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87)
2부(37)
어쩔 수 없는 운명(運命)의 장난
"삿갓 어른! 죄송(罪悚)해요.
제가 왜 재혼(再婚)을 할 수 없는 팔자(八字)인지,
솔직(率直)하게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수안댁(遂安宅)은 여러 사람
앞에서 술주정하듯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공개(公開)하였다.
수안댁(遂安宅)은 결혼(結婚)한 지 5년 만에 남편(男便)이 죽자, 삼년상(三年喪)을 깨끗이 치른 뒤에, 재혼(再婚)하려고 망부(亡夫)의 혼백(魂魄)을 달래는 굿을 성대(盛大)하게 해주었다.
그때, 그 굿을 주관(主管)한 무당은 70대의
할머니 무당이었는데, 죽은 남편의 혼백(魂魄)을 불러 놓고 한바탕 칼춤을 추어가며 넋두리를 한참 늘어놓은 뒤,
문득 수안댁(遂安宅)에게 다음과 같은 몸서리 치는 선언(宣言)을 하는 것이었다.
"네 남편(男便)은 독주(毒酒)를 마시고 죽은 게 아니라, 바로 네가 청상살(靑孀煞)을 타고났기 때문에 죽은 것이로다.
그러므로 너는 재혼(再婚)을 하더라도,
네가 타고난 청상살(靑孀煞)때문에
서방을 또 잡아먹게 되리라.
만약 서방이 죽지 않으면 서방 대신
네가 죽게 될 것이니, 너는 그리 알고
행여 재혼(再婚)은 생각도 하지 말아라!"
실로 소름이 끼치도록 무시무시한 무당의
넋두리였다. 수안댁(遂安宅)은 그 말을 듣고 난 뒤로 재혼(再婚)은 깨끗이 단념
(斷念)하고 숫제 술장사로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기구(崎嶇)한 팔자(八字)를 타고난 계집이에요. 그러니 내가 아무리 삿갓 어른을 좋아하기로 이런 팔자를 타고난 년이 어떻게 삿갓 어른과 결혼(結婚)을 할 수 있겠어요?"
수안댁(遂安宅)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 같은 신세타령을 늘어놓고,
숨을 쉬면서 술을 마셨다.
좌중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수안댁(遂安宅)의 말을 듣고 나서는,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수안댁(遂安宅)
에게 김삿갓과의 재혼(再婚)을 권고(勸告)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수안댁(遂安宅)의 신세(身世)가
무척이나 측은(惻隱)하게 여겨졌다.
본인(本人)의 신세(身世)도 신세(身世) 지만 그런 신세(身世)를 위로(慰勞)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격려(激勵)와 위로 (慰勞)의 말을 하기는커녕,
이러저러하면 서방이나 네가 죽게 될 것이라는 악담(惡談)에 얽힌 말을 쏟아낸 무당이 몹시 괘씸하게 여겨졌다.
(점이나 굿 같은 것은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일삼는 자들의 헛소리가 아니던가? 그런 자들이 무얼 안다고 허튼수작
(酬酌)으로 남의 일생(一生)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한단 말인가!)
김삿갓은 그런 생각이 들어,
"여보게 수안댁(遂安宅)! 자네는 사람이
왜 이렇게 어리석은가?"하고
수안댁(遂安宅)을 정면(正面)으로
나무라 주었다.
좌중(座中)은 물론, 수안댁(遂安宅)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김삿갓은 다시 입을 열며 말을 했다.
"무당의 넋두리라는 것은 순전히 허튼 수작(酬酌)에 불과한 것이네.
그런 것을 철석(鐵石)같이 믿고 재혼(再婚)을 않다니 그런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는가?"
그러자 수안댁(遂安宅)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재혼(再婚)했다가 남편(男便)이 또
죽으면 어떡해요? 팔자(八字) 도망 (逃亡)은 누구도 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쓸데없는 소리! 팔자(八字)라는 것은
자기(自己)가 만들어 내는 것이지,
누가 갖다 주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굳센 신념(信念)을 가지고,
사람은 스스로 운명(運命)을 개척 (開拓)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라네."
김삿갓이 이같이 말을 마치자,
친구(親舊)들도 덩달아 박수(拍手)를 치면서,"허 긴 그래! 귀신(鬼神)이라는
것은 위해주기 시작(始作)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삿갓처럼 애초부터 무시(無視)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니까 결혼(結婚) 문제(問題)는 본인(本人)들 끼리 잘 알아서 처리(處理)하도록 하고, 이제부터
우리는 술이나 마시도록 하세!"
이리하여 모두 들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초저녁부터 시작(始作)한 술은 밤이
깊도록 계속(繼續)되었다. 말끔한 결론(結論)이 나지 않은 김삿갓과 수안댁(遂安宅)의 결혼(結婚) 문제 (問題)가 마음에 걸렸던지, 친구(親舊)
들의 빈 술잔은 김삿갓과 수안댁
(遂安宅)에게 집중(集中)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히 술을 하는
김삿갓도, 수안댁도 그 자리에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김삿갓은 목이 말라 눈을 떠보니,
친구(親舊)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머리맡에는 자리끼가 있어,
한 대접을 몽땅 마셔 버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자기(自己) 자신(自身)은 이불 속에서 자고 있었는데 수안댁(遂安宅)은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옆에서 허리를 꼬부리고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여보게! 친구(親舊)들은
모두 어딜 가고 우리 두 사람만 남아있지?"
김삿갓은 수안댁(遂安宅)의 어깨를 흔들어
깨워 보았으나 수안댁(遂安宅)은 인사불성
(人事不省)으로 잠만 자고 있었다.
(으흠! 친구(親舊)들이 계획적(計劃的) 으로 우리 두 사람만 남겨 두고 도망(逃亡)을 가버렸구나!)
그런 사실(事實)을 깨닫고 나자, 별안간
(瞥眼間)야릇한 흥분(興奮)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옆에서 자는 수안댁(遂安宅)의 풍만(豐滿)한 육체(肉體)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이야!)
멀리서만 건너다보던 여인을 눈앞에
가까이 두고 보니, 황홀(恍惚)할 지경
(地境)이었다.
"여보게! 자는가?"
김삿갓은 이번에는 수안댁(遂安宅)의
젖가슴에 손을 대고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수안댁(遂安宅)은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던지, 완전히 인사불성 (人事不省)이었다.
"여보게! 추운 모양(模樣)이니 이불 속에 들어와 자게나."
김삿갓은 그렇게 말하며 여인(女人)의
풍만(豐滿)한 몸을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다.
수안댁(遂安宅)이 이불 속으로 들어오자,
여인(女人)의 향기(香氣)로운 냄새가 물씬
코를 찔러 못 견딜 지경(地境)이었다.
김삿갓은 수안댁(遂安宅)을 가슴에 품어 안은 채 잠을 다시 청해 보았다. 그러나 너무도 오랫동안 금욕(禁慾)한 탓인지, 불길처럼 솟구쳐 오르는 욕정(慾情)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안된다. 나는 누구하고도 결혼(結婚)할 처지(處地)는 아니지 않은가!)
책임(責任)을 질 수도 없으면서 남의 애틋한 정조(貞操)를 유린(蹂躪)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눈알이 뒤집히도록 맹렬(猛烈)히
타오르는 욕정(慾情)은 김삿갓의 절제력을
무기력(無氣力)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서 정신(精神)없이 자는
여인(女人)의 숨결이 끊임없이 얼굴에 불어와, 애써 누르고 있는 욕정(慾情)을 자꾸만 북돋아 주었다.
(이 여인(女人)과 관계(關係)하는
남자(男子)는 모두가 죽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젯밤 수안댁(遂安宅)이 취중(醉中)에
들려주었던 말이 번개같이 머릿속에
떠올라 등골이 오싹해 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지옥(地獄)에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지금(只今)의 이 순간(瞬間) 에는 그런 것은 문제(問題)도 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김삿갓은 마침내 자신(自身)도 모르게
여인(女人)의 저고리를 벗기고 치마도 벗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인(女人)의 풍만(豐滿)한 유방을 사정(事情)없이 주물러대었다.
여인(女人)은 그제야 정신(精神)이 드는지,
"어마! 누구에요?"
호들갑스럽게 놀라면서
용수철(龍鬚鐵) 퉁기듯 벌떡 일어나 앉는다.
"나야, 나! 놀라지 말고 이리와 누워요!"
김삿갓도 일어나 앉으며 달래듯 속삭이며
여인(女人)을 품속으로 끌어들였다.
수안댁(遂安宅)은 상대방(相對方)이
김삿갓임을 알자 마음이 놓이는지,
"친구(親舊)분들은 모두 어디 갔어요?“
하고 묻는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모두 도망(逃亡)을 가버린 모양이야.
그런 줄 알고 함께 누웁시다."
이렇게 말하면서 허리를 힘차게 끌어당기니, 여인(女人)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슬며시 품에 와 안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지 백태를 녹여 버릴 듯한 뜨거운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여인(女人)의 입술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장장(長長) 15년 동안이나 독수공방
(獨守空房)을 해오다가 처음 만나는 남자(男子)이다 보니,
전신(全身)이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것은
당연(當然)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바탕 뜨거운 포옹(抱擁)과 애무(愛撫)가
계속(繼續)되다가, 이윽고 사나이는 마지막
순간(瞬間)을 위해 여인(女人)의 몸을 덮어
누르려고 하였다.
그러자 지금(只今)까지 순순히 애무(愛撫)를 받아들이던 여인(女人)이 별안간(瞥眼間)사나이의 몸을 떠밀며
말을 하였다.
"이것만은 안돼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안돼요!"하며 부르짖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여자(女子) 편에서 거부(拒否)
한다고 곱게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김삿갓은 체면(體面)도 불구(不拘)한 체
우격다짐으로 여인의 다리 틈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사내가 모질게 덤벼들수록,
여인은 끈덕지게 거부(拒否)하며 부르짖는다.
"삿갓 어른을 위해 이것만은 안돼요,
나는 청상살(靑孀煞)을 타고난 여자(女子)라서.
나를 가까이하셨다가는 큰일 나세요."
무당의 예언(豫言)대로 여인(女人)은 자신(自身)과 가까이하는, 김삿갓이
죽게 될까 보아, 몸을 허락(許諾)하지 못하겠다는 소리다.
"무당의 넋두리는 미신(迷信)에 불과한 것이야, 그러니 조금도 겁낼 것 없으니
내 말 들어요."여인(女人)은 온갖 힘을 다하여 저항(抵抗)해 보았지만,
힘센 사나이를 감당(堪當)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미 그 사내는 욕정(慾情)이 화신이 되어있는 상태(狀態)가 아니던가!
힘에 부친 여인(女人)은 어쩔 수 없었던지
온몸에 힘이 풀리며 몸을 허락(許諾)하면서
탄식(歎息)하듯 뇌까렸다.
"아아,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요?"
여인(女人)은 몸을 허락(許諾)하는 것은
문제(問題)가 아니지만, 그로 인해 김삿갓에게 흉악(凶惡)한 재앙(災殃)이 닥쳐올 것만 같아,
무척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막상 교접(交接)이 시작(始作)되자
여인(女人)은 모든 것을 체념(諦念)한 듯
사나이 몸을 뜨겁게 받아들이기 시작
(始作)했다.
그녀의 모든 것은 완벽(完璧)했다.
목마른 사람이 샘물을 마시듯
김삿갓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접수(接受)했다.
김삿갓도 그녀의 대응(對應)에 흠칫 놀라며
자신의 뼈조차 녹아 버린 것 같은 애정
(愛精)을 그녀의 몸 안에 사정(事情)없이 쏟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