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Greco
Greek Mannerist artist
born 1541 - died 7 April 1614
16세기 스페인 마술을 대표하는 화가는 크레타섬에서 태어났다 하여 엘 그레꼬(그리스 사람이란 뜻)로 불렸던 ‘도미니꼬 떼오또꼬뽈리(1541~1614)이다.
그는 1577년 스페인으로 건너와 엘 에스꼬리알 궁전에 전시할 ‘마우리시오 성인의 순교’를 그렸는데, 이 그림에 대해 펠리페 2세는 불만족을 표시하였다.
이로 인해 엘 그레꼬는 더 이상 궁정화로서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똘레도 지역에 국한된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그의 지나치게 강한 예술적 개성 때문에 제자나 동료들이 거의 없었다.
엘 그레꼬는 38년 동안 똘레도에 머물며 그의 신앙을 화폭을 담았는데, 그의 일생에 투영된 여러 가지 사건들은 그의 순탄치 못한 생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엘 그레꼬의 작품의 특징은
(1) 작품 속의 인물이 길게 그려진 것(이는 ‘하느님께 향하는 영혼’의 모습을 표현한 것)
(2) 가느다랗고 긴 여성스런 손가락
(3) 서로 붙어있는 가운데 두 손가락
San Lorenzo 수도원, 엘 에스코리알/ 스페인
성 베드로 Saint Peter 1610-1613
Painting Oil on canvas / 209 x 106 cm
Monasterio de San Lorenzo, EL Escorial, Spain
베드로의 눈물(누가복음 22:54~62)
**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 **그들은 예수를 잡아 대사제의 관저로 끌고 들어 갔다. 그 때에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뒤따르다가 마당 가운데에 불을 피우고 둘러 앉아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들어 앉아 있었다.베드로가 불을 쬐고 앉아 있을 때 어떤 여종이 베드로를 유심히 들여다 보며
" 이 사람도 예수와 함꼐 있었어요" 하고 말하였다.베드로는 그 말을 부인하면서 " 여보시오, 나는 그런 사람을 모르오" 하였다.
얼마 뒤에 또 어떤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그들과 한 패요" 하고 말하자 베드로는 " 여보시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하고 잡아 떼었다.그 뒤 한 시간쯤 지나서 또 다른 사람이 "이 사람은 분명히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오. 이 사람도 갈릴래아 사람이 아니오?" 하며 몰아 세웠다.베드로는 " 여보시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하며 끝내 부인하였다.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닭이 울었다.그 때에 주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똑바로 바라보셨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필립스 Phillips 소장품/ 워싱턴 D.C
후회하는 베드로 The Repentant Peter 1600
Oil on canvas / 93.6 x 75.2 cm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 C.
왼쪽 팔목에는 주님으로부터 약속받은 “하늘 나라의 열쇠”(마태 16,19)를 건채 두 손을 꼭 마주잡고 허공을 우러러보고 있는 베드로의 얼굴은 엘 그레코 특유의 길쭉한 얼굴로 묘사되어 있다.
흰 머리칼과 얼굴 가득한 턱수염, 완강한 근육을 가진 어부 출신의 베드로는 알 수 없는 허공의 한 점을 우러러보고 있는데,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고여 있다.
따베라 Taverra 미술관/ 톨레도
성베드로의 눈물 The tears of St Peter 1603-1607
Oil on canvas / 102 X 84 cm
* Hospital de San Juan Bautista de Afuera Toledo
스페인 최초의 루네상스 양식 건물로 알랴진 따베라 미술관은, 따베라 추기경에 의해 설립된 과거 병원 건물로, 원래 따베라 병원(Hospital de Tavera) 또는 산후안 바우띠스따 병원이라 불리우던 곳으로 지금은 미술관으로 되어 있다.
그레꼬, 리베라, 띤똘레도, 띠치아노 등의 작품은 물론 16-17세기의 타피스트리와 가구도 볼만하다.
* 베드로의 눈물 /최인호 베드로/ 작가*
엘 그레코(El Greco)는 스페인이 낳은 화가입니다. 원래는 그리스 사람이었는데 일찍부터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아 로마에서 수학한 후 나중에는 톨레도에 정착하면서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의 그림은 종교화와 초상화가 대부분이었고 색채와 명암의 교묘한 대비로 인해 모든 화면에는 엘 그레코 특유의 황홀한 흥분 상태가 감도는 독특한 그림입니다.
수많은 빼어난 종교화를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베드로의 눈물’(1603~1607년 제작)이란 작품은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왼쪽 팔목에는 주님으로부터 약속받은 “하늘나라의 열쇠”(마태 16,19)를 건채 두 손을 꼭 마주잡고 허공을 우러러보고 있는 베드로의 얼굴은 엘 그레코 특유의 길쭉한 얼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흰 머리칼과 얼굴 가득한 턱수염, 완강한 근육을 가진 어부 출신의 베드로는 알 수 없는 허공의 한 점을 우러러보고 있는데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주님이 승천하신 후 매일 새벽 첫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일어나 기도를 하고 몹시 울었다고 합니다. 항상 수건 한 장을 가슴에 넣고 다니며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일을 생각할 때마다 뉘우쳐져 크게 울었다고 합니다. 너무 많이 울었으므로 베드로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서 항상 짓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엘 그레코가 그린 ‘베드로의 눈물’이란 작품이 걸작으로 손꼽힌 것도 알 수 없는 허공을 우러러보며 울고 있는 베드로의 비통한 표정이 초자연적인 영성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엘 그레코의 집 / 톨레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베드로에게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림 속의 베드로는 회한에 가득 찬 눈망울을 보여주고 있다.
“베드로의 눈물” 이란 그림에서 눈물은 찾아 볼 수 없다.
베드로의 눈에는 이른 아침 안개틈에서 스며나온 작은 등불을 연상시킨다. 그의 눈은 보는 이의 마음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 진한 감동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전해주는 엘그레꼬는 진정한 에스파냐인이었다.
톨레도 대 성당 Catedral 聖物室
톨레도 대 성당 성물실에는 티치아노와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과 성물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 전시실의 끝에 엘그레꼬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베드로 눈물”(Lagrimas de San Pedro)!
대성당 성물실에 소장되어 있는 ‘베드로의 눈물’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정한 후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림의 왼쪽 배경 속에는 흰색 여명(黎明)과 함께 쓸쓸한 사람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작품의 주제에 대한 작가 특유의 심오한 내면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성 마우리시오의 순교
막시미안 황제 치하에서 테베아(테반)의 헤르쿨리우스 부대는 이집트 상류에서 온 크리스천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부대장인 마우리시오와 수많은 동료들은 바고데족을 격퇴한 승전 축하연에서이방신에게 희생드리는 것을 거절하였던 것이다.
이 이방인 제사에 참여케 강요하는 것은 그 당시에는 크리스찬을 박해하는 수단으로 흔히 사용되었던 것이다.
거듭하여 이방신 제사에 참여를 강요하는 같은 명령이 떨어졌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었으므로, 황제는 반란을 두려워한 나머지 6천 명이나 되는 이 부대를 아가우눔(현재 스위스 근처)에서 처형, 전멸시켰다는 것이다.
이들의 지도자는 성 마우리시오와 엑수페리오 그리고 성 간디도였다고 한다.
현재 쌩 모르스 앙 발래에 있는 수도원은 이때 죽은 순교자들을 기념하여 세운 수도원이라 한다. 이 이야기를 기술하신 분은 리용의 성 에우체리오 주교이시다.(434년)
Martyrdom of St. Maurice and his Legions - GRECO, EL
1580 - 1581. Oil on canvas, 448 x 301 cm.
Chapter House, Monasterio de San Lorenzo, EL Escorial
위 그림은 로마의 기독교도 병사들이 이교적 희생제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집단 학살 당한 사건을 주제로 삼았다.
왼쪽에 학살 장면이 그려져 있고, 전면에는 마우리시오 성인과 그의 동료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레코는 등장인물들을 펠리페 2세의 부하장군들을 모델로 했다.
엘 그레코는 국왕이 용납할 수 없는 크나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는데, 이는 순교장면이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을 뿐 아니라, 국왕 휘하 장군 3명의 추상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들어간 일이었다.
화가가 그렇게 한 이유는 국왕의 신하들을 신앙의 수호자로 치켜 세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통 교리에 광적인 집착을 보였던 펠리페 2세에게는, 이미 4세기에 일어난 사건을 동시대인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시대 착오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엘 그리꼬의 ‘성 마우리시오의 순교’는 그림을 주문한 펠리페 2세의 마음에 들지 못했다. 그로 인해 엘 그레꼬는 궁정화가가 되지 못하고, 그림은 지하창고에 그대로 방치되었었는데 지금은 엘 에스코리알 궁전의 보물이 되었다.
♬시편15(16)장. 하느님, 나를 지켜 주소서. 이 몸은 당신께로 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