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20분경에 비행기를 탔는데 옅은 안개에 덮인 우르겐치 시가지가 아침 햇살에 붉게 보인다.
우르겐치는 호라즘 주의 주도(州都)로서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의 영토에 있는 호라즘 왕국의 수도였던 코냐
우르겐치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세운 도시이다.
16세기에 도시에 물을 공급해주던 아무다리아 강의 물줄기가 바뀌면서 물이 부족해지자 주민들이 우르겐치를
떠나서 17세기 중반에 이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다,
지금의 우르겐치는 19세기 중반 중앙아시아에 손을 뻗친 러시아가 건설한 신도시로 이 때부터 우즈베키스탄의 우르겐치를 우르겐치, 투르크메니스탄의 우르겐치는 구 우르겐치 또는 코네우르겐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 시대까지는 모두 같은 나라였지만 소련 해체 후 나라가 갈리면서 두 우르겐치는 다른
나라로 갈라지게 되었다.
타슈켄트까지는 한 시간 정도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흡사 사막처럼 보이는데 군데군데 오아시스처럼 푸른 곳에 농경지들이 보이고 강줄기가 사막처럼 메마른 대지를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우르겐치...
인터넷에 있는 현대적 건물의 우르겐치
사막 같이 메마른 대지를 관통하는 강줄기
강 줄기 주변에는 푸른 빛이 보인다.
농경지와 마을이 강을 끼고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이고...
농경지를 가로 지르는 강...물이 흔한 나라에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노랗게 보이는 곳들은 산들이다.
타슈켄트 쪽으로 오면서 사막이 보이지 않는다.
공항 근처
타슈켄트 외곽
타슈켄트공항에 도착하니 8.시 20분으로 시내에 있는 숙소로 들어갔는데 며칠 전에 머물던 호텔이 아니고
다른 호텔이다.
며칠 전에 머물던 호텔은 아미르 티무르의 동상이 있던 공원 옆이었으나 이번에는 초르수 시장에서 가까운
라마다 호텔이다.
타슈켄트 공항
라마다 호텔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저녁에 인천공항으로 가기 때문에 타슈켄트에서 30일간의 여행이 끝나게 된다.
내일은 이곳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침간산을 다녀오는 일정이 잡혀 있어서 지난번에 가 보지 못했던 곳을
둘러 볼수 있는 시간이 오늘 밖에 없는 셈이다.
이곳 타슈켄트도 2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유적지들이 많이 있지만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히바에서 모스크와 마드라사는 많이 봤었기 때문에 그런 곳들은 생략하고, 타슈켄트를 대표하는 바자르인 초르수 바자르와 동방정교회의 성모승천교회를 둘러보기로 한다.
지하철로 가는 길의 공원
분수대 넘어 동상이 보이는데...시간이 아까워서 패스
미술관처럼 생긴 지하철 역...소련의 공화국 시절에 만든 역이다.
타슈켄트의 지하철 역은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있다고 한다.
타슈켄트를 찾는 사람은 반드시 들러 가는 곳이 초르수 바자르로 타슈켄트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며 ‘초르수’
라는 뜻은 네 개의 물길이 만난다는 뜻이라고 한다. 물이 귀한 곳에 물길이 네 개가 만나는 곳이었으니 옛날부터 이곳에 사람이 모였음직한 곳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철수 바자르라고 알려져 있다.
호텔에서 나와서 전철을 타서 두 전거장을 지나면 초르수 역이 나오고 그 역에서 내리면 곧바도 초르수 바자르가 나오는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잡화 시장과 채소 시장 음식을 파는 곳 등이 있고 조그마한 언덕위에 이 시장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체육관 같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의 아래층에서는 육류를 그리고 이층에서는 건과류를 파는데 그 규모가 대단하다.
이제 귀국할 날이 내일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건과류를 사려고 돌아다니다가 보니 일행들 중의 상당수가 이곳에서 건과류를 사고 있다.
초르수 시장 입구
초르수 바자르의 심볼 같은
체육관 모양의 지붕
아래는 고기들을 파는 곳이다.
양고기 소고기...우즈베키스탄은 바다사 없으니 생선은 없다.
소지지도 팔고...
2층은 건과류를 판다....이곳도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아서 과일이 많이 나고 맛도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호두와 건포도를 샀는데 건포도가 무척이나 달다.
체소시장은 지붕 밖에 별도의 시장에 있다.
향신료 접시??
샤슬릭을 파는 노점상...이런 곳에서 고기와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호두를 비롯한 건과류를 사고 나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변두리로 나가서 오래된 사원 하나를 보러 가다가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중간에 지하철을 내렸는데 그 역이 베루니 역으로 그 옆에 베루니 동상이 있다.
동상의 이름이 아부 알 라이혼 무함마드 이븐 아흐마드 알 베루니(Abu Al Rayhon Muhammad ibn Ahmad al Beruniy)로 너무 긴데 나중에 찾아보니 알 라이혼의 아버지이며 아흐매드의 아들인 베루니의 무하마드란
뜻이란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이름은 무함마드인 셈이다.
그런데 아랍에서 이름표기에서는 위대하신 분의 이름을 부르기 않고 대신 출생한 지역 아에 정관사 al을 붙여서 이름대신 호칭한하기 때문에 무함마드라고 부르지 않고 베루니라고 부른다고 한다.
베루니 지하철 역 주변...
모스크를 보기 위해서 걸어가다가 물었더니 걸어서 가기가 힘들다고 하여 포기를 하고 다시 내린 역으로 가는데
이름도 무지하게 긴 사람의 동상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어렵게 자료를 찾아 보았더니 베루니는 우즈베스탄의 호라즘 근처의 작은 도시 베루니에서
태어나서 25세까지 학업에 매진하다가 이란과 중앙아시아 각지를 유람하하였으며 사만조와 호라즘 왕에게
봉직(奉職)을 하였다고 한다.
호라즘이 가즈니 왕조(王朝)에 정복되면서 포로가 되어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에서 거주하게 되었고 마흐무드 왕의 인도 서북부 원정에 동행하여 거기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인도학의 고전(古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의 서’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저술한 서적과 다른 사람이 베루니의 이름을 빌려서 저술한 서적을 포함해서 180권의 저술이 있다고 한다.
타슈켄트이 역사(驛舍?)
성당으로 가는 길..도심을 가로질러 운하(?)가 보인다.
책을 들고 있는 동상..그냥 패스하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늘로...물어물어서 성당을 찾아 간다.
베루니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방정교회의 성모승천교회를 찾아가는데 근처의 역에서 내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는 길을 물어도 잘 알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가 부르는 이름과 그들이 부르는 이름이 달라서인 것 같다.
어찌 어찌 물어서 찾아 갔더니 그리 크지는 않지만 러시아의 성모승천교회처럼 지붕이 황금색으로 반짝인다.
들어가는데 카메라를 보더니 정문에 있던 사람이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하여 마당에서도
안 된다고 한다.
안에 들어갔는데 혹시 사진을 찍는지 안 찍는지 감시를 하고 있다.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문 밖에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
성모승천교회....러시아 정교회의 건축물답게 참으로 스마트하게 생겼다.
담장 밖에서 찍었는데 안에서 왜 못찍게 하는지....
봐야 할 곳이 많은 데고 불구하고 이곳을 찾아 온 목적은 이 나라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그 국가 안에 있는 기독교가 어떤 모습으로 있는 가가 보고 싶어서 였다.
우즈베키스탄이 19세기 후반에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러시아 정교회의의 성모승천교회가 이슬람
국가에서 건축될 수 있었던 것일 것이다.
지금도 러시아의 지배의 영향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선 5%정도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한다.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아우르는 개념이기 때문에 로만가톨릭이나 동방정교회 개신교를 다 합해서 기독교라고 부르게 된다.
기독교를 개신교로 아는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근본적 차이(간단한)에 대한 이해
세 종교는 같은 유일신을 믿는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의 종교라고 볼 수 있으나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관은 판이하게 다르다.
같은 세 종교가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하는 종교이기는 하지만 종교의 출현배경이 분파의 개념이 아닌 새로운
종교의 출현의 형식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가 아니고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교이며 이슬람교 역시 유대교나 기독교의 한
분파가 아닌 새로운 종교이다.
그러므로 세 종교는 같은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완전히 별개의 종교라고 봐야 한다.
1. 경전
유대교 : 구약성서(모세오경)
기독교 : 구약성서 +신약성서
이슬람교 : 구약성서일부(아브라함까지)+코란
2구원관
유대교 :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없으며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선민을 통하여 메시아 가 와서 이스라엘 선민에 의해서 지상천국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믿어서 천국을 간다는 구원의 개념이 없다.
기독교 : 인간은 원죄가 있기 때문에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만 원죄를 청산 받아서 구원(천국을 가는 것)이
있으며 믿지 않는 자에게는 구원이 없다.
이슬람교 : 천국과 지옥을 믿으나 인간에 대한 원죄의 개념이 없으며 알라의 뜻대로 살면 천국을 갈 수 있다.
현대인들에게 이런 구원관은 사실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이 말은 현대인들에 게는 종교가 필요 없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다.
3.메시아관
유대교 : 메시아는 구세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으로 이루어진 천국을 건설 하러 오는 사람이다.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중이다.
기독교 : 메시아는 예수로서 2천년 전에 왔다가 갔지만 다시 심판하러 와서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가지만 믿지 않는자는 심판을 당하여 지옥으로 간다.
이슬람교 : 메시아관이 없다.
4 예수에 대한 입장의 극명한 차이
유대교 : 예수는 선지자이기는 하나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를 참칭(僭稱)한 율법을 파괴하는 자이므로 용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처형을 함
기독교 : 예수는 하나님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이며(삼위일체(三位一體)로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고 누구든지 그의 심판을 피 할 수 없다. 기독교가 국교이던 시절에는 3위일체를 부정하는 자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로 처형을 하였다.
이슬람교 : 예수는 선지자일 뿐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가 없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일 뿐 인간은 신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나 하나님으로 간주하는
것은 알라를 모독하는 행위이므로 용납을 할 수 없는 행위로 처형의 대상이 된다.
5 세 종교 간의 갈등
(1) 유대교와 기독교의 갈등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유대교)이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십자가에 처형함으로 인 해서 기독교에 의해서
2천년 동안 박해를 받아왔으며, 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에 의해 서 600만이라는 민족이 희생되기도 했으나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박해는 끝이 났다.
그러나 기독교아 유대교는 교리상의 차이로 별개의 종교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2)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아브라함의 본처의 아들인 이삭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몸종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의 적자 와 서자와의 갈등이 존재하고,이삭의 아들인 야곱의 후손들이 기근을 통해서 이집트로 떠났다가 400년 후 모세가 이 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소위 출애굽을 통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1차적인 갈등이 있었고,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하면서 2천년 동안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게 되자 이슬람교를 믿 는 아랍인들이 그 땅을
차지하여 천년이 넘게 살았으나 1948년 영국과 미국에 의해서
과거의 이스라엘민족의 땅이었던 가나안 땅(현재의 팔레스타인 땅)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아랍(이슬람)과 이스라엘은 어느 한쪽이 멸망하지 않 는 한 끝나지 않는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3)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일단 교리상으로 상충을 하기 때문에 서로 용납을 할 수가 없다.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기독교 교리의 근본인 3위일체를 부정하는 이슬람교의 교리와 이 슬람교인들을
용납할 수가 없다.
반대로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도 이슬람교의 교리를 부정하는 기독교의 교리와 기독교인 들을 용납할 수가 없다.
지금은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기독교 국가에서는 이슬람교를 개종을 하더라도 용인을 하지만 지금도 이슬람교가 국가인 나라에서는 타종교로 개종(改宗)을 하거나 개종을 하 게 만드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며 실지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에 선교를 하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고 그 나라 사 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유럽과 중동을 배경으로 선교(宣敎)를 명목으로 정복(征服)과 피 정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천년이 넘게 전쟁을 이어 오면서 서로 용서할 수 없는 피의 역 사를 쌓아 왔으며 화해의 길은 불가능할 정도로
요원하다.
따라서 세 종교는 서로의 교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갈등과 투쟁만이 있을 뿐 평화는 영 원히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세 종교는 과거에 인류(人類) 앞에 어떤 공헌을 해 왔던 간에 미래에는 인류를 파멸로도 이끌 수 있는 근심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이 세 종교의 현주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