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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호 산문집 _ 바람개비는 즐겁다
피천득의 담요
선물은…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태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선물은… 자애(慈愛)와 같이 주는 사람도 기쁘게 한다.
- 피천득 「선물」
2020년 8월 24일은 매우 더운 날이었다. 한 지인을 만났는데, 뜻밖에 그는 피천득 선생님이 쓰시던 담요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너무 의외라 놀라고 황송하기도 하고 미안해서 처음에는 극구 사양했다. 그러나 지인은 고집을 부렸다. 그는 내가 피천득 선생의 제자고 공부하는 학자니까 그 담요를 내가 가지고 사용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 담요를 사용하며 좋은 글 많이 쓰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 지인은 바로 이미 3권의 커피 수필집을 상재한 새로 떠오르는 커피 칼럼니스트이며 커피 제작자인 구대회 대표다.
구대회 대표는 자신이 피천득의 담요를 가지게 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2002년 자신이 대학교에 다닐 때였다. 어느 초겨울날 여느 때처럼 구반포 아파트로 좋아했던 피천득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거의 매주 한 번씩 그는 선생님을 뵙고 일주일간 국내외 뉴스를 정리해서 말씀드리고 선생님께 책도 읽어드렸다. 피천득과 당시 대학생이던 그의 나이 차이는 64년이나 되었다. 친구가 되기에는 너무 큰 나이 차이임에도 두 사람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날 피천득은 나이 어린 대학생 친구에게 담요 한 장을 건넸다. 하숙집에서 춥게 지내는 것을 알고 자신이 당시 사용하던 순모 담요를 준 것이다. 그는 극구 만류하였으나 피 선생님은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이렇게 해서 그는 그 담요를 하숙집으로 가져가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했다. 선생님의 체취를 보존코자 그동안 한 번도 세탁하지 않았다. 그러고 거의 18년이 지난 2020년 8월 지인은 그 아일랜드산 담요를 나에게 전달한 것이다.
나는 피천득 담요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체크무늬에, 색깔은 흰색, 남색, 녹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일랜드의 나라 색이 녹색이어서인지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녹색이 제일 좋아하는 색이라 내 마음에도 꼭 들었다. 담요는 작은 무릎담요가 아니라 가로 220센티미터, 세로 165센티미터로 대형 담요였고 세로 쪽에 술 장식이 달려 있다. 담요 촉감이 아직도 매우 좋았다. 이 담요의 주 원료는 아일랜드 양모이고 아일랜드 수녀의 기술 지도로 손으로 짠 100% 순모 고급담요인데, 제주 한림 수직사 제품으로 제주 조선호텔 쇼핑센터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피천득 선생이 대학생 친구에게 이 대형 순모 담요를 건넨 것은 선물로 규정할 수 있는데, 구 대표가 거의 20년간 간직해온 피천득 선생의 그 소중한 담요를 나에게 전달한 것도 선물일까? 나로서는 커다란 선물이다. 피천득 선생이 처음 시작한 이 담요 선물 행위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또다시 선물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 자신도 귀한 선물을 받았으니 피천득 선생님을 사랑하는 분을 발견하면 늦기 전에 그 분에게 다시 선물로 전달할 것이다. 이 담요가 완전히 마모되기 전까지 선물의 선순환 구조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피천득 시에 「선물」이 있다.
너는 나에게 바다를 선물하였구나
네가 준 소라 껍질에서
파도 소리가 들린다.
너는 나에게 산을 선사하였구나
네가 준 단풍잎 속에서
붉게 타는 산을 본다.
너는 나에게 저 하늘을 선사하였구나
눈물 어린 네 눈은
물기 있는 별들이다. (전문)
이 시는 독특한 환유 구조로 되어 있다. 소라 껍질=파도 소리=바다, 단풍잎=붉게 타는 산=산, 눈물 어린 네 눈=물기 있는 별=하늘로 이어진다. 시인의 연상적 상상력은 선물로 받은 소라 껍질에서 파도 소리를 듣고 나아가 장대한 바다로 상승 발전하고 이동한다.
3연짜리 이 시에 한 연을 더 넣어 나만의 시 선물을 짓고 싶다.
너는 나에게 태양을 선물하였구나
네가 준 모직 담요에서
따뜻한 봄날을 느낀다.
지인에게 받은 피천득의 담요에서 나는 따듯한 봄날, 나아가 뜨거운 태양을 선물로 받았다. 나이 어린 친구에게 전달된 피천득의 따뜻한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피천득이 수필 「순례」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54수보다 한 수 위라고 한 황진이의 시조 한 수를 소개한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는 날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는 피천득에게 “멋진 여성”, “탁월한 시인”, “구원의 여상”이었다. 피천득은 이 시조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진이는 여기서 시간을 공간화하고 다시 그 공간을 시간으로 환원시킨다. 구상과 추상이, 유한과 무한이 일원화되어 있다. 그 정서의 애틋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수법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54수 중에도 이에 따를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아마 어느 문학에도 없을 것이다.
피천득 선생이 이토록 높이 평가한 황진이의 이 시조 역시 나는 개작해보고 싶다.
섣달 추운 밤을 허리에 두른
따뜻한 담요 아래 고이고이 넣었다가
선생님 오시는 날이면 훌훌 펼쳐놓으리
나는 피천득 선생님이 시작한 선물로 받은 담요를 따뜻하게 가지고 있다가 언제라도 선생님께 되돌려드리리라.
피천득은 수필 「선물」에서 선물의 정의를 “뇌물이나 구제품같이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태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선물은 “아름다운 물건”이어야 하고 “사치품”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계속한다.
그러나 선물은 뇌물이 아니므로 그 가치는 그 물건의 가격과 정비례되지 않는다. 값싼 물건, 값없는 물건까지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
나는 내금강에 갔다가 만폭동 단풍 한 잎을 선물로 노산(鷺山)[이은상]에게 갖다 준 일이 있다. 그는 단풍잎을 받고 아름다운 시조를 지어 발표하였었다. 내가 받은 선물 중에는 유치원 다닐 때 삐아트리스에게서 받은 붕어과자 속에서 나온 납반지, 친구 한 분이 준 열쇠 하나, 한 학생이 갖다 준 이름 모를 산새의 깃, 무지개같이 영롱한 조가비―이런 것들이 있다.
구대회 대표에 의해 나에게 전달된 피천득의 담요도 나에게는 “아름답고”, “기쁜” 선물이다.
피천득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믿음을 실천하였다. 글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피천득은 자신이 사용하던 고급 순모 담요를 하숙집에서 추위에 떠는 나이 어린 대학생 친구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구 대표에 따르면 겨울 어느 날 피천득은 지방에 계신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라고 두터운 내복 한 벌도 선물했다고 한다.)
피천득은 100년 가깝게 사시면서 언제나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셨다. 그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1970년대 초에 대학원을 다닐 때 나는 정원에 나무와 화초가 많았던 망원동 댁을 방문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T.S. 엘리엇의 문학비평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곧바로 서재에 가시더니 엘리엇의 비평에 관한 영어 원서 두 권을 꺼내다가 주셨다. 당시만 해도 원서는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던 시기였다. 그 학기에 나는 석사 논문을 완성했다.
피천득의 수필 중 1932년 「신동아」(9월호)에 발표한 「장미」가 있다. 수필의 화자는 어느 날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그러나 집에 오는 길에 만난 친구에게 아픈 부인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고, 시든 꽃이 꽂혀 있던 친구 C의 화병이 생각나 그의 하숙집에 들러 두 송이를 꽂아놓고 나왔다. 숭삼동에서 전차를 내려 집으로 걸어가던 중 애인을 만나러 가는 친구 K가 장미꽃을 탐내는 것 같아 할 수 없이 남은 꽃송이를 다 주고 만다. 자신을 위해 산 일곱 송이 장미꽃이 모두 남을 위한 선물이 되었다. 집에 돌아온 화자는 말한다.
집에 와서 꽃 사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는 꽃병을 보니 미안하다. 그리고 그 꽃 일곱 송이는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
1990년대 말엽 나는 선생님을 구반포 아파트 댁으로 찾아뵌 적이 있다. 담소를 끝내고 우리는 선생님 댁을 나와 길가 가락국숫집으로 갔다. 선생님은 주문하신 음식을 드시기 전에 거의 반 정도를 덜어내 젊은 사람이 많이 먹어야 한다며 내 그릇에 넣어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차와 케이크를 위해 근처 파리크라상 제과점으로 갔는데, 선생님은 워낙 소식이시라 조금만 드시고 남은 건 모두 나에게 건네주셨다. 그리고 집에 있는 우리 아이들 갖다 주라고 빵까지 사주셨다.
선생님은 1976년 수필 「만년」을 발표했는데, 선생님은 1970년대 초부터 거의 절필을 하신 터라 이 글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거의 마지막으로 쓰신 수필이고 수필집에도 마지막 작품으로 배치되었다. 수필의 끝부분을 읽어보자.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보기도 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사랑은 선생님이 평생 실천하신 생활철학이다. 어려서부터 공부한 유교, 성인이 되어 섭렵한 불교, 그리고 개신교로 출발하여 가톨릭교로 옮겨 프란치스코란 세례명을 받았다. 12세기에 가난을 선택하여 살았던 성 프란치스코처럼 검소하게 사셨던 피천득은 시인과 수필가로 글과 행동을 통해 항상 사랑과 정(情)을 보여주었다. 공자의 “인애(仁愛)”,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 예수의 “사랑”은 결국 같은 것이 아니던가.
어려서부터 잠을 부르는 따뜻한 방보다 추운 방에서 공부하였던 터라 나는 올겨울도 다소 추운 방에서 지낸다. (물론 일부러 추운 방을 택했다기보다 가난하여 진흙 벽에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문풍지, 양재기에 물을 떠놓고 자면 아침에 얼어버렸던 허술한 집에서 살았다.) 나는 피천득 담요를 잘 때는 한 번도 덮지 않았다. 그저 책을 볼 때 무릎에 올려놓거나 등과 어깨에 걸치고 피천득 선생님의 큰 사랑과 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 피천득 문학이나 삶에 대한 지식보다 선생님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내가 받은 은혜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것이리라.
나는 오늘도 추운 방에서 선생님의 어린 친구, 이제는 글 쓰는 문인(文人) 바리스타가 된 나의 글 친구이기도 한 구대회 대표가 준 순모 담요에 의지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 금아 피천득 선생님이 미국의 만화가 찰스 슐츠가 2000년까지 50년간 연재한 만화 〈피너츠〉의 주인공 찰리 브라운이라면 나는 그의 친구 라이너스일까? 라이너스는 찰리 브라운의 반려견 스누피와 함께 언제나 담요를 들고 다닌다. 라이너스에게 담요는 생명 없는 물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이다. 피천득의 담요는 아주 어린 정다운 친구의 담요가 되었다가 이제 선물로 못난 제자인 내게로 와 따뜻하고 편안한 사랑의 징표인 나의 담요가 되었다.
구대회 _ 나의 어린 왕자, 피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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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구 대표가 거의 20년간 간직해온 피천득 선생의 그 소중한 담요를 나에게 전달한 것도 선물일까? 나로서는 커다란 선물이다. 피천득 선생이 처음 시작한 이 담요 선물 행위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또다시 선물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 자신도 귀한 선물을 받았으니 피천득 선생님을 사랑하는 분을 발견하면 늦기 전에 그 분에게 다시 선물로 전달할 것이다. 이 담요가 완전히 마모되기 전까지 선물의 선순환 구조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피천득은 자신이 사용하던 고급 순모 담요를 하숙집에서 추위에 떠는 나이 어린 대학생 친구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구 대표에 따르면 겨울 어느 날 피천득은 지방에 계신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라고 두터운 내복 한 벌도 선물했다고 한다.)
피천득의 담요는 아주 어린 정다운 친구의 담요가 되었다가 이제 선물로 못난 제자인 내게로 와 따뜻하고 편안한 사랑의 징표인 나의 담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