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어떻게 수도((修道))를 해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시길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
깨달음은 ‘진리는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야 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원효 스님>
내가 말하는 마음을 깨달은 사람이란, “단지 말에서 의심을 없앤 것뿐만 아니라 바로 공적영지(空寂靈知: 텅 비어 고요하며 신령하게 아는 마음)의 말을 가지고 반조(返照)의 공(功)이 있어서, 반조의 공으로 인해서 망념을 여읜 마음의 본체를 증득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깨달음을 의지하여 닦는 수행은 깨달은 마음을 돌이켜 비추어서 본래 번뇌 없는 마음의 본체를 증득하는 데 있다는 가르침이다. <지눌 스님>
깨달음은 단지 그대 자신의 마음 하나가 있을 뿐이다. 지여자심(只汝自心)이다. 만약 자심(自心)밖에 부처가 있고 자성 밖에 법이 있다고 믿고 불도(佛道)를 구하려고 한다면 설령 진겁(塵劫)을 거치면서 몸을 사르고 팔뚝을 태우는 등 갖가지 고행을 닦는다 하더라도 이는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단지 헛고생만 할 뿐이다. <서산 대사>
깨달음이란 마음의 변화로 욕망 등 번뇌 망상이 사라져서 마음이 외풍에 움직이지 않는 것일 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깨달음은 경천동지(驚天動地)가 아니다.<한암 스님>
반야는 어두운 방안을 손으로 더듬으며 이것저것 찾는 답답한 상황에서 불을 탁 켜는 순간 온 방이 다 보이는 것과 같다. 이런 것을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지혜를 넘어서는 말로 착각을 없애는 것이다. 부처님이 봐서는 모두가 나와 더불어 조금도 차이가 없는 여래장(如來藏)이 구족한 자이며 부처님의 무량 공덕(無量共德)을 함께 지니고 있는 자인 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만인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보지 않고 착각을 일으켜서 사는 범부다<광덕 스님>
삶을 꿈이고,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마음의 눈을 뜨고 그 실상(實相)을 바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성철 스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본래 자기 마음 가운데 있는 꽃씨를 일상적인 행을 통해서 가꾸어 나가면 그것이 시절 인연을 만나 꽃 피고 열매 맺는 것, 이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법정 스님>
깨달음이란 것은 자신이 한쪽만을 바라보고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앞면만 보던 것을 뒷면도 봄으로써, 옆면만 보던 것을 위나 아래를 봄으로써, 자기가 문제 삼던 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법륜 스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물질세계의 변화 법칙에 대한 실상(實相)을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했다.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연구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삶을 만끽하는 게 좋다. 그것을 일러 깨달음이다. <법륜 스님>
깨달음이란 번뇌 망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寂滅), 탐(貪)·진(瞋)·치(癡) 등 세속적인 욕망이 사라지고 지혜와 자비만 남은 상태를 가리킨다. <윤창화 작가>
중국의 노장사상(老莊思想)에서는 ‘만물을 만들어 내는 모체(母體)로서의 실재(實在)이며 만물을 존재케 하는 법칙’이라는 뜻으로 도(道)라는 말을 사용했다. 불교를 중국에 소개하고 경전을 번역하는 스님들은 바로 이 노장사상에서의 ‘도(道)’라는 용어를 불교 내에 흡수했다. 그 후 선불교(禪佛敎)가 크게 일어나면서 깨달음에 대한 모든 것은 도(道)라는 말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도(道)’라는 말 자체가 이미 어떤 꾸밈을 배제한 특수한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송강 스님>
깨달음이란 자기 성품을 보는 것인데, 자기 성품은 특수한 몇몇만 가지는 게 아니라 천하 모든 이가 갖추고 있기에 특별할 게 없고, 내가 높다는 상(相)이 생길 래야 생길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특별하다는 어감을 풍긴다면 그것이 사이비, 외도의 증거다. 평상심이 도라고 했다. 그들은 견성했다 하더라도 퇴보하고 만다. 견성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리에서 하던 일을 하면서 살아가되, 다만 끄달림이 없이 좀 더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견성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꾸준히 공부해 습(濕)을 조복 받고 푹 익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법상 스님>
초기경전에서는 깨달음을 사성제, 팔정도, 연기, 오온의 무상(無常),고(苦), 무아(無我)의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꿰뚫어 알았기 때문에 자신을 부처라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성제를 꿰뚫어 아는 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초기경전>
사람이 태어난 후 가짜 지식에 의지하여 일으킨 망상(妄想)과 가짜 알음알이에서 벗어나 세상의 실상(實相) 즉 진리를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가짜 종교, 사이비 종교, 미신,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힌 가짜 나(假我)에서 진리를 알고 실천하는 진짜 나(眞我)로 되돌아가는 것이 깨달음이다. 이 진아(眞我)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특별한 나(我)가 아니라 인연 따라 변하는 진리의 나, 인연아(因緣我)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