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때는 1950년대, 대서양 쪽에 연한 남미 콜롬비아의 소도시에 56년간 편지를 기다리는 75세 된 전직 대령이 있다. 그는 56년전 콜롬비아 내전에서 자유당과 보수당이 싸울 때, 자유당의 편에서 싸웠고, 약관 20세에 대령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내전 종식을 위한 조약에서 그들의 지도자가 자유당에 항복하기로 결정했고, 그들은 결국 정부에서 주는 연금을 받기로 하였다.
그후 그는 우편선이 편지를 싣고 오는 매주 금요일마다 항구에 나가서 자신의 연금개시를 알리는 편지를 학수고대한다. 그러나 56년째 소식이 없다.
피골이 상접한 아내는 천식발작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그들의 유일한 아들이자 부양자이던 재단사 ‘아구스틴’은 9개월 전 투계장에서 군인에게 총을 맞아 죽었다.
대령은 품위 있는 삶을 살고 싶지만 아들이 남긴 돈은 다 떨어졌고, 집에 남은 얼마 안되는 세간살이를 팔아 쓰려고 해도 낡아빠진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없다. 결국 아내는 마을의 ‘앙헬’신부에게 결혼반지를 사 달라고 요청하지만, 신부는 성물을 파는 것은 죄악이라며 거절한다. 그러나 신부는 정부를 위해서 영화검열을 하며 종소리로 주민들에게 봐서는 안되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알리는 이중적인 인간일 뿐이다.
이제는 그들에게 아들이 남긴 싸움닭이 한 마리 남아있다.
아들의 친구들은 이 싸움닭이 내년 1월에 있을 투계대회에서 우승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며 대령에게 닭을 잘 키우라고 설득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먹을 양식도 없는데 닭을 먹일 옥수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아들의 친구들이 이들의 사정을 알고 닭모이로 쓸 옥수수를 구해주었지만, 두 부부가 그 옥수수로 죽을 쑤어 먹고 일부는 닭에게 먹인다.
이제 옥수수도 떨어져서 대령은 도리 없이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사바스’씨에게 닭을 팔고자 마음을 먹었다. 사바스는 겉으로는 대령을 위하는 척, 주민들을 위하는 척하지만, 알고 보면 악덕 고리대금업자이다. 그는 처음에는 대령의 닭이 9백 페소의 값어치가 있다고 했으나, 막상 팔려고 하니 4백 페소만 주려고 한다.
그 때, 대령에게 진심인 마을의 의사는 사바스를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그는 레지스탕스를 위해 비밀정보를 대령을 통해 마을 젊은이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대령의 아내를 위해 무료 진료를 해준다. 진료비는 나중에 닭이 우승을 하면 갚으라고 한다.
대령이 사바스에게 다녀오다가 우연히 투계장에서 연습경기를 하는 자신의 닭을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벌벌 떨던 녀석이 상대방을 여유롭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고, 닭에게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는 이제 아내에게 닭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아내는 격분하여 대령에게 ‘그럼 우린 무엇을 먹고 사느냐’고 격하게 항의를 하자 대령이 ‘똥’이라고 대답을 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50년간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두 사람이 나온다. 그들은 사실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그를 기다린다. 마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 대령이 56년간 편지를 기다리는 것처럼 희망을 품고 있다. 고도의 전령인 소년이 나타나서 오늘은 고도가 바빠서 안되고 내일은 꼭 온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지만, 고도는 오지 않는다. 그들은 결국 목을 매어 자살하기로 했지만 이 마저도 끈이 끊어져서 실패하고 만다. 인생이 의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 자신을 부양하던 하나밖에 없는 자식마저 잃은 대령이 매주 금요일마다 편지를 기다리며 희망을 품지만 그 희망이 여지없이 깨어지는 것과 같다.
루쉰의 [고향]에 ‘희망이란 지상의 길과 같아서, 많은 사람이 다니다 보면 길이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는 ‘싸움닭’이 ‘희망’이다. 닭은 대령의 희망이기도 하고, 마을 청년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대령의 아내는 ‘만약 투계대회에서 이 닭이 지면 어떻게할거냐’라고 하지만, 75세의 대령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 먹을 것이 없지만 ‘똥’을 먹으면서 라도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짧은 중편 88쪽짜리 소설이라 두 번 읽었다. 가장 크게 남는 인상은 바로 이것이다.
‘인생이 어디 네 뜻대로 되더냐?’
어쩌면 부조리한 세상을 암울하게만 보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도 ‘희망’을 품어야 부조리한 세상에서 ‘똥’이라도 먹으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첫댓글 마음이 짠 하네요~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1950년대 콜롬비아는 내전상황으로 정말 어려웠습니다. 이 나라에 희망이 없어서 여기서 총맞아 죽는 것보다 차라리 전쟁에 나가 돈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머난 먼 한국에 참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대령'처럼 급여도, 연금도 받지 못하고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에 75세면, 요새 기준으론 95세 정도로 보면 됩니다. 대령은 마을의 가장 연장자이자 존경받는 사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