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교정 (20) 한글 교명패 탄생
한글 교명패 탄생
학교에서 가사(袈娑)를 입고 염주알을 목에 걸치고 육각모를 쓰신 도인이 교장 선생님의 배웅을 받는 장면을 우연히 보았다.
달려가 인사를 드렸더니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도인ㄴ 교장선생님에게는 아버지에 관해 짧게 말씀하셨다.
지금 추리하면 틈틈이 학교를 찾는 육각모 도인은 관심사가 주로 진보적 교육에 관해서 교장선생님과 의견을 교환했을 거라 짐작 된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은 도인이 점을 쳐주는 신통한 주역의 육효괘(六爻卦)에 매력과신뢰를 두었을 것 같다
도인은 중국에서 가져온 고서적(古書籍)이라며 아버지에게 주요 부분의 번역을 부탁하셨다.
아마 그 당시로는 학교를 찾는 빈도로 보나 창의적 교육방식에 열의를 표명해 온 도인에게 교장 선생님은 교명패의 한글판 서체 제작을 의뢰했을 가능성이 유력시 된다.
왜냐면 얼마 후, 육각모의 도인은 신문지로 포장된 긴 사각판을 들고 교장실로 들어가셨다. 그땐 아이들과 뛰어 노느라 그것이 뭔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전처럼 눈을 마주치고 간단히 인사하고 장난하는 아이들을 피해 나는 달아났다.
교장선생님의 교명패 한글 서체의 제작을 의뢰 받으신 팔각모 도인은 컴컴한 밤에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를 하시고 차림새도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어두운 새벽녁에 보문산 천왕봉엘 오르셨다.
멀리 동녁 하늘에는 여전히 어둠이 머물러 있었다.
팔각모의 도인은 하늘을 우러러 제를 올렸다. 먼저 엎드려 절을 올리고 좌정하여 준비해온 축문을 읽으셨다.
" 천지신명께 미약한 인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청원합니다. 소생이 학교 교문설주에 달을 교명패에 쓰일 여덟글자를 쓰고자 하오니 신통한 영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학교 아이들이 교명패의 빛을 받아 건강해지도록 글자체를 만들어주옵시고 아이들이 총명하여 학문을 이루도록 글자에 힘을 넣어주옵소서. 한자 교명패에서 한글 교명패로 바뀌니 한자의 좋은 뜻을 한글에 넣어주옵소서.
소인이 살고자함이 아니라 이땅의 어린이들의 장래를 축복하고자 간곡히 비나이다.
부디 받자와 청하노니 뿌리치지 마옵시고 기뻐하시고 도움 베푸소서.
단기4296년 오월스므이틀 날 육각(六角)이 절절하야 기축(祈祝)올립니다."
이때 미친 봄바람이라도 되듯 바람이 거세게 온갖 것을 날려버릴 듯이 불어왔다. 도인의 옷자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펄럭거렸다.
다 읽은 축문에 촛불을 당겨 다 탈 때쯤 기다려 하늘로 날려 올려보냈다. 그리고 펼쳐진 백면지 위에 붓을 잡은 손은 강한 힘에 이끌리듯 움직여 대전원동국민학교 8자가 그려졌다. 한글판 교명패에 새길 글씨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육각모 도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교문설주에 박혀 날마다 드나드는 어린이 얼굴에 행복과 만족의 빛을 비추던 교명패 8글자는 이렇게 태어났다. 하늘의 도움을 청한 특이한 서체에 위에 어린 품격의 빛도, 그 태동의 사연도 참 각별했다. 일반 공방에서 만든 교명패와는 제작 동기와 과정이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달랐다.
신문지를 벗기고 백면지를 펼쳐보신 교장선생님은 놀랐다.
1960년대에서는 볼 수 없는 처음 보는 한글 서체였다.
그리고 그건 6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도 최신 서체로도 뒤떨어지지 않는 디자인(design)으로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시대를 앞선 스타일이었고 어느 전문가가 보아도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독특한 한글 서체였다.
이 8글자 한글 서체는 사람들의 눈길을 머물게 붙잡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한 자, 한 자를 눈여겨 볼 수록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고 쉽게 넘볼 수 없는 품위와 하늘이 선물한 격조의 빛을 내고 있었다.
쫓기듯 밀려나던 한자가 한글 서체 속 요기조기에 자리잡은 것이 보였다. 서로 다른 이질 문자가 어우러져 있기도 하고 다른 문자 속에 파고 들어가 자리 잡는 모양새도 취하였다. 또 무게감을 자아내는 곳에는 간절한 염원의 뜻들이 곳곳에 서려있었다.
대전원동국민학교(大田元洞國民學校) 8서체 ! 한자가 분해되어 한글이 되고 한글을 다시 한자로 조립할 수 있다면, 그런 매커니즘(mechanism)까지 갖추었다면 이는 부품이 같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한자도 우리가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알고리즘(algolism) 변환에 근거한 가설이 나올만도 했다.
만족감에 교장선생님의 얼굴이 기쁨으로 밝아지셨다. 팔각모 도인을 모시고 학교 인근의 중앙시장 안 식당으로 들어가셨다. 수고에 감사를 표하고 마땅히 술 한잔도 권하며 식사를 대접하셨다.
교명패의 해설서를 꺼내 육각모 도인은 간결히 설명하시고 교장선생님에게 건네주셨다. 해설서까지 있는 특이한 교명패는 총명의 빛을 발하여 사람들과 학생들의 정신을 맑게 하였다.
식당 앞에서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발길을 돌려 시장안 유리가게 앞을 지나시다 나와 또 마주치셨다.
" 아니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뭐하니?"
" 이 유리 가게가 친구네집이에요."
" 그럼 같은 반이니?"
" 아니요. 애는 대흥국민학교 다녀요. 애네 아빠는 신선생님이신데 노끈 만드는 기계를 발명하셨어요..시장 안 사람들이 기계를 다써요."
" 오, 그래. 음 - 거참 길한 이야기이구나. 이제 그만 놀고 집에 가야지."
" 네"
" 잘가. 바이바이" 유리집 아이 신희석이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 안녕이라고 해야지. 바이바이 그러면 미국 사람 같잖아."
" 바이바이, 오케이, 예스, 노 이렇게 짧고 간단한 말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용된지가 무려 100년이나 되었단다. 언어가 100년이나 자리를 잡았다면 영국이나 미국은 우리 거니 쓰지 말라. 이런 말을 못한다는 거지."
" 그럼, 100년이나 되었으면 이제 우리 꺼가 된 거에요?"
" 그렇지 토착어가 된 거야. 소유권은 우리에게도 있다는거지."
" 그럼 옛날부터 있던 한자는 중국 꺼가 아니고 그것도 수천 년을 사용한 우리 꺼네요."
" 그렇지 이땅에 있는 것은 각국 대사관만 빼놓고 다 우리 꺼지."
" 대사관은 왜 빼요?"
"어느 나라든 한 나라의 대표가 와 있는 대사관을 존중해서 그 나라 땅으로 봐주도록 그렇게 정해져 있거든. 더구나 언어는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하늘이 주신 거거든."
" 그럼 한자 좀 쓴다고 뭐 중국에게 뭐 고마워할 꺼까진 없네요."
" 그래 담에 또 얘기하자꾸나. 어서 집에 잘 들어가렴."
육각모 도인은 체격이 깡마르고 외소했다. 수염이 풍요하지 않았으나 재기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그런 분이 아이 사랑, 학교 사랑, 지역 사랑을 펼치셨다. 이 도인 덕에 많은 아이들이 힘을 얻었다. 밝고 곧은 심성들이 형성되었다. 충청 지역 일대에서는 육각모 도인의 명망이 높았다.
날마다 교문을 드나들며 교명패의 빛을 받은 아이 가운데 김근종이라는 친구를 나는 만나고 싶다.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턴지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고 깡마르고 키가 좀 작은 아이인데 혹시 기억나는가. 근종이는 중교다리 천변 인근 골목 어귀에 살았다.
이영희가 찾아와 그 아이 집에 가보자 했다. 할머니하고 같이 산다고 들었다. 집에 혼자 있던 근종이가 우릴 보고 반가워했다.
근종이가 " 너희들 보여줄 게 있다." 며 다락에 올라가 권총 한 자루를 꺼내왔다. 정말 무시무시하고 서늘한 느낌을 주었다. 근종이가 권총의 총구를 나를 향해 겨냥했다. 정말 무서웠다. 손을 내저으며 놀라 소리를 질렀다. " 야, 싫어. 싫어. 안돼. " 찰칵 방아쇠를 당겼다. 근종이는 웃으면서 " 떨지마 총알이 없어. " 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간담이 서늘하였다. 근종이 아버지가 군인이신가. 경찰이신가.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놀기에 바빠 그길로 잊어버렸다.
와, 그래도 권총은 싫었다. 끔찍하고 차거웠다. 이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똑똑했다. 재치도 있고 나를 다루는 솜씨도 있어 나는 그 아이에게 배우는 아동이었다. 아마 같이 사시는 할머니가 그런 분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좀 큰 편에 속하는 영희하고 키가 작은 근종하고는 서로 잘 통했으나 영희는 근종이에게 같이 시험공부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근종이는 자동차 정비사가 되어 시내 정비공장에서 일하며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기능 경진대회에도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