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1월, 스물두 살 김지미는 포승줄에 묶인 채 서울구치소를 나섰지만, 전국의 플래시 앞에서 마치 막 왕관을 쓴 여왕처럼 웃고 있었다.
살인범? 간첩?
아니었다.
그들은 당시 대한민국 스크린을 완벽하게 지배하던 최고 여배우와 최고 남배우였다.
죄명은 “간통”.
이 충격적이고도 전복적인 스캔들 앞에서, 겨우 22세였던 여배우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어쩌면 눈부실 만큼 환하게 웃었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자기 돈으로 연인의 본처에게 당시 집 몇 채를 살 수 있을 만큼의 거액 위자료, 300만 원을 지급했고, 끝내 그 남자를 자신의 곁으로 데려왔다.
“사랑하는 게 죄인가?”
뻔뻔하지만 동시에 압도적으로 당당했던 이 선언은,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상 가장 강렬한 스캔들 퀸, 한국판 엘리자베스 테일러, 배우 김지미 전설의 시작이었다.
지금 20~30대에게 김지미라는 이름은 낡은 흑백영화 속 할머니 배우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계를 1960~70년대로 돌려보자.
그 시절은 ‘이혼녀’라는 꼬리표 하나만 붙어도 사회적으로 완전히 지워지던, 숨 막히는 남성 중심의 야만적인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김지미는 무려 네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했다.
그리고 매번 조용하지 않았다.
언제나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일 만큼 뜨거웠다.
첫 번째 남편 홍성기 감독과의 이혼은 그저 예고편에 불과했다.
앞서 언급한 최무룡과의 ‘수갑 스캔들’이 두 번째였다면,
세 번째는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뒤집은, ‘트로트 황제’ 나훈아와의 사실혼이었다.
자신보다 무려 11살이나 어린 당대 최고 남자 가수와 동거한 그녀를, 언론은 사생활이 문란한 ‘요부’로 몰아갔다.
세상의 점잖은 척하는 위선자들은 그녀의 도덕성을 안줏거리처럼 씹고 또 씹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통쾌한 반전이 있다.
세상이 그렇게 미친 듯이 돌을 던졌음에도, 그녀의 인기는 단 한 번도 신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왜였을까?
단순히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스크린 위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연기력, 그리고 어떤 남자 앞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는 알파 피메일의 독보적인 기운 때문이었다.
김지미는 결코 남자의 돈이나 권력에 기대어 살아남는 기생형 여배우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신이 번 돈으로 남자의 빚을 갚아주고,
사랑이 식으면 미련 없이 짐을 싸서 떠나는 쪽은 늘 그녀였다.
그녀는 언제나 관계의 ‘갑’처럼 움직였다.
언론이 스캔들로 그녀를 매장하려 할 때마다,
그녀는 700편이 넘는 영화라는 압도적인 필모그래피로 답했다.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을 휩쓸며, 마치 세상에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더 무서운 것은 그녀의 야망이었다.
여배우를 감독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예쁜 꽃병 정도로 취급하던 충무로의 남성 중심 시스템 속에서,
그녀는 아예 자신의 이름을 건 ‘지미필름’을 세웠다.
배우에서 제작자로 변신한 그녀는 영화 〈티켓〉을 통해 다방 여종업원들의 비참한 현실을 거침없이 드러냈고,
마침내 한국 영화계의 뒤편에서 진짜 권력을 쥔 인물로 올라섰다.
훗날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까지 맡고,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의 최전선에서 삭발까지 불사했던 그녀의 독기를 보라.
세상 어떤 남자와 어떤 언론이 감히 이 거대한 여성을 통제할 수 있었겠는가.
대중에게는 이상한 병이 있다.
아름다운 여배우가 나이 들고, 남자에게 버림받고, 비참한 말년을 맞는 ‘비극 서사’를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김지미는 세상이 기대한 그 싸구려 피해자 대본을 한 발로 걷어찼다.
네 번째 남편 이종구 박사와 황혼 이혼을 했을 때도, 기자들은 또 파리 떼처럼 몰려들어 이혼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내 감정에 충실했고, 사랑할 때는 후회 없이 사랑했다.
그저 내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
김지미의 80년 인생은 결코 사생활이 화려했던 스캔들 메이커의 가십 모음집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을 숨 막히는 도덕의 코르셋에 가두려 했던 위선의 시대에,
자신의 재능과 자본만으로 온전한 자유를 사들인 위대한 여성이 써 내려간 가장 통쾌한 전투 일지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단 한 번의 스캔들로 울며 은퇴하고 사라지던 시대.
그녀는 수갑을 찬 채 웃으며, 세상의 낡은 잣대를 조롱했다.
김지미.
그녀는 대한민국 연예계가 다시는 만들어내지 못할,
가장 오만하고도 가장 아름다운, 영원한 여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