 으레 눈이 가곤 했다. 이태리타월로 문지르다가 혹시 아프지 않을까 염려되어 얼굴을 올려다보면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셨다.
어머님 발을 씻어드릴 때면 늘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어릴 때 친정어머니는 여자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삐져나오면 팔자가 드세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선 보기에도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뭐랄까, 조금 억세고 투박해 보인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어머님 발가락이 무지외반증인 줄도 몰랐으니. 얼마나 무심하고 죄송스러운 일인가.
어머님이 고무신을 신으면 엄지발가락 부분이 삐져나와 모양새가 없어 보였다. 궂은날에는 너무 튀어나온 발가락 사이로 고무신이 벗겨져 미끄러지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친정어머니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시어머님의 발을 보면서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던 것은 시어머님의 삶 이 무난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으리라.
남편한테 어머님 발가락을 닮았다고 하니 남편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반박하더니, 남편도 어머님 발가락이 그런 줄 몰랐다면서 이내 수그렸다. 젊어서는 아무 이상 없던 남편 발이 육십 대 중반을 넘기면서 통증이 시작된 것도 의문이었다. 하긴, 내가 남편 발을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지 싶다. 10여 년 전 승마하다가 다쳐 복숭아뼈 수술을 하고 깁스를 풀던 날 발을 닦아주었음에도 남편의 발가락이 어찌 생겼었는지 기억에 없다.
한 달이 넘도록 감겨 있던 깁스를 풀고서 땀과 노폐물로 가득한 발을 씻어주느라 한참 동안 발을 씻긴 것 같은데 정작 남편 발가락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아니, 이상하다고 느꼈음에도 사람마다 모양의 차이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홈쇼핑을 보면서 무지외반증 교정기 설명을 듣고 있는데 딸애가 들어왔다. “어, 저거 무지외반증에 사용하는 건데, 누가 무지외반증 있어?”라며 우리를 번갈아 본다. 남편은 자신의 오른쪽 발을 딸애게 들어 보이는데, 딸애는 자기도 그렇다면서 양말을 벗었다.
순간,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발이 길어 칼발인 딸애의 오른쪽 발가락도 남편의 발과 흡사했다. 다만, 삐져나온 부분이 조금 적을 뿐이지. 딸애도 남편 발을 쏙 뺀 듯 닮아 있었다. 서른네 살이나 된 딸애의 발이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았다니. 잠깐 자책하는 사이, 남편은 동지라도 만난 듯이 딸애의 발과 자기 발을 비교하며 아주 신이 났다. 딸애가 무지외반증이라는 것에 나는 속이 상한데. 남편은 손뼉을 치며 파안대소할 만큼 그리 신이 날 일인가. 자식이 자기 발가락을 닮은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을 일인가.
딸애는 긴 발가락 때문에 어릴 때부터 애를 먹였다. 태어났을 때 정말 발가락만 보일 만큼 필요 이상으로 길었다. 살이 없어 발 볼은 좁은데 유난히 발가락이 길어 신발을 사려면 발가락 길이에 맞추어야 했다. 볼이 맞으면 발가락이 빠지고, 발가락이 맞으면 볼이 커 벗겨지기 일쑤였다.
성인이 되면서 자기 취향에 맞는 양말과 신발을 사 신는 딸애 발을 볼 일이 없어서였을까. 딸애 발에 무지외반증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딸애는 엄지발가락이 안으로 돌출되면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모양새에 나름 원인을 찾아봤던 모양이다. 무지외반증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증상이 심하면 수술해야 한다고. 수술 과정도 어렵고 통증이 무지막지해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발가락으로 딸애와 공감대를 형성한 남편은 그날, 병원도 안가보고 자기 발가락과 딸애 발가락에 무지외반증이라는 자가 진단을 내리고 거금의 돈을 투자해 무지외반증 교정기 두 개를 충동 구매했다. 고깟 작은 기구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비싼 것에 놀라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것이 남편과 딸애의 발가락을 보호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사람의 몸 중 홀대하기 쉬운 것이 발가락이지만, 그의 역할이 얼마나 중한지 알게 된 일이 또 있다. 며칠 전 안방 문을 닫다가 왼발 새끼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이 끼여 상처가 생겼다. 어찌나 아픈지 대충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가는데 발가락을 디딜 수 없으니 걷는 게 불편했다. 나도 모르게 절룩거리고 깨끔발을 떼면서. 그깟 하찮은 발가락 하나가 이렇게 몸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다. 차에 올라 운전을 하려는데 엑셀레이터를 밟는 데도 통증이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해 사진을 찍었는데 다행히 살짝 실금이 갔다고 해서 안심했다.
처음이었다. 사진을 보며 내 발가락에 뼈가 세 개나 있고 가는 핏줄이 실처럼 엉겨있다는 것이 신비로울 지경이었다. 타박상과 염좌 치료를 받았지만, 발가락을 디디고 걷는데 족히 한 달은 걸렸다.
무던히도 참다 성을 부린 남편의 무지외반증과 비교하면 턱도 없는 상처였지만, 인체에 달린 어느 기관 하나도 그냥 생겨난 것이 없다는 것을 체험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양말을 신을 때마다 엄살을 부리던 남편이 달라졌다. 남편은 자기 발가락을 딸애가 쏙 빼듯이 닮은 것에 통증도 잊어버린 듯했다. 한동안 발가락 통증으로 시들어 있던 남편의 마음이 활짝 개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지외반증을 반쯤은 치료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거금 주고 산 교정기가 남편과 딸애 엄지발가락의 화를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충북작가, 2024 문학 수 봄호 발표
첫댓글 '발가락이 닮았다.'
무슨 영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아들이 있었으면 엄마의 발가락을 닮지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남편과 딸애 발가락이 닮았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되었어요. 신기하면서 어쩐지 속상했지요. 다행히 딸애는
심각한 정도는 아닌데 남편은 어머님처럼 심하게 튀어나와 걱정됐어요. 교정기를 사서 끼우고 다녀도 별로 효과는
없는 것 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