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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여호수아 3장1~17절
제목 : 요단을 건너
정탐꾼의 보고를 받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요단을 건넙니다. 그들이 강을 건널 때, 하나님을 모신 언약궤가 그들 앞서가며 인도하고 뒤에 서서 보호합니다.
1. 강을 건널 준비를 하다(1~6절)
1)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합니다(1절)
“[1]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 '일찌기 일어나다'의 히브리어 '솨캄'은 그 자체 로서 아침 일찍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지만, 본절에서 처럼 '아침에'라는 수식어와 함께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6:12), 아이 성(8:10)을 정복하기 위해서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는데, 이는 대사(大事)를 앞두고 여호수아가 항상 영적으로 먼저 무장했음을 보여줍니다.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 '싯딤'과 '요단'에 관해서는 각각 1:2과 2:1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떠나다'의 히브리어 '나사'는 '천막 말뚝을 뽑다', '출발하다', '여행하다'를 뜻하는 말로서, 천막생활을 하며 유랑하였던 초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생활 무대와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즉 그들은 다음 여행지로 갈 때 천막 말뚝을 뽑아 천막을 걷은 다음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숙하다'의 히브리어 '룬'은 대개 어떤 장소에서 밤을 보내려고 숙박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됩니다.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을 두루 다니며 연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이 곳을 떠나라 합니다(2~3절)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사흘 후 - 즉 싯딤(Shittim)에서 요단 강둑에 이른 지 3일이 지난 때입니다. 이처럼 요단 강둑에 이르러 3일을 유숙한 이유는 요단 강 도하(渡河)직전 최종 마무리 준비를 해야 했고, 또한 여호와의 지시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Loen Wood, C.F. Keil).
레위 사람 제사장들. - 레위 지파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제사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사장은 그 가운데서 오직 아론의 자손에만 국한되었습니다(민 3:1-4).
신 31:25 주석 참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 '법궤'(레 16:2), '증거궤'(출 30:6), '여호와의 궤'(수 4:11), '하나님의 궤'(삼상 3:3), '주의 능력의 궤'(대하 6:41)등으로 불리 워 지기도 하는 언약궤는 출25:10-22에 그 규모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언약궤는 금판으로 입혀진120x60x60㎝의 크기의 상장입니다.
이 궤 속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져 있었습니다(히 9:4; 왕상 8:9).
한편 이 언약궤를 운반할 경우, 규정상으로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되어 있었지만(민 4:4-15), 특별히 중요한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직접 운반하기도 했습니다(신 31:9; 왕상 8:3, 6).
그 뒤를 따르라. - 광야 생활 동안에도 줄곧 언약궤가 앞서 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 행진하였습니다(민 10:33-36).
여기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바, 이를 뒤따르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Matthew Henry).
3)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 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 말라(4절).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 '규빗(Cubit)은 통상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 까지의 거리고 약 45cm입니다.
그러므로 2000 규빗은 약 900m 정도의 거리인데, 이 거리는 요단강의 바깥 둑, 곧 엘 그호르(el-Ghor)에서 강바닥, 곧 에즈 조르(ez-Jor)에 이르는 거리고, 이는 제사장들의 발이 강가에 닿았을 때(8절) 백성들은 여전히 바깥 강둑에 머물러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한편 이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언약궤를 따라가게 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에 대해 경외심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 (Calvin, Matthew Henry).
(2)온 백성으로 하여금 언약궤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Keil, Woudstra).
한편 후일 유대 랍비들은 본절에 언급 된 바 백성들과 언약궤 사이의 거리를 근거로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허용 거리를 산출하기도 했습니다.
가까이 하지는 말라. - '가까이 하다'의 히브리어 '카라브'는 '끌어당기다', '접근하다'를 뜻합니다.
후일 법궤 운반시 웃사(Uzzah)가 무분별하게 법궤에 손을 댓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삼하 6:6, 7)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명령은 언약궤가 거룩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5절)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 요단 강 도하를 앞두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결'을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성결의 구체적인 행위로 의복을 빤다든가(출 19:10, 14), 옷을 갈아입는 다든가(창 35:2), 또는 여인을 멀리하는 것(출 35:2)등과 같은 외부적 성결 행위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그러한 준비를 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수아가 명령한 성결(聖潔)은
심령의 성결, 곧 영적 성결의 자세를 삼가 가다듬으라는 의미입니다.
(Keil & Delitzsch, Vol. ?. p. 41).
한편 공동번역은 "목욕 재계하여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기이한 일-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 속에 개입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출 34:10에서도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5)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갑니다(6절)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앞서 나아가니라. - 여기서 '앞서'의 히브리어 '리프네'는 단순히 '앞에서'(before ; KJV, RSV)라는 뜻보다는 '선두에서'(ahead of ; NTV, 공동 번역)라는 뜻이 더 강합니다.
실로 넘실대는 요단 강물에 발을 내디딘다는 것은 큰 믿음과 용기가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언약궤가 함께 하였으므로 오직 믿음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2. 요단을 건너는 방법(7~13절)
1) 요단강 도하를 명령하다(7~8절)
(1) 여호수아는 큰일을 앞에 두고 먼저 성결할 것을 명령합니다(7절).
“[7]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성결(聖潔)은 심령의 성결, 곧 영적 성결의 자세를 삼가 가다듬으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 모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크신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용기를 주셨던(1:9) 하나님께서 요단 강 도하 직전, 다시 한 번 크신 능력의 말씀으로 여호수아를 격려하십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 기적적인 요단 강 도하 사건은 장차 여호수아를 영화롭게 할 일련의 기적적인 사건들의 시작에 불과함을 시사 합니다.
그들이 알게 하리라 - 홍해 도하(渡河)의 기적이 모세를 주의 종으로 확실히 인정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듯이(출 14:31), 요단 강 도하 사건의 기적은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신뢰할만한 지도자로 확실히 인정받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2)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에 들어서라”고 명령하라합니다(8절).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명하여 이르기를. - 홍해 도하 기적에 있어서의 모세의 역할보다 요단강 도하 기적에 있어서의 여호수아의 역할은 간접적입니다.
-즉 모세는 지팡이를 들 므로써 직접 사역한 반면에(출 14:16, 21),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내림으로써 간접 사역을 하였던 것입니다.
요단에 들어서라 - '들어서다'는 '서다', '머무르다'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요단강에 들어가 계속 서 있음을 뜻합니다.
2) 백성을 독려하는 여호수아(9~13절)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9절).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이리 와서. - 여기서 '와서'는 '끌어 당기다', '가까이 가다'란 의미입니다(삼상 14:38; 룻 2:14).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나아오라는 뜻으로, 이하 선포되는 말씀의 중요성을 암시할 뿐 아니라,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2) 살아계신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임을 말씀합니다(10절).
“[10]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살아 계신 하나님. - 이 말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영원토록 살아 계시사 우주 만물의 운행과 인간의 모든 역사에 친히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로 여호와는 이방의 온갖 목석의 죽은 신(神, 시 96:5;115:3-7)과는 현격히 대조되는 살아계신 하나님 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살아계심을 특별한 사역을 통해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친히 나타내시는데,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진멸시키심으로써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십니다.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 가나안 일곱 족속의 진멸의 필연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쫓아내다'의 히브리어 '야라쉬'는 '어느 특정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쫓아내고, 그 지역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는 이중적 의미의 낱말로서, 구약 성경, 특히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많이 사용되었습니다(Hartley).
(3)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갑니다(11절)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보라- 단순히 '바라보라'는 개념이 아니라, 큰 주의를 요(要)할 때 쓰는 감탄사입니다.
온 땅의 주 - 당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신을 민족신 내지는 지역 신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느 한 지역(민족)에서 다른 지역(민족)으로 들어갈 경우에 그 지역(민족)의 신을 따라 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기서 분명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무변성(無邊性) 및 무소부재성(無所不在性)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을 어느 폐쇄적 공간이나 특정한 대상에게만 국한시키려는 시도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습니다.(왕상 8:27;사 66:1;행 7:48, 49).
한편, 특히 이 표현이 요단 강 도하와 관련하여 사용된 것은 세상의 전 영역 즉, 바다와 강들도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Calvin, Keil).
(4)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합니다(12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열두 명을 택하라.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도합 열 두 명이 선발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성(統一性)과 완전성(完全性)을 뜻합니다.
이들은 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여호수아, 혹은 제사장들 곁에서 요단 도하 사건과 관련하여 그때그때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4:3).
(5)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13절)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 - 요단강은 헬몬 산 부근의 4개의 수원(水原)에서 시작되므로 '위'는 곧 '헬몬 산에서부터 발원하는 곳'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로 반석에서 물을 내실 수 있는 하나님은(출 17:6). 또한 물의 근원을 막으실 수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 출 15:8에 나타나 있는 홍해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끊어지다'의 히브리어 '카라트'는 '자르다', '분리하다'의 뜻으로서, 흘러내리던 요단 물이 분리되어 그 아래의 물과 합쳐지지 않았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쌓이다'는 멈춘 물이 점차 산처럼 쌓여갔음을 보여주고, '서다'는 마치 사람이 자기의 몸을 일으켜 세우듯 물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 계속 불어났음을 나타냅니다.
3. 요단을 건너다(14~17절)
1)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갑니다(14절)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본절로부터 17절까지는 요단강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으로 통과한 이적적인 사건이 간단명료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수사학적인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장식하지 않고 발생한 사건만을 간략히 기록한 것은 이 사건의 실제성을 더욱 분명히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한편 본 사건이 일어난 때는 니산월(오늘날 태양력으로는 3, 4월경) 10일이었는데, 출애굽 할 때에도 역시 니산(Nisan)월이었습니다.
이 무렵의 팔레스틴은 많은 강수량으로 인해 호수나 강들이 최고 수위(水位)를 기록합니다.
이러한 때에 처자식과 가축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외에 다른 것으로써는 도저히 설명 되어질 수 없습니다.
진정 출애굽 당시나 광야생활 때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진입 때에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役事)가 나타났던 것입니다(출 14:21;16:13).
그리고 이는 향후 가나안 땅에 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조(前兆)라 할 수 있습니다.
2)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물이 끊어지고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 넘니다(15~16절)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곡식 거두는 시기. - 여기서 곡식은 '밀과 보리'를 뜻합니다.
아열대(亞熱帶) 기후에 속하는 여리고 지역은 태양력 4,5월 경이 그 수확기입니다.
언덕에 넘치더라. - 여기서 '언덕'은 퇴적 작용으로 생긴 강의 양쪽 자연 제방을 가리킵니다.
또한 '넘친다'는 것은 단순히 물이 제방에 가득 차는 것을 뜻하지 않고 가득 차 범람하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밀과 보리를 거두는 시기쯤에는 북쪽 헬몬 산의 눈이 녹을 뿐 아니라 또한 봄비가 내리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는 최고 수위에 오르게 되고 요단 강물은 크게 불어 그 깊이는 3-4m, 그 넓이는 30m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전체 요단강물이 만수가 되어 염해(사해)로 흘러가는 이 때에는 요단 강의 가장 좁은 나루터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방법으로 도강(渡江)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Rovinson).
더구나 처자식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엄두조차 못 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완전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그 도강(渡江)이 오직 하나님의 기적임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발이 물가에 잠기자. - 강둑을 넘칠 정도의 거센 물결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궤를 메고 물속으로 담대히 들어간 제사장들의 용기는 아주 크다고 하겠습니다(Calvin).
그들의 이러한 용기는 오로지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 볼수 있습니다.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강물에 잠기자 곧 요단 강물은 그 흐름을 멈추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의 섭리임에 틀림없습니다.
한편 우리는 성경을 고찰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적을 이루시는데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연을 이용한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한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입니다.
전자(자연을 이용한)의 예로 우리는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 중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재앙(출 12:29, 30), 그리고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수 10:12-15)및 일영표 위의 해 그림자가 10도를 물러난 사건(왕하 20:8-11)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 나타난 요단 강물의 멈춤 사건에 대하여 자연을 이용한 기적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즉 아담 지방 근처에는 오늘날 까지도 큰 절벽이 있는데, 가끔 지진 등으로 인해 바위가 무너져 내려 요단 강물을 일시 정지하게 한다고 합니다.
실제 그러한 일이 A.D. 1267년 12월에 일어나 16시간, A.D. 1927년 7월에 일어나 21시간 30분 가량 요단 강물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통해 당시의 요단 강물도 막았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것 역시 가능한 주장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이적이 부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의 내용상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닿자마자 방금 까지도 넘실대며 흐르던 물이 곧 멈추며 뒤로 물러나 쌓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 및 가축 떼까지 건너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해 볼 때, 요단 강물의 멈춤 사건은 순수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이적 사건으로 봄이 좋습니다.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 - 흐르던 물이 그치고 쌓이는 바람에 일종의 역류(逆流) 현상이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
'사르단'(Zarethan)은 여리고 북방 약 20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에 있는 성읍인데, 후일 솔로몬이 성전을 만들 때 이곳에서 놋을 부어 기구를 만들었습니다(왕상 4:12;7:46).
3)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습니다(17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여호와의 언약궤. - 3절 주석 참조.
요단 가운데. - 이 말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단지 '강 가'(by the river)에 서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강 바닥'(the bed of the river)에 서있었다는 뜻입니다(Keil).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 여기서 '마른 땅'은 '물기 없는 땅'(dry ground;창 7:22;출 14:21)을 뜻합니다.
그리고 '굳게'라는 말은 '서다'와 대등한 의미를 지닌 동사 '쿤'에서 파생했는데, 이는 '확정짓다', '고정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다 건널 때까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자기가 선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지켰다는 말입니다.
요단을 건너. - 멈추었던 물이 다시 흐르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에서 오직 믿음으로 요단강을 온전히 건너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를 도합 200만으로 추산할 때(민 26:51), 그들이 그 행군의 폭을 1-2km 정도로 했다면 요단강을 건너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반나절(half a day) 정도 걸렸으리라 추정됩니다.
믿음은 모험이다.
지도자가 그 믿음에 본을 보일 때 공동체는 삽니다.
요단강에 발을 담그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믿음의 진위, 성숙과 미성숙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그 믿음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모여주는 자입니다.
성도들이 따르기 원하는 삶, 경험하기 원하는 하나님을 먼저 경험하는 자들입니다.
묵상 Point
1) 성결하라.
이제 싯딤에 있는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위해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그것은 홍해를 건넜던 사건의 재현이다.
홍해에서처럼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을 성결하게 하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성결과 순종, 이것이 가나안 땅에 진입하는 비결이고, 더 나아가 그 땅을 차지하는 비결이다.
2) 들어가라.
물이 흐르는 요단강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
지도자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앞서 가야한다.
모든 믿음은 모험이며, 특히 지도자의 믿음은 모범을 보이는 믿음이다.
언약궤가 단지 장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임을 믿어야 건널 수 있다.
요단강을 건너는 믿음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차지할 구 있다.
3) 건너가라.
말씀대로 순종하여 요단강에 발을 담갔을 때, 흥해에서 일어난 일이 요단강에서도 일어난다.
강이 가라져 ‘마른 땅’이 생기고, 그 위로 모든 백성들이 무사히 요단강을 건넌다.
혼돈의 물이 물러가고 마른 땅이 생기듯이, 가나안의 혼돈의 세력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앞에서 물러가게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하여 걸어갈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전체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백성보다 앞서 가시고(6,8,13-15절), 백성이 다 건너기까지 뒤에 서 계십니다(17절).
홍해를 건널 때에도,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늘 앞서 행하시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이들은 ‘지나본 적 없는 길’(4절)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도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나왔고, 이스라엘도 돌이킬 수 없는 낯선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라 전에 지나보지 않았던 ‘십자가의 길’로 나선 이들입니다. 그 길은 물리적으로 낯선 길일 뿐 아니라 낯선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 소견에 옳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보호하실 것입니다.
7절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인정받게 하십니다.
모세를 통해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처럼 여호수아를 통해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일로 온 이스라엘이 여호수아를 모세와 같은 지도자로 인정할 것입니다.
제 힘과 업적을 자랑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는 지도자가 백성의 인정을 받습니다.
서둘러 업적을 쌓기 위해 일을 벌이지는 않습니까? 더디더라도 신중하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과정을 생략하지 말아야 합니다.
10-17절 온 땅의 주님이십니다.
대적하던 애굽을 홍해에 수장시키고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을 물리치신 후 이제 요단을 건너가 거역하는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홍해가 하나님 백성의 진로를 막아서지 못했듯이 요단 강물도 그 앞에서 길을 열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할 때 어떤 대적과 장애물도 우리 여정을 막아설 수 없습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5절 하나님을 멀리서라도 보고 따르려면, 먼저 부정을 씻어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백성이지만, 여전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리를 두어야 할 부정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좁힐 수 없는 간격을 없애려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백성을 온전하게 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결한 백성이 되어 언제든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
공동체-날마다 말씀을 통해, 낯선 신앙의 길을 담대히 지나게 하소서.
열방-이슬람 무장단체 IS가 소탕되었지만 숨어있는 대원들은 재기를 노리고 있다. 모든 대원이 색출되어 잔당에 의한 테러와 공격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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