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질하다. / 곽주현
아침마다 한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한다. 영산호 옆 넓은 수변 공원을 돌아오는 코스다. 여섯 시에 집을 나서는데 오늘은 좀 늦었다. 빠른 걸음으로 속도를 낸다. 호수 둑에 올라서자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후끈하게 올라오는 체온을 가라앉힌다.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여름에는 몇 사람만 보이더니만 코스모스가 피어나자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다. 레깅스(leggings)를 입은 몸매 좋은 여성이 날렵하게 지나간다. 반대편에서 몸집이 큰 아저씨가 배를 내밀고 힘겹게 걸어온다. 천천히 가는데도 숨소리가 거칠다. 전혀 모르는 분인데도 눈길이 머문다.
돌아와 몸을 씻고 전자저울에 서 본다. 숫자가 빙그르르 돌더니 66, 67, 68을 나타내다 67에 멈춘다. 땀을 많이 흘렸던 여름보다 2킬로그램 늘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몸무게 재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많이 앓거나 건강한 날이 계속되어도 내 체중은 큰 변화가 없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 ‘비만도 계산기’에 키, 몸무게 나이를 입력하니 과체중이라 표기된다. “약간의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여 적정 몸무게를 유지하기 바랍니다.”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과체중이라고?’ 신경이 쓰인다. 몇 년 전부터 뱃살이 좀 늘었다는 느낌이 든다. 하루에 만 보 이상 걷는데 더 움직여야 하나?
살아오면서 살찌는 것에 대해 한 번도 걱정해 본 일이 없다. 어릴 때부터 위장이 나빠 음식을 양껏 먹기 어려워, 늘 강마른 상태였다. 그 시절에는 남자는 적당히 뚱뚱해야 무게감이 있고 믿음직해 보인다고 여겼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통통한 사람이 부러워 살찌는 게 큰바람이었다. 그런 내가 정상 체중 범위를 벗어났다 한다. 나잇살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이가 드니 자연스럽게 식사나 간식을 적게 먹지만 몸무게는 더 느는 게 이상하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먹는 양보다 움직임이 적으면 영양이 축적되는 것이다. 아직 20여 년 전의 바지를 지금도 입을 수 있으므로 아직 비만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긴다. 조금 나태해지다가도 몸 관리를 모범적으로 잘하는 두 여인이 곁에 있어 나도 따라 하게 된다.
아내는 계절과 관계없이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난다. 거실에 불도 켜지 않고 매트를 깐다. 하루를 요가로 시작하여, 한 시간 동안 계속한다. 몸을 오그리고 구부리고 나이가 무색하게 유연하다. 매우 힘들 텐데 숨소리가 고르다. 어려운 동작도 계속하다 보면 별것 아니게 되나 보다. 가끔 따라 해보면 내 몸은 통나무처럼 뻣뻣하여 흉내 낼 수 없어 그만둔다. 아내는 물 한 컵 마시고 곧장 밖으로 나가 걷기를 시작한다. 나도 같이 나선다. 비나 눈이 오지 않는 한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한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운동하는 것은 손주들이 일어나는 시간과 겹치지 않기 위해서다. 아내도 저울에 올라보고는 체중이 늘었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내가 보기에는 몸매가 호리호리해서 좀 더 살이 붙었으면 좋겠는데 눈금에 너무 민감한 것 같다.
또 한 사람은 딸내미다. 벌써 나가는지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헬스장에 가는 거다. 야근이나 회식을 하고 늦게 퇴근해도 하루도 거르지 않는 것 같다. “어린애가 둘인데 그래도 되는 거냐?”고 웃으면서 물으면 “아이를 잘 돌보려면 내가 건강해야지, 든든한 도우미가 두 분이나 있는데 뭐.” 시쳇말로 쿨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직장이 도보로 20여 분 거리지만 더운 날, 추운 날 가리지 않고 늘 걸어서 출퇴근한다. 사십 대 중반이지만 군살 없이 몸매가 날씬해서 아직도 삼십 대 같다. 다이어트에 자신이 있는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나 양껏 잘 먹는다. 가끔 체중계에 올라보고 몸무게가 약간 늘었다며 조심해야겠다고 말한다. 대중 매체에서 비만에 대해 너무 강조하다 보니 너도나도 겁을 내는 것 같다.
살은 쉽게 찌지만 빼는 건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다이어트 방법을 단순하게 말하면 운동과 덜 먹기다. 운동은 많이 움직이면 되지만 조금 먹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는 소화불량이 잦아 약을 먹어도 시원치 않을 때는 끼니를 거르곤 했다. 배고픔을 참고 식사를 안 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그럴 때는 물을 많이 마시면 좀 견디기 쉬웠다. 굶는 것은 남다른 의지가 있어야 한다. 비만인이 체중을 쉽게 줄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면서 음식 먹는 양을 잘 조절할 수 있으면 웬만한 질병은 나을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주 끼니를 거르다 보면 적응이 되어 한두 끼 건너뛰어도 아무렇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다음 식사 때 평상시보다 더 많이 먹는 일은 없다. 이것도 연습이 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소화불량이 여전하여 보통 사람보다 적게 먹는다. 그리고 많이 씹고 천천히 먹는다. 다이어트 식이요법과 유사하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말(馬)만 살찌겠는가? 덜먹고 많이 움직이자.
첫댓글 참 부지런한 식구들이네요. 저는 덜 먹고 많이 움직이는 일이 제일 어렵더라구요.
그렇죠? 여전히 조금 먹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 모두의 의지가 대단하네요.
한 번도 다이어트를 안 해본 사람이라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고요, 반복은 습관이 되나 봅니다.
와! 정말 대단한 가족입니다. 성실하게 몸관리 하시니 건강하고 밝은 삶을 사실것 같습니다. 저도 배우고 갑니다.
특별하게 몸관리 하지 말고 있는 곳에서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합니다.
매일 몸무게를 체크하며 사는 일이 일상이라면 밥 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 같군요. 선생님은 몸도 마음도 진정 건강한 분이세요.
글 내용을 함축하면서도 남의 눈을 붙들 만한 제목을 붙이고 싶은데, 어렵던데, 선생님은 멋진 제목을 다셨네요.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가족 모두 몸도 마음도 건강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받아야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저도 제목이 참 부러웠습니다. 명품 제목!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