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온의 마음정원2
어렸을 적 ‘애기동자’ 귀신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력을 잃은 무당이 어린애를 죽여 ‘애기동자’ 귀신을 모신다는 무섭고 살벌한 이야기였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드라마 <악귀>에서 ‘태자귀’란 귀신이 나옵니다. 못 먹고 가난하던 시절, 자신의 둘째 아이를 제물로 바쳐 ‘태자귀’란 악귀를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악귀>에서 악귀는 죽음 끝에 몰리자, 발악을 하며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나는 살고 싶은데 너희는 죽으려고 한다. 구산영도 사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내가 대신 살면 안 되냐?”
가난했던 시절, 자식을 팔아서 악귀를 만들어서라도 삶을 이어가려 했고, 악귀가 되어서도 악착같이 살려고 한 데 비해, 요즘 풍요로운 시대에 많은 사람이 쉽사리 삶을 포기하려 들자, 악귀가 꼬집은 말입니다.
마지막 회에서 여주인공 산영은 악귀에 의해 거울에 갇히는데, 이렇게 된 것은 자신의 의지였음을 각성하게 됩니다. 산영은 스스로 갇힌 거울에서 나와 자신의 몸을 되찾습니다. 악귀는 놀라서 “너는 사라졌잖아?”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산영은 “그럴 수 없었다. 나는 한순간도 나를 위해 산 적이 없었다. 나만을 위해 선택한 적도.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걸어간 적도. 나는 왜 누굴 위해 스스로 가혹했을까? 어둠 속으로 날 몰아세운 얼굴은 나의 얼굴이었어.”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가만 생각해보니 수없이 죽음을 생각해 왔습니다. 수치심, 죄의식, 패배감, 고통의 순간에서 삶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요. 최근에는 병이 주는 고통이 컸기에, 그리고 남은 생이 이렇게 늙고 병들다 죽는 것이란 뼈아픈 사실에, 안 아플 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불경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천상에서 떨어뜨린 바늘이 겨자씨에 박힐 확률이라고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인간의 몸을 갖고 생을 살아야 영원한 자유와 평화의 상징인 부처가 될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영적 성장은 인간의 몸으로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만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소중한 삶의 기회를 얻고서도 우리는 쉽게 삶을 포기하려 들고, 너무 쉽게 탐욕과 집착의 어둠에 물듭니다.
인간은 천사와 천국도 만들 수 있고, 악귀와 지옥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