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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수업, 비평의 눈으로 읽다
저: 이혁규
출: 우리교육
독: 2014년 2월 22,23
• 교사는 가르치기 이전에 배우는 존재이다. 아이들에게 배움을 강조하기 이전에 교사 스스로가 배움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교사들은 각자의 교실에 갇힌 채 서로 배우러고 하지 않는다. 대화와 소통이 가장 필요한 곳에 독백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고 교사의 수업 실천을 개선하는데 수업 비평이 한 계기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 오늘날 동네를 학습한다는 것은 학교 문을 나서서 당연시되는 세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체험이 아니다. 그것은 낯선 경험을 낯익게 만드는 과정인 동시에 낯익은 경험을 낯설게 만들어 가는 이중의 탐사 과정이다. 선생님은 자신이 발견해 낸 이웃을 무턱대고 아이들에게 강제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가게와 장소를 정하고 하고 싶은 질문을 만드는 것은 아이들 차지다. 어떤 가게를 계속 방문할 것인지도 아이들과 이웃의 상호 작용 속에서 결정된다. 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준 생선 가게 아주머니를 초대하여 아이들의 먹거리인 생선이 어디에서 운반되며 어떻게 팔려 나가는지를 이야기 들었다. 이처럼 학교를 둘러싼 수많은 이웃 가운데 누가 중요한 학습 대상이자 도우미로 부상할지는 미정이다. 그것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나타난다. 아이들의 질문을 보면 특정 방향성이 없다. 새로운 물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가게 아저씨의 개인 신상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도 있고 물건 가격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도 있다. 일정 테두리를 설정하기 위해 예시적인 질문을 제시했지만 아이들의 질문은 거기 갇히지 않는다. 필자는 교과의 배경에 도사리고 있는 개념에 갇히지 않는 확산과 산포의 경험이 모든 학습자들(어린 학습자, 성인 학습자)에게 필요하다 본다. 창의적 발견이란 항상 주어진 영역과 정답을 넘어서는 탈주적 질문에서 말미암기 때문이다.
• 내 수업의 두 번째 전제는 내 생각이 강할 때 아이들의 생각은 약해진다. 때로는 약해지는 것을 넘어 생각의 싹이 줄을 수도 있다. 교사로서 일정 신념을 가지기는 자유지만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 사화과 수업에서 아이들은 생각과 의문 품기를 해야 하고 교사인 나는 그 아이들이 생각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도록 생각할 거리와 의문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도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 학습 결손이 학생의 지능이나 속한 문화 빈곤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차이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 때문임을 밝혀 줌으로써 다양한 학습자들의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교실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 우리의 학습 경험을 돌이켜 볼 때 선생님의 설명보다 친구의 설명을 듣는 것이 때로 더 유익했던 경험들이 있다. 근접발달영역을 주장한 교육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이론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고 협동학습은 잘 조직하면 교사 한 사람이 고군분투하는 교실 구조를 학습자 모두가 서로에게 스승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시킬 수 있다.
• 교사의 이상에 비추어 교실 수업을 비평하는 것은 교사의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올려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이라는 지향점을 상실하면 안락한 현실에 닻을 내리고 자위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수업은 사리에 대한 기본적 이해조차 어려워하는 역사 수업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으나 역사적 사고와 안목을 기르는 역사 수업의 이상에 비추어 볼 때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들을 가지고 있다.
• 협동 학습은 학습 내용보다는 학습 구조를 중심에 둔다. 그리고 모든 수업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교수 전략이다. 학습 내용과 유기적인 관련을 맺지 못한다면 교과를 위한 협동 학습이 아니라 협동 학습을 위한 교과 수업이 될 위험성이 있다. 물론 공개 수업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어야 하는 압력이 존재하지만 이런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려해야 한다.
• 폭을 강조하면 깊이가 없어지고 깊이를 강조하면 폭이 좁아지기 쉬운 역사 수업의 딜레마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협동학습의 구조에 대한 고민과 모색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해 보인다. 이상에 비추어 현실을 보는 것은 교사에게 가혹한 짐을 지우는 것이다. 그러나 한 선생님의 열정과 노력이 이런 이상을 향해 비상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다. 협동학습을 하면서 얻게 된 큰 성과는 친구를 대하는 학생들의 마음이 경쟁자에서 조력자로 변하고, 학생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이 바뀌어 교실이 학습 공동체로 변화해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하나의 교과를 배우는 것을 넘어서는 훌륭한 학습 경험이다.
• 협동학습이 여는 세상
흥미도 적성도 학습 능력도 다른 이질적인 학생들이 한 교실에 공존한다. 학생의 이질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수준별 수업 또한 협동 학습의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것이다. 일제식 수업의 관행에서 연장되어 나온 사고이다. 일제식 수업이라면 학생들의 수준을 동질화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수준별 수업은 협동 학습의 가능성 자체를 제한하고 봉쇄한다. 협동 학습은 이질적 학습자들이 함께 작업할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학습은 이런 수업 관행을 깨는 의미 있는 실천이다. 교실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학생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협동적 관계망을 만듦으로써 이들 간의 배움을 활성화하는 것, 이 같은 새로운 체험을 협동학습은 우리에게 제공한다. 협동학습은 수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방법 적 기법이 아니라 서로 배우고 더불어 살아가며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을 체험하는 것이 협동 학습의 최종적 지향점이다.
• 교육적 소재로서 가족 수업의 난점
가족이 교육 소재로 까다로운 이유
첫째, 가족은 학생 삶에 가장 가까운 일차적 환경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기 어렵다. 체험적 현실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구체 가족의 삶으로부터 분리하여 수업의 소재를 추상화해 내기 어렵다. 예) 직업의 다양성 조사 시 아버지 직업 조사, 발표 활동은 위신 폭로. 사생활 침해로 연결, 아버지 없는 가정, 용돈 기입장이나 가계부 작성 활동 역시 가정 사회, 경제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도덕 시간에 가족과 친족의 관계를 학습하기 위해 가계도를 그리거나 가훈을 조사해 오는 활동은? 너무나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하고 분출하는 오늘날 이런 활동의 의의는 과거와 다르다. 이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자극할 수 있다.
둘째, 가족의 구조 자체가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는 점이 가족 수업을 어렵게 한다. 우리는 가족 형태가 과거의 확대 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가족 형태를 연구하는 학자는 이런 통념을 의심하며 어느 시대나 지배적 가족 형태를 벗어나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가족 형태의 다양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독신 가구나 동성애 가족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런 만큼 가족이 어떠하다고 정의, 가르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가족 구조의 변화는 가족 내 역할 구조도 변화시키고 있다. 따라 효도나 우애 전통 윤리의 현대 타당성도 의문시 된다.
셋째, 공동체로서 가족 유대를 중시하는 진영과 개인 선책, 자료를 중시하는 사이는 바람직한 가족 교육 논의를 어렵게 만든다.
넷째로, 가족 내에서 아이들은 수동적인 지위에 있다. 가족에 대해 공부한다 해서 아이들이 가족의 구조나 역학 관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 사진을 보며 가족 관계 짓기를 시키면 사진 속 인물의 독특한 얼굴 표정이나 자세에 더 주목하여 엉뚱한 상상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사진 자료가 자료 속의 과잉 정보로 수업을 방해하기도 한다. 구체적 인물이 아니라 마네킹과 같이 추상화된 인물들을 나누어 주었다면?
• 행복한 가정에서 사는 아이들은 수업에서 가족의 3양성에 대해 이해하고 가족에 대한 편견도 해소하지만 불행한 아이들은 편견 없는 바라봄 등이 자신의 삶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공허한 이야기다. 보살핌과 돌봄의 시공간으로서 가족은 사적인 영역의 자족적 성일 수만은 없다. 그런 보살핌과 돌봄의 시공간을 새롭게 설계하는 데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 가족 제도의 변화와 아동의 양육 환경
가족이라는 주제는 공부의 대상이기 이전에 학생들이 직면해야 하는 삶의 현실이다. 유교적 전통을 가진 나라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최근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이혼율을 보여 준다. 이런 현상을 가족 해체라고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가부장제 하에서 종속적인 지위에 있던 여성의 권리가 강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2007년 통계 보면 보육원 아이 70%가 부모가 이혼시 자녀를 돌보지 않겠다고 했다. 가족 제도의 약화와 해체는 학교가 짊어져야 할 양육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다. 학교의 기능에 대한 고민을 넘어 우리 사회가 다양해지는 가족 제도에 대응하여 아이 양육에 대한 파트너십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쟁점 문제를 다루는 수업은 용어 분석, 사실 분석, 가치 분석을 해야하며 용어 분석을 제밀 먼저 해야한다. 사실 문제는 경험 근거로 판단할 수 있고 가치문제는 경험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신념의 차이를 다루는 것이라 그 분석의 성격이 매두 달라 대분분의 쟁점 수업 모형이 이를 구분한다. 사실 문제는 가치문제에 비해 다루기 쉽다. 인식 능력의 한계로 이 부분의 의견 불일치도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렵다. 수자원학회는 아래 표의 내용과 같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절대적이라 볼 수 없고 사실에 대한 주장이 가치에 의해 영향을 받는 점에서 논란이 계속 된다. 토론을 통해 상대방 주장의 논리성을 점검하는 논쟁의 기회를 갖는 것은 엄청나게 유익한 학습 경험이다. (사실 분석보다 가치 분석을 밀 다루는 이런 수업 모델이 다른 진행 방식보다 더 우월한 방식이다.) 즉 성장론자들은 고용 창출이나 경제 성장과 같은 가치 지향에 비추어 사물을 대하며 그런 가치 지향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대운하에 대한 구상을 얻게 된다. 반대로 환경론자라면 환경, 생태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는 사람들이며 이들의 눈에 비친 자연은 성장론자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이런 가치 지향성은 대운하라는 구체적 이슈가 부각되기 전부터 대립 구도다. 가치가 사실에 선생하기 때문에 대운하 건설의 효과와 관련하여서도 사람들은 객관적 증거를 찾기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지지할 수 있는 사실을 수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우리 삶의 현실을 고려할 때 가치라는 본질적인 대립을 우선으로 다루고 사실 대립을 그 다음에 다루는 것은 매우 적절한 수업 진행이라고 판단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은 가치가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미치며 사실에 대한 판단을 좌우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도니다.
쟁점 수업은 배타적 중립형, 배타적 편파형,
중립적 공정형, 공정한 참여형 네 가지로 구분한다.
중립적 공정형을 택할 경우 절차상 공정성과 객관성은 보장되지만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옳은 주장과 잘못된 주장을 구분하지 못한 채 수업이 끝나게 된다. 예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 토의가 통일 반대로 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에 공정한 참여형은 다양한 가치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사회의 기본 가치를 대변하는 교사의 참여를 통해 쟁점 토론의 결과가 비윤리적인 상황으로 빠져 드는 것을 방지할 장점이 있다. 이 경우에도 교사가 사회의 기본 가치를 잘못 대변, 학생들에게 교사의 의견에 자유롭게 반박할 수 없으면 배타적 편파형으로 전락한다.
• <카프카>는 사건 기록관이라는 관리자와 전문 기술자들만 존재한다. 서류로서의 글쓰기는 관리 지배에서 개성을 제거하고 고유성을 상실한 근대 지배 체제를 의미한다. 이에 대항하여 주인공 카프카도 글쓰기를 한다. 체제의 길들임에 저항하여 진실을 찾아 기록하고자 하는 저항으로서의 글쓰기이다. 말하자면 두 가지 다른 종류의 글쓰기가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폭탄을 들고 성을 파괴하는 혁명론자도 이 영화의 한 축이다. 이 영화에 견주어 학생들의 글쓰기는 논술이 대학 입시를 통과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여 도구적 실천으로만 글쓰기를 자리 매김한다면 그것은 가선 기록관의 글쓰기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 도룡농 소송 수업 논쟁에서 교사는 개발을 반대하는 건설교통부 장관을 맡은 아이에게 개발을 옹호하는 역할을 맡겼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교육적이다. 학생의 입장으로 보면 자신의 입장을 떠나서 타자의 입장이 되어 보는 교육 체험이요. 또 학급 전체는 균형 있는 토론으로 논쟁 문제의 다면적 측면을 경험하게 된다.
• 교사는 학생을 자기 신념의 꼭두각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교사의 의도와 학생의 의도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교육 의도로 스스로의 견해와 학생들 견해 사이의 불일치를 유도하는 성숙한 교사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교사와 학생의 입장ㅇ이 사회의 통념에 반하는 경우다.
• 좋은 비평을 접하면 수업을 새롭게 발견하는 느낌이 든다. 이 점에서 비평을 폭로의 예술이라고 말한 교육학자 아이즈너의 지적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 5.18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아이들과 소통하며 이야기하는 교사는 아이들이 파괴적 폭력성에 주목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대신에 그 폭력성을 극복하고 넘어서는 용기 있는 선한 사람들을 만나도록 이끌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