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7
화합과 건강을 챙긴 용왕님의 선물 천렵놀이
<모내기 끝나면 동네 사람들 모여>
“여보게, 모내기도 끝났으니, 동네 천렵이나 한 번 하세.”
춘천 중도 고산 아래에는 벌써 고기잡이가 한창이다. 근화동 사람들, 서면 사람들, 우두동 사람들, 춘천의 여러 마을 사람마다 강가에 터를 잡고 앉았다. 자양강 줄기에는 예부터 놀기 좋고 물고기 많기로 소문나 있었다. 이곳저곳 백사장과 자갈 널린 장광에 마을마다 사람들의 천렵 행렬이 펼쳐져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돌을 괴어 솥을 설치하고 어죽을 끓여 나누고, 술도 몇 동이씩 가져왔으니, 지상 최고의 놀이었다.
너른 앞뜰과 뒤뜰, 그리고 서면과 우두 들판에 힘들어 모를 심었다. 새벽에 나와 어스름이 질 때까지 일했다. 천렵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여보게 술 한 잔하게, 그려.”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권하면서 노고를 스스로 달랬다.
<선비들의 신선 놀이>
고산 앞 자양강은 춘천의 천렵 장소로 소문이 나 있었다. 옛 선비들은 시간 내서 뱃놀이를 즐겼고, <소양강처녀>의 노랫말이 만들어진 배경도 고산 아래 뱃놀이였다.
이항복은 춘천 사람 이경해와 배를 타고 고산에 이르렀다. 고산을 일러 무슨 산이냐 묻자 이경해는 부래산(浮來山)이라면서 이 산이 온 후 춘천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졌다고 했다. 그러자 이항복은 시를 지었다. “느즈막이 소양강 아래에서/ 그대와 함께 자리를 같이했네/ 살아가는 일이 부박함을 근심하지 마시오/ 저절로 온 부래산도 있으니”
이황도 춘천을 거쳐 양구로 가면서 지은 시가 있다. “(…)조각배라도 사양 말고 달 뜬 강물에 띄워서/ 황하의 수신 빙이(憑夷)를 웃으며 춤추게 하고 상수의 혼령 거문고도 타게 하련만/ 어찌하여 경물(景物) 즐길 겨를을 못 내는지/올해에도 다시 또 다른 해 기약해야겠네”(소양강에 대한 이황의 시)
이황은 소양강 뱃놀이에 천렵을 하면서 즐기고 싶었으나 바쁜 일정으로 못했다. 어쩌면 춘천 소양강, 자양강, 신연강 등에서 뱃놀이하고 천렵하는 일이 선비들의 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속놀이가 된 우두 대동 천렵>
“우두강에는 고기도 많다/ 어이여라 당겨라(후렴)/… 회를 뜨고 안주 빚어/ 어르신들께 대접하고…”(춘천 <천렵놀이 소리> 중에서)
제23회 강원민속예술축제 때 춘천에서는 <우두 대동 천렵 놀이>를 출품하였다. 무려 70명이 마당놀이에 참여한 대단위 민속놀이였다. 이 놀이는 네 마당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마당 서낭굿, 제2마당 김매기, 제3마당 천렵놀이, 제4마당 화합마당이다. 춘천의 옛 농사와 기원, 그리고 천렵놀이까지 잘 재연한 민속놀이였다.
이처럼 춘천 사람들에게 천렵은 일상이면서 휴식이고 대동단결을 꾀한 복합적인 놀이였다. 그래서 마을마다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 자리했다. 답사를 다니면서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에게 물으면 모두 천렵의 장면을 회상하면서 얼굴에는 기쁜 모습이 어린다. 천렵은 열심히 일한 후 가지는 마을 단위 또는 또래 단위의 휴식이면서 내일의 노동을 위한 충전이었다.
“여보게, 우리 천렵 한 번 가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