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소설집
봄밤, 삼인행, 카메라, 역광, 실내화 한켤레, 층
7편의 단편으로 '술'이란 주제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안녕 주정뱅이'라는 제목을 각 단편의 주인공에게 인사를 하는 의미도 있고 주정뱅이로부터 벗어나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인생은 길고 똑같은 일상이 너무 재미없는데 술을 마심으로써 건너뛰어지는 날이 좋다고 말한다. 빡빡한 일상을 느슨한 일상으로 살고 싶어 술을 마신다고 한다.
이해가 가기도하고 이해가 안되기도 한다. 술을 마시면 알딸딸한 느낌은 좋다. 말도 많아지고 술에 의존해 내 마음의 진심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야 살 수 있지.. 너무 꼭꼭 감추고 살면 얼마나 힘들겠나 싶기도 하다.
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안타깝다.
봄밤.
몸이 어느정도 회복된 후에도 영경은 여전히 수환의 존재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했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는 듯했다. 영경은 계속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혔고 다른 환자들의 병실 문을 함부로 열고 돌아다녔다. 요양원 사람들은 수환이 죽었을 때 자신들이 연락 두절인 영경에게 품었던 단단한 적의가 푹 끓인 무처럼 물러져 깊은 동정과 연민으로 바뀐 것을 느꼈다, 영경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그리고 수환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을, 늙은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p39
삼인행.
세친구의 강원도 여행내용이다. 둘은 부부이고 한명은 이 부부의 친구이다. 친구들끼리 평범해 보이는 여행이지만 부부는 이혼을 할 것 같고 주란과 규는 위태해 보인다.
새벽에 잠깐 잠이 깼을 때 규는 방문이 열렸다 닫히는 사이로 주란의 목소리를 들었다. 방이 건조해서 뭔가 옷을 빨아 널든가 해야 하나. 그냥 자, 누가 빨아 이 시간에. 남자 목소리였다. 훈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훈은 규의 왼쪽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럼 문이 닫히는 사이로 유성처럼 쏟아진, 쐐기 모양으로 철을 파고드는 붉은 녹 같은 그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p68
우리 다시는 서울로 못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지 않냐?
그들은 말없이 소주잔을 비우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굵어빈 눈발이 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옅은 취기로도 그들은 위태했다.p72
이모.
이모를 읽고 가족이란 뭘까?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봤다.
"네가 좋은 생각으로 사온 건 안다. 하지만 나는 내 가난에 익숙하고 그게 싫지 않다. 우리 서로 만나는 동안만은 공평하고 정직해지도록 하자. 나는 네가 글을 쓴다는 것도 좋지만 내 피붙이가 아니라는 게 더 좋다. 피붙이라면 완전히 공평하고 정직해지기는 어렵지. 혹시라도 네가 내 집에 뭘 몰래 두고 가거나 최악의 경우 돈 같은 걸 놓고 간다면 내가 얼마나 잔혹한 사람인지 알게 될 거다. 네가 먹을 간식을 사오는 건 괜찮아. 대산 다 먹고 가진 해야겠지." p86
"나도 애초에 이렇게 생겨먹지는 않았겠지. 불가촉천민처럼,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하게, 내 탓도 아니고, 세상 탓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성가시고 귀찮다고 , 누굴 죽이지 않은 게 어디냐? 그냥 좀, 지진거야, 손바닥이라, 금세 아물었지, 그게 나를 살게 한거고."p106
카메라.
관주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관희는 동생이 함께 사진을 배우고 싶어했던 문정에게 카메라를 전해준다.
문정과 관주는 연인사이였는데 문정은 연락이 안되 헤어지게 된 문정의 누나 관희를 만나게 되면서 관주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관주는 불법체류자를 어쩌다가 찍게 되었는데, 그 불법체류자가 자신이 신고당할까해서 카메라를 뺏으려고
쇠파이프로 관주를 내려쳤고 카메라를 꼭 쥐고 있었던 관주가 돌길에 넘어가서 죽었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누나 관희는 슬픔을 이기기 위해 알코올에 빠진 것 같다.
실내화 한켤레
그 만남이 행인지 불행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P176
선미는 거실에 가족사진을 걸어두는 여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남편과 쌍둥이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자기 삶이 두칸의 차량처럼 그들의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시간과 그들이 자기 삶에 끼어든 이후의 시간, 이렇게 둘로만 명확히 분리된다는 생각에 한없이 억울하고 서글플 뿐이었다.p180
그들의 뒷모습을 경안은 안 보은 척 티며보았다. 춤추러 가는 구나,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경안은 차가운 공기를 뿜어내는 시멘트 벽으로 둘어싸인 넓고 휑뎅그렁한 현관에서 자신이 벗어놓은 실내화 한켤레를 오랫동안 가만히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P197
드디어 14년만에 선미가 압구정동에 산다는 건 알아냈지만 그녀가 그 집에서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데는 끝내 실패헀다, 단지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경안은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를 도망치듯 빠져나오면서 선미를 휘갑고 있는 묘한 분위기가 비밀스러운 안개라기 보다 치명적인 가스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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