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믿음과 헌신: 붓다와 보살 숭배
2. 반주삼매와 혜원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은 179년경에 최초로 지루가참이 한역하였다. 이것은 최초의 한역
불경의 하나로서 문헌학적으로 가장 먼저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아미타불의 불국토 즉,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언급한 경전이다. 이 초기 경전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관심사와 독특한
내용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반주삼매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주삼매가 바로
이 경전의 핵심인 듯하다.
반주삼매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재가자, 승려,
남성이나 여성의 모든 수행자들은 은거에 들어가기 전에 계율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그리고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서 아미타불이 있는 곳을 향해 관조한다. 그는 붓다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붓다에 집중한다. 이 선정은 앞에서 살펴본 염불 수행과 같다. 수행자는
붓다가 바로 눈앞에 존재한다고 명상한다.
보살은 … 붓다의 자리에 앉아서 법을 설하고 있는 여래들에게 마음을 고정시켜야 한다. 그는
용모가 준수하고 아름다우며,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운 … 모든 모습들 가운데 최고의 것을
타고났으며, 신체가 완전하게 갖추어진 (등의) 여래들에게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는 붓다의 뛰어난 육신뿐만 아니라 인식의 수승함에도 주목하며 명상하도록 한다.
더욱이 수행자는 3개월 동안 ‘나’라는 관념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며, 3개월 동안은 ‘생리작용의
해소 외에는’ 몸을 눕히거나 앉지 말아야 한다(Harrison 1990: 45). 그러므로 그들은
아미타불에 집중해야 한다.
하루 밤낮 동안 내지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혹은 이레의 낮과 밤 동안, 만일 그가
밤낮없이 7일 동안 차분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에 집중한다면, 7일이 지났을 때 그는 세존,
아미타여래를 보게 될 것이다. 만일 깨어 있는 동안 세존을 보지 못한다면 … 잠자는 동안
꿈속에서 세존의 얼굴이 나타날 것이다. (Harrison 1990: 32).
따라서 수행자는 붓다를 보면서 그를 예배하고 가르침을 받는다. 이와 같이 붓다를 관조하는
것은 천안통(天眼通)을 가지고 행하는 것도 아니며 신통력의 결과도 아니다. 수행자는
천안통과 같은 여러 가지 신통력을 계발할 필요는 없다. 이 신통력들은 세 번째 보살지에서
나타나고, 다른 경전들에서는 시방 세계의 붓다들을 볼 수 있는 수단으로 가르치고 있다.
반주삼매에서 보이는 붓다는 꿈에서 파악한 존재와 같다고 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자성이
공하며 단지 마음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Harrison 1978: 46 이하; 1990: 38-43).
402년 9월에 혜원과 123명의 승려와 재가신자들은 혜원이 건립하였고, 그가 죽기 전까지
수년간 살았던 여산(廬山) 사원의 아미타불상 앞에서 서원을 세웠다. 그들은 결사(結社)
단체였고, 이들은 행복의 땅인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서로를
돕자는 서원을 세웠다.
중국불교에서 혜원은 매우 위대하여 사후에 시호(諡號)가 추증되었고, 여산의 서원
이후부터 중국의 정토종이 성립될 때까지 신자들이 늘어났다. 취르허(Zürcher)는 혜원의
결사를 ‘관료 사회에서 주요한 기능을 독점하는 귀족 정치집단에 대항한 종교적 동맹’으로
파악한다. 만약 어떤 수행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극락을 얻는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거나 현현할 것이다. 아미타불의 정토로 가기 위한
방법이 바로 반주삼매이다.
그러나 혜원이 반주삼매의 결과로 나타난 경계를 과연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라모트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것들은 모두 ‘순전한 자기 암시’가
아닌가? 이 문제는 구마라집이 중국의 수도인 장안에 있을 때(405-6년 초) 혜원과 편지로
주고받았던 주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아마 이 문제는 카슈미르에서 붓다를 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그리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신통력을 중시했던 학파와 반주삼매를 중시했던 학파들 사이에서 격렬하게
이루어진 논증을 반영하는 듯하다. 구마라집은 혜원에게 비록 자신의 태도가 미온적인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반주삼매를 통해 얻어지는 체험들은 대단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조언하였다.
모든 붓다들은 어쨌든 자성이 공한 존재이므로 어느 누구도 이 경험들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Tsukamoto 1985: 2, 853-4; Mochizuki 2001: 254-6). 중국에서는 이 단계에서
『반주삼매경』을 중요한 경전으로 취급했지만 인도불교의 발달에서는 이 경전을
중시하지 않은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중국에서 정토종이 발전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당(唐, 618 년) 이전의 정치적
충격을 동반한 염세주의와 그 결과로 일어난 정신적인 현실도피였다. 이러한 염세주의는
혜원 당시에 대단히 널리 퍼졌 고 당나라가 쇠락하면서, 특히 안록산(安祿山,
An Lushan, 755-63; Weinstein 1987: 59 이하를 보라)의 난 이후 부활하였다.
게다가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는 수세기 동안 업(業)의 이론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고, 더 나아가서 ‘타락한 인간’의 잠재적 염세주의를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혜원은 계율을 엄격하게 지켰다. 그는 동료 승려들이
경전에서 꿀과 물 을 마시도록 허용했는지를 알아보는 동안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고령의 혜원은 치료를 위한 술조차 마시지 않았다(Zürcher 1972: 253; Kieschnick
1997: 28). 『반주삼매경』이 계율을 강조하기 때문에 혜원 이 경전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음은 확실하다.
다른 하나는 이 경전이 의문들에 답하고 의심을 제거하기 위해 붓다나 성현을 만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참된 성현을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혜원은 사후에 아미타불 앞에 다시 태어나기를 서원하였다. 신도가(新道家,
Neo-Daoist)도 역시 사후에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생을 추구했다(Liebenthal
1955: 50-1). 성인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중국 문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혜원이
자신의 전기에서 묘사한 극락도 도가의 낙원과 일치한다. 그렇지만 혜원은 불국토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 무여열반의 성취를 위해 쉬운 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Zürcher 1972: 245).
중국인들은 정토사상의 또 다른 면에 매혹되었다. 장수에 대한 갈망은 중국인의 오랜
관심사였고, 특히 도가의 도사와 연금술사들은 더욱 그러했다. 후대의 중요한 정토학자인
담란(曇鸞, Tanluan, T’an-luan, 476-542 혹은 아마 488 또는 489-554)은 불교 연구에
더욱 깊이 몰두하기 위해 도교의 술법으로 장수를 얻으려고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담란은
그 후 인도 승려인 보리류지(菩提流支, Bodhiruci)를 만나 곧 바로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한다
“인도의 불경 가운데 도교의 장수하는 비법을 가르치는 경전들보다 뛰어난 것이
있습니까?” 보리유지는 땅바닥에 침을 뱉고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대는 어찌 감히 그렇게
말하는가? 도교의 책은 불경과 비교하자면 너무나 무의미하다. 그대는 이 나라 어디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참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었는가? 도교를 수행함으로써 그대는
정해진 수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그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조만간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 (Matsumoto 1986: 37; Corless 1987: 36-8 참조)
붓다는 마법의 방법들과 단약(丹藥)을 통해 도가(道家)의 ‘불사신’인 신선이 되더라도 여전히
신도 결국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윤회의 순환고리는 계속 굴러 갈
것이다. 보리유지는 담란에게 아미타불과 그 수행법을 가르쳤다. 아미타불의 염불을 통해서
불사(不死)를 획득할 수 있으며(아미타불과 그의 정토), 또한 궁국적인 자유인 열반(涅槃)을
성취할 수 있다. 장수하는 방법을 구하는 점에서 보면 불국토는 도교의 도술보다 뛰어나고
장수를 얻으려던 중국 황제들을 죽인 독약보다 한없이 뛰어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